대지도론(大智度論) 제62권 5
大智度論 釋照明品 第四十 卷六十二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0. 조명품(照明品)을 풀이함 5
衆生無有故,般若波羅蜜無有;色無有故,般若波羅蜜無有;乃至佛無有故,般若波羅蜜無有。
중생은 있지 않은 무유(無有)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있지 않은 은 무유(無有)이어야 하고
물질(色)은 무유(無有)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무유(無有)이어야 하며,
나아가 부처님께서는 무유(無有)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무유(無有)이어야 합니다.
衆生不可思議故,般若波羅蜜不可思議;色不可思議故,般若波羅蜜不可思議;乃至佛不可思議故,般若波羅蜜不可思議。
중생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불가사의하여야 하고
물질(色)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불가사의하여야 하며,
나아가 부처님께서는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불가사의하여야 합니다.
衆生不滅故,般若波羅蜜不滅;色不滅故,般若波羅蜜不滅;乃至佛不滅故,般若波羅蜜不滅。
중생은 멸하지 않는 불멸(不滅)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불멸(不滅)이고
물질(色)은 불멸(不滅)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불멸(不滅)이며,
나아가 부처님께서는 불멸(不滅)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불멸(不滅)이어야 합니다.
衆生不可知故,般若波羅蜜不可知;色不可知故,般若波羅蜜不可知;乃至佛不可知故,般若波羅蜜不可知。
중생은 알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불가지(不可知)이어야 하고
물질(色)은 알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불가지(不可知)이어야 하며,
나아가 부처님께서는 불가지(不可知)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불가지(不可知)이어야 합니다.
衆生力不成就故,般若波羅蜜力不成就;色力不成就故,般若波羅蜜力不成就;乃至佛力不成就故,般若波羅蜜力不成就。世尊!以是因緣故,諸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名爲摩訶波羅蜜。”
중생의 힘은 성취되지 않는 불성취(不成就)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의 힘도 불성취(不成就)이어야 하고
물질(色)의 힘은 불성취(不成就)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의 힘도 불성취(不成就)이어야 하며,
나아가 부처님의 힘은 불성취(不成就)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의 힘도 불성취(不成就)이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인연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을 마하바라밀이라 합니다.”
▶論. 釋曰:須菩提聞佛所說,疑心開解,讚歎般若波羅蜜言:“是般若名爲摩訶波羅蜜。”佛反問須菩提:“於汝意云何?何以名爲大波羅蜜?”須菩提答:“色等諸法不作大、不作小故。”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의심이 풀리어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면서 “이 반야를 마하바라밀이라 합니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되받아 물으시면서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엇 때문에 대(大) 바라밀이라 하는가?”라고 하시자, 수보리 존자가 대답하기를 “물질(色) 등의 제법을 크게 하지도 않고 작게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고 하였으며,
凡夫人心於諸法中隨意作大、小。如人急時,其心縮小;安隱富樂時,心則寬大。又如八背捨中,隨心故,外色或大、或小。
범부인의 마음은 제법 가운데에서 뜻에 따라 크게 하고 작게 하기도 하나니, 마치 사람이 다급할 때에는 그 마음이 줄어들어 작아지거니와 안온하고 넉넉하고 즐거울 적에는 마음이 너그럽고 커지는 것과 같으며,
또 팔배사(八背捨) 가운데에서 마음을 따르므로 바깥의 외색(外色)이 혹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것과 같다.
팔해탈(八解脫, 산 aṣṭau vimokṣāḥ, aṣṭā-vimokṣa, mukti-mārgâṣṭaka, 팔 aṭṭha vimokkhā, 영어: eight kinds of liberation)은 8가지 선정의 힘을 의지하여 색(色, 물질)과 무색(無色, 마음과 마음작용)에 대한 탐욕, 한계 또는 속박을 버리는 것, 즉, 색과 무색에 대한 탐욕, 한계 또는 속박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뜻한다.
8배사(八背捨, 8가지 등지고 버리는 일), 8유무(八惟無, 8가지 꼭 [해야 할] 없애는 일), 8유무(八惟務, 8가지 꼭 해야 할 일)라고도 한다.
①내유색상관외색해탈(內有色想觀外色解脫) ②내무색상관외색해탈(內無色想觀外色解脫) ③정해탈신작증구족주(淨解脫身作證具足住) ④공무변처해탈(空無邊處解脫) ⑤식무변처해탈(識無邊處解脫) ⑥무소유처해탈(無所有處解脫) ⑦비상비비상처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 ⑧멸수상정해탈(滅受想定解脫) - 위키
又如凡夫人於眼見色中,非色事亦言色;如指業、指量、指數、指一異等法合爲色,是名色作大。
또한 마치 범부가 눈으로 물질(色)을 보는 가운데서 물질(色) 아닌 것도 물질(色)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마치 업(業)을 가리키고 양(量)을 가리키고 수(數)를 가리키며, 같고 다르다고 하는 등의 합하는 법을 물질(色)이라 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물질(色)을 크게 한다.”고 하며,
有人眼見色,可見處名色,不可見處不名色。有人言:麤色虛誑非眞色,但微塵常故是眞色;微塵和合時,假名爲色,是名色作小。
어떤 사람이 눈으로 물질(色)을 볼 때, 볼 수 있는 것을 물질(色)이라 하고, 볼 수 없는 것은 물질(色)이라 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거친 물질의 추색(麤色)은 거짓이어서 진실한 물질(色)이 아니며 단지 아주 작은 티끌은 항상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진실한 물질(色)일 뿐이다.”고 하며,
작은 티끌이 화합하였을 때에 임시로 가명을 붙여 물질(色)이라 하나니, 이것을 “물질(色)을 작게 한다.”고 한다.
如是等因緣,凡夫人於色或作大、或作小,隨憶想分別故,破諸法性;般若波羅蜜,隨色性如實觀,不作大、小。
이와 같은 등의 인연으로 범부는 물질(色)을 혹 크게 하기도 하고 작게 하기도 하면서 생각과 분별을 따르는 까닭에 제법의 성품을 깨뜨리거니와 반야바라밀은 물질(色)의 성품에 따라 여실히 관찰하면서 크게 하거나 작게 하지 않는다.
“不合不散”者,般若波羅蜜,不說微色和合更有色生;但有假名,無有定相色,是故無合、無散。色無邊故無量,無處不有色、無時不有色,故無有量。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라 함이란, 반야바라밀은 미세한 물질(色)이 화합한 것을 물질(色)이 생긴다고 말하지 않으니, 다만 임시의 가명이 있을 뿐이요, 일정한 정상(定相)의 물질(色)이 없기에 불합불산(不合不散)이거니와 물질(色)은 끝이 없기 때문에 무량하여서 곳곳마다 물질(色)이 있지 않음이 없고, 시간마다 물질(色)이 있지 않음이 없으므로 무량한 것이다.
色是作法;般若波羅蜜中,不以微塵合故有麤色;不以麤色散故還歸微塵,是故言不合不散。
물질(色)은 바로 짓는 작법(作法)이거니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는 작은 티끌이 합한 까닭에 거친 물질(色)이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거친 물질(色)이 흩어지는 까닭에 작은 티끌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다.”고 한다.
起法有分別籌量多少,不得言不合不散。無量,如凡人空故說無量,實故說有量;般若波羅蜜 遠離空實故言“非量非無量”。
일어나는 기법(起法)에는 많고 적음을 분별하고 헤아리기에 “불합불산(不合不散)”이라 말할 수가 없으니,
예를 들자면, 범부는 공(空)한 것이기 때문에 “무량하다.”고 말하고, 실(實)하기 때문에 “한량이 있는 유량(有量)이다.”고 말하거니와 반야바라밀은 공(空)하고 실(實)한 것을 다 멀리 여의기 때문에 “한량한 것도 아니고 무량한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凡夫人隨心憶念得解故,於色作廣、作狹;般若波羅蜜觀實法相,不隨心故,非廣、非狹。
범부는 마음을 따라 기억하여 이해하기 때문에 물질(色)에 대하여 넓게 되기도 하고 좁게 되기도 하거니와, 반야바라밀은 진실한 실법상(實法相)을 관찰하여 마음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넓게 되는 것도 아니고 좁게 되는 것도 아니다.
凡夫人不知和合因緣生諸法,故言“色有力”。如合衆縷以爲繩,不知者謂繩有力;又如牆崩殺人,言牆有力。若各各分散,則無有力。般若波羅蜜,知和合相,不說一法有力、不說言無力。是故名“摩訶般若波羅蜜”。
범부는 인(因)과 연(緣)이 화합하여 제법이 생기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물질(色)에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마치 여러 개의 실로 줄을 만들었을 때, 그것을 모르는 이는 그 줄에 힘이 있음을 아는 것과 같고, 또 담이 무너져 사람을 죽이면 “그 담에 힘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나, 만약 각각으로 나누어서 본다면 그 각각에는 힘이란 없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은 화합한 화합상(和合相)이라는 것을 아는지라 어느 하나의 일법(一法)에도 힘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며, 힘이 없다고도 말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마하반야바라밀이라 한다.
復有大因緣,若菩薩不遠離六波羅蜜,色等諸法不作大、不作小。但行般若波羅蜜,則心散亂、不調順,多生疑悔、邪見,失般若波羅蜜相。若與五波羅蜜和合行,則調柔不錯,能成辦衆事。
또한 큰 인연이 있으니, 만약 보살이 육바라밀을 멀리하지 않는다면 물질(色) 등의 제법을 크게 하지도 않고 작게 하지도 않으나, 단지 반야바라밀만을 행한다면 마음이 산란하고 조화되지 않아서 많은 의심과 삿된 사견이 나므로, 반야바라밀의 상(相)을 잃게 되거니와
만약 오바라밀(五波羅蜜)과 화합하여 행한다면 조화되고 어긋나지 않아서 모든 일을 다 성취할 수 있다.
譬如八聖道分,正見是道,若無七事佐助,則不能辦事,亦不名正見。是故佛說:一切諸善法皆從因緣和合共生,無有一法獨自生者。是故和合時各各有力,但力有大小。是名行般若波羅蜜。
비유하자면, 마치 8성도분(八聖道分)에서 정견(正見), 그것이 도(道)이지만, 만약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정정의 일곱 가지 도움이 없으면 이루어 질 수 없으며 또한 정견(正見)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착한 선법은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화합하여 같이 생기는 것이요, 어느 하나의 일법도 스스로 혼자 생기는 것은 없다.”고 하셨으니, 그러므로 화합했을 때에는 힘이 있으나, 다만 그 힘의 크고 작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 한다.
若菩薩離五波羅蜜,行般若波羅蜜,分別色等諸法若大、若小等,是人卽墮用有所得,墮有邊中。若於色等諸法無所分別若大、若小,離五波羅蜜,著是不大不小等空相。先分別諸法大小,有所得爲失;今著不大不小等空相,亦是失。
만약 보살이 오바라밀(五波羅蜜)을 여의고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물질(色) 등의 제법이 크고 작다고 분별한다면, 이 사람은 곧 얻을 것이 있음의 유소득(有所得)을 쓰는 것에 떨어져서, 있다는 유변(有邊)에 떨어지는 것이다.
만약 물질(色) 등의 제법에 크고 작다는 분별이 없으며, 오바라밀(五波羅蜜)을 여의면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는 등의 공한 공상(空相)에 집착한다면,
앞의 것은 제법의 크고 작음을 분별하면서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의 허물이 되고,
뒤의 것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는 등의 공한 공상(空相)에 집착하고 있으므로, 이것 역시 허물이 되는 것이니,
所以者何?此中須菩提說因緣:“有所得相者,乃至無阿耨多羅三藐三菩提。”所以者何?阿耨多羅三藐三菩提,寂滅相、無所得相、畢竟淸淨相。
왜냐하면 이에 대하여 수보리 존자가 그 인연을 말하면서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상(有所得相)이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이요,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상(無所得相)이며, 필경청정상(畢竟淸淨相)이기 때문이다.
有所得相者,生諸戲論、諍競;一切法無生無滅,無所得相。如我、衆生,十方求索不可得,但有假名,實不生。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상(有所得相)’이라 함은, 모든 쓸모없는 희론을 내면서 “일체법은 무생무멸(無生無滅)이다.”고 하면서 다투는 것이요,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상(無所得相)’이란 나(我)와 중생(衆生) 등을 시방에서 두루 찾고 구해도 얻을 수 없으며, 단지 임시의 가명만이 있을 뿐이며 실로 나지 않는 불생(不生)인 것이다.
衆生不生故,般若波羅蜜亦如衆生相,破吾我顚倒,故不生不滅。如色等諸法,生相不可得故不生。
중생은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기에 반야바라밀도 중생상(衆生相)과 같아서 오아(吾我)라는 뒤바뀜의 전도를 깨뜨려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마치 물질(色) 등과 같은 제법의 나는 생상(生相)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불생(不生)인 것이다.
二法攝一切法:若衆生、若法。此二法因緣故和合生,但有假名,旡有定性;若法無定性,此法卽是無生。是二法旡生故,當知色等諸法亦無生。衆生、法,無性、旡所有、空、離、不可思議、不滅、不可知亦如是。
두 가지 법이 일체법을 다 포섭하나니, 중생이라거나 법이라는 이 두 가지 법은 인(因)과 연(緣)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어서 다만 임시의 가명이 있을 뿐, 정해진 성품은 없는 것이니,
만약 법에 정해진 성품이 없다면, 이 법은 무생(無生)이고, 이 두 법이 무생이기 때문에 물질(色) 등의 제법 또한 무생(無生)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생과 법은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이고,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며, 공(空)하고 여읜 이(離)이며, 불가사의(不可思議)하며, 불멸(不滅)한 것이며, 알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라는 것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