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62권 3

Skunky 2024. 8. 29. 08:00

大智度論 釋照明品 第四十 卷六十二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역.  

40. 조명품(照明品) 풀이함 3

 

能生十方三世無量諸佛法故言“諸菩薩母”。一切法中各各自相空故言“不生不滅”。斷、常是諸見本,諸見是諸結使本,諸結使是一切生死中苦本,是故言“遠離生死”。

시방과세(三世)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의법을 능히 내기(生) 때문에 ‘모든 보살의 어머니’라 하고, 

일체법 가운데에서 저마다 각각의 상(相)이 공하기 때문에 “불생불멸(不生不滅)” 이라 하며,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은 모든 소견의 근본이요, 모든 소견은 모든 번뇌 결사(結使)의 근본이며, 

모든 번뇌 결사(結使)는 일체의 생사(生死) 가운데에서 괴로움의 근본인 고본(苦本)이기 때문에

“나고 죽음의 생사(生死)를 멀리 여의는 원리(遠離)한다.”고 하며, 


能令衆生信三寶等諸善法寶;得諸善法寶故,得世閒、出世閒樂。能令衆生得二種樂故言“無救者作護”。

중생으로 하여금보(三寶)  모든 착한법의 보배를 믿게 하기 때문에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의 즐거움을 얻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가지의 즐거움을 얻게 하기 때문에 “구제함이 없는 이에게 구호자가 된다.”고 하였으며, 


是般若波羅蜜相,乃至十方諸佛所不能壞。所以者何?畢竟不可得故,何況餘人!故言“具足波羅蜜”。

 반야바라밀의 상(相) 시방의 모든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파괴할 수가 없으니, 왜냐하면 필경에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거늘, 하물며  밖의 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갖추어진 구족바라밀(具足波羅蜜)”이라 한다.


是般若波羅蜜中無自性故,說諸法不轉生死中,不還入涅槃, 不生故不轉,不滅故不還,故言“能轉三轉十二行法輪”。三轉十二行法輪義,如先說。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에 “제법이 생사(生死) 가운데에서 유전하지도 않고, 다시 되돌아와서 열반에 들지도 않는다고 하며,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유전하지도 않으며 불멸(不滅)이 때문에 되돌아 오지 않나니, 

그러므로 “삼전(三轉) 십이행(十二行)의 법륜을 굴린다.”고 하는 것이며,

삼전 십이행의 법륜에 대한 이치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삼전(三轉), 삼전법륜(三轉法輪),석존께서 3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에 의해 4제(諦)의 가르침을 설하신 것으로, 시전(示轉)·권전(勸轉)·증전(證轉)이며, 석존께서 세 번 4제(諦)의 교(敎)를 말씀한 것.
(1) 시전(示轉,  시상전示相轉). 이것은 고(苦), 이것은 집(集), 이것은 멸(滅), 이것은 도(道)라고 그 상을 보인 것.
(2) 권전(勸轉, 권수전勸修轉). 고(苦)를 알라, 집(集)을 끊어라, 멸(滅)을 증득하라, 도(道)를 닦으라고 권하신 것.
(3) 증전(證轉,  ․ 인증전引證轉). 석존께서 스스로 고를 알아 집을 끊고, 멸을 증득하려고, 도를 닦은 것을 보여서 다른 이들로 하여금 증득케 하신 것.
●십이행(十二行) 고(苦), 집(集), 멸(滅), 도(道)를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으로 세 번 설하여 12 번이 된 것.

 

一切法有二分:若有、若無。是般若中,有亦不應取,無亦不應取;離是有、無,卽是諸法性,是故言“能示諸法性”。如是等無量因緣,讚歎般若,後當廣說。

일체법에는  가지 갈래가 있으니, 있다는 유(有)와 없다는 무(無)이다. 

 반야 가운데에서는 있다는 유(有) 취하지 않아야 하고, 없다는(無)도 취하지 않아야 하며, 

유(有)를 여의 것이 바로 제법의 법성(法性)이기 때문에 “제법의 법성(法性)을 능히 보인다.”고 하나니, 

이와 같은 등의 무량한 인연으로 반야를 찬탄하는 것이니, 뒤에서도 널리 설명할 것이다.


是般若波羅蜜是無相相。有人心未淳熟,求其定相不能得,便生慢心。

是故舍利弗問:“應云何供養?”佛敎言:“當如供養佛。”

 반야바라밀은 곧 무상(無相)의 상(相)이니, 

어떤 사람은 마음이 아직 미숙(未淳熟)하나, 그 정해진 정상(定相)으로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교만한 만심(慢心)을 내기 때문에 사리불 존자가 “어떻게 공양해야 합니까”라고 물은 것이요, 

부처님께서는 “부처님께 공양하듯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以人從久遠已來深著衆生相,於貴法情薄,是故言:“如供養世尊。”智者觀之,佛與般若等無異。所以者何?般若修集,卽變爲一切智。

사람들은 오랜 옛적부터 중생상(衆生相)에 깊이 집착하면서, 존귀한 법에 대한 마음(情)이 천박한 때문에 “세존께 공양하듯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지혜로운 이는 부처님과 반야는 똑같아서 다름이 없다고 관찰하나니, 왜냐하면 반야로 닦고 쌓은 것이  변하여 일체지(一切智)가 되기 때문이다.


此中佛自說因緣:“是般若波羅蜜中,出生賢聖等,出生十善道等,世閒、出世閒法,乃至一切種智。”

여기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직접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성현들이 출생하며, 십선도(十善道)  세간과 출세간의  내지는 일체종지를 출생시킨다.”고 하신 것이다.


“爾時,帝釋作是念”者,帝釋意:“以舍利弗漏盡離欲人,如似著法人讚歎般若。”今舍利弗自說因緣:“菩薩爲般若守護故,以方便力,能隨喜福德迴向,而不破般若波羅蜜相,是事希有,故尊敬般若波羅蜜。是故問佛云何供養。”

그 때에 “제석천왕이 생각했다.”고 함이란, 제석이 속으로 “사리불 존자는 번뇌가 다하고 욕심을 여읜 사람인데도 마치 법에 집착하는 사람같이 반야를 찬탄한다.”고 하였고, 

이에 사리불 존자가 스스로 그 인연을 말하면서 “보살은 반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방편의 힘으로써 따라 수희하고, 그 복덕을 회향하나, 그러면서도 반야바라밀의 상(相) 깨뜨리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일이 희유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존경하는 것이요, 

 때문에 부처님께 여쭈기를 “어떻게 공양해야 합니까”라고  것이다.


復次,憍尸迦!般若波羅蜜自力勢故,勝五波羅蜜。

또한 교시가는 “반야바라밀 자체가 지닌 세력 때문에바라밀(五波羅蜜)보다 수승하다.”고 함에 관해 물은 것이다.


問曰:五波羅蜜應以五盲人作喩,何以乃說“百千”?

묻나니, 오바라밀(五波羅蜜)은 마땅히 다섯 소경으로써 비유해야 될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십만의 소경에 비유한 것입니까?


答曰:此中說其力勢,不論多少。復次,若言導五不足爲貴,故說“百千”。復次,波羅蜜亦多,如『賢劫三昧』中有八萬四千種波羅蜜,廣說則無量。

답하나니, 여기서는  세력을 말하는 것이요, 많고 적음을 논하지 않으며, 또한 만약 다섯 사람만을 인도한다고 한다면, 귀히 여김에 대한여  부족하므로 십만 명이라 말한 것이며, 

또한 바라밀은 역시 많은 것으로, 마치 현겁삼매(賢劫三昧)에는 8만 4천 가지 바라밀이 있으며  널리 말한다면 무량한 것이다.


問曰:檀波羅蜜亦有眼。所以者何?信有罪福,破邪見等無明,故能布施,何以故喩無眼?

묻나니, 단(檀, 보시)바라밀에도 역시 눈(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와 복이 있다고 믿으며, 삿된 사견 등의 무명(無明)을 깨뜨리기 때문에 보시하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눈이 없다는 비유하신 것입니까?


答曰:布施中,智慧是客來,非正體。譬如四大常和合,不得相離;諸波羅蜜和合亦如是。

답하나니, 보시에서의 지혜는 객(客)으로 오는 것이요, 바로  자체인 정체(正體)가 아닌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대(四大)가 항상 화합하여 서로가 여읠  없는 것과 같이, 모든 반야바라밀의 화합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不能趣道,道者,菩薩十地道;城者,一切種智等諸佛法。復次,道者,八聖道分;城者,涅槃。

“길을 찾아가지 못한다는, 불능취도(不能趣道)”라 함에서,

도(道)란 보살의 십지도(十地道)요, 성(城)이란 일체종지  모든 부처님의 법이며,

도(道) 8성도분(聖道分)이요, 성(城)이라 함은 열반이다.

 

如盲人雖有手足力,不能得隨意有所至;得有眼人示導,則隨意所往,皆能成辦。五波羅蜜雖各各有事能,不得般若示導,尚不得二乘,何況無上道!五波羅蜜得般若波羅蜜將導故,得波羅蜜名字,至成佛道。

마치 소경이 비록 손과 발에 힘은 있을지라도 자기의 뜻대로 목적지에 도달할  없고,  있는 사람의 지시와 인도가 있어야 그가 뜻하는 목적지에 이를  있는 것과 같이, 

오바라밀(五波羅蜜)에도 비록 저마다 각각 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반야의 지시와 인도를 얻지 못한다면, 오히려승(二乘)조차도 얻을  없을 것이거늘, 하물며 위없는 무상도(無上道)이겠는가?

오바라밀(五波羅蜜) 반야바라밀의 인도를 얻기 때문에 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부처님의 불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帝釋問:“汝自說諸波羅蜜和合,互相佐助,如四大不得相離。如是者,般若波羅蜜亦待五法,何以獨說以般若故五法得波羅蜜名字?”

제석이 묻기를 “그대는 스스로 말하기를 ‘모든 바라밀이 화합하여 서로가 돕고 있는 것이 마치대(四大)가 서로 여읠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며,

반야바라밀도 다섯 가지의법(五法)을 필요로 해야거늘, 무엇 때문에 유독 반야 때문에 오법(五法) 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는다고 하는가”라고 하였다.


答曰:雖六事和合、互相佐助,但般若波羅蜜力大故,五法因得波羅蜜名字。譬如合散,雖衆藥各各有力,石勢大故,名爲石散。又如大軍摧敵,雖各各有力,主將力大故,主得名字。

그것에 대하여 답하기를 “비록 여섯 가지의 육사(六事)가 화합하여 서로가 돕는다 할지라도, 반야바라밀의 세력이 가장 크기 때문에 법(五法) 그로 인하여 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비유하자면,  합하고 흩어지는 합산(合散)에서, 여러 가지 약에는 저마다 각각  지닌 힘이 있을지라도 돌의 세력이 가장 크기 때문에 석산(石散)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과 같으며, 

또한 많은 군사들이 적을 무찌를 비록 각각 저마다의 지닌 힘이 있을지라도 주장(主將)의 힘이 가장 크기 때문에 주(主)라는 이름이 붙는 것과 같은 것이다.

 

舍利弗已問供養般若事,今問:“行者云何生般若波羅蜜?”佛答:“若行者觀色等諸法不生相,是則生般若波羅蜜。”

사리불 존자는 이미 ‘반야에 공양하는’을 물었으며 이번에는 “수행하는 행자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내(生)는가?”라고 물었으며, 

부처님께서 답하시어, “만약 수행하는 행자 ‘물질(色) 등의 제법은 나지 않는 불생상(不生相)’이라 함을 관찰한다면,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내는(生) 것이다.”고 하셨다.


舍利弗復問:“云何觀色等不生故,般若波羅蜜生?”答曰:“色等,因緣和合起,行者知色虛妄,不令起;不起故不生,不生故不得,不得故不失。”

사리불 존자가 다시 묻기를 “물질(色) 등이 불생(不生)이라는 것을 관찰하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이 난다(生) 함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대답하시기를, “물질(色) 등은 인(因)과 연(緣)의 화합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수행하는 행자 물질(色)이 허망한 것임을 알고 일어나지 않게하는 불영기(不令起)하며, 일어나지 않는 불기(不起)이기 때문에 불생(不生)이며,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얻어지지 않는 불득(不得)이며, 불득(不得)이 때문에 잃어버리지도 않는 불실(不失)이다.”고 하셨으니, 


爾時,舍利弗問意:“般若無生緣處,行者亦無生,如是般若與何法合?終歸何處住?得何果報?”

答曰:“般若波羅蜜無生相故無所合。”若般若波羅蜜有法合者,若善、若不善等,是不名般若波羅蜜;今無所合故,入般若波羅蜜數中。

그때 사리불 존자가 물은 뜻은 “반야는 무생(無生)이므로 반연하는 곳의 연처(緣處)나 수행하는 행자도 무생(無生)일 것이다. 이와 같다면 반야는 어떠한 법과 합하게 되고, 마침내에는 어느 곳에 돌아가서 머무르며 어떠한 과보를 얻는 것인가”라고 한 것이었다.

대답하시되 “반야바라밀은 무생상(無生相)이기 때문에 합하는 것도 없으며,

만약 반야바라밀이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것 등의 어떤 법에 합한다면, 그것은 반야바라밀이라 하지 못하며,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의 수(數, 범주) 안에 든다.”고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