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61권 11

Skunky 2024. 8. 27. 08:02

大智度論 釋隨喜迴向品 第三十九 卷六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역.  

39. 수희회향품(隨喜迴向品) 풀이함 11

 

“善哉!善哉!汝作佛事”者,佛初發心,誓度一切衆生;須菩提雖是阿羅漢,而能助佛說法,開菩薩道,是故讚言:“善哉!善哉!”復次,佛自說因緣,爲諸菩薩說所應迴向法。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구나, 그대는 불사(佛事)를 지었도다.’고 함이란,

부처님께서 처음발심하실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를 서원하셨거니와 수보리 존자는 그가 아라한이면서도 부처님의 설법을 도와서 보살의 도를 열어서 보여 주고 있으므로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하다.”고 하신 것이며, 

또한 부처님께서는 스스로의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회향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用無相故”者,以無相智慧,和合迴向福德相者,與上相違,名爲“無相”。無相有三種:假名相、法相、無相相。

‘상이 없는, 무상(無相)’이라고 함이란, 없는 무상지혜(無相智慧)를 한데 모아서 회향하는 것이니, 복덕의 상(相) 위와는 반대이기 때문에 무상(無相)이라  것이며, 

무상(無相)에는  가지가 있으니, 임시로 붙인 가명의 가명상(假名相)과 법상(法相)과 없는 무상상(無相相)이다. 


“假名相”者,如車、如屋、如林、如軍、如衆生,諸法和合中,更有是名。無明力故,取是假名相,起諸煩惱、業。

'임시로 붙인 가명의 가명상(假名相)'이라 함이란, 마치 수레와 같은 여거(如車), 집과 같은 여옥(如屋), 숲과 같은 여림(如林), 군사와 같은 여군(如軍), 중생과 같은 여중생(如衆生)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제법이 화합한 가운데에서 다시 이름한 것이니,

무명(無明)의  때문에 임시로 붙인 가명의 가명상(假名相) 취하면서 모든 번뇌와 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法相”者,五衆、十二入、十八界等諸法。肉眼觀故有,以慧眼觀則無,是故法亦虛誑妄語,應捨離法相。

'법상(法相)'이라 함이란, 오중(五衆)ㆍ십이입(十二入)ㆍ십팔계(十八界) 등으로,

육안(肉眼)으로 보기 때문에 제법이 있는 것이나, 혜안(慧眼)으로 관찰한다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허망한 거짓이므로 법상(法相) 버리고 여의어야 하는 것이다. 

 

離是二相,餘但有“無相相”。有人取是無相相,隨逐取相,還生結使,是故亦不應取“無相相”。離三種相,故名無相。

  가지 가명상(假名相)과 법상(法相) 여의게 되면, 그 나머지는 무상상(無相相)만이 있을 뿐이라. 

어떤 사람은  무상상(無相相)을 취하여, 그것을 좇아서 그 상(相)을 취하여 도리어 번뇌의 결사(結使)를 내기도 하나니,

 때문에 응당 무상상(無相相)도 취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가지의 삼종상(三種相)양을 여의기 때문에 무상(無相)이라 하는 것이다.


若無有相,是中“無所得”;無得故“無出”;若法無得、無出,卽是“無垢無淨”;若法無垢無淨,卽是“無法性”。

만약 무상(無相)이라면,  가운데에서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고,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벗어날 것도 없는 무출(無出)이니,

만약 법이 무소득(無所得)이라서 무출(無出)이라면,

그것은  더러움 깨끗함 없는 무구무정(無垢無淨)이라.

만약 법에 더럽고 깨끗함이 없는 무구무정(無垢無淨)이라면,

법은 성품이 없는 무법성(無法性)인것이다.


若法無性,卽是“自相空”;若法自相空,卽是法“常自性空”;若法常自性空,卽同“法性、如、實際”。用如是法和合,隨喜福德迴向,故讚言:“善哉!善哉!”

만약 법이 무법성(無法性)이라면, 그것은 스스로의 상이 공한 자상공(自相空)이며,

자상공이라면 그것은 곧 항상 자성이 공한 상자성공(常自性空)이며, 

만약 법이 상자성공(常自性空)이라면, 그것은  법성(法性)과 여(如)와 실제(實際)와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은 법과 화합하여 수희복덕(隨喜福德)으로 회향하기 때문에 찬탄하기를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하다.”고 하신 것이다.


復有“善哉”因緣,所謂隨喜福德,大利益衆生,有大果報。何者是大利益?所謂佛語須菩提:“若三千大千世界衆生行十善乃至五通。”

다시 “훌륭하다는 선재(善哉)”라고 하는 인연이 있나니, 이른바 수희복덕으로는 중생을 크게 이익되게 하며,  과보가 있는 것이니, 무엇이  이익인가?

이른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선(十善) 내지는 5신통(五神通)을 행한다.”고 하신 것이다.

 

問曰:欲界中二處天及梵天王何以與多天俱,餘四天何以少?

묻나니, 욕계 안에서 사천왕천과 삼십삼천의  하늘과 범천왕(梵天王)은 무엇 때문에 많은 하늘들과 함께 온 것이며,  밖에  곳의 하늘은 무엇 때문에 함께 오는 이들이 적은 것입니까?


答曰:是二天依止地,近佛故;又五欲不如上天。佛生時、苦行時、降魔時、得道時、轉法輪時,常來供養佛,是故多。餘四處天,宮殿在虛空中,不屬地;五欲妙,染著深故,不能多來。

답하나니, 사천왕천과 삼십삼천의  하늘은 땅을 의지하여 있으니, 부처님과 가깝기 때문이요, 

또한 오욕도  위의 하늘들과는 같지 않으며, 부처님께서 태어나실 때와 고행하실 때와 악마를 항복 받으실 때와 도를 얻으실 때와 법륜을 굴리실 때에 언제나 와서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니,  때문에 오는 이들이 많으나, 

 밖의  하늘은 궁전이 허공 안에 있어서 땅에 속하지도 않으며, 오욕이 미묘하여 물들고 집착함이 깊기 때문에 많이 오지 못한 것이며, 


又兜率天雖利根、樂法,而其天上常有補處菩薩說法,是故不來。梵天雖遠,離欲故樂法情深,佛爲法王,是故多來。

또한 도솔천은 비록 근기가 예리하고 법을 좋아하기는 하나,  도솔천상에서는 항상 보처보살(補處菩薩)이 있어서 법을 설하고 있으므로 오지 않았으며,

범천(梵天)은 욕망을 멀리 여의었을지라도 법을 좋아하는 정(情)이 깊고 부처님을 법왕(法王)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많이  것이다.


復次,梵天王爲色界主,請佛初轉法輪,是故應與多衆俱來。餘色界天,盡名梵天。

또한 범천왕은 색계(色界)의 주인으로서 부처님께 처음법륜()하여 주시기를 청하였으니,  때문에도 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함께 왔으며,  밖의 색계의 하늘들은 모두  범천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先種種因緣說正迴向,正迴向卽是最上,今何以更問?

묻나니, 앞에서 갖가지 인연으로 바른회향(正迴向)을 설명하였으며, 바른 정회향(正迴向) 가장 으뜸가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물은 것입니까?


答曰:上處處廣說,今略說。所謂三世十方一切法,決定心知,於是法中無生者滅者等,一切法不可得、不可念;不得不念故,不取不捨,入諸法實相中,作是念:‘如諸法實相,我亦如是以隨喜福德迴向,不分別諸法,不壞法性。’是名最上迴向。何以故?果報常無盡故。

답하나니, 위에서는 곳곳에서 자세히 설명하였고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니,

이른바세와 시방의 일체법은 마음이   가운데에서 나고 소멸하는  등이 없다는 것을 결정코 아는 것이며, 

일체법은 얻을 수도 없는 불가득이고, 생각할 수도 없는 불가념(不可念)이며, 얻지도 생각지도 못하기 때문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불취불사(不取不捨)인 것이다.

제법의 실상(實相) 가운데 들어가서 생각하기를 “마치법의 실상과 같이  또한 그와 같이 수희복덕을 회향하며, 제법을 분별하지도 않고 법성(法性)을 파괴하지도 않는다.”고 하나니, 

이러한 것을 가장 으뜸가는 최상회향(最上迴向)이라 하는 것이라.

왜냐하면 과보가 항상 다함이 없는 상무진(常無盡)이기 때문이다.

 

問曰:六波羅蜜等諸法各各相,若色相、若無色相等;解脫有二種:有爲解脫,無爲解脫,云何皆與解脫等?

묻나니, 육바라밀 등의법은 색상(色相)이거나 무색상(無色相) 등으로 각각의 상(相) 다르며,

해탈에도 유위(有爲)해탈과 무위(無爲)해탈  가지가 있거늘, 어떻게 모두 해탈과 같은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我先已說:凡夫人以肉眼、六識顚倒觀故見異;若以慧眼,觀諸法皆虛妄,唯涅槃爲實。

답하나니, 내가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이다. 

범부인은 육안으로 관찰하여서 육식(六識)이 전도되었 때문에 다르다고 보지만,

만약 혜안으로써법을 관찰한다면 모두가 허망한 것이며, 오로지 열반만이 진실할 뿐이다.


是有爲解脫,屬無爲、隨無爲故名“解脫”。如實得道者名道人,今未得道者,衣服、法則隨得道者故,亦名道人。

 유위의 해탈은 무위에도 속하며, 무위를 따르기 때문에 해탈이라 하는 것이니,

마치 실제로 도(道)를 얻은 이만을 도인(道人)이라 하지만,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이도 의복과 법칙이 도(道)를 얻은 이를 따르기 때문에 역시 도인이라 하는 것과 같으며, 

 

如無餘涅槃,不生不滅、不入不出、不垢不淨、非有非無、非常非無常,常寂滅相,心識觀滅、語言道斷,非法非非法等相,用無所有相故;慧眼觀一切法亦如是相,是名“六波羅蜜等與解脫等”。是故佛法中說:解脫爲貴,上智慧貴解脫。

마치 무여열반(無餘涅槃)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항상한 것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항상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이며, 심식(心識)의 관(觀)이 소멸하였으며,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법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등의 상(相) 것과 같은 무소유(無所有)의 상(相)이기 때문이며,

혜안으로 일체법을 관찰하는  역시 이러한 상(相)과 같나니, 이를 곧 육바라밀 등은 “해탈과 같다.”고 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부처님의 불법 가운데에서는 “해탈은 존귀한 것이요, 최고의 지혜를 지닌 이는 해탈을 귀히 여긴다.”고 한 것이다.


佛是中分別說:“若人無量阿僧祇劫行六波羅蜜,用有所得法,種種修集善根;一人用無所得法,但以心隨喜,念他功德,迴向無上道;是人百千萬分不及其一。”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분별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바라밀을 행하면서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의 법으로써 갖가지 선근을 쌓아 모으며, 

다른 어떤 사람은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법으로써 마음만으로 수희하고 다른 이의 공덕을 염하며, 최상의 도에 회향한다면,  사람에 비하여  사람의 복은 백천만 분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何以故?先福德有量,今福德無量;先福德有盡,今福德無盡;先福德雜毒,今福德無毒;先福德隨生死,今福德隨涅槃;先福德不定,或作佛、或退,今福德定到,必疾作佛。有如是等差別。

왜냐하면 앞 사람 복덕에는 한량이 있는 유량(有量)이나, 뒷 사람의 복덕은 무량하며,

앞 사람 복덕에는 다함이 있는 유진(有盡)이고 뒷 사람의 복덕은 다함이 없는 무진(無盡)이며, 

앞 사람의 복덕에는 독이 섞인 잡독(雜毒)이고 뒷 사람 복덕에는 독이 없으며, 

앞 사람의 복덕은 생사를 따르는 것이고 뒷 사람의 복덕은 열반을 따르는 것이며, 

앞 사람의 복덕은 일정하지 않아서 혹은 부처님이 되기도 하고 물러나게 되기도 하지만, 뒷 사람의 복덕은 빠르게 부처님이   있으니, 이러한 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是故四種人:若凡夫人求世閒樂,若聲聞、辟支佛人求涅槃樂,若諸菩薩摩訶薩求佛樂。應如是隨喜生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此品中說。

그러므로 이러한 네 종류의 사람 중에서 범부는 세간의 욕락을 구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은 열반의 쾌락을 구하며, 만약 보살마하살이라면 모두가 부처님에 대한 즐거움을 구하기에,

이와 같이 수희하는 복덕을 내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나니, 이 품(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것이다.


大智度論卷第六十一 대지도론 61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