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61권 5
大智度論 釋隨喜迴向品 第三十九 卷六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9. 수희회향품(隨喜迴向品)을 풀이함 5
爾時,彌勒菩薩語須菩提:“若新發意菩薩摩訶薩念諸佛及弟子諸善根隨喜功德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者,隨喜已,應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云何菩薩不墮想顚倒、心顚倒、見顚倒?”
그때 미륵보살이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였다.
“만약 새로 발심한 신발의(新發意)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의 모든 선근을 염(念)하면서 수희하는 공덕이 가장 으뜸가는 최상(最上)이고, 제일(第一)이며, 가장 묘한 최묘(最妙)이고, 보다 높은 것이 없는 무상(無上)이며, 견줄 곳이 없는 무여등(無與等)이니,
수희한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보살이 생각이 뒤바뀐 상전도(想顚倒)와, 마음이 뒤빠뀐 심전도(心顚倒)와 소견의 뒤바뀜인 견전도(見顚倒)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須菩提言:“若菩薩摩訶薩念諸佛及僧,於中不生佛想、不生僧想,無善根想;用是心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心中亦不生心想。菩薩如是迴向,想不顚倒、心不顚倒、見不顚倒。
수보리 존자가 말하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과 승가를 염(念)하는 가운데에서 부처님이라는 생각도 내지 않고, 승가라는 생각도 내지 않고, 선근이라는 생각도 없는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이러한 마음에 대해서도 심상(心想) 또한 내지 않나니,
보살이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상전도(想顚倒)나 심전도(心顚倒)와 견전도(見顚倒)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若菩薩摩訶薩念諸佛及僧善根,取相;取相已,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菩薩如是名爲想顚倒、心顚倒、見顚倒。
만약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과 승가의 선근을 염하면서, 상(相)을 취하고, 상을 취한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이와 같은 것을 일컬어 상전도(想顚倒)나 심전도(心顚倒)와 견전도(見顚倒)라 하는 것이며,
若菩薩摩訶薩用是心念諸佛及僧諸善根;是心念時,卽知盡滅;若盡滅,是法不可得迴向,所用迴向心亦是盡滅相,所迴向處法亦如是相。若如是迴向,是名正迴向,非邪迴向。菩薩摩訶薩應如是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과 승가의 모든 선근을 염한다면, 이 마음으로 염하는 순간 곧 다하여 멸하는 진멸(盡滅)하는 것을 알게 되나니, 만약 다하여 없어지는 진멸(盡滅)이 법이라면 회향할 수도 없으며,
회향심이 작용하는 것 또한 다하여 없어지는 진멸상(盡滅相)이며,
회향할 회향처나 회향법 또한 그러한 진멸상(盡滅相)이니,
만약 이러한 상(相)으로써 회향한다면 이것을 바른 회향의 정회향(正迴向)이라 하는 것으로, 삿된 회향이 아닌 것이니,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復次,若菩薩摩訶薩,過去諸佛善根及弟子善根,是中凡夫人聞法種善根,若諸天、龍、夜叉、揵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聞法種善根,若剎利大姓、婆羅門大姓、居士大家、四天王天乃至阿迦尼咤天聞法種善根,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是一切福德和合稱量,隨喜功德,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者,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한 보살마하살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의 선근 및 제자들의 선근 가운데에서 범부들이 법을 듣고 심은 선근,
혹은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 및 마후라가 등이 법을 듣고 심은 선근,
혹은 큰 성바지인 찰리와 바라문 그리고 거사의 큰 집안과 사천왕천 내지는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 등이 법을 듣고 심은 선근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킨 이 등의 일체 복덕을 한데 합쳐서 헤아리자면, 수희의 공덕이 가장 으뜸가고 첫째가며 가장 묘하고 보다 위가 없어 견줄 데가 없는 것이니,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是時菩薩若如是知是諸法盡滅,所迴向處法亦自性空,能如是迴向,是名眞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때 보살이 만약 이와 같이 이 모든 제법은 다하여 멸하는 것으로, 회향할 처소나 회향법이 자성공(自性空)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회향할 수 있다면,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한 참된 정회향(正迴向)이라 하며,
復次,若菩薩如是知,無有法能迴向法。何以故?一切法自性空故。若如是迴向,是名正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한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회향하는 어떠한 법도 없음을 알게 되나니, 왜냐하면 일체법은 자성(自性)이 공하기 때문이니, 만약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이를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바르게 정회향(正迴向)하는 것이라 합니다.
如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乃至檀波羅蜜,不墮想顚倒、心顚倒、見顚倒。何以故?菩薩不著是迴向,亦不見以諸善根迴向菩提心處,是名菩薩摩訶薩無上迴向。”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내지는 단바라밀을 행하면, 생각의 전도와 마음의 전도와 소견의 전도에 떨어지지 않나니, 왜냐하면 보살은 이 회향에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모든 선근을 보리에 회향하는 마음의 처소조차도 보지 않기 때문이니, 이를 바로 보살마하살의 위없는 무상회향(無上迴向)이라 합니다.
▶論. 問曰:“新發意菩薩聞是事,將無怖畏、驚懼者耶?”此義先已問答,今何以復問?
▷논. 묻나니, 새로 발심한 신발의 보살이 이러함을 들으면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겠는가?”라는 뜻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이미 묻고 대답하였거늘, 지금 무엇 때문에 다시 묻는 것입니까?
答曰:上彌勒雖語須菩提:“不應爲新學說;可爲阿鞞跋致及久行者說,是二種人,聞能信行。”已說正迴向因緣,而猶說空法,是故帝釋疑言:“是衆中有新發意者,云何更說使不恐怖?”
답하나니, 앞에서 미륵 보살이 비록 수보리 존자에게 설하였을지라도, 새로 배우는 이에게는 설하지 말아야 하고, 아비발치와 오랫동안 수행한 이에게만 말해야 된다고 하였으니,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듣고 믿으며, 행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회향(正迴向)하는 인연을 말하면서도, 오히려 공법(空法)을 말하였으므로, 제석이 의심하기를 “이 대중 안에는 새로 뜻을 낸 신발의자(新發意者)가 있거늘 어떻게 다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須菩提欲成彌勒所說,欲令新發意者應正迴向,故答帝釋:“若新發意菩薩,雖不久行六波羅蜜、不供養諸佛,而以利根、得善知識是二因緣故,堪任正迴向。”
수보리 존자는 미륵 보살의 설명을 완성시키고 또한 새로 발심한 보살들로 하여금 바르게 회향할 수 있게 하고자, 제석에게 대답하기를 “만약 새로 뜻을 낸, 신발의 보살은 비록 오랫동안 육바라밀을 행하지 못하였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지 못하였을지라도, 근기가 예리하고 선지식을 만난 이라면, 이 두 가지 인연으로 바르게 정회향(正迴向)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是故語帝釋:“新發意菩薩行般若波羅蜜,不受是般若,以無所得故、畢竟空故。”般若波羅蜜亦不得、亦不著。乃至檀波羅蜜亦如是。
그러므로 제석에게 말하기를 “새로 뜻을 낸, 신발의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이 반야를 받아들이지 않음은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기 때문이요, 필경공이기 때문이니, 반야바라밀은 얻을 수도 없고 집착할 수도 없으며, 나아가 단바라밀 또한 그와 같다.”고 한 것이다.
“多信解內空”者,常修樂入觀內空三昧故信解。乃至十八不共法多信解亦如是。善知識相,如先說
‘내공을 많이 믿고 이해한다.’ 함이라, 항상 내공삼매(內空三昧)를 닦아 즐기고 관(觀)에 들어가기 때문에 믿고 이해하는 것이며, 나아가 18불공법을 믿고 이해하는 것도 그와 같으며,
‘선지식상(善知識相)’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此中但明:能隨六波羅蜜義說;聞是義已,常不離般若波羅蜜,乃至得入菩薩法位 有久行入菩薩位,有新發意入菩薩位。
이 가운데에서는 다만 육바라밀을 따르는 이치(義)를 설명하였을 뿐이니, 이 이치(義)를 들은 뒤에는 항상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고, 나아가 보살의 법위에 들게 되나니, 어떤 이는 오랫동안 수행하여 보살의 법위에 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새로 발심하면서 바로 보살의 법위에 들기도 하며,
復次,是新發意菩薩,善知識爲說魔事;聞魔事已,不增不減,以善修習諸法實相故。若魔欲破,爲欲破空,空則無破;若有增益,如幻如夢,何所增益?是故說“不增不減”。
또한 이 새로 발심한 신발의 보살에게 선지식이 악마의 일인 마사(魔事)를 말해 주면, 마사(魔事)를 듣고 나서도 더하지 않고 덜하지도 않나니, 그것은 제법의 실상(實相)을 잘 닦고 익혔기 때문이다.
만약 악마가 파괴하려 한다면, 곧 공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니, 공이란 파괴할 것이 없는 것으로, 만약 없는 것을 있다고 더하는 증익(增益)한다며, 그것은 마치 허깨비나 꿈같은 일이거늘, 어떻게 증익(增益)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부증불감(不增不減)이다.”고 설명한 것이다.
是因緣故,常不離諸佛,常生菩薩家,世世不離善根乃至無上道。是新發意菩薩得如是因緣,與久發意無異。
이러한 인연 때문에 항상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으며, 언제나 보살의 집안에 태어나며, 세세마다 선근을 여의지 않고 무상도에 이르는 것이니, 새로이 뜻을 낸 신발의 보살은 이러한 인연을 얻게 되므로, 오래전에 뜻을 낸 이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復次,隨喜迴向,所謂新發意菩薩於過去十方無量阿僧祇世界中諸佛斷道者,斷生死道,入無餘涅槃。諸戲論斷故言滅諸戲論。以空空等三昧捨八聖道分故言道盡。
또한 수희하고 회향하는 수희회향(隨喜迴向)이라 함이란, 이른바 새로 발심한 신발의 보살로서는 과거 시방의 무량한 아승기 세계의 모든 부처님에게서 도를 끊으신 단도자(斷道道)이니, 생사의 길을 끊고 무여열반에 들었으며, 모든 쓸모없는 희론이 끊어졌기 때문에 “모든 쓸모없는 이론을 없앴다.”고 하며,
공함 자체도 공한, 공공(空空) 등의 삼매로써 팔성도분의 길을 버렸기 때문에 “길이 다한, 도진(道盡)이다”고 하는 것이다.
五衆能生苦惱故是“重擔”。五衆有二種捨:一者、有餘涅槃中,捨五衆因緣 諸煩惱;二者、入無餘涅槃中,捨五衆果。
오중(五衆)은 고뇌를 생기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무거운 짐인, 중담(重擔)이며,
오중에는 두 가지의 버릴 것인 이종사(二種捨)가이 있으니,
첫째는 유여열반(有餘涅槃)에서 오중의 인연인 모든 번뇌를 버려야 하고,
둘째는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서 오중의 결과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一切白衣舍名爲聚落。出家人依白衣舍活,而白衣舍有五欲刺,爲食故來入惡刺果林;以取果故,爲刺所刺。
일체 속인인 일체백의(一切白衣)의 집이 있는 곳을 취락이라 하며, 출가한 사람은 이 속인들의 집을 의지하여 살아가나니, 속인의 집에는 오욕의 가시가 있어서, 음식을 위하여 나쁜 가시가 있는 과일 숲(취락)에 들어가서 과일을 취하기 때문에 가시에 찔리게 되는 것이다.
如人著木屐踐刺,刺則摧折;如是諸佛以禪定、智慧屐摧五欲刺,名滅斷下五分結。有分結盡名斷上分五結。
마치 사람이 나막신을 신고 가시를 밟으면 그 가시들이 부러지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께서는 선정과 지혜의 신을 신고 오욕의 가시를 밟아 부러지게 하므로 오하분결(下五分結)을 없앴다 하며,
유(有)의 분결이 다하면 오상분결(上分五結)을 끊었다고 하는 것이다.
●오하분결(五下分結)= 하(下)는 욕계, 결(結)은 번뇌를 뜻하며, 중생이 욕계에 결박되어 해탈하지 못하게 하는 다섯 가지 번뇌이다.
① 유신견(有身見), 오온(五蘊)의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고, 또 오온은 자아의 소유라는 그릇된 견해.
② 계금취견(戒禁取見), 그릇된 계율이나 금지 조항을 바른 것으로 간주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
③의(疑). 바른 이치를 의심함. ④ 욕탐(欲貪), 욕계의 탐욕. ⑤ 진에(瞋恚).
●오상분결(上分五結)=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중생을 속박시키고 있는 번뇌, 다섯 가지의 미세한 얽매임의 족쇄(結)이며, ① 만(慢), ② 도거(掉擧), ③ 무명(無明), ④ 색탐(色貪), ⑤ 무색탐(無色貪)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