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61권 3

Skunky 2024. 8. 24. 08:02

大智度論 釋隨喜迴向品 第三十九 卷六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9. 수희회향품(隨喜迴向品) 풀이함 3


問曰:求佛道者,何以不自作功德而心行隨喜?

묻나니,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는 이가 어찌하여 스스로가 직접 공덕을 짓지 않고 마음으로 따라 기뻐하는 수희(隨喜)하는 것입니까?

 

答曰:諸菩薩以方便力,他勤勞作功德,能於中起隨喜者,福德勝自作者。

답하나니, 모든 보살은 방편의 힘으로써 다른 이가 부지런히 공덕을 짓는 것을 따라 수희(隨喜)하나니,  복덕은 자신이 짓는 것보다 뛰어나며, 


復次,是隨喜福德,卽是實福德。所以者何?念過去佛,卽是念佛三昧,亦是六念中念佛、念法、念僧、念戒、念捨、念天等。

  수희(隨喜)하는 복덕은 곧 실제의 복덕이니, 왜냐하면 과거의 부처님을 염하는 그것은 곧 염불삼매(念佛三昧)이기 때문이며, 

또한 념(六念)에는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 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因行淸淨戒,入禪定,起畢竟智慧,和合故能起正隨喜。是故不但隨喜而已,亦行是實法。是心迴向者,卽是隨喜心。

깨끗한 계율을 행하는 인(因)으로 선정에 들어가고, 필경의 지혜를 일으켜 화합하기 때문에 바른 수희(隨喜)를 일으키는 것이니, 이는 다만 수희(隨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실법(實法)을 행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마음으로 회향한다.’는 것이란, 곧 수희하는 마음의 수희심(隨喜心)이다.


緣者,隨喜心所緣,所謂一切諸佛及一切衆生所作功德。事者,若是所緣之本,福德是緣功德所住處,所謂諸佛及衆生,幷土地、山林、精舍住處,皆名“事”。

‘연(緣, 반연)’이라 함이란, 수희하는 마음의 수희심(隨喜心)이 반연할 대상인 소연(所緣)으로, 이른바 일체 부처님과 일체 중생들이 짓는 바의 공덕이며,  

‘일(事)’이라는 것이  반연할 대상의 근본이라면 ‘복덕’은 연(緣)으로서 공덕이 머무르는 처소이니, 이른바 모든 부처님과 중생과 아울러 토지ㆍ산림ㆍ정사(精舍)ㆍ머무르는처(住處) 등을 모두 일(事)이라 하는 것이다.


“如所念可得不?”彌勒答言:“不也!”須菩提語彌勒:“若諸事、諸緣無所有者,云何不墮顚倒?”

“염하는 바의 소념(所念)대로   있습니까?”라고 하자, 미륵 보살이 대답하기를 “될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수보리 존자가 미륵 보살에게 “만약 모든 일과 모든 반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뒤바뀜의 전도(顚倒)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顚倒者,四顚倒,三種分別。此顚倒是譬喩,無佛而憶想念佛,猶如無常而念常、不淨而念淨。

뒤바뀜의 전도(顚倒)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가지 뒤바뀜의 사전도(四顚倒)이니, 이는  가지로 분별할 수 있는 것으로, 

 뒤바뀜의 전도(顚倒)를 비유하자면, 부처님이 안 계시는데도 기억(상상) 속의 부처님을 염하는 격이요, 

마치 무상한 것인데도 항상하다고 염하는 격이요, 청정하지 않은 것인데도 청정하다고 염하는 것이다.


問曰:見爲諸顚倒本,如得初道人,能起想、心顚倒,無見顚倒,以見諦道斷故。

묻나니, 견(見, 소견)은 모든 전도(顚倒) 근본입니다. 처음 도를 얻은 초도인(初道人)이 생각(想)과 마음(心)의 전도(顚倒)를 일으키면서도, 소견의 뒤바뀜인, 견전도(見顚倒)가 없는 것은 견제도(見諦道)에서 끊었기 때문입니까?


答曰:是顚倒,生時異、斷時異。生時,想在前,次是心,後是見;斷時,先斷見,見諦所斷故。顚倒體皆是見相,見諦所斷。

답하나니, 이 전도(顚倒)는 생기는 때가 다르고 끊는 때도 다른 것으로,

생길 때에는 생각(想)의 전도가 먼저 있은 다음에 마음(心)의 전도가 있으며, 마지막에는 견해(見)의 전도가 생기며,

끊을 때에는 먼저 견해(見)의 전도부터 끊는 것이니, 견제도에서 끊어야 할, 견제소단(見諦所斷)이기 때문이니, 

전도(顚倒)의 체성은 모두 소견의 견상(見相)이므로 견제도에서 끊어야 것이다.


想、心顚倒者,學人未離欲,憶念忘故取淨相、起結使;還得正念卽時滅,如經中譬喩:“如渧水墮大熱鐵上,卽時消滅。”小錯故假名顚倒,非實顚倒。是故說:凡夫人三種顚倒,學人二種顚倒。

‘생각(想)과 마음(心)의 전도(顚倒) 라 람이란, 유학의 학인(學人)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하여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기억을 잊기 때문에 청정하다는, 정상(淨相)을 취해서 번뇌의 결사(結使)를 일으켜서, 도리어 바른 기억을 얻어도 즉시 소멸하여 버리니,

마치 경(經)에서 “물방울이 몹시 달구어진 철판 위에 떨어지면, 떨어지는 바로  순간에 소멸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것과 같이

조그마한 착오가 있기 때문에 가정하여 전도(顚倒)라  것이요, 실제로 전도(顚倒)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범부에게는  가지의 삼종전도(三種顚倒)를 말하고 유학의 학인(學人)에게  가지의 이종전도(二種顚倒)를 설하는 것이다.

 

전도(顚倒, viparīta, viparyāsa)는 그릇됨 · 어긋남 · 잘못됨 · 위배됨 · 뒤바뀜 · 뒤집힘을 뜻한다. 한자어 '전도(顚倒)'의 일반 사전적인 뜻은 '엎어져 넘어지거나 넘어뜨림', '위와 아래를 바꾸어서 거꾸로 함 ' 또는 '차례, 위치, 이치, 가치관 따위가 뒤바뀌어 원래와 달리 거꾸로 됨. 또는 그렇게 만듦'이다.
불교에서의 전도(顚倒)는 번뇌로 인해 잘못된 생각을 갖거나 실제의 사(事)와 이(理)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번뇌는 뒤집힌 측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넓게 보면 전도(顚倒)는 번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도(顚倒)는 모든 번뇌들 가운데 뒤집힌 견해, 즉 견(見) 즉 염오견 또는 부정견과 이것과 상응하는 법들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개념이며, 따라서 설일체유부의 번뇌론에 따르면 모든 전도(顚倒)는 견소단(見所斷)으로 예류과(預流果)에서 끊어진다 - 위키


復次,諸緣、諸事如實畢竟空,念亦空,菩提亦空,隨喜心亦空,檀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亦空。若諸法一相,所謂無相,此中何等是“緣”?何等是“事”?何等是“心迴向無上道”?

또안 모든 연(緣, 반연)과 모든 일(事)이 실로 필경공(畢竟空)인 것과 같이, 염(念)도 공(空)하고, 보리도 공하며, 수희하는 마음도 공하고, 단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 또한 공한 것이다.

만약 제법이  모양의 이상(一相)이라서 이른바 모양이 없는, 무상(無相)이라면,  가운데에서 어떠한 것이 연(緣, 반연)이고 어떠한 것이 일(事)이며, 어떤 것이 마음으로 무상도에 회향하는 것이겠는가!


▶經. 彌勒菩薩語須菩提:“若諸菩薩摩訶薩久行六波羅蜜、多供養諸佛、種善根、與善知識相隨、善學自相空法;是諸菩薩,是緣、是事、諸佛、諸善根、隨喜福德,不取相,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경. 미륵보살이 수보리 존자에게 말했다.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오랫동안바라밀을 행하고 모든 부처님께 많은 공양을 하였으며, 선근을 심었고 선지식(善知識)을 따랐으며, 자상공(自相空)의 법을  배웠다면, 그는  모든 보살의 이러한 연(緣, 반연)과 이러한 일(事) 모든 부처님의 선근을 수희하는 복덕에 상(相)을 취하지 않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게 됩니다.


以不二法非不二法、非相非不相、非可得法非不可得法、非淨非垢、不生不滅法,是名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둘이 아닌 불이법(不二法)이면서도 불이법도 아니고, 상이 아닌 비상(非相)이면서도 비상 아니며, 

얻을  있는 법이 아닌 비가득법(非可得法)이면서도 얻을  없는 법도 아닌 비불가득법(非不可得法)이며,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아닌 비정비구(非淨非垢)이며,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이니,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若諸菩薩不久行六波羅蜜、不多供養諸佛、不種善根、不與善知識相隨、不善學自相空法;是諸菩薩,是諸緣、是諸事、諸佛、諸善根、隨喜福德,諸心取相,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不名迴向。

만약 모든 보살로서바라밀을 오래도록 행하지 않았고, 모든 부처님께 많이 공양하지 않았으며, 선근을 심지도 않았고 선지식을 따르지도 않았으며, 자상공의 법을  배우지도 않은 이라면, 

이러한 보살은 이러한 모든 연(緣, 반연)과 이러한 모든 일(事) 모든 부처님의 선근을 수희하는 복덕에 갖가지의 심상(心相)을 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게 되나니, 이것은 회향이라고 부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須菩提!如是般若波羅蜜義乃至一切種智義 所謂內空乃至無法有法空,不應爲新學菩薩說。何以故?是菩薩所有少許信樂恭敬淸淨心皆亡失。

수보리여,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의 이치(義) 내지는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이치(義), 

이른바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를 새로이 배우는 신학(新學) 보살들에게는 설명하지 말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신학 보살은 그가 지닌 조그마한 믿음의 즐거움과 공경과 청정한 마음 등을 모두 잃게 될 수도 있 때문입니다.


當在阿鞞跋致菩薩摩訶薩前說,若有爲善知識所護,若久供養諸佛、種諸善根,應爲是人說如是般若波羅蜜義乃至一切種智義 所謂內空乃至無法有法空。是人聞是法,不沒、不驚、不畏、不怖。

그러므로 당연히 아비발치(阿鞞跋致)에 이른 보살마하살 앞에서 설명해야 하는 것이니,

 어떤 이가 선지식의 수호를 받고 오래도록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모든 선근을 심었다면,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의 이치(義) 내지는 일체종지의 이치(義)인 이른바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를 설명할 수 있으니, 이런 사람은  법을 들어도 마음이 침몰하지 않는 불몰(不沒)하며, 놀라지 않는 불경(不驚)이며, 두려워하지 않는 불외(不畏)이며, 겁내지도 않는 불포(不怖)인 것입니다.


須菩提!菩薩摩訶薩隨喜福德,應如是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所謂菩薩用心隨喜功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의 수희하는 복덕을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나니, 이른바 보살은 마음으로써 수희하는 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是心盡、滅、變、離,是緣、是事、是諸善根亦盡、滅、變、離。是中何等是隨喜心?何等是諸緣?何等是諸事?何等是諸善根隨喜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二心不俱,是心性亦不可得迴向,菩薩云何隨喜心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마음은 다하여 없어지고 변하여 떠나는 것이며,  연(緣, 반연)과 일(事)  모든 선근 또한 다하여 없어지고 변하여 떠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어떠한 것이 수희하는 마음이고? 어떠한 것이 모든 연(緣, 반연)이며? 어떠한 것이 모든 일(事)이고? 어떤 것이 모든 선근이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수희회향(隨喜迴向)할 수 있는 것입니까?

 마음의 이심(二心)은 함께 하지 않으며,  심성 또한 회향을 얻지 못하나니,

보살은 어떠한 수희심(隨喜心)으로 아뇩다라삼먁보리에 회향해야 하는 것입니까?


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如是知:是般若波羅蜜無有法,乃至檀波羅蜜亦無有法;色無有法,受、想、行、識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無有法。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와 같이 안다면,  반야바라밀에는 어떠한 법도 없고 나아가 단바라밀에도 어떠한 정해진 법이 없으며, 물질(色)에도 어떠한 정해진 법이 없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도 어떠한 정해진 법이 없는 것입니다.


菩薩摩訶薩應如是隨喜功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能如是迴向,是名隨喜功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수희하는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며,

이와 같이 회향할 수 있으면, 이것을 바로 수희하는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