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59권 1
大智度論 釋校量舍利品 第三十七 第五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7. 교량사리품(校量舍利品)을 풀이함 1
▶經. 佛告釋提桓因言:“憍尸迦!若滿閻浮提佛舍利作一分,復有人書般若波羅蜜經卷作一分,二分之中,汝取何所?”
▷경.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만약 염부제(閻浮提)에 가득 찬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일분(一分)으로 치고, 다시 어떤 사람이 서사한 반야바라밀의 경전을 일분(一分)으로 친다면, 이 둘 가운데에서 그대는 어느 것을 취하겠는가?”
釋提桓因白佛言:“世尊!若滿閻浮提佛舍利作一分,般若波羅蜜經卷作一分,二分之中,我寧取般若波羅蜜經卷。何以故?世尊!我於佛舍利非不恭敬,非不尊重;以舍利從般若波羅蜜中生、般若波羅蜜薰修故,是舍利得供養、恭敬、尊重、讚歎。”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염부제에 가득 찬 부처님의 사리를 일분(一分)으로 치고, 반야바라밀의 경전을 일분(一分)으로 친다면 이 둘 중에서 저는 차라리 반야바라밀의 경전을 취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사리를 공경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존중하지 않는 것도 아니오나, 사리는 반야바라밀 안에서 나오는 것이고, 반야바라밀로써 덕화를 받아서 하는 수행하는, 훈수(薰修)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리를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爾時,舍利弗問釋提桓因:“憍尸迦!是般若波羅蜜,不可取,無色、無形、無對,一相,所謂無相,汝云何欲取?何以故?是般若波羅蜜,不爲取故出,不爲捨故出,不爲增減、聚散、損益、垢淨故出。
그때 사리불 존자가 석제환인에게 물었다.
“교시가여, 이 반야바라밀은 취할 수 없는 불가취(不可取)입니다. 무색(無色)이고, 형상도 없는 무형(無形)이고, 대할 수도 없는 무대(無對)이며, 일상(一相)이니, 이른바 무상(無相)인데, 당신은 어떻게 취하고자 하십니까?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취하기 위하여 나온 것도 아니고, 버리기 위하여 나오지도 않았으며, 더하고 덜함의 증감(增減)과 모이고 흩어짐의 취산(聚散)과 손해되고 이익됨의 손익(損益)과 더럽고 깨끗함의 구정(垢淨)을 위하여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是般若波羅蜜,不與諸佛法,不捨凡人法;不與辟支佛法、阿羅漢法、學法,不捨凡人法;不與無爲性,不捨有爲性;不與內空乃至無法有法空,不與四念處乃至一切種智,不捨凡人法。”
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의 불법만을 편들지도 않고, 범부의 법을 버리지도 않으며,
벽지불법과 아라한법과 유학(有學)의 법을 편들지도 않고, 범부의 법을 버리지도 않으며,
무위성(無爲性)을 편들지도 않고 유위성(有爲性)을 버리지도 않으며,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를 편들지도 않고, 사념처(四念處)에서 일체종지(一切種智)까지 편들지도 않으며 범부의 법을 버리지도 않습니다.”
釋提桓因語舍利弗:“如是!如是!舍利弗!若有人知是般若波羅蜜不與諸佛法、不捨凡人法,乃至不與一切種智、不捨凡人法;是菩薩摩訶薩能行般若波羅蜜,能修般若波羅蜜。何以故?般若波羅蜜不行二法故,不二法相是般若波羅蜜,不二法相是禪波羅蜜乃至檀波羅蜜。”
석제환인이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였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합니다. 사리불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 불법에 편들지도 않고, 범부의 법을 버리지도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 편들지도 않고 범부의 법을 버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잘 행하는 능행(能行)이요 반야바라밀을 잘 닦는 능수(能修)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두 가지의 이법(二法)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니, 둘이 아닌 불이법상(不二法相)이 바로 반야바라밀이요, 불이법상(不二法相)이 바로 선바라밀이며 나아가 단바라밀인 것입니다.”
爾時,佛讚釋提桓因言:“善哉!善哉!憍尸迦!如汝所說,般若波羅蜜不行二法故,不二法相是般若波羅蜜,不二法相是禪波羅蜜乃至檀波羅蜜。
그 때에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을 칭찬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교시가야,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반야바라밀은 두 가지의 법을 행하지 않는 불행이법(不行二法)이기 때문에 두 법상이 아닌 불이법상(不二法相)이 바로 반야바라밀이요, 불이법상(不二法相)이 바로 선바라밀이며 나아가 단바라밀이니라.
憍尸迦!若人欲得法性二相者,是人爲欲得般若波羅蜜二相。何以故?憍尸迦!法性、般若波羅蜜,無二無別。乃至檀波羅蜜亦如是。
교시가야, 만약 어떤 사람이 법성(法性)에서 두 가지 이상(二相)을 얻고자 한다면, 이 사람은 반야바라밀에서 이상(二相)을 얻고자 하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교시가야, 법성(法性)과 반야바라밀은 둘이 없는 무이(無二)이고 구별도 없는 무별(無別)이기 때문이니, 나아가 단바라밀까지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若人欲得實際、不可思議性二相者,是人爲欲得般若波羅蜜二相。何以故?般若波羅蜜、不可思議性,無二無別。”
만약 어떤 사람이 실제(實際)와 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에서 두 가지의 이상(二相)을 얻으려 한다면, 이 사람은 반야바라밀에서 두 가지의 이상(二相)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되나니, 왜냐하면 반야바라밀과 불가사의성은 둘이 없는 무이(無二)이고 구별도 없는 무별(無別)이기 때문이니라.”
釋提桓因白佛言:“世尊!一切世閒人及諸天、阿修羅,應禮拜、供養般若波羅蜜!何以故?諸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中學,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일체 세간의 사람과 모든 하늘과 아수라들은 반야바라밀에 예배하고 공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배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때문입니다.
世尊!我常在善法堂上坐,我若不在坐時,諸天子來供養我故,爲我坐處作禮,遶竟還去。諸天子作是念:‘釋提桓因在是處坐,爲諸三十三天說法故。’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 선법당(善法堂) 위에 앉아 있겠습니다. 제가 만약 자리를 비웠을 때에 모든 천자들이 저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온다면, 저의 자리를 향하여 예배하고 돈 뒤에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천자들이 생각하기를 ‘석제환인이 이곳에 앉아서 삼십삼천(三十三天)의 모든 하늘들을 위하여 설법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如是,世尊!在所處書是般若波羅蜜經卷,受持、讀誦、爲他演說;是處,十方世界中,諸天、龍、夜叉、揵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皆來禮拜般若波羅蜜,供養已去。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느 곳이든 반야바라밀을 써서 받아 지니는 서수지(書受持)하고, 읽고 외우는 독송(讀誦)하며, 다른 이를 위하여 연설(演說)하게 되면 이곳은 시방세계 안의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 및 마후라 등이 모두가 와서 반야바라밀에 예배하고 공양하고 돌아갑니다.
何以故?是般若波羅蜜中生諸佛及一切衆生樂具故,諸佛舍利亦是一切種智住處因緣。以是故,世尊!二分中,我取般若波羅蜜。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모든 부처님과 모든 중생의 즐거움인 낙구(樂具)가 나오기 때문이요, 모든 부처님의 사리와 또한 일체종지가 머무르는 곳의 인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사리(舍利)와 반야바라밀의 둘 가운데에서 저는 반야바라밀을 취하겠습니다.
復次,世尊!我若受持、讀誦般若波羅蜜,心深入法中,我是時不見怖畏相。
何以故?世尊!是般若波羅蜜無相無貌、無言無說。
다시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반야바라밀을 수지(受持)하고, 읽고 외우는 독송(讀誦)하여서 마음이 깊은 심법(深法) 안으로 들어간 때에는 두려워하는 포외상(怖畏相)을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상(相)도 없고 모(貌, 모양)도 없으며, 말도 없고, 설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世尊!無相無貌、無言無說,是般若波羅蜜,乃至是一切種智。世尊!般若波羅蜜若當有相、非無相者,諸佛不應知一切法無相無貌、無言無說,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弟子說諸法無相無貌、無言無說。
세존이시여, 무상(無相)이고, 모양도 없는 무모(無貌)이며, 말도 없고 설명도 없는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며, 나아가 이것이 일체종지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에 만약 상(相)이 있어야 하고, 모(貌, 모양)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은 무상(無相)이고, 모양도 없는 무모(無貌)이며, 말이 없는 무언(無言)이고 설명이 없는 무설(無說)함을 알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못하실 것이며,
또한 제자들을 위하여 ‘제법은 무상(無相)이고, 모양도 없는 무모(無貌)이며, 말이 없는 무언(無言)이고 설명이 없는 무설(無說)이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世尊!用般若波羅蜜實是無相無貌、無言無說故,諸佛知一切諸法無相無貌、無言無說,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弟子說諸法亦無相無貌、無言無說。以是故,世尊!是般若波羅蜜,一切世閒諸天、人、阿修羅應供養、恭敬、尊重、讚歎,華香、瓔珞乃至幡蓋。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실로 무상(無相)이고, 무모(無貌)이며, 무언(無言)이고 무설(無說)이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이 무상(無相)이고, 무모(無貌)이며, 무언(無言)이고 무설(無說)이라는 것을 아시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셨으며,
제자들을 위하여 제법은 또한 ‘무상(無相)이고, 무모(無貌)이며, 무언(無言)이고 무설(無說)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세존이시여, 일체 세간의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은 이 반야바라밀을 마땅히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과 영락 내지 번기와 일산으로 공양해야 하는 것이며,
復次,世尊!若有人受持般若波羅蜜,親近、讀、誦、說、正憶念及書寫、供養華香乃至幡蓋,是人不墮地獄、畜生、餓鬼道中,不墮聲聞、辟支佛地;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常見諸佛;從一佛界至一佛界,供養諸佛,恭敬、尊重、讚歎,華香乃至幡蓋。
다시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수지(受持)하고, 친근하고 독송하고 해설하면서 바르게 정억념(正憶念)하며, 그리고 서사(書寫)하여서 꽃과 향 내지 번기와 일산으로 공양한다면, 이 사람은 지옥과 축생과 아귀의 갈래에 떨어지지 않으며,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도 떨어지지 않으며,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뵙고, 하나의 불세계로부터 다른 하나의 불세계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께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과 향 내지 번기와 일산으로 공양하게 됩니다.
復次,世尊!滿三千大千世界佛舍利作一分,書般若波羅蜜經卷作一分,是二分中,我故取般若波羅蜜。何以故?世尊!是般若波羅蜜中生諸佛舍利;以是故,舍利得供養、恭敬、尊重、讚歎。
다시 세존이시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부처님의 사리를 일분(一分)으로 치고 반야바라밀의 경전을 일분(一分)으로 친다면, 이 둘 가운데에서 저는 반야바라밀을 취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모든 부처님의 사리가 나왔기 때문이므로 사리를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할 수 있는 것입니다.
是善男子、善女人供養、恭敬舍利故,受天上、人中福樂,常不墮三惡道;如所願,漸以三乘法入涅槃。是故,世尊!若有見現在佛、若見般若波羅蜜經卷,等無異。何以故?世尊!是般若波羅蜜與佛無二無別故。”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사리에 공양하고 공경하는 까닭에 천상과 인간의 복락(福樂)을 누리고 항상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으며, 소원대로 되고 점차로 삼승(三乘)의 법으로써 열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어떤 이가 현재 계신 현재불(現在佛)을 뵙는 것과 반야바라밀을 보는 것이 똑 같아서 서로 다름이 없으니,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과 부처님은 둘이 아닌 무이(無二)이고 구별도 없는 무별(無別)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