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58권 6
大智度論 釋阿難稱譽品 第三十六 第五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6. 아난칭예품(阿難稱譽品)을 풀이함 2
▶論. 釋曰:阿難雖多聞,力能分別空,而未離欲故,不能深入;雖常侍佛,不數問難空事。今佛讚歎般若波羅蜜,亦讚歎行者,是故阿難白佛言:“世尊!何以不稱歎餘波羅蜜及諸法,而獨稱歎般若波羅蜜?”
▷논. 해석한다. 아난 존자는 비록 많이 들은 다문력(多聞力)으로 공(空)을 분별할 수는 있다 할지라도, 아직 탐욕을 여의지 못한 까닭에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였으며, 비록 항상 부처님을 모셨다 할지라도 공(空)에 대하여 자주 묻지 않았었다.
지금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을 찬탄하고 또한 수행하는 이를 찬탄하시게 되자, 이 때문에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그 밖의 바라밀과 제법은 찬탄하지 않으면서, 유독 반야바라밀만을 찬탄하시나이까”라고 한 것이다.
問曰:佛從初以來常說六波羅蜜名,今阿難何以言“不稱說”?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항상 육바라밀의 이름을 말씀하셨거늘, 아난 존자는 무엇 때문에 이제서야 칭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荅曰:雖說名字,不爲稱美,皆爲入般若中故說。
답하나니, 비록 이름은 말씀하셨을지라도 칭찬하지는 않으셨으니, 모두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들어가기 때문인 것이다.
佛語阿難:“一切有爲法中,智慧第一;一切智慧中,度彼岸般若波羅蜜第一。”譬如行路,雖有衆伴,導師第一。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시되 “모든 유위법(有爲法)중에서는 지혜가 제일이요,
모든 지혜 가운데에서는 저 언덕인 피안(彼岸)으로 건너가게 하는 반야바라밀이 제일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길을 갈 때에 비록 여러 동무들과 함께 할지라도 길잡이인 도사(導師)가 제일인 것과 같다.”고 하셨다.
般若亦如是,雖一切善法各各有力,般若波羅蜜能示導出三界、到三乘。若無般若波羅蜜,雖行布施等善法,隨受業行,果報有盡;以有盡故,尚不能得小乘涅槃,何況無上道!
반야 또한 그와 같아서, 비록 모든 착한 선법에 저마다 각각의 힘이 있을지라도, 반야바라밀은 능히 지시하고 인도하면서 삼계(三界)를 벗어나게 하여서 삼승(三乘)에 이르게 하나니,
만약 반야바라밀이 없으면 비록 보시 등의 착한 선법을 행한다 하여도 받는 대로의 업행(業行)과 과보(果報)는 다함이 있는 유진(有盡)이니,
다함이 있는 유진(有盡)이기 때문에 오히려 소승의 열반조차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위없는 무상도(無上道)이겠는가?
若布施等善法,能觀如佛道相不二、不生不滅、不得不失、畢竟空寂,是名“迴向薩婆若”。是布施福,世世常受果報而不盡,後當得一切種智。如布施,一切法亦如是相。
만약 보시 등의 착한 선법을 마치 부처님 도의 모습인 불도상(佛道相)과 같이 “둘도 아닌 불이(不二)이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얻지도 잃지도 않는 불득불실(不得不失)이며, 필경에 공적한 필경공적(畢竟空寂)이다.”고 관찰한다면, 이를 살바야에 회향한다고 하나니,
이 보시의 복은 세세마다 항상 그 과보를 받으면서 다하지 않고, 뒤에는 일체종지를 얻게 되나니, 마치 보시에서와 같이 일체법 또한 그와 같은 상(相)이다.
問曰:佛何以不荅不二因緣,還以“不二”解?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둘이 아닌 인연의 불이인연(不二因緣)을 대답하시지 않으시고, 도리어 둘이 아닌 불이(不二)로써 해석하신 것입니까?
荅曰:阿難不問不二因緣,但問“何法不二”,是故佛荅:“色等諸法不二故。”般若波羅蜜能令五事等作波羅蜜,故但稱譽般若波羅蜜。
답하나니, 아난 존자는 둘이 아닌 인연의 불이인연(不二因緣)을 묻지 않았고, 단지 “어떤 법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가?”를 물었을 뿐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물질(色) 등의 제법은 둘이 아닌 불이(不二)다.”고 답하셨으며,
반야바라밀은 다섯 가지의 바라밀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만을 찬탄하신 것이다.
佛欲令是義了了易解故作是喩譬:“如大地能生萬物,般若波羅蜜亦如是。”“能持一切善法種子”者。從發心來,除般若波羅蜜,餘一切善法。是“因緣和合”者,是佛道中,一心、信、忍、精進不休不息、欲受、通達、不壞,有如是等法。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분명히 알기 쉽게 하시고자 이러한 비유를 드셨으니, “마치 대지(大地)는 만물을 내는 것과 같이 반야바라밀 또한 그와 같다.”
“일체의 착한 선법을 능히 지니는 종자”라는 것은 발심해서부터 반야바라밀을 제외한 그 밖의 일체의 선법은 이 인연(因緣)이 화합한 것으로써, 부처님의 불도(佛道) 가운데에서 일심으로 믿고, 참고, 정진하면서 쉬지 않고 그치지도 않으며, 받아 들이고 통달하고자 하면서 무너뜨리지 않으면, 이러한 등등의 법이 있게 되는 것이다.
事得成辦者,是增長者 從發心起學諸波羅蜜,從一地至一地,乃至佛地是。
이러함을 성취할 수 있는 이는 바로 더욱 자라는 증장자(增長者)이니, 발심한 때부터 모든 바라밀에 대한 배움을 일으켜서, 하나의 지위인 일지(一地)로부터 다른 일지(一地)에 이르게 되며, 이에 부처님의 불지(佛地)에 이르기까지가 그러한 것이다.
問曰:帝釋何以故言“佛說行者受持般若功德未盡”?
묻나니, 제석은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수행하는 행자가 반야를 받아 지니는 공덕을 말씀하셨으나 아직 다하지 못하셨다.”고 말한 것입니까?
荅曰:般若波羅蜜無量無邊,功德亦無量無邊。說未究竟,中閒外道梵志及魔來故,傍及異事,今還欲續聞。
답하나니, 반야바라밀은 무량하고 무변한 것인지라, 공덕 또한 무량하고 무변한 것이라서 그 해설을 하시다가 아직 다 마치지도 못한 중간에 외도와 범지와 악마가 왔었기 때문에, 다른 일로 인하여 옆으로 흐른 것이니, 이제 다시 계속 듣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帝釋深愛福德果報,樂聞般若功德,聽無厭足。今更欲聞說,故自說因緣:“世尊!若人受持般若波羅蜜乃至正憶念,則受三世諸佛無上道功德智慧。所以者何?般若中應求一切種智,一切種智中應求般若。”如上品未說。
제석은 복덕의 과보를 깊이 사랑하고, 반야의 공덕을 듣기 좋아하여서, 들으면서도 만족해 함이 없었으니, 이제 다시 해설을 듣고자 하여 스스로 인연을 말하면서 “세존이시여, 만약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는 수지(受持)하고, 또한 바르게 정억념(正憶念)하면,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무상도의 공덕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니,
왜냐하면 응당 반야 가운데에서 일체종지를 구하여야 하고 응당 일체종지 가운데에서 반야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고 하였으니, 위의 상품(上品)의 끝에서의 설명과 같은 것이다.
行者若受持般若波羅蜜,發心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度衆生故,集般若波羅蜜等諸功德,所謂十善道乃至十八不共法,現於世閒。是善法因緣故,有剎利大姓,乃至諸佛。
수행하는 행자가 만약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는 수지(受持)하면서 발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 등의 모든 공덕을 쌓는다면, 이른바 10선도(十善道)에서 18불공법까지가 세간에 나타나게 되나니, 이 착한 선법의 인연 때문에 찰리의 큰 성바지에서 모든 부처님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佛告天帝:“是人不但得如上功德,亦得無量戒衆等功德。”戒衆者,是菩薩行般若波羅蜜,於一切衆生中修畢竟無畏施。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시되 “이 사람은 비단 위와 같은 공덕을 얻을 뿐만이 아니고, 또한 무량한 계를 포섭하는 계중(戒衆) 등의 공덕도 얻는다.”고 하셨으니,
계중(戒衆)이라 함은, 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일체 중생들에 대하여 반드시 두려움이 없는 보시의 무외시(無畏施)를 닦는 것이다.
衆生十方中數無量無邊,三世中數亦無量無邊,六道、四生種類各各相亦無量無邊;於此無量無邊衆生中,施第一所愛樂物,所謂壽命,是故得無量戒衆果報。
시방에 있는 중생의 수는 무량하고 무변하며, 삼세 동안의 그 수효 또한 무량하고 무변하며, 하늘·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육도(六道)와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의 사생(四生)의 종류와 그 각각의 모양 또한 무량하고 무변한 것으로, 이 무량하고 무변한 중생들에 대하여 제일 좋아하는 물건을 베풀어 주나니, 이른바 수명(壽命)이라.
이 때문에 무량한 계중(戒衆)의 과보를 얻는 것이니,
如是不殺等戒,但說名字,則二百五十。毘尼中,略說則八萬四千,廣說則無量無邊。
이와 같은 불살생(不殺生) 등의 계율은 단지 그 이름만을 말한다면 250이며, 비니(毘尼, 계율장) 중에서 간략하게 설명하면 8만 4천이지만 자세히 설명한다면 무량하고 무변한 것이다.
是戒,凡夫人或一日受,或一世,或百千萬世;菩薩世世於一切衆生中施無畏,乃至入無餘涅槃,是名無量戒衆。乃至解脫知見衆,亦如是隨義分別。
이 계율을 범부인들은 혹 하루 동안 받기도 하고, 혹 일생 동안 받기도 하며, 혹은 백천만의 세상 동안 받기도 하지만, 보살은 세세마다 일체 중생들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음의 무외(無畏)를 베풀면서 또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나니,
이것을 무량한 계율의 무량계중(無量戒衆)이라 하는 것으로, 해탈지견중(解脫知見衆) 등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이 뜻에 따라 분별하는 것이다.
是五衆功德,勝於二乘,不可計量。若人書寫、供養般若波羅蜜,得今世、後世功德。
이 다섯 가지의 계중(戒衆) 정중(定衆) 혜중(慧衆) 해탈중(解脫衆) 해탈지견중(解脫知見衆)의 오중공덕(五衆功德)은 이승보다 뛰어나서 헤아릴 수조차 없나니,
만약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베껴 써서 공양하게 되면, 금세와 후세에 이런 공덕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