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원문과 해설

14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 6

Skunky 2021. 6. 21. 21:41

(9) 下方의 無上慧菩薩

爾時에 無上慧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 무상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보살의 명칭을 설명하면, 지위가 力바라밀로 法王子住의 처소에서 법을 설하기 때문 무상혜이다.

*세계의 명칭을 밝히면 세계의 명칭을 那羅陀華. 那羅라는 것은 한역하면 人이며, 陀는 持이다. 꽃이 향기롭고 순결하고 특수해서 사람이두르고 [帶佩] 지니고 있듯이, 지위의 보살이 묘한 법의 특수함을 설함으로써 듣는 자가 · · ·解脫·解脫知見인 5분법신향을 얻어 모든 사람이 수지독송하 때문 세계의 명칭이 나라타화임을 나타낸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가 淸淨月임을 설명하면, 지위의 보살이 설법을 하기 때문에 대법사가 되어서 능히 自他의 번뇌를 청정케 하므로 부처님의 명호를 청정월이라 하는 것이다.

*도래한 방위라는 것은 下方의 대중이다. 하방이 바로 금강이며, 물이며, 風輪이라서 능히 세간을 지님을 밝힌 것이니, 지위의 보살이 묘한 법을 설해 능히 세간의 軌度와 법칙을 지님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본받아 배우게 함을 나타낸 것이다. 때문에 보살의 명칭이 무상혜이며, 세계의 명칭이 나라타화이며, 부처님의 명호가 청정월인 것이니, 지위는 선재동자가 勝熱바라문을 보고 칼산[刀山] 올라 불구덩이에 들어가니 모든 天人이 와서 보는 바에 따라서 모두 도를 얻어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보살의 지혜가 원만하기 때문에 邪와 함께 하면서도 모든 異道를 거두어들여 正見에 들게 함을 밝힌 것이다.]]

 

①無上爲名 無上이 이름이 되다.

無上摩訶薩이 遠離衆生想하야 無有能過者일새 故號爲無上이로다

 

無上摩訶薩(무상마하살)이, 무상혜보살마하살은 [無上= 가장 높은]

遠離衆生想(원리중생상)하야, 중생이라는 관념 멀리 여의기를  

無有能過者(무유능과자)일새. 능가할 자가 없기에 

故號爲無上(고호위무상)이로다. 그러므로 이름이 무상혜로다

 

②諸佛所得  

諸佛所得處가 無作無分別하시니 麤者無所有며 微細亦復然이로다

 

諸佛所得處(제불소득처)가  부처님들 얻으신 곳은 無作無分別(무작무분별)하시니, 지음도 없고 분별도 없으며

麤者無所有(추자무소유) 거친 것도 있지 않고 微細亦復然(미세역부연)이로다. 고운 것도 그러하도다.

[도인, 큰스님, 종사”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라한도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麤者 無所有微細한 것도 亦復然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諸佛所得處 無作無分別이라.

차별도, 분별도 없습니다. 본래 인간의 근본을 철처히 드러냄과 동시에 최고의 경지에 본래로 존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불법을 알든 모르든 아무 상관없이 최고의 경지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서 보여주는 가르침이 화엄경입니다. 

求佛施功早晩成(구불시공조만성)가? 부처를 구하는데 공을 베풀어서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공을 베풀어서 부처 되는 길은 없습니다.  “부처라고 하는 것은 본래 부처일 뿐, 닦아서 되는 부처는 없다고요.

공을 베풀고, 수행해서 이뤄지는 부처는 시간가면 시간가면 무너지고, 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부처입니까?]

 

③     諸佛所行

諸佛所行境이여 於中無有數라 正覺遠離數하시니 此是佛眞法이로다

 

諸佛所行境(제불소행경)이여, 부처님들 행하신 경계 於中無有數(어중무유수) 가운데는  없으며 

正覺遠離數(정각원리수)하시니, 정각 수를 멀리 여읜 것이니= 멀리 떠났으니,

[법수라고 하는 책이 크고 두꺼운 사전에는 52위= 십신ㆍ십주ㆍ십행ㆍ십회향ㆍ십지ㆍ등각ㆍ묘각 등이 전부 숫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숫자만 있습니다. 부처님이 행한 바 경계에 그런 숫자 없는데 중생들이 하도 어리석으니까 그런 숫자를 가설해놓는 것이지요.]

此是佛眞法(차시불진법)이로다이것이 부처님의 진실한 법이로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바를 중생의 근기 전혀 상관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다 드러내 놓은 것입니다] 

 

④除相現理  상을 제거하고 이치를 나타내다.

如來光普照하사 滅除衆闇冥하시니 是光非有照며 亦復非無照로다

於法無所着하야 無念亦無染하시며 無住無處所하사대 不壞於法性이로다

此中無有二며 亦復無有一이니 大智善見者가 如理巧安住로다

無中無有二며 無二亦復無라 三界一切空이 是則諸佛見이로다

 

如來光普照(여래광보조)하사, 여래는 광명을 널리 비추시어  

滅除衆闇冥(멸제중암명)하시니, 모든 어두움을 멸해 없애시지만 

是光非有照(시광비유조), 광명은 비춤이 있는 것도 아니고 

亦復非無照(역부비무조)로다. 또한 비춤이 없는 것도 아니로다.

[지혜, 깨달음을 또 광명=빛에 비유를 하지만, 지혜는 전깃불 비추듯이 비추는 것이 아니잖아요.]

 

於法無所着(어법무소착)하야, 법에 집착함이 없고 

無念亦無染(무념역무염)하시며, 생각도 없고 물들지도 않으며 

無住無處所(무주무처소)하사대, 머무름도 처소도 없고

不壞於法性(불괴어법성)이로다. 법의 성품을 부수지도 않으며

[법의 성품은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 이잖아요]

 

此中無有二(차중무유이), 안에는 둘이 없고 亦復無有一(역부무유일)이니, 또한 하나도 없으니 

[둘도 없지만, 하나도 없다. 그래서 窮坐實際中道床(궁좌실제중도상)이 되잖아요. 결국에는 中道床에 앉게 된다.]

大智善見者(대지선견자), 지혜의 선견자는 

如理巧安住(여리교안주)로다. 이러한 이치 대로 훌륭히 안주하시니라.

[큰 지혜를 가지고 바르게 잘 보는 사람이 이러한 이치에 교묘히 안주하는 도다.]

 

無中無有二(무중무유이), 없다는 가운데는 둘이 없고 

無二亦復無(무이역부무). 둘이  없다는 것도 역시 없어서

三界一切空(삼계일체공)삼계의 모든 것이 것이니

是則諸佛見(시즉제불견)이로다. 이것이 부처님들의 이로다.

[삼계가 일체 한 것이 모든 부처님의 소견= 견해입니다.

그래서 마당을 쓸 때, 뒤로 가면서 발자취까지도 쓸어버리는 겁니다.]

 

⑤法無所住  법은 머무는 바가 없다.

凡夫無覺解일새 佛令住正法하야 諸法無所住케하시니 悟此見自身이로다

非身而說身하시며 非起而現起하시니 無身亦無見이 是佛無上身이로다

 

凡夫無覺解(범부무각해)일새. 범부는 깨달음의 이해가 없기에   

佛令住正法(불영주정법)하야, 부처님께서는 바른 법에 머물고  

諸法無所住(제법무소주)케하시니, 다른 법에 머물지 말라 하셨으니

悟此見自身(오차견자신)이로다. 이것을 깨달아 몸을 볼지니라.

[書者書我者我(서자서아자아) ‘책은 책이고 나는 나고.’ 가 아닙니다. 책에서 결국은 자신을 보게 되는, 자기 자신을 비춰 보는 겁니다. 그것이 10만 8천리가 돼도 그것이 1미터ㆍ1미터 가까워지는 도리가 있어서, 어는 한 순간 획 돌아서서 한 걸음도 떼지 않고 그 자리에서 중도 상에 서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ㆍ아무리 걸어도 본래 그 자리이고, 이르고 이르러도 역시 그 출발한 자리더라. 그런 유명한 말이 있지요?]

 

非身而說身(비신이설신)하시며, 몸이 아닌데 몸을 말하고 

非起而現起(비기이현기)하시니, 일어남이 아닌데 일어남을 보이지만

無身亦無見(무신역무견)몸도 없고 없는   

是佛無上身(시불무상신)이로다. 이것이 부처님의 위없는 몸이니라.

 

⑥ 推德眞實慧菩薩

如是實慧說 諸佛妙法性하시니 若聞此法者는 當得淸淨眼이로다

 

如是實慧說(여시실혜설), 이와 같이 진실혜보살이 

諸佛妙法性(제불묘법성)하시니, 부처님 묘법의 성품을 설했으니

若聞此法者(약문차법자)는, 만약 법을 듣는 이는 

當得淸淨眼(당득청정안)이로다. 마땅히 청정한 안목을 얻으리라.    

 

(10)上方의堅固慧菩薩

爾時에 堅固慧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 견고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보살의 명칭이 견고혜 까닭을 설명하면, 지위는 灌頂住로서 智바라밀을 행하여 능히 일체 중생을 견고하고 이롭게 하기 때문에 이로써 명칭을 삼은 것이다.

*세계의 명칭이 虛空華 것을 설명하면, 지혜의 태양이 세간과 출세간이 모두 의지하거나 머묾이 없음을 조명하고 있으니, 이로써 명칭을 삼은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가 明了月 까닭을 설명하면, 지위가 대지혜가 원만하고 밝아 세간을 두루 비추면서 명료치 않음이 없으니, 이로써 명칭을 삼은 것이다.

*도래한 방위라는 것은 上方의 대중이다. 상방이란 것은 허공 되며 日月星辰이 되니 大智가 의지함이 없어서 空이나 有를 의지하지 않고 萬象을 밝게 비추는[明鑑] 것이 일월성신과 같음을 나타낸 것이다. 때문에 보살의 명칭이 견고혜이며, 세계의 명칭이 허공화이며, 부처님의 명호가 명료월인 것이니, 지위는 선재동자가 師子幢王女의 이름이  慈行童女임을 보는 것이다. 사자당왕녀라는 것은 지혜와 자비의 원만함을 밝히는 것이니, 10주가 종결되어 이미 부처님 집안에 태어남으로써 가지 법의 자비와 지혜가 종결됨을 회통해서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初住부터 처음으로 부처님 집안에 태어나서 지혜를 닦고 자비를 행하는 것이 바로 王女의 慈行이며, 10地에서 자비의 수행이 이미 원만하니 11 초에서는 자비로써 지혜를 행하는 것이 바로 佛母 摩耶가 모든 부처님을 幻生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大智이며 母는 大悲이.]]

 

①     讚佛

偉哉大光明 勇健無上士여 爲利群迷故로 而興於世間이로다

 

偉哉라 大光明(위재대광명) 위대하십니다, 대광명이시며 勇健無上士(용건무상사)여, 용맹하신 무상사시여

爲利群迷故(위리군미고)로, 미혹한 군생 이롭게 하시고자 而興於世間(이흥어세간)이로다. 세간에 오시다니.

 

② 衆生受苦

佛以大悲心으로 普觀諸衆生이 見在三有中하야 輪廻受衆苦하시나니

唯除正等覺 具德尊導師하고 一切諸天人은 無能救護者로다

 

佛以大悲心(불이대비심)으로, 부처님은 대비심으로 普觀諸衆生(보관제중생)모든 중생을 두루 살피사 

見在三有中(견재삼유중)하야, 삼유 안에서 윤회하며 [三有= 3계= 색계ㆍ욕계ㆍ무색계]

輪廻受衆苦(윤회수중고)하시나니, 온갖 고통받고 있음을 보시나니

 

正等覺(유제정등각) 오직 정등각이시며

具德尊導師(구덕존도사)하고, 덕을 갖추신 높은 도사 除=제외하고는

一切諸天人(일체제천인)일체의 모든 천인들은 

無能救護者(무능구호자)로다구호할  있는 이가 없도다.

[부처가 아니고는 궁극에 부처되게 할 수가 없다.

이것은 결국은 부처님의 깨달으신 안목을 갖춰야 비로소 우리도 불교의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고, 궁극적 안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뜻으로 봐야지요.]

[농부가 추수를 해서 토지세를 내려고 곡식 싣고 와서는, 스님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아~ 중들은 일도 안하고 받아먹기만 해서 죽어서 소가 된단다.”  “소가 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면 괜찮지.”  어디서 법문은 들어가지고는 일꾼들이 농담으로 주고받는 그 소리 듣고 경허스님이 깨달았잖아요.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콧구멍 없다는 소식 그 소리를 듣고 그만 환하게 열려버린 것이지요. 농부들이 장난삼아 하는 소리에도 깨달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꼭 큰 높은 법문을 해야만 중생건지는 것이 아니라고요.]

 

讚僧寶  승보를 찬탄함

若佛菩薩等이 不出於世間이면 無有一衆生도 而能得安樂이로다

如來等正覺과 及諸賢聖衆이 出現於世間하사 能與衆生樂이로다

 

若佛菩薩等(약불보살등)이, 만약 부처님과 보살 등이 不出於世間(불출어세간)이면, 세간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無有一衆生(무유일중생)도,  중생도 而能得安樂(이능득안락)이로다. 안락을 얻을 없었을 것이며 

 

如來等正覺(여래등정각)과 여래 등정각과 及諸賢聖衆(급제현성중)이, 모든 성현들께서  

出現於世間(출현어세간)하사, 세간에 출현하셨기에

能與衆生樂(능여중생락)이로다. 중생들에게 낙을 있는 것이로다.

 

④ 見聞利益

若見如來者는 爲得大善利니 聞佛名生信하면 則是世間塔이로다

我等見世尊은 爲得大利益이니 聞如是妙法하면 悉當成佛道로다

諸菩薩過去에 以佛威神力으로 得淸淨慧眼하야 了諸佛境界라

今見盧舍那하야 重增淸淨信이로다

 

若見如來者(약견여래자), 만약 여래를 이가  爲得大善利(위득대선리), 크고 좋은 이익을 얻고자  

聞佛名生信(문불명생신)하면, 부처님 명호 듣고서 믿음을 낸다면 

則是世間塔(즉시세간탑)이로다이것이 세간의 것이며

[현수 품에서 信爲法藏第一財(신위법장제일재)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법의 창고에서 제일가는 재산이 된다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부처님이름 듣고 신심을 낸 그 사람은 世間塔=  ‘세상에 부처님이라는 분이 있었구나.’ 그리고는 신심과 환희심에 가득히 차있으면 그 사람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존경하고ㆍ그를 에워싸고ㆍ공양올리는 탑이 된다.]

 

我等見世尊(아등견세존)우리가 세존을 뵙고서 爲得大利益(위득대이익)이니, 이익을 얻고자 

聞如是妙法(문여시묘법)하면, 이러한 묘법을 듣는다면 

悉當成佛道(실당성불도)로다. 모두가 마땅히 불도를 이루리라.

 

諸菩薩過去(제보살과거)모든 보살들이 과거에 

以佛威神力(이불위신력)으로부처님의 위신력으로 [佛威神力을 쓴 까닭에]

得淸淨慧眼(득청정혜안)하야청정한 지혜의 안목을 얻어 

了諸佛境界(요제불경계)부처님들의 경계를 알았고 

 

今見盧舍那(금견로사나)하야이제 노사나 부처님을 뵙고 

重增淸淨信(중증청정신)이로다. 청정한 믿음이 더욱 커지리라.[청정한 믿음을 더욱 증장시키는 도다.]

[重增淸淨信,우리 신심에 달린 것이지요. 사리를 만들어서 모셔놓고  “사리” 라 해서 믿으면 그 사람에게는 사리인겁니다. 진짜 사리를 갖다놓고, 진짜 부처님을 모셔 놓고도, 부처님이 아니라고 안 믿는 사람에게는 부처님 아닌 것이지요. 그 모든 것은 우리 주관적이 관점에 달린 것이지, 사실은 대상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 전에 고려청자에다가 개밥을 주기에, 안목 있는 사람이 만 원짜리 개를 2만원 주고 산겁니다.

 ‘아이고 횡재했다.’ 고, 그까짓 똥강아지 누가 만 원 줘도 안 사갈 텐데 아, 2만원에 사간 사람이 있어요. 그러고는 저 만치 가다가 되돌아와 와서,  “아이, 개밥그릇도 줘야지.” 그러더래요. 그래서  “아, 그 개밥그릇 가져가라.” 고... 그 사람이 개에 관심 있나요? 개 밥그릇인 고려청자에 관심이 있었지요. 하하하]

[盧舍那  梵語 'Losana'의 音譯. 三身佛의 하나로 해의 빛이 세계를 비추는 것에 비유하여 光明佛이라고도 함.]

 

⑤    佛德無盡   부처님의 덕이 다함이 없다.

佛智無邊際라 演說不可盡이니 勝慧等菩薩과 及我堅固慧가 無數億劫中에 說亦不可盡이로다

 

佛智無邊際(불지무변제). 부처님 지혜는 가이 없으시니   

演說不可盡(연설불가진)이니연설을 없는지라   

勝慧等菩薩(승혜등보살), 승혜 등의 보살들과 及我堅固慧(급아견고혜)나와 견고혜보살이 

無數億劫中(무수억겁중), 무수한 동안  

說亦不可盡(설역불가진)이로다. 설한다 해도 다할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