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55권 11
大智度論 釋散華品 第二十九 卷五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9. 산화품(散華品)을 풀이함 8
▶論. 問曰:釋提桓因是須陁洹人。云何能問深般若波羅蜜?
▷논. 묻나니, 석제환인은 수다원과의 사람이거늘, 어떻게 깊은 반야바라밀을 묻는 것입니까?
荅曰:如須菩提是具足阿羅漢,以利益菩薩、憐愍衆生故,問菩薩所行事。
釋提桓因雖是聲聞人,是諸天主,有利智慧、憐愍衆生故,問般若波羅蜜,亦如是。
답하나니, 마치 수보리 존자는 아라한을 구족한 이로써, 보살을 이익되게 하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보살로서 행할 바들을 묻는 것과 같이,
비록 석제환인은 성문인이지만, 그는 모든 하늘의 임금으로서 영리하며, 지혜가 있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을 묻는 것이다.
復次,有人言:“三千大千世界中,有百億釋提桓因。
『中阿含』中說釋提桓因得須陁洹者,異今釋提桓因。
今釋提桓因是大菩薩,憐愍衆生故,三種讚般若波羅蜜,
所謂摩訶波羅蜜、無量波羅蜜、無邊波羅蜜,是般若波羅蜜。
또한 어떤 분은 말하기를 “삼천대천세계 안에는 백억의 석제환인이 있다.”고 하나니,
'중아함(中阿含)' 가운데에서 “석제환인은 수다원을 얻은 이다.”고 하기는 하나 여기서의 석제환인은 그와 다르니,
지금의 석제환인은 바로 큰 보살이어서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세 가지로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는 것으로,
이른바 “마하(摩訶, Maha, 크다大, 빼어나다勝, 많다多)바라밀이요, 무량(無量)한 바라밀이며, 무변(無邊)한 바라밀이라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다.”고 한 것이다.
是般若波羅蜜中學成諸聖道故。須菩提然釋提桓因讚,而廣解其讚言。
以五衆大故,般若波羅蜜大。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모든 성인의 성도(聖道)를 배워서 이룬다.”고 하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도 석제환인의 찬탄이 옳다고 하며, 그의 찬탄을 깊이 해설하여서
“5중(五衆)은 큰 대(大)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큰 것이다.”고 한 것이다.
“五衆大”者,所謂三際不可得故。亦以無量、無邊故言“大”。
破是無量無邊五衆,將一切衆生入無餘涅槃中,故言“般若波羅蜜大”。乃至一切種智亦如是。
'오중은 큰 오중대(五衆大)'라는 것은, 이른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제(三際, 삼세)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또한 무량하고 무변하기 때문에 “클 대(大)이다.”고 한 것이며,
이 무량(無量)하고 무변(無邊)한 오중을 깨뜨리고, 일체 중생을 거느리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큰 대(大)이며 일체종지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한 것이다.
“無量”者亦爾,但以虛空譬喩爲異。有法雖大,不必無量,是故不得以空爲喩。
如須彌山,於諸山中雖大而有量,所謂八萬四千由旬。
“무량(無量)하다.”는 것 또한 그러하나니, 단지 허공으로써 비유하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어떠한 법이 비록 클 대(大)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무량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허공으로써는 비유하지 못하는 것이며, 비록 수미산(須彌山)이 모든 산 가운데에서 큰 대(大)일지라도 한량이 있는 유량(有量)이니, 이른바 8만 4천 유순(由旬)인 것과 같은 것이다.
“無邊”者,以五衆廣大無量,故言“無邊”;亦以五衆有邊則有始,有始則有終,
卽是無因無緣,墮斷滅等種種過故。復次,五衆,三世中不可得,故言“無邊”。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다.”고 함이란, 오중이 광대하고 무량하기 때문에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다.”고 하며,
또한 오중이 끝이 있다고 한다면, 그 시작이 있는 것이며, 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되는 것이니, 곧 그것은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이 단멸(斷滅) 등의 갖가지 허물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며,
또한 오중은 3세(三世) 가운데에서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에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다.”고 말하는 것이다.
“緣無邊”者,所謂一切法四緣:因緣,生一切有爲法;次第緣,過去、現在心心數法;
緣緣、增上緣,一切法。是四種緣,一切處、一切時皆有,故說“緣無邊”;
緣無邊故,般若波羅蜜無邊。復次,“緣無邊”者,四緣法虛誑無實、畢竟空故無邊。
“연(緣)이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다"는 것은, 이른바 일체법의 사연(四緣)이니,
인연(因緣)으로는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이 생기는 것이고
차제연(次第緣)은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心數法)이며, 그리고 연연(緣緣)과 증상연(增上緣)이다.
일체법에는 이 네 가지의 사연(四緣)이 일체의 처소와 일체의 시간에 모두 있기 때문에 “연은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다.”고 말하고. 연은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끝없이 무변(無邊)한 것이며,
또한 “인연은 끝없이 무변(無邊)하다.”고 함이란, 사연(四緣)의 법은 거짓으로써 진실이 없으며, 반드시 공하기 때문에 끝없이 무변(無邊)한 것이다.
▷論.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모두가 이러한 사연(四緣)에서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인연(因緣)과 차제연(次第緣)과 연연(緣緣)과 증상연(增上緣)이다.
인연(因緣)이라 함이란, 상응인(相應因)과 공생인(共生因)과 자종인(自種因)과 변인(遍因)과 보인(報因)이의 다섯 가지 오인(五因)을 인연이라 하는 것이며, 또한 일체의 유위법 또한 인연이라 한다.
차제연(次第緣)이라 함이란, 아라한(阿羅漢)의 과거와 현재의 마지막 마음인 말후심(末後心)과 그 마음에 속한 심수법(心數法)을 제외한, 그 밖의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그 마음에 속한 심수법이 능히 차제(次第, 차례)를 따르는 것을 차제연이라 하며, 연연(緣緣)과 증상연(增上緣)이라 함은 일체법을 말하는 것이며,-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2권 1
復次,緣如、法性、實際無邊故,般若波羅蜜無邊。
“如、法性、實際”,是自然無爲相故無量無邊;五衆無邊,是觀力故,强作無邊。
復次,“衆生無邊”者,以衆生多故;無量阿僧祇三世十方衆生,無人能知數,
故言“無邊”。復次,是中說衆生空,故言“無邊”,但强爲作名。
또한 여(如)와 법성(法性)과 실제(實際)가 끝없이 무변(無邊)하다는 것을 반연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무변하나니,
여와 법성과 실제, 이것은 자연(自然)이요 무위상(無爲相)이기 때문에 무량하고 무변하거니와
오중이 무변한 것은 바로 관(觀)의 힘 때문에 억지로 “무변(無邊)하다.”고 만드는 것이다.
또한 “중생이 무변(無邊)하다.”고 함이란, 중생이 많기 때문이며, 무량한 아승기 세상의 중생들의 수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끝없이 무변(無邊)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이 가운데에서는 중생공(衆生空)을 설명한 까닭에 “끝없이 무변(無邊)하다.”고 말하는 것이니 단지 억지로 이름을 지었을 뿐이다.
“亦無所趣”者,以衆生無有定法可趣向故;如火定有所趣,而衆生名,無實衆生可趣。
"나아갈 곳이 없는 역무소취(亦無所趣)”라고 함이란, 중생은 정해진 정법(定法)이 있어서 나아가고 향할 수 있는, 가취향(可趣向)할 곳이 없기 때문이니, 마치 불은 일정하게 나아가는 곳이 있지만 중생이란 이름은 실로 중생으로서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없는 것과 같은것이다.
“於汝意云何,般若波羅蜜中頗說實有衆生不?”“不也!大德!”“若衆生實無,云何有邊?”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행여 실로 중생이 있다고 말하겠습니까?”라고 하자,
“없습니다, 대덕이여”라고 하였으니, 만약 실로 중생이 없다면 어떻게 변(邊, 끝)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譬如諸佛是一切實語人中第一,於無量恒河沙劫壽說衆生名字,是衆生法不以說故有生、有滅,何況餘人顚倒虛誑少時說!生我心故,當有衆生。
비유하자면, 마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일체의 진실을 말씀하시는 사람 가운데에서 제일이시지만,
무량한 항하 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겁 동안 사시면서 중생이란 명자(名字, 이름)를 말씀하실 때에는, 이 중생법으로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남이 있는 유생(有生)이고, 없어지는 유멸(有滅)이거늘,
하물며 그 밖의 사람으로서 전도되고 거짓된 이가 잠시 동안 말하는 것이겠는가!
'나'라는 아심(我心)이 생기기 때문에 당연히 중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是衆生不以入般若波羅蜜中故言“無”,從本已來常淸淨、無所有,有無等戲論滅故。是以說:“衆生無邊故,般若波羅蜜無邊。”
이 중생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들기 때문에 “없을 무(無)이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며,
본래부터 언제나 청정하여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있다 없다는 등의 쓸모없는 희론이 소멸한 까닭에
“중생은 무변(無邊)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무변(無邊)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問曰:“無邊”中何以故廣說?而“大”及“無量”何以略說?
묻나니, 끝이 없다는 무변(無邊)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시면서 “크다는 대(大)”와 “무량(無量)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 때문에 간략하게 설명하신 것입니까?
荅曰:以衆生因緣故,一切凡夫起諸煩惱,於五衆中作諸邪行,難破故,是以廣說。若破衆生相,餘一切易破。
답하나니, 중생의 인연 때문이니, 일체 범부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어 오중(五衆) 가운데에서 모든 삿된 사행(邪行)을 지으므로 깨뜨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였거니와,
만약 중생상(衆生相)을 깨뜨린다면 일체의 그 밖의 것은 깨뜨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大智度論卷第五十五 대지도론 55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