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55권 7
大智度論 釋散華品 第二十九 卷五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9. 산화품(散華品)을 풀이함 4
問曰:若如是不學一切法,云何“學一切智”?
묻나니, 만약 그와 같이 일체법을 배우지 않는 불학일체법(不學一切法)이라면, 어떻게 일체지(一切智)를 배우는 것입니까?
荅曰:是中說:“若能於諸法空中無所著,是爲眞學色空。”若著空者,是破諸法而不破空。若人破色而不著空,是則色與空不二不別,是爲能學色空,以不可得空故不見空。乃至一切種智亦如是。
답하나니, 여기서 말하기를, 만약 제법공(諸法空)인 가운데에서 집착함이 없으면, 이것이 진실로 색공(色空)을 배우는 것이라 하며,
만약 공(空)에 집착한다면, 이것은 제법을 깨뜨리는 파제법(破諸法)이 되나 공은 깨뜨리는 불파공(不破空)이 되는 것이니,
만약 사람이 색을 깨뜨리면서 공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색과 공이 둘이 아인 불이(不二)이고 다르지도 않은 불별(不別)인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색공(色空)을 잘 배우는 것이 되며,
공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공을 보지 않는 불견공(不見空)이니,
나아가 일체종지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無量無邊阿僧祇佛法”者,是讚一切種智。上一切種智,是菩薩心中有量有限,在佛心中則無量無限。以是故,上雖說學佛法,今更別說。若能如是學,正行菩薩道,不增減。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의 불법”이라 함이란, 바로 일체종지를 찬탄하는 것이니, 위에서의 일체종지가 바로 그것이다.
보살의 마음에는 분량이 있고 한계가 있거니와 부처님의 마음은 분량도 없고 한계도 없기 때문에 위에서 비록 불법을 배운다고 말하였을지라도 지금 다시 따로 말하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이 배우게 되면 바르게 보살도를 행하는 것이요, 더하거나 덜하지 않는 것이다.
“色學不增”者,若但見四大及造色和合成身者,則不生著。以於是身中起男女、好醜、長短相,謂爲定實,生染著心,是爲“增”。若破色使空,心著是空,是爲“減”。乃至一切種智亦如是。
“색을 배우면서 더하지 않는 색학불증(色學不增)”이란, 만약 4대(大)로 만들어진 물질인 조색(造色)이 화합하여 몸이 되었을 뿐이라고 본다면 집착을 내지 않게 되거니와,
이 몸 가운데에서 남자와 여자며 아름답고 추한 것과 장점ㆍ단점의 상(相)을 일으키면서, 그것이 일정하고 진실하다고 여기면서 물들고 집착하는 마음을 낸다면, 이것은 더하는 증(增)이 되는 것이요,
만약 물질을 파괴하여 공(空)하게 하면서도 마음이 이 공에 집착하게 된다면, 이것은 없애는 멸(滅)이 되나니,
나아가 일체종지 등도 또한 그와 같은것이다.
“不受、不滅”者,空故“不受”;業果因緣相續故“不滅”。是中須菩提自說因緣:“色受者,不可得故不受。”又以色內外空故“不受”,以色中內外空空故“不滅”。
“받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불수불멸(不受不滅)”이란, 공한 까닭에 업과(業果)를 받지 않는 불수(不受)이고,
인연(因緣)이 상속하기 때문에 멸하지도 않는 불멸(不滅)이라는 것이니,
여기에서 수보리 존자는 스스로의 인연을 말하면서 “색을 받는다는 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받지 않는 불수(不受)이고,
또한 색은 안팎이 공한, 내외공(內外空)인 까닭에 받지 않는 불수(不受)이며,
색 가운데의 내외공(內外空) 또한 공(空)한 까닭에 없어지지 않는 불멸(不滅)이라고 하였다.
問曰:應以十八空空諸法,此中何以但說“內、外空”?
묻나니, 18공(十八空)으로써 제법은 공한 것이 되거늘,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내외공(內外空)만을 말하는 것입니까?
荅曰:受色者無故說“內空”,色不可受故名“外空”。是內、外空,則攝一切法空。乃至一切種智亦如是。
답하나니, 색은 받는 이가 없기 때문에 내공(內空)을 말하였고, 색은 받을 수 없는 색불가수(色不可受)이기 때문에 외공(外空)이라 하나니, 이 내외공은 일체법의 공(空)을 다 포섭하는 것이며, 나아가 일체종지 등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若菩薩能如是學,則出生一切種智。一切種智是無障礙相,
若菩薩觀一切法如虛空無障礙,則是學一切種智,因果相似故。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게 되면 곧 일체종지를 출생(出生)시키나니, 일체종지는 바로 장애가 없는 무장애상(無障礙相)이니, 만약 보살이, 일체법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무장애(無障礙)라는 것을 관찰한다면, 곧 일체종지를 배우는 것이니, 인과(因果)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舍利弗作是念:‘菩薩法應當滅一切煩惱,應當受一切諸善法;今不受、不滅學,云何出至薩婆若?’作是念已,問須菩提。
사리불 존자가 생각하기를 ‘보살법에서는 당연히 일체 번뇌를 없애고 일체의 선법을 받아야 하거늘, 이와 같이 받지도 않고 없애지도 않으면서 배운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으며, 살바야(薩婆若)에 이를 수 있겠는가?’라 하고는 수보리 존자에게 물은 것이니,
須菩提荅言:“破一切法生相故不生,破一切法無常相故不滅;觀一切法種種過罪故不受,觀一切法種種利益故不捨;一切法性常淸淨故不垢,一切法能生著心故不淨。
수보리 존자가 답하기를 “일체 법의 나는 생상(生相)을 깨뜨리는 까닭에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고
일체법의 무상상(無常相)을 깨뜨리는 까닭에 멸하지 않는 불멸(不滅)이며,
일체법의 갖가지 허물을 관찰하는 까닭에 받지 않는 불수(不受)이고
일체법의 갖가지의 이익을 관찰하는 까닭에 버리지 않는 불사(不捨)이며,
일체법의 성품이 항상 청정한 상청정(常淸淨)인 까닭에 더럽지 않은불구(不垢)이고
일체법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게 되는 까닭에 청정하지 않은 부정(不淨)이라 하는 것이다.
一切法雖是有作無作、起滅、入出、來往等,而不多不少不增不減。譬如大海,衆流歸之不增,火珠煎之不減。
일체법에는 비록 이러한 조작이 있고 없는 유작무작(有作無作)ㆍ일어나고 없어지는 기멸(起滅)ㆍ들고 나는 입출(入出)ㆍ오고 가는 내왕(來往) 등이 있을지라도, 많아지지도 적어지지도 않는 불다불소(不多不少)이며, 더하지도 줄지도 않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이나니,
비유하자면, 큰 바다는 뭇 흐름들이 모였을지라도 더하지도 않으며, 화주(火珠, 불 구슬)는 불에 끓인다 하여도 줄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諸法亦如是,法性常住故,一切法自性不可得故。能如是學,則出到薩婆若,不見學相、不見出相,不見菩薩相、不見般若波羅蜜相。”此中略說故,但說“無學、無出”。
제법 또한 그와 같아서 법성(法性)은 항상 머무는 까닭에, 일체법의 자성(自性)은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 이와 같이 배우게 되면 벗어나면서 살바야에 도달하게 되나니,
배우는 학상(學相)도 보지 않고, 벗어나는 출상(出相)도 보지 않으며, 보살상(菩薩相)도 보지 않으며, 반야바라밀의 상도 보지 않으니,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설명하는 까닭에 단지 “배움도 없는 무학(無學)이고, 벗어남도 없는 무출(無出)이라고 말할 뿐인 것이다.
▶經. 爾時,釋提桓因語舍利弗:“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當於何處求?”舍利弗言:“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當於須菩提品中求。”
▷경. 그 때에 석제환인이 사리불 존자에게 묻기를,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을 어디에서 구하여야 하는지요?”
사리불 존자가 답하여,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은 수보리품(須菩提品) 가운데에서 구하여야 합니다.”
釋提桓因語須菩提:“是汝神力使舍利弗言‘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當於須菩提品中求’?”須菩提語釋提桓因:“非我神力。”
석제환인이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이것은 당신의 신력(神力)으로 사리불 존자로 하여금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은 수보리품에서 구하여야 한다.’고 말씀하게 한 것인지요?”
수보리 존자가 석제환인에게 답하여, “저의 신력이 아닙니다.”
釋提桓因語須菩提:“是誰神力?”須菩提言:“是佛神力。”
석제환인이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그것은 누구의 신력인지요?”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그것은 부처님의 신력입니다.”
釋提桓因言:“一切法皆無受處,何以故言是佛神力?離無受處相,如來不可得;離如,如來亦不可得。”
석제환인이 묻기를, “일체법은 모두 받는 곳의 수처(受處)가 없거늘, 무엇 때문에 ‘그것은 부처님의 신력이다.’고 말하는지요? 수처(受處)가 상(相)을 여의면 여래(如來)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고, 여(如)를 여의어서도 여래 또한 얻을 수 없는 불가득입니다.”
須菩提語釋提桓因言:“如是!如是!憍尸迦!離無受處相,如來不可得;離如,如來亦不可得。無受處相中如來不可得,如中如來不可得。
수보리 존자가 석제환인에게 답하여,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한 것입니다.
교시가여, 받는 곳이 없는 무수처상(無受處相)을 여의면 여래는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고, 역시 여(如)를 여의어도 여래를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며, 무수처상(無受處相) 가운데에서는 여래를 얻을 수 없고, 여(如) 가운데에서도 여래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色如中如來如不可得,如來如中色如不可得。色法相中如來法相不可得,如來法相中色法相不可得;受、想、行、識法相中,乃至一切種智亦如是。
색여(色如) 가운데에서는 여래(如來)의 여(如)를 얻을 수 없고,
여래의 여(如) 가운데에서도 색여(色如)를 얻을 수 없으며,
색법상(色法相) 가운데에서는 여래의 법상(法相)을 얻을 수 없고
여래의 법상(法相) 가운데에서도 색의 법상(法相)을 얻을 수 없나니,
수상행식(受想行識)에서 일체종지 등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憍尸迦!如來色如中不合不散,受、想、行、識如中不合不散;如來離色如不合不散,離受、想、行、識如不合不散。乃至一切種智亦如是。
교시가여, 여래는 색여(色如) 가운데에서 합하지도 흩어지지도 않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 여(如) 가운데에도 불합불산(不合不散)이며,
여래는 색여(色如)의 여(如)를 떠나서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여(如)를 떠나서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나니,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如來色法相中不合不散,受、想、行、識法相中不合不散;如來離色法相中不合不散,離受、想、行、識法相中不合不散。乃至一切種智亦如是。憍尸迦!如是等一切法中不合不散,是佛神力,用無所受法故。
여래는 색법상(色法相) 가운데에서 불합불산(不合不散)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 법상(法相) 가운데에서도 불합불산(不合不散)이며,
여래는 색법상(色法相)을 떠난 가운데에서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의 법상(法相)을 떠난 가운데에서도 불합불산(不合不散)이나니,
나아가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습니다.
교시가여, 이와 같은 등의 일체법 가운데에서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나니,
이러한 부처님의 위신력의 작용인 불신력(佛神力)은 받는 바의 법이 없는 용무소수법(用無所受法)이기 때문입니다.
如憍尸迦言:‘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當於何處求?’憍尸迦!不應色中求般若波羅蜜,亦不應離色求般若波羅蜜;不應受、想、行、識中求,亦不應離受、想、行、識求。何以故?是般若波羅蜜,色、受、想、行、識,是一切法皆不合、不散,無色、無形、無對,一相,所謂無相。
마치 교시가의 말씀과 같이,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은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 것인가?
교시가여, 색 가운데에서 반야바라밀을 구하지 않아야 하고, 또한 색을 여읜 이색(離色)에서 반야바라밀을 구하지 않아야 하며,
수상행식(受想行識) 가운데에서 반야바라밀을 구하지 않아야 하고, 또한 수상행식(受想行識)을 여읜 가운데에서 반야바라밀을 구하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과 이 일체법에 대하여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며, 빛깔도 없는 무색(無色)이고, 형상도 없는 무형(無形)이고, 대할 수도 없는 무대(無對)한 일상(一相)이어서 이른바 상이 없는 무상(無相)이기 때문입니다.
乃至一切種智中不應求般若波羅蜜,亦不應離一切種智求般若波羅蜜。何以故?是般若波羅蜜、一切種智,是一切法皆不合、不散,無色、無形、無對,一相,所謂無相。
나아가 일체종지 가운데에서도 반야바라밀을 구하지 않아야 하고, 또한 일체종지를 여의고서도 반야바라밀을 구하지 않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일체종지와 일체법에 대하여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며, 무색(無色)이고, 무형(無形)이고, 무대(無對)한 일상(一相)이어서 이른바 상이 없는 무상(無相)이기 때문이니,
何以故?般若波羅蜜非色、亦非離色,非受想行識、亦非離受想行識;乃至非一切種智、亦非離一切種智。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색이 아닌 반야바라밀비색(般若波羅蜜非色)이요, 또한 색을 여읜 것도 아닌 비이색(非離色)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아니요 또한 수상행식(受想行識)을 여읜것도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아니요 또한 일체종지를 여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