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 4
②無生觀 생멸이 없음을 관찰하는 견해
世間言語法을 衆生妄分別하나니 知世皆無生이면 乃是見世間이로다
若見見世間이면 見則世間相이니 如實等無異라야 此名眞見者로다
若見等無異하야 於物不分別이면 是見離諸惑하야 無漏得自在로다
世間言語法(세간언어법)을, 세간의 언어법으로 衆生妄分別(중생망분별)하나니, 중생들은 망령되이 분별하지만
[부처님의 경전도 일단은 말을 쫓아가는 것이지만 거기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知世皆無生(지세개무생)이면, 세간의 모든 것이 무생임을 알아야
乃是見世間(내시견세간)이로다. 마침내 세간을 본 것이니라.
[無生, 본래 생멸이 없는, 본래 없는 것으로 보아야 비로소 세간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본래 깨져있는 것으로 보고 사용하라.” 본래 죽은 몸인데 ‘아~, 덤으로 보너스를 받아서 지금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아주 홀가분하지요. 돈을 잃어버려도 별로 아깝지도 않을 것이고요. 본래 공짜 돈이었으니까요. 우리 일상의 삶을 깃털처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불법만난 보람이 있지요.]
若見見世間(약견견세간)이면, 견으로 세간을 보면 見則世間相(견즉세간상)이니, 견은 곧 세간의 모양인 것이요
[若見見世間= 우리가 세간을 어떻게 보는가? 를 살펴보면 그 보는 것이 세간 상이다. 말하자면 그것이 ‘진실상이다.’]
如實等無異(여실등무이)라야, 다름이 없이 같아서 여실하여야
[如實= 사실과 같아서= 실상과 같아서 평등하여 다름이 없음]
此名眞見者(차명진견자)로다. 참되게 보았다 할 것이니라.
若見等無異(약견등무이)하야, 다름이 없이 같게 보고 於物不分別(어물불분별)이면, 사물을 분별하지 않으면
是見離諸惑(시견이제혹)하야, 그 견은 모든 의혹을 여의고 [미혹을 떠나서]
無漏得自在(무루득자재)로다. 무루하여 자재함을 얻으리라.
[이 견해는 모든 의혹을 다 떠나서, 샘이 없는 자재함을 얻는다.]
①無性觀 본래 자성이 없다고 보는 견해.
諸佛所開示 一切分別法을 是悉不可得이니 彼性淸淨故로다
法性本淸淨하야 如空無有相일새 一切無能說이니 智者如是觀이로다
遠離於法想하야 不樂一切法하면 此亦無所修니 能見大牟尼로다
諸佛所開示(제불소개시) 一切分別法(일체분별법)을, 부처님들이 열어 보이신 바 일체의 분별법은
是悉不可得(시실불가득)이니, 모두 얻을 수 없다는 것은 彼性淸淨故(피성청정고)로다. 그 성품이 청정한 까닭이니라.
法性本淸淨(법성본청정)하야, 법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고 如空無有相(여공무유상)일새. 허공처럼 모양이 없어서
[법성은 본래 청정해서 如空= 공과 같아서 = 텅 빈 것과 같아서 상이 없다= 형상이 없다]
一切無能說(일체무능설)이니, 아무도 말할 수 없으리니
智者如是觀(지자여시관)이로다. 지혜있는 이라면 이와 같이 보리라.
遠離於法想(원리어법상)하야, 법이라는 관념에서 멀리 벗어나 不樂一切法(불락일체법)하면, 일체법을 즐기지 않는다면
此亦無所修(차역무소수)니, 이 역시 닦을 것이 없으리니
能見大牟尼(능견대모니)로다. 능히 대모니를 보리라.
[모든 존재를 보는 그 생각= 일체 법을 즐기지 아니할 것 같으면이것 또한 닦을 바가 없음이니→ 그런 사람이 無所修 = 닦을 바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 능히 大牟尼를 본다.
사실 불법을 닦는다.ㆍ수행이라고 후대에 와서 많이 설명하는데요. 이 화엄경의 안목으로 어떤 이치를 제대로 본 사람에게는 뭐 수행한다.ㆍ깨닫는다 하는 것이 헛된, 허망한 소리입니다]
④ 推德功德慧菩薩
如德慧所說하야 此名見佛者니 所有一切行이 體性皆寂滅이로다
如德慧所說(여덕혜소설)하야, 덕혜보살이 말한 바
此名見佛者(차명견불자)니, 이를 일러 견불자라 할 것이요 [부처를 보는사람이니]
所有一切行(소유일체행)이, 그가 지닌 모든 행의 體性皆寂滅(체성개적멸)이로다. 체성이 모두 적멸한 것이로다.
(6)東南方의 善慧菩薩
爾時에 善慧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 선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살피며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善慧보살의 명칭은, 正心住에서 반야바라밀의 지혜문을 닦기 때문에 보살의 명칭이 선혜임을 밝힌 것이다.
*妙香華세계라는 것은 묘한 작용인 지혜의 향기로운 꽃[香華]으로 自他의 불과를 꽃피움을 밝힌 것이니, 이는 지혜로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 바로 향기로운 꽃[香華]이라는 뜻을 밝힌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가 解脫月인 것은 묘한 슬기가 분명해 마음과 경계가 해탈함을 밝힌 것이다.
*도래한 방위는 동남방의 대중이다. 동남방은 손위(巽位)로서 바람의 가르침이 되고 言說이 되니, 이는 이 지위가 지혜로써 묘한 법을 잘 설해서 중생을 교화해 해탈케 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 때문에 보살의 명칭이 선혜이며, 세계의 명칭이 묘향화이며, 불과를 해탈월이라 호칭하는 것이니, 이는 선재동자의 여섯 번째인 海幢비구가 몸과 마음이 공적해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여의고 몸으로 化身을 내어 법계에 두루함에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공적의 用이 자재로워서 寂滅의 신통을 얻음을 밝힌 것이다.]]
① 見佛
希有大勇健하신 無量諸如來여 離垢心解脫하사 自度能度彼로다
我見世間燈의 如實不顚倒가 如於無量劫에 積智者所見이로다
希有하여 大勇健(희유대용건)하신, 희유하십니다. 대용건이시여, [大勇健= 용맹스럽고 강한]
無量諸如來(무량제여래)여, 한량없는 여래들께서 離垢心解脫(이구심해탈)하사, 때 묻은 마음을 여의고 해탈하시어
自度能度彼(자도능도피)로다. 스스로 제도하시고 저들도 제도하시다니.
[자기가 물에서 빠져나와야 남을 건질 수가 있지요.]
我見世間燈(아견세간등)의, 내가 보건대 세간등께서는 [世間燈 = 세간의 등불= 부처님]
如實不顚倒(여실부전도)가, 여실하여 전도되지 않으셨으니 如於無量劫(여어무량겁)에, 한량없는 겁 동안
積智者所見(적지자소견)이로다. 지혜를 쌓은 이가 본 그 대로로다.
[사실과 같이 전도되지 아니한 분이 한량없는 겁에 지혜를 쌓은 사람만이 보는 바다.
보살행이 중요하다 하는 내용이고, 그 보살행을 밑받침 하는 것은 깨달음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보현행과 깨달음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많습니다.]
② 見法
一切凡夫行이 莫不速歸盡하나니 其性如虛空일새 故說無有盡이로다
智者說無盡이나 此亦無所說이니 自性無盡故로 得有難思盡이로다
所說無盡中에 無衆生可得이니 知衆生性爾하면 則見大名稱이로다
一切凡夫行(일체범부행)이 모든 범부의 행은 莫不速歸盡(막불속귀진)하나니, 모두가 속히 다해버리는 곳으로 돌아가고
[속히 다 함에 돌아가지 아니함이 없나니, → 凡夫行이라는 것은 금방 없어지는, 허망한 것이라 전부 다 함에 돌아간다.]
其性如虛空(기성여허공)일새. 그 성품이 허공같기 때문에
故說無有盡(고설무유진)이로다. 그래서 다함이 없다 말하는 것이요,
[성품은 다함이 없습니다. 범부는 성품에 계합하지 아니하고, 허망한 현상에만 쫓아가니까 전부 허망한 데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성을 재산으로 하는 사람은 잃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습니다.]
智者說無盡(지자설무진)이나, 지혜로운 이가 다함이 없다 말하나 [지혜로운 사람은 無盡을 말하나]
此亦無所說(차역무소설)이니, 그 역시 말해진 바도 없고
[이 또한 진짜 無盡은 성품의 본자리니까 설할 바가 없는, 설할 것이 없고 설할 수도 없다.
성품ㆍ본성이 어떻고ㆍ다함이 있고ㆍ없고ㆍ허공과 같느니, 이런 방편 설을 늘어놓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無所說입니다.]
自性無盡故(자성무진고)로, 자성에 다함이 없기 때문에
得有難思盡(득유난사진)이로다. 어떤 부사의한 다함을 얻는 것이며,
[생각 할 수 없는 그런 다함을 얻음이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러고ㆍ저러고 하는 현상의 허망한 내용과 우리 본성의 다 함이 없는 공성의 그 관계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所說無盡中(소설무진중)에, 말한 바 다함이 없다는 것 안에서는
無衆生可得(무중생가득)이니, 중생이라는 것도 얻을 수가 없으리니
知衆生性爾(지중생성이)하면, 중생의 성품이 그러함을 알면
則見大名稱(즉견대명칭)이로다. 곧 대명칭=부처님을 보게 되리라.
[그 다함이 없는 본성에는 중생만 없는 것이 아니라, 무불무중생이지요.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니ㆍ중생이니, 이렇게 방편의 이름을 지어서 부르는 것은 사실은 알고 보면 전부 엉터리지요. 어쩔 수 없어서 그나마 좀 도움이 될까하고 호사가들이 이름을 지어서 이러고ㆍ저러고 부르게 됐고, 온갖 보살이름ㆍ온갖 부처이름ㆍ온갖 중생이름 다 지어서 부르고, 온갖 수행을 얼기설기 엮어서 뭐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사실은 그 궁극적인 자리는 부처와 동일해서 중생이니ㆍ부처니ㆍ보살이니 등을 붙일 자리가 아닌 것이지요.]
③ 得益
無見說爲見이요 無生說衆生이니 若見若衆生을 了知無體性이로다
能見及所見의 見者悉除遣하고 不壞於眞法하면 此人了知佛이로다
若人了知佛과 及佛所說法하면 則能照世間을 如佛盧舍那로다
無見說爲見(무견설위견)이요, 보는 것이 없는데 본다고 말하고 [見, 보는 것이 없는 것이 見이 된다고 말하며]
無生說衆生(무생설중생)이니, 생겨 남이 없는데 生=중생이라 말하지만 [중생 없는 것이 중생이라고 설함이니]
若見若衆生(약견약중생)을, 보는 것이거나 중생이거나 [見이라든가, 또는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了知無體性(요지무체성)이로다. 체성이 없음을 분명히 알지니라.
[뭘 본다느니 또는 중생이라느니 이것이 진짜 궁극적 차원에 있어서는 어떤 실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能見及所見(능견급소견)의, 보는 것도 볼 것도 [능견과 소견= 보는 주체, 또 볼 바 대상.]
見者悉除遣(견자실제견)하고, 보는 자도 다 떠나보내 없애고[遣 보낼 견]
[보는 나도 제거 하고, 보이는 대상. 그 대상이 부처가 됐든지, 산천초목이 됐든지 간에 그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해 보내고]
不壞於眞法(불괴어진법)하면, 진실한 법을 부수지 않을 수만 있다면
此人了知佛(차인요지불)이로다. 이 사람은 부처를 요지한 것이며,→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부처를 아는 사람이다.
[能見과 所見 = 능히 보는 나나, 보이는 부처나 이 모든 것들을 다 제거했을 때, 無자를 많이 써놓고는 한번 새겨보라는
강원의 전통들이 있습니다. “없다.ㆍ없다하는 것도 없다.ㆍ없다하는 것을 없다하는 것도 또한 없다.” 이런 식으로... 그 장난인데요. 그러니까 흔적을 없애는 것이지요.
여기도 마찬가지로 能見과 所見의 흔적을 다 없애는= 보이는 대상이나 보는 나나, 대상을 다 없애는 것입니다.
사찰에서 마당을 쓸 때는 꼭 뒤로 물러나면서 씁니다. 그것은 앞으로 쓸면 아무리 깨끗하게 쓸어도 쓴 사람의 발자취는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쓴 사람의 발자취 까지도 쓸기 위해서 뒤로 물러나면서 쓰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법도도 없어져서, 쓸고 싶은 대로 막 쓰는데, 절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당 쓰는 울력에도 말하자면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진리를 반영하는 것이지요. 거기서 그런 이치를 생각하면서 마당을 쓴다.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것은 마당을 쓰는 것이 아니라 법을 쓰는, 법의 흔적을 쓸어버리는 것이지요. 아무리 깨끗하게 쓸어도 발자국이 남아있는 것은 아직 제대로 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참~, 불법 하나하나 눈여겨보면 정말 근사한, 기가 막힌 이치지요.]
若人了知佛(약인료요지불)과 及佛所說法(급불소설법)하면,
만약 어떤 이가 부처님과 부처님 설하신 법을 분명히 알았다면
則能照世間(즉능조세간)을 如佛盧舍那(여불로사나)로다. 곧 노사나불과 같이 세간을 비출 수 있으리라.
[부처님盧舍那= 법신부처님과 같다.→ 부처님이나 누구나 이 정도 경지가 되면, 세상을 그렇게 볼 것이다.]
①推德精進慧菩薩 덕을 정진혜 보살에게 미루다.
正覺善開示 一法淸淨道하시고 精進慧大士가 演說無量法하시니
若有若無有 彼想皆除滅하면 如是能見佛이 安住於實際로다
正覺善開示(정각선개시) 一法淸淨道(일법청정도)하시고,
정각= 부처님께서는 한 법의 청정한 도를 善開示= 잘 열어 보여주시고
精進慧大士(정진혜대사)가 정진혜대사는 演說無量法(연설무량법)하시니, 한량없는 법을 연설하셨으니
若有若無有(약유약무유), 있다거나 없다거나 彼想皆除滅(피상개제멸)하면, 그러한 생각들을 모두 없애버릴지니라.
[그 생각을 다 제멸한다= 다 쓸어 제멸한다. 뒤로 물러나면서 발자국마저 쓸어버리듯이]
如是能見佛(여시능견불)이, 이와 같아야 부처님을 볼 수 있어서
安住於實際(안주어실제)로다. 진실한 이치에 안주하게 되리라.
[窮坐實際中道床(궁좌실제중도상). 궁극에 가서는 실제의 중도상에 앉아있더라.
여기에는 부처가 중생을 제도하느니, 보살이 자비행을 해서 중생을 건지느니하는 소리가 다 끊어진 자리지요.]
(7)西南方의 智慧菩薩
爾時에 智慧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 지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보살의 명칭이지혜임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이 제7 不退住가 바로 대자비문을 성취함인데 지혜가 원만히 성취되어야 비로소 능히 세속을 따라 생사에 잘 들어가는 것이니, 이로써 명칭을 삼은 것이다.
*세계의 명칭이 悅意華인 것은, 지혜가 있기 때문에 생사에 있으면서도 6道를 따라 事를 같이 하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근기를 알아 세속을 기쁘게 함으로써 모두로 하여금 근심 없는 法悅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명호가 無上月인 것은 모든 행 중에서 자비가 으뜸이 됨을 밝힌 것이다. 이는 중생을 제도해 이롭게 하는 것을 최고의 뛰어남으로 삼기 때문이다.
*도래한 방위는 서남방이다. 이는 곤위(坤位)로서 믿고 따름이 되며, 어머니, 대지, 대중이 되니, 방편바라밀이 대자비를 모태로 삼아 일체 중생의 생사의 땅에 들어가서 일체 중생의 이익을 함께 하며 교화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믿고 따르면서 정법에 들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살의 명칭이 지혜이며, 세계의 명칭이 열의화이며, 부처님의 명호가 무상월인 것이니, 이는 선재동자의 일곱 번째 선지식이 (休捨優婆夷에 해당되는 한역하면 滿願이다. 즉 대자비행으로 중생의 願을 만족케 하기 때문에 이 서남방이 모태가 된다는 뜻으로 자비의 지위를 나타낸 것이다.]]
我聞最勝敎하고 卽生智慧光하야 普照十方界하야 悉見一切佛이로다
我聞最勝敎(아문최승교)하고, 나는 最勝敎= 가장 수승한 가르침을 듣고
卽生智慧光(즉생지혜광)하야, 곧 지혜의 빛이 생겨서 普照十方界(보조시방계)하야,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
悉見一切佛(실견일체불)이로다. 모든 부처님을 다 보았노라.
[最勝의 가르침을 듣고 곧 지혜의 빛을 발해서 시방세계를 환히 비춰 보니까 一切佛을 다 보는 도다.
처처에 부처님 아닌 것이 없고, 사사에 불공 아닌 것이 없고, 사사가 다 불사입니다. 온갖 행위가, 行住坐臥(행주좌와) 그 무엇 하나도 불사 아닌 것이 없더라. 산천초목이 다 진여불성이고, 그대로 법신비로자나불이니까요.]
① 人執
此中無少物이요 但有假名字니 若計有我人이면 則爲入險道로다
此中無少物(차중무소물)이요, 그 안에는 아무런 물건도 없고 但有假名字(단유가명자)니, 다만 거짓 이름만 있으니
[산천초목이라고 하는 것ㆍ중생이니ㆍ부처니 하는 일체 名字가 거짓 명자. 임시방편으로 이름 붙여 놓은 겁니다.
어린 아이를 막 낳으면 그 아이 명 길라고 개똥이라고 짓잖아요. 假名字= 거짓 명자지요. 어른이 되어서 사회인이 됐는데도 “개똥아,” 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거짓 명자인 겁니다.]
若計有我人(약계유아인)이면, 만약 나와 남이 있다고 생각했다가는
則爲入險道(즉위입험도)로다. 곧바로 험한 길에 떨어지리라.
[만약에 아상ㆍ인상 = 나다ㆍ너다라는 것이 있다고 계교를 할 것 같으면, 곧 험한 길로 들어선다.
너다ㆍ나다. 하는 것이 있다면 벌써 거기는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 온갖 천 가지 만 가지 상이 일어나서, 인아 상을 다투게 되고, 네 것 찾고, 내 것 찾고, 많다 적다하는 것도 찾고, 온갖 것 다 생겨서 세상사의 가시넝쿨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入險道로다. 여기는 인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