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54권 7

Skunky 2024. 8. 2. 08:00

大智度論 釋天主品 第二十七 卷五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7. 천주품(天主品) 풀이함 7

 

問曰:若菩薩摩訶薩法,從初發心應行六波羅蜜,行六波羅蜜故入法位,入法位故應住阿鞞跋致地,住阿鞞跋致地已,應起五神通、供養十方諸佛,如後廣說;今何以故皆言“不應住”?

묻나니, 만약 보살마하살의 법이라면 처음 발심해서부터바라밀을 행해야 하고,

바라밀을 행하는 까닭에 법위(法位)에 들게 되며, 

법위에 들어간 까닭에 아비발치(阿毘跋致)의 지위에 머무르게 되고 

아비발치의 지위에 머무른 뒤에는 천안통 ‧ 천이통 ‧ 신족통 ‧ 타심통 또 숙명통의 오신통(五神通)을 일으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해야 됨은 마치 뒤에서 널리 설명하는 것과 같거늘,

지금은 무엇 때문에 모두 “머무르지 않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不破淸淨住,但破計我邪見取相心住;譬如治田,去其穢草。

답하나니, 청정한 머무름의 청정주(淸淨住)까지 깨뜨리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를 헤아리는 삿된견(邪見)으로 취하는 취상(取相) 마음이 머무르는 심주(心住)를 깨뜨릴 뿐이니, 비유하자면, 밭을 가꾸면서 김을 매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爲斷法愛故,不應住;不欲違諸佛說畢竟空智慧故,不應住。

若以方便不著心,憐愍衆生故,雖住無咎。乃至八十種隨形好亦如是。

또한 법애(法愛)를 끊기 위하여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필경공(畢竟空)의 지혜’에 어긋나지 않고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는 것이니,

만약 방편과 집착하지 않는 불착심(不著心)으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긴다면, 비록 머무른다 하여 허물될 것이 없으니, 나아가 80종의 수형호(隨形好)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八人”者,所謂見諦道中信行、法行。須陁洹,極久七世生;有須陁洹今世煩惱盡,得阿羅漢。有家家須陁洹,三世生;三世生已,入涅槃。有中閒須陁洹,除第三,餘中閒入涅槃。住六無碍、五解脫中者,皆是須陁洹向。

8인(八人)이라 함이란, 이른바 견제도(見諦道) 가운데에서의 신행(信行)과 법행(法行)이니,

수다원은 아무리 오래 산다 하더라도 일곱 번의 세상 동안 생(生)을 받게 되나니, 어떤 수다원은  세상에서 번뇌가 다하여 아라한이 되는 이도 있고, 

어떤 일래과(一來果)인 가가(家家, 가가성자家家聖者) 수다원은 3세(世)동안은 생을 받고 3세(世)가 끝난 뒤에는 열반에 드는 이도 있으며, 그 중간의 수다원은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의 중간에 열반에 드는 이도 있으며,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에 걸림 없는 육무애(六無礙)와 

5해탈(五解脫) 가운데에 머무른 이는 모두가 수다원향(須陀洹向)이라 하는 것이다.


斯陁含斷欲界六種結,生天上,從天上來生人閒入涅槃,名斯陁含。

사다함(斯陀含)은 욕계(欲界)의 탐(貪) 진(瞋) 치(癡)만(慢) 신견(身見) 변견(邊見)의 여섯 가지 결사인 육종결(六種結)을 끊고 천상에 태어나며, 천상으로부터 인간에 태어나서는 열반에 드는 이를 사다함(斯陀含)이라 하며,

 

斷欲界第七分結,名向阿那含。斷第八分結 亦名向阿那含,

又名一種子斯陁含,此閒死,彼閒生,入涅槃。能斷欲界一切結使,名阿那含,

此間死,生色無色界,入涅槃,更不復來生。

욕계의 제7분결(第七分結)을 끊으면 아나함(阿那含)의 증과(證果)를 향(向)하는 이라 하고, 

제8분결(第八分結)을 끊어도 역시 아나함의 증과를 향한 이라 하며, 또한 일종자(一種子)라고도 하나니,

사다함이  세간에서 죽어서  세간에  나서 열반에 들되 일체의 욕계 결사(結使)를 끊었으므로 아나함이라 하며, 

 세간에서 죽어서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서 열반에 들어서 다시 돌아와서 태어나지 않는다.

 

결(結, saṃyojana, bandhana)은 사(使, anuśaya) 등과 함께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며, 번뇌가 유정을 괴로운 과보[苦果]가 생겨나는 상태에 묶어버리는[結] 작용을 한다는 뜻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결(結)은 흔히 속박(束縛) · 결박(繫縛) · 계박(繫縛)의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2결(二結) · 3결(三結) · 4결(四結) · 5결(五結) · 9결(九結) · 10결(十結) · 98결(九十八結) · 108결(百八結) 등으로 구분한다 - 위키

9결(九結)= 1. 애결(愛結): 탐(貪), 3계의 탐
2. 에결(恚結): 진(瞋), 유정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
3. 만결(慢結): 만(慢), 만(慢) · 과만(過慢) · 만과만(慢過慢) · 아만(我慢) · 증상만(增上慢) · 비만(卑慢) · 사만(邪慢)의 7만(七慢)
4. 무명결(無明結): 치(癡), 3계에서 지혜가 없는 것[無智]
5. 견결(見結):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의 3견(三見)
6. 취결(取結):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2취(二取)
7. 의결(疑結): 의(疑), 진리[諦]에 대하여 망설이는 것
8. 질결(嫉結): 질(嫉), 마음이 질투하고 꺼리는 것
9. 간결(慳結): 간(慳), 마음이 비루하고 인색한 것


有今世滅阿那含,有中陰滅阿那含,有卽生時入涅槃阿那含,

有生已修起諸行入涅槃阿那含,有不勤求諸行入涅槃阿那含。

그리고  세상에서 멸도(滅度)하는 아나함이 있고, 중음(中陰)에서 멸도하는 아나함도 있으며, 

태어나자마자 바로 열반에 드는 아나함도 있으며,

태어난 뒤에 모든 행을 닦고 일으키다가 열반에 드는 아나함도 있으며, 

모든 행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다가 열반에 드는 아나함도 있다.

 

중음(中陰, 바르도Bardo)= 사유(死有)에서 생유(生有)로 이어지는 중간적 존재인 중유(中有, antarabhāva)를 말한다. 중음(中陰), 중간계(中間界)라고도 번역한다.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다 - 위키


有上行乃至阿迦貳咤阿那含,有生無色界入涅槃阿那含,有得身證入涅槃阿那含,是名阿那含,亦名向阿羅漢。阿羅漢有九種,漏盡捨身時,名入無餘涅槃。

또한 위로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 색구경천)까지 가는 아나함이 있고,

무색계에 가서 태어나 열반에 드는 아나함이 있으며,

몸을 증득하는 신증(身證)을 하고서 열반에 드는 아나함도 있나니, 

이들을 아나함이라 하며 또한 아라한의 증과로 향하는 향아라한(向阿羅漢)이라고도 한다.

아라한에는 아홉 가지의 구종(九種)이 있나니, 

번뇌가 다하여 몸을 버릴 때를 바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든다 하는 것이다.


過聲聞、辟支佛地,住菩薩地;道種智,一切種智,知一切法;斷一切煩惱及習;成佛轉法輪;三十二相;莊嚴世界,度無量衆生;無量壽命——皆如先論議中說。

성문과 벽지불의 경지를 지나서 보살의 지위와 도종지(道種智, 종지種智)와 일체종지(一切種智)에 머무르며, 일체법을 알며 일체의 번뇌와 습기를 끊고 부처님이 되어 법륜을 굴리며, 32상(相)을 갖추고 세계를 장엄하며,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며, 무량한 수명을 누리는  등에 대해서는 모두 앞의 논의(論議)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聲聞人善修四如意足,得是三昧力,能住壽若一劫、若減一劫。菩薩善修四如意三昧,若欲如恒河沙劫壽,亦得如意。

성문인(聲聞人)이 4여의족(四如意足, 4신족四神足)을  닦아서  삼매의 힘을 얻으면, 혹은  겁이 조금  되게   있으며,

보살이 4여의삼매(四如意三昧)를  닦으면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동안 살고자 한다면, 역시 그의 뜻대로 되는 것이다.

 

4여의족(四如意足, 4신족四神足)= ‘자유자재한 힘을 얻기 위한 네 가지 기반’이라는 뜻이다. 적극적인 의욕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욕여의족(欲如意足), 정진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 마음을 가다듬고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심여의족(心如意足), 사유하고 관찰하는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을 말한다.- 다움

 

“三千大千世界純是金剛”者,餘世界雖底有金剛及佛所行所坐處有金剛,而餘處皆無;是菩薩所願:世界皆是金剛。“菩提樹香度衆生”者,如先義中說。

“삼천대천세계가 순수한 금강(金剛)으로 된다.”고 함이란, 그 밖의 다른 세계에는 비록 바닥에 금강이 있으며, 부처님께서 다니시는 곳과 앉으신 곳에 금강이 있다 하여도, 그 밖의 장소에는 없거니와,  보살이 원한 바의 세계는 모두가  금강이라는 것이다.

보리수(菩提樹)의 향기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問曰:此中事雖希有,皆可信;無有色、受、想、行、識名字,無檀波羅蜜名字乃至佛名字,是難可信!

묻나니, 이러한 가운데에서의 일은 비록 희유하여서 모두 믿어야 한다고 하여도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이름까지도 없고, 단(檀)바라밀의 이름 내지 부처님이라는 이름까지도 없다는 것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答曰:有世界,大福德智慧人生處,樹木、虛空、土地、山水等常出諸法實相之音,所有法皆是不生不滅、不淨不垢、空無相無作等;衆生生便聞是音,自然得無生法忍。

답하나니, 큰 복덕과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 태어나는 어떤 세계에 수목ㆍ허공ㆍ토지ㆍ산ㆍ물 등에서 항상법의 실상(實相)에 대한 음성을 내고 있나니,법은 모두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는 불정불구(不淨不垢)이며, 공(空)하여서 상 없고 조작이 없는 무상무작(無相無作)이라는 등의 음성이라. 

중생이 그 곳에 태어나면서  음성을 듣게 되면 저절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는 것이다.


如是世界中,不須分別說諸法名字,所謂是五衆、十二入等、檀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須陁洹乃至諸佛。是世界中衆生皆有三十二相、八十隨形好莊嚴身,無量光明,一種道,一種果。

이와 같이 세계 가운데에서는 분별하면서 제법의 이름을 말할 필요조차도 없으니,

이른바 “이것이중(衆)이요 12입(入) 등이며, 단바라밀에서 18불공법까지요, 수다원에서 부처님까지이다.”라고 하는 것 등이다.

 세계 안의 중생들 모두는 32상과 80수형호로 몸을 장엄하였으고, 무량한 광명과 일종도(一種道)와 일종과(一種果)가 있다.


“是中不應住”者,菩薩自念:“我能生如是世界,則生高心,以是故不應取相住”

此中須菩提自說不住因緣:“諸佛得佛道時,於諸法中不得定實相故,當何所住!”

“이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한다.”고 함이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이러한 세계에 태어나게 되면,  높은 체하는 고심(高心) 낼 수도 있으리라.”고 하나니,  때문에 상(相) 취하면서  가운데에도 머무르지 않는 불응취상주(不應取相住)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보리 존자는 스스로 머무르지 않는 인연, 불주인연(不住因緣)을 말하면서 

“모든 부처님께서 불도를 얻으실 때에 제법 가운데에서 일정하고 진실한 정실상(定實相) 얻지 못하시거늘, 어디에 머물러야 하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今舍利弗作是念:“若都無所住,當住何處得成佛道?”須菩提知舍利弗心之所念,語舍利弗:

“諸菩薩皆是佛子,子法應如父所行 諸佛心於一切法中無所住,所謂色乃至一切種智;

菩薩亦應如是學,用無所住心行般若波羅蜜。

지금 사리불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결코 머무를 곳이 없는 것이라면, 어느 곳에 머물러서 부처님의도를 이루게 되는 것일까?” 하였으므로, 

수보리 존자는 사리불 존자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기를 

“모든 보살 모두는 바로 부처님의 아들인 불자(佛子)이니, 아들로서의 법은 마땅히 아버지께서 행하신 대로 하여야 하며, 모든 부처님의 불심(佛心) 일체 가운데에서 머무르는 바가 없는 무소주(無所住)이라, 이른바 색(色)에서부터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이니, 보살 또한 이와 같이 배워야 하며, 

머무르는 바가 없는 마음의 무소주심(無所住心)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如諸佛無所住心中亦不住,非不住心中亦不住,畢竟淸淨故。

諸菩薩亦應隨佛住,畢竟淸淨故,諸菩薩亦應隨佛學。

마치 모든 부처님께서 머무를 바가 없는 무소주심(無所住心) 가운데에서도 또한 머무르지 않는 불주(不住)이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불주심(不住心) 가운데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불주(不住)이니,

필경청정(畢竟淸淨)인 까닭에 모든 보살 또한 부처님을 따라 머물러야 하고,

필경청정인 까닭에 모든 보살 또한 부처님을 따라 배워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