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53권 7

Skunky 2024. 7. 29. 08:00

大智度論 釋無生品 第二十六 卷五十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6. 무생품(無生品) 풀이함 7

 

▶論. 問曰:五百阿羅漢,佛各說其第一,如舍利弗智慧第一,目揵連神足第一,摩訶迦葉行頭陁中第一,須菩提得無諍三昧第一,摩訶迦旃延分別修多羅第一,富樓那說法人中第一。今舍利弗何以故讚須菩提於說法人中應最第一?

▷논. 묻나니, 부처님께서 저마다의 오백 아라한이 제일(第一)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예를 들면 사리불(舍利弗)은 지혜(智慧)가 제일이요, 목건련(目揵連)은 신족(神足)이 제일이며, 마하가섭(摩訶伽葉)은 두타(頭陀)를 행하는  가운데에서 제일이요, 수보리(須菩提)는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가운데에서 제일이며,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은 수다라(修多羅)를 분별하는 데서 제일이요, 부루나(富樓那)는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제일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사리불 존자는 무엇 때문에 수보리 존자를 칭찬하시면서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까?


答曰:佛以佛眼觀一切衆生利根、鈍根,籌量一切法摠相、別相,隨其所得法,各記第一,無錯!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불안(佛眼)으로써 모든 중생들의 근기가 영리한 이근(利根)과 근기가 둔한 둔근(鈍根)을 관찰하시고, 일체법의 전체의 별상(總相)과 각각의 별상(別相)을 헤아리시면서,  얻은 바의 소득법(所得法)에 따라 저마다 제일인(第一人)임을 말씀하신 것이니, 착오가 없는 것이다.


富樓那於四衆中,用十二部經、種種法門、種種因緣譬喩說法,能利益衆生第一。須菩提常行無諍三昧,與菩薩同事,巧便樂說一種空相法門,勝富樓那。

부루나 존자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사중(四衆) 가운데에서 12부경(部經)과 갖가지의 법문(法門)과 갖가지의 인연(因緣)과 비유(譬喩)로써 설법하면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데에 제일이며,

수보리 존자는 항상 무쟁삼매를 행하면서 보살들과 일을 같이하면서 교묘한 방편으로  가지의 일종공상법문(一種公相法門)을 자유자재로 설명하신 것에서는 부루나 존자보다 뛰어나다고 한 것이었다.


譬如巧師多有所能,所能多故,普不精悉;如有人偏能一事,則必盡其美。富樓那雖多能,不如須菩提常樂行空故,能巧說空。是故舍利弗聞須菩提巧說空義,便讚言:“汝於說法人中應作第一!”

비유하자면, 재주가 많은 스승이 능한 바의 능력이 많지만, 재주가 있고 능한 바가 많다 하여 두루  자세하게  아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치우치게  가지에만 능한 사람이 반드시  아름다움의 미(美)를 다하게 되는 것과 같이, 

부루나 존자는 비록 재능이 많아서 다능(多能)이라 하여도, 수보리 존자가 항상 공(空)을 좋아하고 수행하는 것과, 공(空)을 교묘히 설명하는 데에는 따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는 교묘히 설명하는 공의 이치를 듣고 칭찬하면서 “당신께서는 설법하는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라고  것이다.


舍利弗見須菩提隨所問皆能答,如風行空中,無所罣碍。爾時,須菩提不謙不受。何以故?安立平實,好人相故。

사리불 존자는 수보리 존자가 묻는 것마다 모두  대답하였으되, 마치 바람이 공중을 가는 것과 같이 걸리는 바가 없음을 보았으며, 그 때에 수보리 존자는 겸양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나니, 왜냐하면 편안하게 안립(安立)되어서 질박하고 인상이 좋은 호인상(好人相)이었기 때문이다.

 

好人相者,不自讚、不自毀,於他亦不讚、不毀。若自讚身,非大人相,不爲人所讚而便自美;若自毀,是姣輸人。若毀他,是讒賊人;若讚他,是諂媚人。

姣 예쁠 교, 음란할 효, 讒 참소할 참, 諂 아첨할 첨, 媚 아첨할 미, 예쁠 미

인상이 좋다는 호인상(好人相)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칭찬하지도 않고, 자신을 헐뜯지도 않으며, 다른  또한 칭찬하지도 않고, 헐뜯지도 않는 것이다. 

만약 자기 자신을 칭찬한다면 대인상(大人相)이 아니니, 

남이 칭찬해 주지 않는데도 스스로를 자랑을 하거나 스스로를 헐뜯는 이는 바로 요망한 효수인(姣輸人)이며,  

만약 다른 이를 훼방한다면 이는 사람을 헐뜯는 도적인 참적인(讒賊人)이요 

남을 칭찬하는 이는 바로 아첨하는 첨미인(諂媚人)인 것이다.


須菩提說無生法故,舍利弗雖讚而非諂。須菩提以舍利弗實讚故不謙,又以斷法愛故心不高,亦不愛著,但答無碍無障因緣:所謂一切法無所依止,無所依止故無障無碍。無所依止義,如先說。

수보리 존자는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을 말한 까닭에 사리불 존자가 비록 칭찬할지라도 아첨하는 것이 아니며,

수보리 존자는 사리불 존자가 진실로 칭찬하였기 때문에 겸양하지 않은 것이며,

또한 법애(法愛)를 끊었기 때문에 교만하거나 애착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걸림 없고 막힘없는 무애무장인연(無礙無障因緣)만을 대답한 것이었으니, 

이른바 “일체법은 의지하는 바가 없는 무소의(無所依)이고, 무소의이기 때문에 막힘도 없고 걸림도 없다.”고 한 것이며,

의지하는 바가 없는 무소의의(無所依義)에 대해서는 앞에서의 설명한 바와 같다.


此中須菩提自說:”內法空故,色不依止內;外法空故,色不依止外;中閒無所有故,色不依止中閒。”如色,乃至一切種智亦如是。

 가운데에서 수보리 존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안의법(內法)이 공하기 때문에 물질은 안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의 외법(外法)이 공하기 때문에 물질(色)은 바깥에 의지하지 않으며, 

중간(中間)이 없기 때문에 물질(色)은 중간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마치 물질(色)에서와 같이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하였다.

 

若菩薩知一切三界無常空故,不中依止;爾時煩惱折,能淨菩薩道。是故須菩提說:“菩薩行六波羅蜜,應淨色乃至一切種智。”

만약 보살이 일체 삼계(三界)가 무상(無常)하고 공(空)한 까닭에  안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면, 그 때에 번뇌는 꺾이고 보살도를 청정하게   있나니,

 때문에 수보리 존자가 “보살은바라밀을 행하여 물질(色)에서 일체종지까지를 청정하게 해야만 한다.”고 말한 것이다.


問曰:淨色乃至淨一切種智,卽是淨菩薩道,何以故更問?

묻나니, 물질(色)을 청정하게 하고,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  보살도(菩薩道)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묻는 것입니까?

 

答曰:菩薩能令色畢竟空,是名淸淨;是事深妙,不可頓得。

是故舍利弗問:“新學菩薩云何修是初方便道?” 頓 조아릴 돈

답하나니, 보살이 물질(色)이 필경공(畢竟空)이라면, 이를 청정한 것이라 하나니,

이러함은 깊고 미묘하여서 단박 얻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리불 존자가 묻기를 

“새로 배우는 신학(新學) 보살은 어떻게  처음의 방편도(方便道)를 닦는지요?”라고 한 것이며, 


須菩提答:“若菩薩能行二種波羅蜜。六波羅蜜是初開菩薩道;能用無所得空,行三十七品,是開佛道。”

그러자 수보리 존자가 대답하기를 “만약 보살이  가지의 바라밀을  행한다면, 

바라밀이 바로 처음의 보살도(菩薩道)를 열어 주는 것이 되고,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공(無所得空)으로써 37 조도품을 행한다면 이것은 부처님도(佛道)를 열어 주는 것이다.”고 하였다.

 

“淨”者名爲開;如去道中荊棘,名爲開道。何等是二種波羅蜜?一者、世閒,二者、出世閒。世閒者,須菩提自說義,所謂須食與食等。是義,如「初品」中說。

청정하게 한다는 정(淨)이라 함은 열어 준다는 개(開)이니, 마치  한 가운데에 있는 가시나무를 없앤다면 길을 열어 주는 개도(開道)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엇이  가지 바라밀의 이종바라밀(二種波羅密)인가? 

첫째는 세간(世間) 바라밀이요, 둘째는 출세간(出世間) 바라밀이다. 

세간에 대하여 수보리 존자 스스로가 그 뜻을 설명하였으니, 이른바 “밥을 구하면 먹을 것을 준다.”는  등이며, 그 뜻은 '초품(初品)'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若施時有所依止,譬如老病人依恃他力,能行、能立;施者離實智慧、心力薄少故依止。

依止者,己身、財物、受者,是法中取相心著,生憍慢等諸煩惱,是名世閒,不動、不出。

만약 보시할 때에 의지하는 바가 있는 유소의지(有所依止)라면, 

비유하자면, 마치 늙거나 병든 사람이 다른 이의 힘을 믿고 의지하여서, 능히 움직이고 설 수 있 것과 같이, 

시자(施者, 보시 자)도 진실한 지혜를 여의면 그 마음과 힘이 얇아지고 적어지기 때문에 의지하게 되며,

의지(依止)라 함이란, 기자(己者, 자신)와 재물(財物)과 수자(受者, 받는 이)가 그것이니, 

  가운데에서 상(相) 취하여 마음으로 집착하고 교만 등의 모든 번뇌를 내는 것이니, 

이러함을 세간에서는 부동(不動)하여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출(不出)이라 하는 것이다.


動者,柔順忍;出者,無生法忍。聲聞法中,動者,學人;出者,無學。餘者五波羅蜜亦如是。是名初開菩薩道。

“움직이는 동(動)이란, 유순인(柔順忍)이며, 벗어나는 출(出)이라는 것은 무생법인(無生法忍)으로,

성문의  안에서 움직이는 동자(動者) 배울 것이 있는 학인(學人)이요,

벗어난 출자(出者) 배울 것이 없는 무학인(無學人)이며,

나머지의 다섯 가지 바라밀 또한 그와 같으니, 

이러한 것을 처음에 보살의 도를 열어 주는 개도보살도(初開菩薩道)라 하는 것이다.


問曰:菩薩道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何以故更問?

묻나니, 보살도(菩薩道)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道)이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묻는 것입니까?

 

答曰:菩薩時,有道;佛已到,不須道。是道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名爲菩提道;菩薩行是道故,名菩薩道。

답하나니, 보살일에는 도(道)가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미 도달하셨으므로 도(道)가 필요하지 않으며,

 도(道)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보리도(菩提道)라 하며,

보살은  도를 행하는 까닭에 보살도(菩薩道)라 하는 것이다.


此中佛說:遠道,所謂六波羅蜜菩薩道也;近道,所謂三十七品菩提道也。六波羅蜜中布施、持戒等雜,故遠;三十七品但有禪定、智慧,故近。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먼 원도(遠道)는 이른바바라밀인 보살도이며,

 가까운 근도(近道)는 이른바 37조도품의 보리도이다.”라 하셨으며, 


六波羅蜜有世閒、出世閒雜,故遠;三十七品、三解脫門等乃至大慈大悲,畢竟淸淨,故近。

육바라밀 가운데에는 보시와 지계(持戒) 등이 섞여 있기 때문에 먼 원도(遠道)이 

37조도품에서는 단지 선정과 지혜만이 있기 때문에 가까운 근도(近道)이며,

육바라밀에는 세간과 출세간의 것이 섞여 있기 때문에 먼 원도(遠道)이고,

37조도품과 3해탈문(三解脫門) 등에서 대자대비(大慈大悲)에 이르기까지는 필경에 청정한 것이기 때문에 가까운 근도(近道)이며, 


復次,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者,從初發意乃至金剛三昧,其中爲菩提菩薩行,皆是菩提道。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道)라 함이란, 처음 뜻을 낸 초발의(初發意)에서부터 금강삼매(金剛三昧)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보리를 위한 보살의 행 모두가 보리도(菩提道)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