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49권 1
大智度論 釋發趣品 第二十 卷四十九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0. 발취품(發趣品)을 풀이함① 1
▶經. 佛告須菩提:“汝問:‘云何菩薩摩訶薩大乘發趣?’
若菩薩摩訶薩行六波羅蜜時,從一地至一地,是名菩薩摩訶薩大乘發趣。”
▷경.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가느냐고 그대가 물었는데, 이는 보살마하살이 육바라밀을 행할 때에 일지(一地)로부터 다시 다른 일지(一地)에 이르는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從一地至一地?”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일지(一地)로부터 다시 다른 일지(一地)에 이르게 되는지요?”
佛言:“菩薩摩訶薩知一切法無來去相,亦無有法若來若去,若至若不至,諸法相不滅故。
菩薩摩訶薩於諸地不念、不思惟而修治地業,亦不見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은 오고 가는 상이 없는 무래거상(無來去相)이며, 또한 어떠한 법도 오거나 가는, 약래약거(若來若去)이나, 이르거나 이르지 않는 약지약불지(若至若不至)하지 않는 것임을 아나니, 제법의 법상(法相)은 불멸(不滅)이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모든 지(地)에 대하여 기억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나, 지의 업 즉, 지업(地業)을 닦아서 다스리며, 또한 그 지(地)를 보지 않느니라.
何等菩薩摩訶薩治地業?菩薩摩訶薩住初地時,行十事:一者、深心堅固,是不可得故;
二者、於一切衆生中等心,衆生不可得故;三者、布施,與人、受人不可得故;
四者、親近善知識,亦不自高;五者、求法,一切法不可得故。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지업(地業)을 다스리(治)는 것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초지(初地)에 머물러 있을 때에 열 가지를 행하나니,
첫째는 깊은 마음이 견고한 심심견고(深心堅固)이니, 그것은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일체 중생에 대하여 동등한 마음의 등심(等心)을 지니나니, 중생불가득(衆生不可得)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보시를 해아하나, 주는 여인(與人)과 받는 수인(受人)은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요,
넷째는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나 교만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법을 구하나니 일체법불가득(一切法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六者、常出家,家不可得故;七者、愛樂佛身,相好不可得故;
八者、演出法敎,諸法分別不可得故;九者、破憍慢 法生慧不可得故;
十者、實語,諸語不可得故。菩薩摩訶薩如是初地中住,修治十事治地業。
여섯째는 항상 출가(出家)하나니, 집이란 얻을 수 없는 가불가득(家不可得)이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부처님의 몸을 좋아하나, 상호불가득(相好不可得)이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법의 가르침을 널리 펴나니, 제법의 분별을 얻을 수 없는 분별불가득(分別不可得)이기 때문이요,
아홉째는 교만의 법을 깨뜨리나니 법(法)과 생함과 지혜를 얻을 수 없는 법생혜불가득(法生慧不可得)이기 때문이며,
열째는 진실한 말을 하나니, 모든 언어는 얻을 수 없는 제어불가득(諸語不可得)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초지 가운데에 머물러, 열 가지를 닦으며 지업(地業)을 다스리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二地中,常念八法。何等八?一者、戒淸淨,二者、知恩報恩,
三者、住忍辱,四者、受歡喜,五者、不捨一切衆生,六者、入大悲心,七者、信師恭敬諮受,
八者、勤求諸波羅蜜。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二地中,應滿足八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제2지(二地) 안에 머무를 때에는 항상 여덟 가지의 법을 염(念)하나니,
무엇이 그 여덟 가지의 팔법(八法)인가?
첫째는 계율이 청정한 계청정(戒淸淨)이요, 둘째는 은혜를 알고 은혜 갚음을 아는 지은보은(知恩報恩)이며,
셋째는 인욕(忍辱)에 머무르는 주인욕(住忍辱)이요, 넷째는 기쁨을 느끼는 수환희(受歡喜)이며,
다섯째는 일체 중생들을 버리지 않는 불사일체중생(不捨一切衆生)이요,
여섯째는 대비(大悲)의 마음에 들어가는 입대비심(入大悲心)이며,
일곱째는 스승을 믿고 공경하면서 물어 가르침을 받는 것이요,
여덟째는 모든 바라밀을 힘써 구하는 근구제바라밀(勤求諸波羅蜜)이니,
수보리야, 이러함이 보살마하살이 제2지에 머무르면서 온전히 갖추어야 할 여덟 가지 팔법(八法)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三地中行五法。何等五?一者、多學問無厭足,
二者、淨法施亦不自高,三者、莊嚴佛國土亦不自高,四者、受世閒無量勤苦不以爲厭,
五者、住慚愧處。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三地中應滿足五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3지(三地)에 머무르면서 다섯 가지의 오법(五法)을 행하나니, 무엇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많이 배우고 물으면서 만족해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청정하게 법을 보시하면서 또한 교만하지 않으며,
셋째는 부처님의 불국토를 장엄하면서 또한 교만하지 않으며,
넷째는 세간의 무량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으며, 다섯째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러함을 보살마하살이 제3지에 머무르면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오법(五法)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四地中應受行不捨十法。何等十?一者、不捨阿練若住處,
二者、少欲,三者、知足,四者、不捨頭陁功德,五者、不捨戒,六者、穢惡諸欲,
七者、厭世閒心,八者、捨一切所有,九者、心不沒,十者、不惜一切物。
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第四地中不捨十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4지(四地)에 머무르면서 버리지 않는 불사십법(不捨十法)을 받아 행하여 버리지 않아야 하나니, 무엇이 십법(十法)인가?
첫째는 고요한 숲속에 있는 수행처인 아련야(阿練若, araṇya 아란야)를 버리지 않고,
둘째는 욕망이 적은 소욕(少欲)이며, 셋째는 만족할 줄 아는지족(知足)이며,
넷째는 두타(頭陀)의 공덕을 버리지 않으며, 다섯째는 계(戒, 계율)를 버리지 않으며,
여섯째는 모든 욕망을 더럽게 여기며, 일곱째는 세간을 싫어하는 마음을 지니며,
여덟째는 온갖 가진 것을 버리며, 아홉째는 마음이 침몰하지 않으며,
열째는 일체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이 제4지에 머무르면서 버리지 않는 불사십법(不捨十法)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五地中遠離十二法。何等十二?一者、遠離親白衣,
二者、遠離比丘尼,三者、遠離慳惜他家,四者、遠離無益談處,五者、遠離瞋恚。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5지(五地)에 머무르면서 열두 가지의 법을 멀리 여의는 원리십이법(遠離十二法)이니, 무엇이 십이법(十二法)인가?
첫째는 백의(白衣, 속인)과 가까이함을 멀리 여의고, 둘째는 비구니(比丘尼)를 멀리 여의며,
셋째는 다른 이의 집에 대한 간탐을 멀리 여의며, 넷째는 무익한 담론(談論)을 멀리 여의며,
다섯째는 성내는 진에(瞋恚)를 멀리 여의며,
六者、遠離自大,七者、遠離蔑人,八者、遠離十不善道,九者、遠離大慢,
十者、遠離自用,十一者、遠離顚倒,十二者、遠離婬、怒、癡。
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住五地中遠離十二事。
여섯째는 스스로가 위대하다는 자대(自大)를 멀리 여의며, 일곱째는 남을 멸시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여덟째는 10불선도(不善道)를 멀리 여의며, 아홉째는 크게 잘난 체하는 대만(大慢)을 멀리 여의고,
열째는 스스로 쓰는 자용(自用)을 멀리 여의며, 열한째는 뒤바뀐 전도(顚倒)를 멀리 여의고,
열두째는 음(婬, 음욕)ㆍ노(怒, 화냄)ㆍ치(癡, 어리석음)을 멀리 여의느니라.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이 제5지에 머무르면서 멀리 여의는 원리십이법(遠離十二法)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六地中當具足六法。何等六?所謂六波羅蜜。
復有六法所不應爲。何等六?一者、不作聲聞、辟支佛意,二者、布施不應生憂心,
三者、見有所索心不沒,四者、所有物布施,五者、布施之後心不悔,六者、不疑深法。
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六地中應滿具六法,遠離六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6지(六地)에 머무르면서 여섯 가지의 육법(六法)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육법(六法)인가? 이른바 6바라밀(六波羅蜜)이니라.
다시, 하지 않아야 할 여섯 가지의 원리육법(遠離六法)이 있으니, 무엇이 육법(六法)인가?
첫째는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짓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보시하면서 근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구하는 바가 있음에 마음이 위축되지 않고, 넷째는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다 보시하며,
다섯째는 보시한 뒤에는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으며, 여섯째는 깊은 심법(深法)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의 제6지에 머무르면서 갖추어야 할 응만구육법(應滿具六法)이요,
멀리 여의어야 할 원리육법(遠離六法)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七地中二十法所不應著。何等二十?一者、不著我,
二者、不著衆生,三者、不著壽命,四者、不著衆數乃至知者見者,五者、不著斷見。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7지(七地)에 머무르면서 스무 가지의 법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나니, 무엇이 불응착이십법(不應著二十法)인가? 첫째는 나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아(不著我)이고,
둘째는 중생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중생(不著衆生)이며, 셋째는 수명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수명(不著壽命)이며,
넷째는 무리(단체)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중수(不著衆數) 내지 불착지자(不著知者), 불착견자(不著見者)이며,
다섯째는 단견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단견(不著斷見)이며,
六者、不著常見,七者、不應作相,八者、不應作因見,九者、不著名色,十者、不著五衆。
여섯째는 상견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상견(不著常見)이고,
일곱째는 상을 짓지 않는 불응작상(不應作相)이며,
여덟째는 원인(因)에 대한 견해를 짓지 않는 불응작인견(不應作因見)이고,
아홉째는 이름과 물질의 명색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명색(不著名色)이며,
열째는 오중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오중(不著五衆)이며,
十一者、不著十八界,十二者、不著十二入,十三者、不著三界,十四者、不作著處,
十五者、不作所期處。十六者、不作依處,十七者、不著依佛見,
열한째는 18계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십팔계(不著十八界)이고,
열두째는 12입(入)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십이입(不著十二入)이며,
열셋째는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삼계(不著三界)이며,
열넷째는 집착할 곳을 만들지 않는 불작작처(不作著處)이며,
열다섯째는 바라는 곳을 짓지 않는 불작소기처(不作所期處)이며,
열여섯째는 의지하는 곳을 만들지 않는 불착의처(不作依處)이고,
열일곱째는 부처님을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의불견(不著依佛見)이며,
十八者、不著依法見,十九者、不著依僧見,二十者、不著依戒見。是二十法所不應著。
열여덟째는 가르침(法)에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의법견(不著依法見)이고,
열아홉째는 승가(僧)에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의승견(不著依僧見)이며,
스무째는 계율을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의계견(不著依戒見)이니,
이러한 것이 집착하지 않아야 할 스무 가지의 법인 불응착이십법(不應著二十法)이니라.
復有二十法應具足滿。何等二十?一者、具足空,二者、無相證,三者、知無作;
四者、三分淸淨;五者、一切衆生中具足慈悲智。
다시 스무 가지의 이십법(二十法)이 있으니, 두루 갖추고 원만하게 하여야 하느니라. 무엇이 이십법(二十法)인가?
첫째는 공(空)을 구족하는 공구족(具足空)이고, 둘째는 무상(無相)을 증득하는 무상증(無相證)이며,
셋째는 무작(無作)을 아는 지무작(知無作)고,
넷째는 베푸는 이와 받는 이와 베푸는 물건의 3분(三分)이 청정하여야 하며,
다섯째는 일체 중생 가운데에서 자비와 지혜를 구족하는 구족자비지(具足慈悲智)이며,
六者、不念一切衆生;七者、一切法等觀,是中亦不著;八者、知諸法實相,是事亦不念;
九者、無生法忍,十者、無生智, 十一者、說諸法一相;
여섯째는 일체 중생들을 염(念)하지 않는 불념일체중생(不念一切衆生)이고,
일곱째는 일체법의 동등함을 관하되 이에 대해서도 집착하지도 않는 것이며,
여덟째는 제법의 실상(實相)을 알되 이것 또한 염(念)하지 않으며,
아홉째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갖추어야 하며, 열째는 무생지(無生智)를 갖추는 것이며,
열한째는 제법은 한 모양의 일상(一相)임을 설하는 것이며,
十二者、破分別相;十三者、轉憶想;十四者、轉見;十五者、轉煩惱。
열두째는 분별하는 분별상(分別相)을 깨뜨려야 하며,
열셋째는 기억하는 생각을 변하게 하는 전억상(轉憶想)해야 하며,
열넷째는 견해를 변하게 하는 전견(轉見)해야 하며,
열다섯째는 번뇌를 변하게 하는 전번뇌(轉煩惱)해야 하며,
十六者、等定慧地;十七者、調意;十八者、心寂滅;十九者、無碍智;二十者、不染愛。
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七地中應具足二十法。
열여섯째는 정혜(定慧)가 동등한 등정혜지(等定慧地)이어야 하며,
열일곱째는 뜻이 조복되어야 하며, 열여덟째는 마음이 고요히 사라진 심적멸(心寂滅)이어야 하며,
열아홉째는 막힘없는 무애지(無礙智)를 얻어야 하며, 스무째는 애욕에 물들지 않아야 하나니,
수보리야, 이러함을 보살마하살이 제7지 가운데 머무르면서 구족해야 이십법(二十法)이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