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8권 4

Skunky 2024. 7. 8. 08:01

大智度論 釋四念處品 第十九 卷四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9. 사념처품(四念處品) 풀이함 4

 

以四聖行觀外身,自知己身亦復如是,然後內外俱觀。

  가지 거룩한 사성행(四聖行)으로써 외신(外身) 관하고, 스스로의  역시도 그와 같은 것임을 줄  후에는 내외(內外)로 함께 관하는 것이니, 

 

사성행(四聖行)---수행자의 마땅한 도리, 수행자들이 물질적 욕망을 퇴치하는 네 가지 방법을 일컫는다.
① 분소의(糞掃衣) - 똥 묻었던 옷을 입어라, 못 쓰게 된 헝겊 쪽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는 것.
② 걸식(乞食) - 항상 밥을 빌어먹는 것. 음식도 간소히 먹으라는 것.
③ 수하좌(樹下座) - 항상 나무 밑에 앉아 수행하는 것(안락한 건물을 피하는 것).
④ 적정(寂靜) - 몸과 마음을 항상 고요히 하는 것.

적정(寂靜) 대신 부란야(腐欄耶, 허술한 약)를 넣기도 하며, 아플 때 부란야를 약으로 먹으라는 것이다.(사의지四依地 참조.) - 아미산

 

若心散亂,當念老病死、三惡道苦,身命無常,佛法欲滅;如是等 鞭心令伏 還繫不淨觀中 是名“勤精進”。

一心勤精進故,能除貪、憂。貪、憂二賊,劫我法寶。

만약 마음이 산란해지면 마땅히 노병사(老病死)와악도(三惡道)의 고통과 몸과 목숨의 신명(身命)이 무상함과 부처님의법이 멸하려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나니, 

이와 같은 등으로 마음을 채찍질하여 다스리면서 다시 부정관(不淨觀)에 매어 두는 것은 부지런히 정진하는 근정진(勤精進)이라 하며, 

일심(一心)으로 근정진(勤精進)하기 때문에 탐욕과 근심을 제거할  있나니, 탐욕과 근심이라는  도적은 법의 보배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行者作是念:‘是身無常,不淨可惡;如此衆生,何故貪著此身,起種種罪因緣?’

如是思惟已,知是身中有五情、外有五欲,和合故生世閒顚倒樂!

수행하는 행자(行者) 생각하기를 ‘이 몸은 무상하고 깨끗하지 않아서 싫어해야 함이 이러하거늘, 중생들은 무엇 때문에 몸에 탐착하여서 갖가지 죄의 인연을 일으키는 것일까?’라고 하나니,

이와 같이 생각하고 나면,  몸에는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의 오정(五情)이 있고,

바깥으로는 색성향미촉의 욕망인 오욕(五欲)이 있으니, 이것이 화합한 까닭에 세간의 전도(顚倒)된 즐거움이 생기는 것을 알게 되며, 

 

人心求樂,初無住時。當觀此樂爲實爲虛?身爲堅固,猶尚散滅,何況此樂!

此樂亦無住處,未來未有,過去已滅,現在不住,念念皆滅;以遮苦故名樂,無有實樂!

사람의 마음은 즐거움을 구하면서 처음부터 머무르는 때의 주시(住時) 없기에 관찰하기를 “이 즐거움이 진실한 것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몸의 견고함 마저도 오히려 흩어지고 없어지거늘 하물며 이러한 즐거움이겠는가? 

 즐거움이란 머무르는 주처(住處)가 없나니,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유(未有)이고, 과거는 이미 사라진 이멸(已滅)이며, 현재는 머무르지 않는 불주(不住)이라, 찰나마다 모두 소멸하나니, 괴로움을 잠시 차단하기 때문에 즐거움이라 하는 것이요, 진실한 즐거움은 없는 것이다.”라고 해야만 하나니, 

 

譬如飮食,除飢渴苦故,暫以爲樂,過度則復生苦,如先破樂中說。

則知世閒樂皆從苦因緣生,亦能生苦果;誑人須臾,後苦無量。

비유하자면, 마치 음식은 배고프고 목마른 괴로움을 없애 주기 때문에 잠시 즐거운 것이라고 여기지만, 그 도(道)를 넘어가면 다시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먼저 즐거움을 파괴하는 파락(破樂)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세간의 즐거움 모두가 괴로움의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이고, 또한 괴로움의 결과를 내는 것이며, 잠깐 동안 사람을 속인 후에는 무량한 고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나니, 

 

譬如美食雜毒,食雖香美,毒則害人;世間樂亦如是。婬欲煩惱等毒故奪智慧命,心則狂惑,

捨利取衰,誰受此樂?唯有心識。諦觀此心念念生滅,相續有故,可得取相;譬如水波、燈焰。

비유하자면, 마치 좋은 음식에 독을 섞었을 때에, 비록 먹기에는 향기롭고 맛이 있을지라도 곧 독이 사람을 해치는 것과 같이, 세간의 즐거움 또한 그와 같아서 음욕과 번뇌 등의  때문에 지혜의 목숨인 지혜명(智慧命)을 빼앗기고, 마음이 팔려서 미치게 광혹(狂惑) 되며, 이익 됨을 버리고 쇠(衰)함을 취하게 되나니, 누가 이런 즐거움을 받겠는가? 

오직  인식하고 식별하는 마음의 작용의 심식(心識)이 있을 뿐이니, 이 심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생각마다 나고 없어지면서 상속하여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相) 취할  있는 것이니, 마치 물결과 같고 등불의 불꽃과 같은 것이다.

 

受苦心非樂心,受樂心非苦心,受不苦不樂心非苦樂心,時相各異,以是故心無常。

無常故不自在,不自在故無我。想、思、憶念等亦如是。餘三念處內外相如先說。

괴로움을 느끼는 수고심(受苦心)은 즐거운 마음이 아니요, 즐거움을 느끼는 수락심(受樂心) 괴로운 마음이 아니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불고부락심(不苦不樂心)은 괴롭거나 즐거운 마음도 아니니, 때에 따라 서로 각각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마음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무상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않은 불자재(不自在)이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무아(無我)이나니, 기억(想)하고 생각(思)하여 잊지 않는 억념(憶念)하는   또한 그와 같으며,

 밖의  가지 염처(念處)의 내외상(內外相)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行是四聖行,破四顚倒;破四顚倒故,開實相門;開實相門已,愧本所習;

譬人夜食不淨,地了知非,羞愧其事。

  가지의 거룩한 사성행(四聖行)을하여  가지 뒤바뀜인 사전도(四顚倒)를 깨뜨리고,

 가지 뒤바뀜을 깨뜨리기 때문에 실상문(實相門)이 열리게 되며, 

실상문이 열린 뒤에는 본래 익혔던 바를 부끄럽게 여기게 되나니,

마치 사람이 밤에 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었다가, 밝은 뒤에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면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전도(四顚倒); 
상전도(常顚倒): 우주 만유는 항상 변화하지만, 항상하다고 생각하는 전도
낙전도(樂顚倒): 우리 인생은 고(苦)이지만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전도
아전도(我顚倒):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지만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전도
정전도(淨顚倒): 더러움을 청정(淸淨)하다고 생각하는 전도 - 불교 아미타불 아미타정토

 

觀是四法不淨、無常等,是名苦諦;是苦因愛等諸煩惱,是集諦;愛等諸煩惱斷,是滅諦;

斷愛等諸煩惱方便,是道諦。如是觀四諦,信涅槃道,心住快樂,似如無漏,是名“煖法”。

如人攢火,竝有煖氣,必望得火。

  가지법(四法)의 부정(不淨)함과 무상(無常)함 등을 관찰하는 것을 바로 괴로움의 진리인 고제(苦諦)라 하며,

고제(苦諦) 원인인 애욕(愛慾) 등의 모든 번뇌를 바로 쌓임의 진리인 집제(集諦)라 하고, 

욕망 등의 모든 번뇌가 끊어지는 것을 바로 사라짐의 진리인 멸제(滅諦)라 하며, 

욕망 등의 모든 번뇌를 끊는 방편을 바로 도의 진리인 도제(道諦)라 하나니, 

이와 같이  가지의 진리인 사제(四諦)를 관찰하여 열반의 도를 믿고 마음이 즐거움 머무르게 되면 마치 무루(無漏)와 같으니, 이를 난법(煖法, uṣma-gata)이라 하는 것으로, 마치 사람이 불을 피우려  때에 따뜻한 기운이 있게 되면 반드시 불을 얻는다는 희망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4성제(四聖諦)의 예, 내가 A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A가 다른 사람과 커피를 마시는 것만 봐도 열이 오르고 기분이 나빠 죽이고 싶도록 괴로웠다. 그런데 이런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절에 가서 수행을 한 결과 A에 대한 애착심을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는 A가 다른 사람과 커피를 마시든 대화를 하든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A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애착심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 내 마음이 인(因)이고 A의 행동은 연(緣)에 불과했다. 따라서 인을 정리하고 나니 삼독심이 가라앉았다. 이것이 4성제와 연결된다.
1. 고성제 : ‘고통이 뭐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2. 집성제 : ‘고통의 원인이 뭐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3. 멸성제 : 행복의 상태(고통의 원인이 다 소멸된 행복의 상태, 불멸의 행복을 의미함)를 말한다.
4. 도성제 : 불멸의 행복 즉 열반에 이르는 길과 방법을 말한다.
․ 고(苦)---괴로움은(고의 정체, 고란 무엇인가 규명하는 것임)
․ 집(集)---나의 집착에서 비롯됐는데(고의 원인규명 곧 12연기를 말함),
․ 멸(滅)---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편안한 마음이 됐다(열반의 경지를 말함)
․ 도(道)---이는 수행의 결과였다(멸성제에 이르는 길, 37조도품과 팔정도) - 아미산

 

信此法已,心愛樂佛,是法如佛所說,如服好藥差病,知師爲妙;諸服藥病差者,人中第一,

是則信僧 如是信三寶。煖法增進,罪福停等故,名爲“頂法”。如人上山至頂,兩邊道里俱等。

 법을 믿고 나면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을 좋아하게 되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마치 좋은 약을 복용하고 병이 나으면  의사가 용하다고 하면서,  약을 먹고 병을 낫게   이를 사람 중에서는 제일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나니, 이것이 바로 승가를 믿는 신승(信僧)이니, 

이와 같이 3보(三寶)를 믿고 난법(煖法)이 더욱 나아가서 죄와 복이 그치고 평등해지기 때문에 정법(頂法)이라 하나니, 

마치 사람이 산으로 올라가서 꼭대기에 닿으면 양쪽의 거리인 이수(里數)가 같아지는 것과 같다.

 

從頂至忍,乃至阿羅漢,是一邊道;從煖至頂是一邊道。聲聞法中觀四念處,所得果報如是。

정(頂)으로부터 인(忍)에 이르고, 이어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는 한쪽의 길인 일변도(一邊道)이고, 

난(煖)으로부터 정(頂)에 이르기까지가 일변도(一邊道)이니, 

성문법 가운데에서 사념처(四念處)를 관하여 얻게 되는 과보가 그와 같은 것이다.

 

菩薩法者,於是觀中不忘本願,不捨大悲 先用不可得空調伏心地 住是地中 雖有煩惱 心常不墮;

如人雖未殺賊,繫閉一處。菩薩頂法,如先法位中說。

보살법(菩薩法)에서는  관(觀) 가운데에서 본래의 서원을 잊지 않고, 대비(大悲)를 버리지 않으니,

먼저 불가득공(不可得空)으로써 마음자리인 심지(心地)를 다스리고,

심지안에 머무르면 비록 번뇌가 있을지라도 마음은 항상 타락하지 않나니, 

마치 사람이 비록 아직 도적을 죽이지 않았을지라도  곳에 가두어  것과 같은 것이다. 

보살의 정법(頂法)은 먼저의 법위(法位)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忍法、世閒第一法,則是菩薩柔順法忍。須陁洹道,乃至阿羅漢、辟支佛道,卽是菩薩無生法忍。

如佛後品自說:“須陁洹若智、若果,皆是菩薩無生法忍。”

인법(忍法)과 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은 바로 보살의 유순법인(柔順法忍)이요 

수다원(須陀洹)의  내지 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의 도는  보살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부처님께서 후품(後品)에서 스스로 말씀하시되 “수다원의 지혜나 과보는 모두가 보살의 무생법인이다.”라고 하신 것과 같으며, 

 

유식불교에는 보살 수행과정을 수행 5위(修行五位), 다섯 단계로 나누고 있다.

즉,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구경위(究竟位) 다섯 단계이다.

이 다섯 단계를 거쳐서 성불하게 되는데, 이 다섯 단게 중 제2위인 가행위(加行位)는 그 안에 다시 범부중생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해탈)를 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네 단계가 있어, 이를 사선근(四善根) 또는 사가행(四加行)이라고 한다.

① 난위(煖位), 번뇌를 없애는 불이 생기기 전에 접촉된 부분의 선근을 이에 비유해서 난(煖)이라고 한다. 이 난위란 선정에 의해 사물이 실재한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 범부의 지혜로써 사성제(四聖諦)를 분석적으로 관찰하는 단계로서 밝음을 얻었다 해서 명득정(明得定)이라고도 하며, 지혜를 증득하기 위한 준비단계라 할 수 있다. 

② 정위(頂位) -, 정(頂)이란 산꼭대기를 의미하는데, 범부의 지혜로는 최상 단계이며, 범부 지혜로써 사성제를 분석적으로 관찰하는 최상 단계이다. 밝음을 증장시켰다고 해서 명증정(明增定)이라 하며, 마음이 그만큼 밝아지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시원스러우면 자연히 혈액 순환이 왕성해지고 머리도 눈도 밝아지는 것이다. 
③ 인위(忍位) - 인위에서는 선근이 확정돼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를 수용하는 경계 즉, 범부의 지혜로 사성제의 이치를 확실하게 알고 이를 인정해 받아들이는 단계로서, 사성제의 이(理)를 인가(忍可)해 물러나는 일이 없는 단계로, 인순정(印順定)이라고도 하며, 밝은 기운이 후퇴하지 않음을 말한다. 

④ 세제일법위(世第一法位), 문자 그대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경계라는 뜻이다. 견성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성자의 위치는 못 되지만, 세간적인 범부 중생의 세계에서는 제일가는 단계가 세제일법위이다. 유루법(有漏法)이 존재하는 세간 중에서 최상의 선근이 일어난 위치라는 말이다. 즉, 가장 뛰어난 범부 지혜에 이른 단계로서 무간정(無間定)이라고도 하며, 다음 단계가 성자 경지인 견도(見道)이다. 이렇게 되면 마음이 맑아져서 그 가운데 훤한 광명이 비추는 이른바 심월(心月)이라 해서, 마음 달이 비춰 오며, 그때는 공부가 후퇴하지 않는다. - 아미산

 

四正勤、四如意足,雖各各別位,皆在四念處中。慧多故,名“四念處”;

精進多故,名“四正勤”;定多故,名“四如意足”。

단단(斷斷), 율의단(律儀斷), 수호단(隨護斷), 수단(修斷)의 4정근(四正勤)과 

적극적인 의욕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욕여의족(欲如意足)과

정진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

마음을 가다듬고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심여의족(心如意足),

사유하고 관찰하는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의 사여의족(四如意足)은 비록 저마다 자리는 다를지라도 모두가념처 가운데에 있나니, 

지혜가 많기 때문에념처(四念處)라 하고, 정진이 많기 때문에정근(四正勤)이라 하며, 

선정이 많기 때문에여의족(四如意足)이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