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7권 8

Skunky 2024. 7. 6. 08:02

大智度論 釋摩訶衍品 第十八之餘 卷四十七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8. 마하연품(摩訶衍品) 풀이함 8

 

大莊嚴三昧者,見十方如恒河沙等世界,以七寶華香莊嚴,佛處其中,如是等淸淨莊嚴。

得是三昧故,一時莊嚴諸功德;又觀此莊嚴空無所有,心無所著。

대장엄삼매(大莊嚴三昧)란, 시방 항하 강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보면서 칠보(寶)의 꽃과 향으로 부처님 계신 곳을 장엄하게 되며, 그와 같이 청정하게 장엄하는 것은 이 삼매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시에 모든 공덕을 장엄하되, 이 장엄은 공(空)하여 무소유(無所有)이고 마음에 집착함도 없는 무소착(無所著)이라고 관찰하는 것이며, 

 

能照一切世閒三昧者,得是三昧故,能照三種世閒:衆生世閒、住處世閒、五衆世閒。

능조일체세간삼매(能照一切世間三昧)란, 이 삼매를 얻은 까닭에 중생세간(衆生世間)과 주처세간(住處世間)과 오중세간(五衆世間)의 삼종세간(三種世閒)을 능히 잘 비추어 주며, 

 

三昧等三昧者,得是三昧,觀諸三昧皆一等,所謂攝心相。是三昧皆得因緣生,有爲作法,無深淺;

得是三昧,皆悉平等,是名爲等。與餘法亦等無異,以是故義中說,一切法中定亂相不可得。

삼매등삼매(三昧等三昧)란, 이 삼매를 얻으면 모든 삼매가 모두 한결같다고 관찰하나니,

이른바 심상(心相)을 가다듬으면서 “이 삼매는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유위(有爲)이고 조작하는 작법(作法)이어서 깊고 얕음이 없다.”고 하며,

이 삼매를 얻게 되면 모두가 평등하여지므로, 이를 등(等)이라 하며 그 밖의 법 또한 평등하여 다름이 없기 때문에 뜻(義) 가운데에서 “일체법 가운데에서는 안정된 정상(定相)이나 산란한 난상(亂相)을 얻을 수 없다.”고 설명한 것이다.

 

攝一切有諍無諍三昧者,得是三昧,不見是法如是相、是法不如是相;

不分別諸法有諍無諍,於一切法中通達無礙。於衆生中亦無好醜諍論,

但隨衆生心行而度脫之。得是三昧故,於諸三昧皆隨順不逆。

섭일체유쟁무쟁삼매(攝一切有諍無諍三昧)란, 이 삼매를 얻으면 ‘이 법은 이러한 상(相)이고, 저 법은 이러한 상(相)이 아니다.’고 보지 않으며,

또한 제법에 다툼이 있고 없음도 분별하지 않으니, 일체법에 막힘이 없으며,

중생들에 대해서도 또한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하는 다툼도 없이,

다만 중생들의 마음의 작용을 따르면서 제도하고 해탈시킬 뿐이니,

이 삼매를 얻은 까닭에 모든 삼매를 따르면서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不樂一切住處三昧者,得是三昧,不樂住世閒,不樂住非世閒。

以世閒無常過故不樂;非世閒中無一切法,是大可畏處,不應生樂。

불락일체주처삼매(不樂一切住處三昧)란, 이 삼매를 얻으면 세간에 머무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세간이 아닌 비세간(非世間)에 머무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게 되나니,

세간은 덧없는 허물 때문에 좋아하지 않고, 비세간은 일체법이 없으니, 이는 크게 두려워할 만한 곳이므로 즐거움을 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如住定三昧者,得是三昧故,知一切法如實相,不見有法過是如者。“如”義,如先說。

여주정삼매(如住定)란, 이 삼매를 얻은 까닭에 일체법의 여(如, 한결같은)한 실상을 알면서 어떠한 법도 이 여(如, 한결같은)를 초월하는 것이 있다고 보지 않나니, 여(如, 한결같은)의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壞身衰三昧者,血肉筋骨等和合故名爲身;是身多患,常與飢 寒冷熱等諍,是名身衰。

得是三昧故,以智慧力,分分破壞身衰相,乃至不見不可得相。

괴신쇠삼매(壞身衰三昧)란, 피와 살과 힘줄과 뼈 등이 화합한 까닭에 몸이라 하는데, 이 몸은 우환(憂患)이 많아서 항상 배고프고 춥고 차고 더운 등의 다툼이 함께 하나니, 이를 몸의 쇠퇴인 신쇠(身衰)라 하며,

이 삼매를 얻은 까닭에 지혜의 힘으로써 부분 부분마다 몸이 쇠퇴하는 신쇠상(身衰相)을 파괴하며,

나아가 얻을 수 없는 불가득상(不可得相)에 이르기까지 보지 않게 되는 것이며, 

 

壞語如虛空三昧者,語名內有風發,觸七處故有聲,依聲故有語。

觀如是語言因緣故,能壞語言,不生我相及以愛憎。

괴어여허공삼매(壞語如虛空三昧)란, 언어(言語)는 내(內, 안 육입)에서 바람이 일어나면서 일곱 군데인 칠처(七處)에 닿아서 음성이 있게 되며, 이 음성에 의지하기 때문에 언어가 있게 된 것이니, 이러한 언어의 인연을 관찰하기 때문에 언어를 파괴할 수 있으면서 '나'라는 아상(我相)을 내지도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마음도 내지 않는 것이다.

 

有人言:二禪無覺觀,是壞語三昧,賢聖默然故。

有人言:無色定三昧,彼中無身,離一切色故。

有人言:但是諸菩薩三昧,能破先世結業因緣不淨身而受法身,隨可度衆生種種現形。

어떤 분은 말하기를 “제이선(弟二禪)에서 거친 생각의 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이 없는 것이 괴어(壞語)삼매이니, 성현은 잠자코 말이 없으시기 때문이다.”고 하며,

어떤 분은 말하기를 “무색정(無色定)의 삼매이니, 그 가운데에는 몸도 없고 온갖 형색을 여의었기 때문이다.”고 하며,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는 단지 모든 보살의 삼매일 뿐이니, 전생에 맺은 업의 인연을 깨뜨리고 청정하지 않은 몸으로써 법신(法身)을 받고서는 제도해야 할 중생을 따라 갖가지로 형상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離著虛空不染三昧者,菩薩行般若波羅蜜,觀諸法畢竟空,不生不滅,如虛空,無物可喩。鈍根菩薩著此虛空;得此三昧故,離著虛空等諸法,亦不染著是三昧。

이착허공불염삼매(離著虛空不染三昧)란,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제법은 필경공이라고 관찰하므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은 마치 허공은 어떤 물건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것과 같으나, 근기가 둔한 보살은 이 허공에 집착하게 되나니, 이 삼매를 얻는 까닭에 허공 등의 제법에 대한 집착을 여의며, 또한 이 삼매에도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나니, 

 

如人沒在泥中,有人挽出,鎖腳爲奴;如有三昧能離著虛空,而復著此三昧亦如是。今是三昧能離著虛空,亦自離著。

마치 사람이 진흙 속에 빠졌을 때, 다른 사람이 끌어내어 그 사람의 다리에 쇠사슬을 채우고는 종으로 삼는 것과 같이,

어떤 사람이 이 삼매에서 허공에 대한 집착을 여의었으나, 다시 이 삼매에 집착하는 것 또한 그와 같으니,

이 삼매는 허공에 대한 집착을 여의고 또한 스스로도 집착을 여의게 하는 것이다.

 

問曰:佛多說“諸三昧”,汝何以但說“諸法”?

묻나니, 부처님께서 모든 삼매를 설명하셨거늘, 당신께서는 무엇 때문에 단지 제법만을 설명하신 것입니까?

 

答曰:佛多說果報,論者合因緣果報說。譬如人觀身不淨,得不淨三昧;身是因緣,三昧是果。

又如人觀五衆無常、苦、空等,得七覺意三昧,能生八聖道、四沙門果。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대부분 과보를 말씀하셨고, 이 논자(論者)는 인연과 과보를 합쳐서 말한 것이니,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이 청정하지 않은 것을 관할 때에 부정(不淨)삼매를 얻는 것은,

몸은 바로 인연이요 삼매는 바로 과보이며,

또한 사람이 오중의 무상하고 괴롭고 공함 등을 관찰하면서 칠각의삼매(七覺意삼三昧)를 얻고 8성도(八聖道)와  사사문과(四沙門果)를 얻게 되는 것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復次,佛應適衆生故,但說一法;論者廣說,分別諸事。

譬如一切有漏皆是苦因,而佛但說愛;一切煩惱滅,名滅諦,佛但說愛盡。

또한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에게 맞추어서 짐짓 하나의 법을 말씀하셨을 뿐이나, 이 논자는 자세히 설명하면서 모든 것을 분별하였으니,

비유하자면, 일체 유루(有漏)는 모두 괴로움이 되는 원인이지만, 부처님께서는 단지 애(愛, 애욕)만을 말씀하셨을 뿐이요 일체 번뇌가 소멸하는 것을 사라짐의 진리인 멸제(滅諦)라 하나, 부처님께서는 단지 애욕이 다하는 애진(愛盡)만을 말씀하신 것이다.

 

是菩薩於諸觀行中必不疑,於諸三昧未了故,佛但說三昧;論者說諸法,一切三昧皆已在中。是諸三昧末後,皆應言用無所得,以同般若故。如是等無量無邊三昧和合,名爲摩訶衍。

이러한 보살은 모든 관행(觀行) 가운데에서 반드시 모든 삼매를 의심하지 않지만, 아직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단지 삼매만을 말씀하셨을 뿐이나,

이 논자는 제법을 설명하였나니, 일체 삼매 모두는 이미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삼매의 마지막에는 모두 “얻을 바 없음의 용무소득(用無所得)”이라고 말해야만 하나니, 그것은 반야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무량하고 무변한 삼매가 화합한 것을 마하연(摩訶衍)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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