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6권 5

Skunky 2024. 7. 2. 08:00

大智度論 釋乘乘品 第十六卷 第四十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7. 무박무탈품(無縛無脫品) 풀이함 4

18. 마하연품(摩訶衍品)을 풀이함① 1

 

▶論. 釋曰:須菩提言:“如我聞佛義,無大莊嚴爲大莊嚴,何以故?自相空故。”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가 말하기를 “제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바의 이치로는, 대 장엄이 없는 무대장엄(無大莊嚴)이 대장엄(大莊嚴) 되나니, 왜냐하면 자상이 공한 자상공(自相空)이기 때문입니다.”하고 하였다.

 

問曰:須菩提何以故如是說?

묻나니, 수보리 존자가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이 말한 것입니까?

 

答曰:佛說發大莊嚴義,甚深、難得、難解。會中衆生聞是事,心或退沒:

如是莊嚴畢竟空,亦以神通力故,一時能遍至十方如恒河沙世界可適衆生,

言:“此是聖王事,我等云何能知!”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대 장엄을 내는 이치는 심히 깊어서 얻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다.”고 말씀하시자, 모임에 있는 중생들이 이를 듣고서는 마음이  물러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장엄은 필경공(畢竟空)이로되 또한 신통의  때문에 일시에 시방 항하 강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두루 이르나니, 이를 만난 중생들 말하기를 “이것이야말로 성왕(聖王, 전륜성왕)이나 하실 수 있는 일이거늘 우리들이 어떻게   있겠는가.”라고 하나니, 

 

以是故,須菩提說:“發大莊嚴非深非難!非但發大莊嚴自相空,易行易得;

色、色中定相不可得,乃至十八不共法亦爾。若菩薩能如是知諸法空寂滅相,

而不捨本願、精進,是故名發大莊嚴非是難得。”佛證須菩提所說,故言“如是”。

 때문에 수보리 존자가 말씀하시기를 “대 장엄을 발하는 것 깊은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비단 장엄만이 자상이 공한 자상공(自相空)이어서, 행하기 쉽고 얻기 쉬운 것이 아니라, 

물질(色)은 물질(色) 가운데에서 일정한 정상(定相)은 얻을  없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또한 그러하며,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법은 공하고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임을 알며, 본래의원(本願)을 버리지 않고 정진한다면, 로써 대 장엄을 발하게 되나니, 그것은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가 하신 말씀을 증명하시면서 “그러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며, 

 

作法皆是虛誑,故言:“薩婆若無作法;衆生畢竟空故,亦無作法。”

佛說:“作者不可得故,一切智非作相;衆生不可得故,作者不可得;作者不可得故,

薩婆若非作非起相。復次,色亦無所能作,法空故,乃至諸佛法亦如是。”

지은 작법(作法)은 모두가 거짓이기 때문에 “살바야는 무작법(無作法)이고, 

중생은 필경공이기 때문에 역시 무작법(無作法)이다.”고 하셨으며, 

부처님께서는 “짓는 작자(作者)를 얻을  없기 때문에 일체지(一切智)는 짓는 상이 아닌, 무작상(非作相)이고, 중생도 얻을  없기 때문에 짓는 작자 (作者) 얻을  없으며, 작자(作者) 얻을  없기 때문에 살바야는 짓는 작(作)이 아니고, 일어나는 기(起) 아니며,

또한 물질(色) 또한 지음이 없는 무소능작(無所能作)이나니, 법공(法空)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모든 부처님에 이르기까지의  또한 그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須菩提等謂:“諸法中無有定作相,如幻雖無實事,而有來去相”;

以是故,佛說:“如幻、如焰等無作相,畢竟不可得故。”

수보리 존자 등은 “제법 가운데에는 일정하게 짓는 정작상(定作相) 없고, 마치 환술과 같아서 비록 진실함이 없다고 하여 오고 가는 내거상(來去相) 있다.”고 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환과 같고 아지랑이 등과 같아서 짓는 없는 무작상(無作相)이니, 필경에는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 때문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是時聽者作是念——‘十八空能破一切法,則是有用,是則爲實’,謂言“有作”。

是以佛言:“內空無所作,乃至無法有法空,至十八不共法亦無所作。”

이 때에 듣는 이들은 ‘18공(空)은 일체법을 깨뜨리는 것으로, 이것은 작용이 있는 것이며  진실인 것이다.’고 하면서 “짓는 것이 있는 유작(有作)이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공(內空)은 짓는 바가 없는 무소작(無所作)이고, 나아가 무법유법공과 18불공법도 또한 짓는 바가 없는 무소작(無所作)이다.”고 하셨으며, 

 

若謂今十八空,有爲,虛誑無實,故可無作;如、法性、實際是眞實法,應當有作!

何以故?一切有爲法各各共因,無爲法亦與有爲法作因故。

佛言:“如、法性、實際、法住、法位亦無作。”

혹은 말하기를 “이제 18공은 유위이고 거짓이며 진실이 없기 때문에 짓는 것이 없다고 해야 한다면,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는 진실한 진실법(眞實法)이므로 당연히 지음이 있는, 유작(有作)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유위법은 저마다 함께 무위법을 인(因)하고, 또한 유위법에도 인(因)이 되기 때문이다.”고 하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ㆍ법성ㆍ실제ㆍ법주  법위도 또한 지음이 없는 무작(無作)이다.”고 하신 것이다.

 

又謂:“菩薩、佛、一切種智是實法,能有所作。”以是故,

佛言:“是法亦畢竟空故,亦無所作” 作相因緣生故。

또한 말하기를 “보살과 부처님과 일체종지는 바로 진실한법(實法)이므로 짓는 바가 있는 유소작(有所作)이다.”고 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또한 필경공이기 때문에 역시 짓는 바가 없는 무소작(無所作)이다.”고 하나니, 

짓는 작상(作相) 인(因)과 연(緣)으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行者念言:‘佛法甚難!甚爲希有!諸法都無作、無縛無解者,我等云何當從苦得脫?’

수행하는 행자(行者)들이 ‘부처님의 불법은 심히 어렵고 심히 희유하다.법이 전혀 짓는 바가 없는 도무작(都無作)이어서 속박도 없는 무박(無縛)이고 해탈도 없는 무해(無解)라면, 우리들이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나니, 

 

是故須菩提白佛言:“如我知佛所說義,五衆無縛無解;若畢竟空無有作者,誰縛誰解?

凡夫人法虛誑不可得,故非縛;聖人法畢竟空不可得,故非解。”

 때문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제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하건대,

오중(五衆)은 속박도 없는 무박(無縛)이고 해탈도 없는 무해(無解)입니다. 

만약 필경공이어서 짓는 것이 없다면  누가 속박되고  누가 해탈하겠는지요?

범부인 법은 거짓이라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속박된 것이 아닌 비박(非縛)이고, 

성인의 법은 필경공이어서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해탈한 것이 아닌 비해(非解)입니다.”라 한 것이며, 

 

如夢等五衆,及三世五衆、善不善等五衆,一切法亦如是,乃至實際等亦復如是;

無所有故,離故,不生故,無縛無解。是名菩薩摩訶薩不縛不解。

마치 꿈과 같은 등의 5중(衆)과 3세(世)의중과 선(善)ㆍ불선(不善) 등의중의 일체 또한 그와 같으며, 나아가 실제(實際)  또한 그와 같나니,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요, 여의는 이(離)이기 때문이며,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속박도 없는 무박(無縛)이고 해탈도 없는 무해(無解)이니,

이러한 것을 보살마하살이 속박도 없는 무박(無縛)이고 해탈도 없는 무해(無解)라 하는 것이며, 

 

菩薩道住是道中,諸煩惱不牽墮凡夫中,故言“不縛”;不以諸無漏法破煩惱,故言“不解”

보살도(菩薩道)는 이러한 도(道) 머물러서 모든 번뇌로 범부 가운데에 끌리거나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속박되지 않는무박(無縛)이다.’고 하며, 

모든 무루(無漏)의 법으로써 번뇌를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지 않는 무해(無解)다.’라 하는 것이다.

 

敎化衆生,淨佛世界,乃至五神通、五眼、諸陁羅尼、三昧門,終不離佛,及安立衆生於三乘,亦無縛無解。

所以者何?諸法無所有故,離故,寂滅故,不生故,畢竟空故。如是等因緣,

是名菩薩摩訶薩發大莊嚴相,所謂不縛不解。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의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나아가 오신통(五神通)과 오안(五眼)과 모든 다라니와 삼매문에 이르기까지 끝내 부처님을 여의지 않는 불리불(不離佛)이고, 마침내 중생을 3승(乘)에 편안하게 세움에도 또한 무박(無縛)이고 해탈도 없는 무해(無解)이니, 

왜냐하면법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고, 여의는 이(離)이기 때문이요, 고요히 사라지는 적멸(寂滅)하는 것이기 때문이요,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기 때문이며 필경공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연을 바로 보살마하살이장엄(大莊嚴)을 내는 상(相)이라 하나니, 

이른바 속박되지도 않는 무박(無縛)이고 해탈도 없는 무해(無解)인 것이다.

 

18. 마하연품(摩訶衍品)풀이함

 

▷經.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菩薩摩訶薩摩訶衍?

云何當知菩薩摩訶薩發趣大乘?是乘發何處?是乘至何處?當住何處?誰當乘是乘出者?”

▷경.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 mahāyāna, 대승)인지요?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대승(大乘)으로 나아가는지요? 

또한  대승은 어디서 출발하며?

 대승은 어디에 도착하는 것이며? 

 대승은 어느 곳에 머무르는 것이며?, 

어떠한 이가  대승에 올라서 벗어나는 이라고 알아야만 하는지요?”

 

云何名檀波羅蜜?須菩提!菩薩摩訶薩以應薩婆若心,內、外所有布施,共一切衆生,

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用無所得故。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檀波羅蜜。

무엇을 단바라밀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내외(內外) 가진 것을 모두 보시하되 일체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여 얻는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기 때문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단(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云何名尸羅波羅蜜?須菩提!菩薩摩訶薩以應薩婆若心,自行十善道,亦敎他行十善道,用無所得故,

是名菩薩摩訶薩不著尸羅波羅蜜。

무엇을 시라(지계)바라밀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의 마음으로 스스로 십선도(十善道)를 행하면서 또한 다른 이도 십선도(十善道)를 행하게 하되 얻는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기 때문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집착하지 않는 불착(不著)의 시라(지계)바라밀이라 하느니라.

 

云何名羼提波羅蜜?須菩提!菩薩摩訶薩以應薩婆若心,自具足忍辱,亦敎他行忍辱,用無所得故,

是名菩薩摩訶薩羼提波羅蜜。

무엇을 찬제(인욕)바라밀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스스로가 인욕(忍辱)을 갖추면서 또한 다른 이들도 인욕을 행하게 하되 얻는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기 때문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찬제(인욕)바라밀이라 하느니라.

 

云何名毘梨耶波羅蜜?須菩提!菩薩摩訶薩以應薩婆若心,行五波羅蜜,懃修不息,

亦安立一切衆生於五波羅蜜,用無所得故,是名菩薩摩訶薩毘梨耶波羅蜜。

무엇을 비리야(정진)바라밀이라 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다섯 가지의 오바라밀(五波羅蜜)을 행하되 부지런히 닦으면서 쉬지 않으며, 또한 일체 중생들을 오바라밀(五波羅蜜)에 세우되 얻는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기 때문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비리야(정진)바라밀이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