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6권 3

Skunky 2024. 7. 1. 08:00

大智度論 釋乘乘品 第十六卷 第四十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7. 무박무탈품(無縛無脫品) 풀이함 2

 

▶論. 釋曰:上富樓那說大莊嚴及發大誓莊嚴相,今須菩提作是念:

“富樓那未得一切智,雖說大莊嚴,或當有錯。”是故問佛取定。

佛爲須菩提說“檀波羅蜜大莊嚴,乃至一切智”。

▷논. 해석한다; 앞에서 부루나 존자가 대장엄(大莊嚴)서원(大誓願)으로써 장엄한 상(相) 설명하였으므로 

지금 수보리존자는 “부루나 존자는 아직 일체지(一切智)를 얻지 못였으니, 비록장엄(大莊嚴)을 할지라도 혹은 잘못이 있을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부처님께 물어서  결정(답)을 구하는 것이요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를 위하여 단(보시)바라밀의  장엄 내지 일체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是諸善法果報故,得菩薩大神通力。爲出家好道衆生故,化作佛身,放大光明,照十方世界,震動大地,令衆生發心行善法,隨其所應而爲說法,令得三乘。

 모든 착한법의 과보로 보살은  신통의 힘을 얻나니, 출가하여 도(道) 닦는 것을 좋아하는 중생을 위해서는 변화로 부처님의 몸이 되어서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비추고 대지(大地)를 진동시키며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을 일으켜 착한법을 일으키게 하고 그들의 알맞은 바에 따라 설법하여서 3승(三乘)을 얻게 하나니, 

 

爲在家好樂衆生,作轉輪聖王,變三千世界悉爲琉璃,爲不障㝵故;

乘七寶車,身放光明,雨諸寶物,隨衆生所須,皆令充足,然後爲說菩薩法。

집에 있으면서 쾌락을 좋아하는 중생들을 위해서는 전륜성왕이 되어서, 삼천세계를 변화하여 모두 유리(琉璃)가 되게 하여서 장애가 되지 않게 하고, 

보(七寶)의 탈것에 올라 몸으로는 광명을 놓으면서 모든 보물을 비처럼 내려서 중생들의 바라는 바에 따라 모두 충족하게 하며, 그런 뒤에는 그들을 위하여 보살의 법을 설하며, 

 

菩薩住大乘中,以二施利益衆生,所謂財施、法施。

衆生聞已,行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離是法。

菩薩雖住是變化中,亦不於諸法中生著相,亦不自高。

보살은 대승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가지 보시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하나니, 

이른바 재물 보시의 재시(財施)와 법 보시의 법시(法施)이라.

중생들이 들은 뒤에는바라밀 내지 18불공법까지를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여의지 않으며, 

보살이 비록 이러한 변화 가운데에 머무를지라도, 또한 가운데에서 집착하는 착상(著相) 내지도 않고,

또한 스스로 높은  하지도 않는 것이다. 

 

須菩提作是念:‘菩薩能作如是大事,又諸漏未盡故,云何於諸法得不著,亦不生高心?’

是中佛自說譬喩:“若幻師於四衢道中,化作種種物,隨人所須,悉能與之。

於須菩提意云何?是幻師實有所與不?有受者、有用者不?”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보살이 이러한  일을 지을  있구나! 그러나 모든 번뇌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거늘 어떻게법에 집착도 하지 않고 또한 높은 체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있을까?’고 하자, 

여기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스스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만약 환술사가거리 가운데에서 변화로 갖가지의 물건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바라는 바에 따라 모두  주게 되면,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환술사가 실제로 있으면서 주는 것인가? 

또한 받는 이도 있는 것이고 사용하는 이도 있는 것인가?”고 하신 것이다.

 

須菩提言:“是但虛誑,實無所有"

佛言:“菩薩亦如是,雖作佛身、轉輪聖王,以財、法施衆生,亦如幻師實無所與。何以故?

諸法相畢竟空如幻。”餘五波羅蜜亦如是,隨義分別。

수보리 존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단지 거짓으로써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 또한 그와 같아서 비록 부처님의 몸이나 전륜성왕이 되어 재물과 법을 중생에게 보시할지라도, 역시 환술사와 같아서 실제로 주는 바가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법의 상(相) 필경공(畢竟空)으로, 마치 허깨비와 같은 여환(如幻)이기 때문이다.”고 하신 것이며,

 나머지 다섯 가지 바라밀 또한 그와 같으므로 이러한 이치에 따라 분별해야 하리라.

 

復次,檀波羅蜜、尸羅波羅蜜因緣故,人中富貴,作轉輪聖王;餘波羅蜜,或作梵王,或作法身菩薩。

또한 단(보시)바라밀ㆍ시라(지계)바라밀의 인연 때문에 인간 안에서 부귀를 누리는 전륜성왕이 되며 

 밖의 바라밀로써는  범왕(梵王)이 되기도 하고 혹은 법신보살(法身菩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問曰:六波羅蜜外,更有何法可莊嚴?

묻나니, 육바라밀 외에 다시 어떠한 법이 있어서 장엄할  있는 것입니까?

 

答曰:諸功德皆六波羅蜜中攝。有人言:“別有智波羅蜜及方便等。”

於十方如恒河沙等世界中,隨所應度,作種種因緣說法,令衆生住六波羅蜜。

답하나니, 모든 공덕 모두가 육바라밀에 포섭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달리 지(智)바라밀과 방편(方便) 등이 있다.”고 하였으며, 

시방 항하 강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가운데에서 제도해야  바에 따라 갖가지의 인연을 지어서 법을 설하면서 중생들로 하여금바라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며,  

 

復次,決定誓願名爲大莊嚴,所謂菩薩不作是念:我度若干人令住檀波羅蜜,不能度餘人;

乃至十八不共法亦如是。亦不作是念:‘我令若干人得須陁洹果,不能令若干人得須陁洹果;乃至佛道亦如是。

또한 결정된 서원(誓願)을장엄(大莊嚴)이라 하나니, 

이른바 ‘나는 얼마쯤의 사람만을 제도하여 단바라밀에 머무르게 하고  밖의 사람들은 제도할  없으며, 나아가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나는 얼마쯤의 사람만을 수다원과를 얻게 하고, 얼마쯤의 사람은 수다원과를 얻게   없으며, 나아가 부처님의 도에 이르기까지 또한 그와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我當悉令無量阿僧祇衆生住諸功德中,檀波羅蜜乃至一切種智。’

“自立如幻師”,如先說。是名發大莊嚴。

또한 ‘나는 무량한 아승기의 중생들 모두로 하여금 모든 공덕에 머물러서 단바라밀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서게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마치 환술사와 같다고 하는 대해서는 앞의 설명에서와 같나니, 이를 대장엄을 일으키는 발대장엄(發大莊嚴)이라 하는 것이다.

 

▶經.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如我從佛所聞義,菩薩摩訶薩無大莊嚴爲大莊嚴,諸法自相空故。

▷경.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으니,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바의 이치대로라면, 보살마하살은 대장엄이 없는 무대장엄(無大莊嚴)이 대장엄(大莊嚴) 되는 것이니,법의 자상(自相)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所謂色、色相空,受、想、行,識、識相空。

眼、眼相空,乃至意、意相空;色、色相空,乃至法、法相空。

이른바 물질(色)은 물질의 공한 색상공(色相空)이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공(空)하며, 

눈(眼)은 눈의 공한 안상공(眼相空)이며, 나아가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뜻(意)도 상(相) 공하며, 

빛깔(色)의 색상이 공한 색상공(色相空)이며, 나아가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의 법상(法相)이 공하며, 

 

眼識、眼識相空,乃至意識、意識相空;眼觸、眼觸相空,乃至意觸、意觸相空;

眼觸因緣生受、受相空,乃至意觸因緣生受、受相空。

눈의 분별인 안식(眼識)도 안식상(眼識相) 공(空)하고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상(相) 공(空)하며, 

눈의 접촉인 안촉(眼觸)도 안촉(眼觸)의 상(相)이 공하고 이촉(耳觸) 비촉(鼻觸) 설촉(舌觸) 신촉(身觸) 의촉(意觸)(相)이 공하며,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인, 안촉인연생수(眼觸因緣生受)로부터 생긴 느낌의 수상(受相)도 공하고, 나아가 이촉인연생수(耳觸因緣生受), 비촉인연생수(鼻觸因緣生受), 설촉인연생수(舌觸因緣生受), 신촉인연생수(身觸因緣生受), 의촉인연생수(意觸因緣生受)의 수상(受相)도 공(空)한 것입니다.

 

世尊!檀波羅蜜、檀波羅蜜相空,乃至般若波羅蜜、般若波羅蜜相空。

內空、內空空相空,乃至無法有法空、無法有法空相空。四念處、四念處相空,乃至十八不共法、十八不共法相空。

菩薩、菩薩相空。世尊!以是因緣故,當知菩薩摩訶薩無大莊嚴爲大莊嚴。”

세존이시여, 단(보시)바라밀은 단바라밀의 상(相)이 공(空)하며, 내공(內空)은 내공의 상(相)이 공(空)하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은 무법유법공의 상(相)도 공(空)하며, 사념처는념처의 상(相)이 공(空)하고, 나아가 18불공법은 18불공법의 상(相)이 공(空)하며, 보살은 보살의 상(相)이 공(空) 공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장엄이 없는 무대장엄(無大莊嚴)장엄(大莊嚴)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佛告須菩提:“如是!如是!如汝所說。須菩提!薩婆若非作法,衆生亦非作法,菩薩爲是衆生大莊嚴。”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그대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살바야(薩婆若)는 짓는 작법(作法)이 아니요, 중생도 또한 짓는 작법(作法)이 아니니, 

보살은 이러한 중생을 위하여 크게 장엄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何因緣故,薩婆若非作法,是衆生亦非作法,菩薩爲是衆生大莊嚴?”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어떠한 인연 때문에 살바야는 짓는 작법(作法)이 아니고,  중생 또한 짓는 작법(作法)이 아니거늘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크게 장엄하는 것인지요?”

 

佛語須菩提:“作者不可得故,薩婆若非作非起法,是諸衆生亦非作非起法。

何以故?須菩提!色非作非不作,受、想、行、識非作非不作;

眼非作非不作,乃至意非作非不作;色乃至法,眼識乃至意識,眼觸乃至意觸,

眼觸因緣生受乃至意觸因緣生受,非作非不作。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짓는 작자(作者)는은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살바야는 짓는 것이 아니고 일어나는 법도 아닌 비작비기법(非作非起法)이며,

 모든 중생 또한 짓는 것이 아니고 일어나는 법이 아닌, 비작비기법(非作非起法)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물질(色)은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눈(眼)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뜻(意)까지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며, 

빛깔(色)에서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법까지와 

안식(眼識)을 비롯하여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意識)까지와 

눈의 접촉인 안촉(眼觸)을 비롯하여 이촉(耳觸) 비촉(鼻觸) 설촉(舌觸) 신촉(身觸) 의촉(意觸)까지와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인, 안촉인연생수(眼觸因緣生受)로부터 나아가 이촉인연생수(耳觸因緣生受), 비촉인연생수(鼻觸因緣生受), 설촉인연생수(舌觸因緣生受), 신촉인연생수(身觸因緣生受), 의촉인연생수(意觸因緣生受)로 생긴 느낌까지도 짓는 것이 아니요 짓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須菩提!我非作非不作,乃至知者、見者非作非不作。何以故?是諸法畢竟不可得故。

수보리야, 나는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닌 비작비기법(非作非起法)이며, 

나아가 오식으로 알아차리는 지자(知者)와 눈으로 색을 보는 견자(見者)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모든법은 필경에는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夢非作非不作,何以故?畢竟不可得故;

幻、嚮、影、焰、化非作非不作,何以故?畢竟不可得故。

수보리야, 꿈은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결국에는 얻을  없기 때문이며,

환(幻)과 메아리(嚮)와 그림자(影)와 아지랑이(焰)와 변화(化)도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결국에는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內空非作非不作,畢竟不可得故;乃至無法有法空非作非不作,畢竟不可得故。

수보리야, 내공(內空)은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결국에는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도 짓는 것이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결국에는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四念處非作非不作,畢竟不可得故;乃至十八不共法非作非不作,何以故?是法皆畢竟不可得故。

수보리야, 사념처도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결국에는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18불공법도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모두는 필경에는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