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5권 5

Skunky 2024. 6. 28. 08:00

大智度論 釋摩訶薩品 第十三 卷四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4. 단견품(斷見品) 풀이함 3

15. 대장엄품(大莊嚴品) 풀이함 1

 

▶論. 釋曰:須菩提說摩訶薩無等等心,於是心亦不著。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가 말하기를 마하살의 무등등심(無等等心)이란, 무등등심(無等等心)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착(不著)이다.”라고 한 것이다. 

 

不著”者,是菩薩從初發心已來,不見有法定相,若生若滅、若增若減、若垢若淨。

是心畢竟空 是中無有心相非心相,諸相畢竟淸淨故。以是故 無聲聞心 辟支佛心 菩薩心 佛心。

집착하지 않는 불착(不著)이라고 함이란, 이 보살이 처음에 보리심을 낸 초발심(初發心)에서부터 법에 일정한 정상(定相)이 있어서 나고 멸하는 생멸(生滅), 더하고 덜하는 증감(增減), 더럽고 깨끗한 구정(垢淨)이 있다고 보지 않으며, 

이 마음은 필경공(畢竟空)이니, 이 마음 가운데에는 마음의 심상(心相)이나 마음이 아닌 비심상(非心相)도 없으니,

모든 상(相)은 필경에 청정한 필경청정(畢竟淸淨)이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성문심(聲聞心)도 벽지불심(辟支佛心)도 보살심(菩薩心)도 불심(佛心)도 없는 것이다.

 

須菩提稱貴菩薩,如是心亦美,菩薩不著是心亦爲尊貴。舍利弗欲難須菩提,作是言:

수보리 존자가 귀하다고 일컫는 보살의 이러한 마음 또한 아름답기는 하되, 보살은 이런 마음에 집착하거나 또한 존귀하게 여기지도 않는 것이라.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따지고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으니, 

 

“非但一切智心無漏不繫,菩薩不應自高。所以者何?凡夫人心亦無漏不繫,性常空故;如聲聞、辟支佛、佛心無漏不繫,是凡夫人心實相性空。實相性空,淸淨不著;如先說:陰雲翳日月,不能日月。

“비단 일체지심(一切智心)만이 무루(無漏)요 매이지 않은 불계(不繫)인 것이 아니니, 보살은 스스로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범부의 마음 또한 무루(無漏)요 매이지 않은 불계(不繫)이니, 성품이 항상 공한 성상공(性常空)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문이나 벽지불과 부처님의 마음이 무루요 매이지 않는 것과 같이,  범부인의 마음 또한 진실한 실상(實相)의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며, 실상(實相)이 성공(性空)인지라 청정하여 집착하지 않나니,

마치 앞에서 ‘검은 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지만 해와 달을 더럽힐 수는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又諸煩惱實相,與常性空心相無異。但住凡夫地中,是垢是淨。住聖人地中,修無相智慧故,無所分別;但憐愍衆生故,雖復有說,心無所著。非獨凡夫人心無漏不繫,五衆乃至十八不共法亦如是。”

須菩提然可。

또한 모든 번뇌의 실상(實相)이란 항상 성품이 공한 성상공(性常空)이므로 마음의 심상(心相)과 다름이 없으나,

단지 범부의 지위에 머무르면 이것은 더럽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한 것이며,

성인의 지위에 머무르면 상이 없는 무상지혜(無相智慧)를 닦기 때문에 분별함이 없는 것이나,  

단지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비록 다시 말하는 것일 뿐, 그 마음에 집착함이 없으며,

또한 오로지 범부의 마음만이 무루(無漏)요 매이지 않은 불계(不繫)인 것이 아니리, 오중(五衆) 내지 18불공법 또한 그와 같습니다.”

수보리는 그와 같다고 동의하였다.

 

又舍利弗言:是心無心,心相空故不著;色中色相無故亦不著,乃至諸佛法亦如是。

須菩提言:“如是!”

다시 사리불 존자가 말하기를 “이 마음은 무심(無心)이니, 마음의 심상(心相) 공하기 때문입니다. 

물질(色) 가운데 집착하지 않는 것은 물질의 색상(色相)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모든 부처님의법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또한 그와 같은 것입니다.”고 하자,

수보리 존자도 말하기를 “그와 같다.”고  것이다.

 

以是故,菩薩能觀諸法性常空,不可得空,畢竟淸淨。

以是故說:“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無等等心、不共聲聞辟支佛心,

不念有是心,亦不著是心,能疾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釋第十四品竟

이러한 때문에 보살은 제법의 성품은 항상 공한 성상공(性常空)이고 불가득공(不可得空)이며, 필경에는 청정한 것이라고 관찰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과 무등등심(無等等心)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과는 함께 하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마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또한 그러한 마음에도 집착하지도 않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빨리 이르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15. 대장엄품(大莊嚴品)을 풀이함 1

 

▶經. 爾時,富樓那彌多羅尼子白佛言:“世尊!我亦樂說所以爲摩訶薩!”

佛言:“便說!”

富樓那彌多羅尼子言:是菩薩大莊嚴,是菩薩發趣大乘 是菩薩乘於大乘:以是故 是菩薩名摩訶薩。

▷경. 그 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으니, 

“세존이시여, 저도 마하살이 되는 까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말해 보아라.”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말씀드리기를, “이 보살은 크게 대장엄(大莊嚴)하며,  보살은 대승으로 나아가며,  보살은 대승에 오르기 때문에  보살을 마하살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루나(富樓那, pūrṇa) 부처님의 십대 제자이며,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한다. 녹야원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하였다.

 

舍利弗語富樓那言:“云何名菩薩摩訶薩大莊嚴?”

사리불 존자가 부루나 존자에게 물었으니,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대장엄(大莊嚴)하는 것인지요?”

 

富樓那語舍利弗:“菩薩摩訶薩不分別爲爾所人故住檀波羅蜜,行檀波羅蜜;爲一切衆生故住檀波羅蜜,行檀波羅蜜。不爲爾所人故,住尸羅波羅蜜,行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爲一切衆生故,住般若波羅蜜,行般若波羅蜜。

부루나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여, 

“보살마하살은 자신만의 사람들을 위하여 단(檀, 보시)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보시)바라밀을 행하겠다고 분별하지 않으며, 일체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단(보시)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보시)바라밀을 행하며,

자신만의 사람들만을 위하여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시라(지계)바라밀을 행하지는 않으며,

찬제(羼提, 인욕)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 정)바라밀ㆍ선(禪, 선정)바라밀  반야(般若, 지혜)바라밀도 그와 같으며, 

일체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菩薩摩訶薩大莊嚴,不齊限衆生,我當度若干人,不度餘人;不言:‘我令若干人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餘人不至。’

보살마하살의 대장엄(大莊嚴) 중생을 제한하여서 ‘나는 얼마쯤의 사람만을 제도하고  밖의 사람은 제도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으며,

‘나는 얼마쯤의 사람만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하고  밖의 사람은 이르게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으며, 

 

是菩薩摩訶薩普爲一切衆生故大莊嚴。復作是念:‘我當自具足檀波羅蜜,亦令一切衆生行檀波羅蜜;自具足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自具足般若波羅蜜,亦令一切衆生行般若波羅蜜。’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들을 널리 위하는 까닭에 크게 장엄하면서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스스로 단(보시)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고 또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단바라밀을 행하게 해야 하리라. 

스스로 시라(지계)바라밀ㆍ찬제(인욕)바라밀ㆍ비리야(정진)바라밀ㆍ선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고, 

스스로 반야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고서 또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해야 하리라.’고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時,所有布施應薩婆若心,共一切衆生,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舍利弗!是名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時檀波羅蜜大莊嚴。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단(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의 보시를 살바야(薩婆若)에 상응하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廻向)하나니, 

사리불이여, 이를 보살마하살이 단(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보시)바라밀로 대장엄(大莊嚴)하는 것이라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時,應薩婆若心布施,不向聲聞、辟支佛地。

舍利弗!是名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時尸羅波羅蜜大莊嚴。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단(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로 향하지 않나니, 

사리불이여, 이를 보살마하살이 단(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시라(지계)바라밀로 대장엄(大莊嚴)하는 것이라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時,應薩婆若心布施,是諸施法信忍欲,

是名行檀波羅蜜時羼提波羅蜜大莊嚴。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단(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이 모든 보시의 법에 대하여 믿고 인내하고자 하나니, 이를 단(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찬제(인욕)바라밀로 대장엄(大莊嚴)하는 것이라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時,應薩婆若心布施,勤修不息,

是名行檀波羅蜜時毘梨耶波羅蜜大莊嚴。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단(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부지런히 닦으면서 쉬지 않나니, 이를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비리야(정진)바라밀로 대장엄(大莊嚴)하는 것이라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時,應薩婆若心布施,攝心不起聲聞、辟支佛意,

是名行檀波羅蜜時禪波羅蜜大莊嚴。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마음을 제어하여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를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선바라밀로 대장엄(大莊嚴)하는 것이라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時,應薩婆若心布施,觀諸法如幻,不得施者,不得所施物,不得受者,是名行檀波羅蜜時般若波羅蜜大莊嚴。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단(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제법은 마치 환과 같아서 보시하는 시자(施者) 얻지 못하고, 보시하는 시물(施物) 얻지 못하며, 받는 수자(受者) 얻지 못한다고 관찰하나니, 이를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반야바라밀로대장엄(大莊嚴)하는 것이라 하며, 

 

如是,舍利弗!若菩薩摩訶薩應薩婆若心,不取不得諸波羅蜜相,當知是菩薩摩訶薩大莊嚴。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바라밀의 상(相) 취하지도 않고, 얻지도 않는다면,  보살마하살이 대장엄(大莊嚴)하는 것이라 하는 것이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應薩婆若心布施,共一切衆生,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名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檀波羅蜜。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을 행할 때에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일체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나니, 

이를 보살마하살이 시라(지계)바라밀을 행할 때의 단(보시)바라밀이라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諸法信忍欲,是名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羼提波羅蜜。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시라(지계)바라밀을 행할 때에법을 믿고 인내하고자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지계)바라밀을 행할 때의 찬제(인욕)바라밀이라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勤修不息,是名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毘梨耶波羅蜜。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에 부지런히 닦으면서 쉬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시라(지계)바라밀을 행할 때의 비리야(정진)바라밀이라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不受聲聞、辟支佛心,是名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禪波羅蜜。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이를 보살마하살이 시라(지계)바라밀을 행할 때의 선바라밀이라 하며,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觀一切法如幻,亦不念有是戒,用無所得故,是名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般若波羅蜜。如是,舍利弗!菩薩摩訶薩行尸羅波羅蜜時,攝諸波羅蜜,以是故名大莊嚴。

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에 제법은 마치 환과 같다고 관찰하며,

또한 이 계율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나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이 시라(지계)바라밀을 행할 때의 반야바라밀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시라(지계)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바라밀을 섭수(攝受)하나니,

이 때문에 대장엄(大莊嚴)하는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