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45권 1
大智度論 釋摩訶薩品 第十三 卷四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3. 마하살품(摩詞薩品)을 풀이함 1
▶經.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何以故名爲摩訶薩?”
佛告須菩提:“是菩薩於畢定衆中爲上首,是故名爲摩訶薩。”
▷경.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마하살(摩詞薩, Mahāsattva)이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보살은 필정중(畢定衆)에는 중생 가운데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 될 것이기 때문에 마하살이라 하느니라.”
보살(菩薩, bodhisattva, bodhisatta 보디삿따)은 부처(깨달은 사람 또는 존재)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초기불교 경전-니까야에서의 정의), 또는 여러 생을 거치며 선업을 닦아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위대한 사람을 뜻한다. 특히 대승불교에서 강조되었다. 보리살타 · 보살마하살 · 각유정 등으로도 불린다.
보살은 보리살타(菩提薩唾)의 줄임말로 보리살타는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음에 따라 번역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보디(bodhi: 보리)"는 깨닫다는 뜻이며 "사트바(sattva)"는 존재 또는 유정(有情)을 뜻한다. 즉 보리살타는 깨달은 존재라는 뜻으로 각유정(覺有情)이라 의역되기도 한다. 유정은 중생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이룬 존재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초기불교에서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보살은 그 수행의 단계에 의하여 그 계위(階位)가 주어진다. 즉, 초발심(初發心:최초단계로 진리를 추구함), 행도(行道: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수행함), 불퇴전(不退轉:도달한 경지에서 물러나거나 수행을 중지하는 일이 없음), 일생보처(一生補處:한 생이 끝나면 다음에 부처가 됨)의 4단계가 있다.
후에 화엄경에서는 이것이 십지(十地)로 정리되어졌고, 또 그 이전의 단계로서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回向), 그 이후에 등각(等覺)·묘각(妙覺)의 2위(位)가 첨가되어 도합 52위라고 불리었다.
보살의 개념은 갖가지로 확대되어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불을 탄생시켰다. 미륵불은 미래에 성불할 부처로서 현재는 도솔천(兜率天)에 미륵보살로 머물고 있다는 미래지향의 미륵신앙이 나타났다. 또한 정토사상(淨土思想)과 관련하여 아촉불(阿閦佛)과 아촉보살, 아미타불과 법장보살(法藏菩薩)의 관계가 성립하였다. - 위키, 다움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爲畢定衆,是菩薩摩訶薩而爲上首?”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을 필정중(畢定衆)이라 하며,
어떻게 이 보살마하살이 그의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되는지요?”
佛告須菩提:“畢定衆者,性地人、八人、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
初發心菩薩,乃至阿鞞跋致地菩薩。
須菩提!是爲畢定衆,菩薩爲上首。菩薩摩訶薩於是中生大心不可壞如金剛,當爲畢定衆作上首。”
부처님께서 수보리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필정중(畢定衆)이라 함이란, 성자가 될 사람인 성지인(性地人, gotra-bhūmi)과
8인(人)과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 및 벽지불(辟支佛)과
처음 발심한 초발의보살(初發心菩薩) 내지 아비발치지(阿毘跋致地, 불퇴전)의 보살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필정중(畢定衆)이며, 보살은 그 중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이 가운데에서 낸, 큰 마음의 대심(大心)을 무너뜨릴 수 없음이 마치 금강(金剛)과 같으므로 당연히 필정중(畢定衆)에서 상수(上首)가 되어야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菩薩摩訶薩生大心不可壞如金剛?”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대심(大心)낸 것으로, 무너뜨릴 수 없음이 마치 금강과 같다 하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應生如是心:我當於無量生死中大誓莊嚴;
我應當捨一切所有;我應當等心於一切衆生;我應當以三乘度脫一切衆生,令入無餘涅槃;
我度一切衆生已,無有乃至一人入涅槃者。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
‘나는 무량하게 나고 죽는 생사(生死) 가운데에서 큰 서원인 대서(大誓)로 장엄하리라.
나는 일체의 소유(所有)를 버리리라.
나는 동등한 마음으로 일체의 중생들을 대하리라.
나는 삼승(三乘)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리라.
나는 일체 중생을 제도한 뒤에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남김없이 열반에 들게 하리라.
我應當解一切諸法不生相;我應當純以薩婆若心行六波羅蜜;我應當學智慧,了達一切法;
我應當了達諸法一相智門;我應當了達乃至無量相智門。
나는 일체법의 나지 않는 불생상(不生相)을 깨달으리라.
나는 순수하게 살바야(薩婆若, 일체지)의 마음으로써 육바라밀을 행하리라.
나는 지혜를 배워서 일체법을 명료히 통달하리라.
나는 제법의 일상(一相)의 지혜문을 분명하게 통달하리라.
나는 무량한 무량상(無量相)의 지혜문에 이르기까지를 분명하게 통달하리라.’
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生大心不可壞如金剛。
是菩薩摩訶薩住是心中,於諸畢定衆中而爲上首,是法用無所得故。
수보리야, 이러함을 보살마하살이 큰 마음의 대심(大心)을 내되 무너뜨릴 수 없음이 마치 금강과 같다고 하는 것이며,
이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마음에 머물러 모든 필정중 가운데에서 우두머리가 되나니,
이 법을,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으로써 행하기 때문이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應生如是心:我當代十方一切衆生,若地獄衆生、若畜生衆生、若餓鬼衆生,受諸苦痛;
爲一一衆生無量百千億劫代受地獄中苦,乃至是衆生入無餘涅槃。以是法故,爲是衆生受諸勤苦。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
‘나는 시방의 일체 중생과 그리고 지옥의 중생과 축생의 중생과 아귀의 중생들을 대신하여 모든 고통을 받을 것이며,
일체 각각의 중생을 위하여 무량한 백 천 억 겁 동안 다시 지옥의 고통을 받을 것이며,
나아가 이 중생들이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기까지 이러한 법으로써 이 중생들을 위하여 모든 고통을 받을 것이다.
是衆生入無餘涅槃已,然後自種善根,無量百千萬億阿僧祇劫,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중생들이 무여열반에 들고 난 뒤에는 스스로 무량한 백천만억의 아승기겁 동안 선근(善根)을 심으며,
그리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하는 것이다.
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大心不可壞如金剛。住是心中,爲畢定衆作上首。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生大快心,住是大快心中,爲畢定衆作上首。”
수보리야, 이러함이 보살마하살이 대심(大心)을 내었으되 무너뜨릴 수 없음이 마치 금강과 같다는 것이며,
이러한 마음 가운데에 머무르기에 필정중(畢定衆) 중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되느니라.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크고 흔쾌한 마음의 대쾌심(大快心)을 내나니,
이 크고 흔쾌한 마음의 대쾌심(大快心) 안에 머무르므로 필정중(畢定衆) 중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菩薩摩訶薩大快心?”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크고 흔쾌한 마음의 대쾌심(大快心) 인지요?”
佛言:“菩薩摩訶薩從初發意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生染心、瞋恚心、愚癡心,不生惱心,
不生聲聞、辟支佛心,是名菩薩摩訶薩大快心。住是心中,爲畢定衆作上首,亦不念有是心。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應生不動心!”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살마살이 처음 뜻을 낸 초발의(初發意)에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음욕의 마음이나, 성내는 마음이나,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고, 괴로워하는 마음의 뇌심(惱心)도 내지 않으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도 내지 않나니,
이러함을 보살마하살의 크고 흔쾌한 마음의 대쾌심(大快心)이라 하며
이러한 의 대쾌심(大快心)에 머무르므로 필정중(畢定衆) 중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되는 것이나, 이러한 마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동요하지 않는 마음의 부동심(不動心)을 내어야만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云何名不動心?”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어떤 것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의 부동심(不動心)이라 하는지요?”
佛言:“常念一切種智心,亦不念有是心,是名菩薩摩訶薩不動心。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항상 일체종지(一切種智)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또한 이러한 마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나니,
이러한 것을 보살마하살의 동요하지 않는 마음의 부동심(不動心)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於一切衆生中,應生利益安樂心。
云何名利益安樂心?救濟一切衆生,不捨一切衆生,是事亦不念有是心,
是名菩薩摩訶薩於一切衆生中生利益安樂心。
如是,須菩提!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於畢定衆中最爲上首!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들에 대하여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마음의 이익안락심(利益安樂心)을 내어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마음의 이익안락심(利益安樂心)이라 하는 것인가!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으나, 또한 이러함에도 이런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들에 대하여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마음의 이익안락심(利益安樂心)을 일으키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필정중(畢定衆) 중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應當行欲法、喜法、樂法心。
何等是法?所謂不破諸法實相,是名爲法。何等名欲法、喜法?信法、忍法、受法,是名欲法、喜法。
何等名樂法?常修行是法,是名樂法。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於畢定衆中能爲上首,是法用無所得故。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법을 원하는 욕법(欲法)하고, 법을 기뻐하는 희법(喜法)하고,
법을 좋아하는 낙법(樂法)의 마음을 행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법(法)인가? 이른바 제법의 실상(實相)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을 바로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법을 원하는 욕법(欲法)이라 하고, 법을 기뻐하는 희법(喜法)이라 하는가?
법을 믿는 신법(信法)하고, 법을 인정하는 인법(忍法)하고, 법을 받아 들이는 수법(受法)하는 것을 바로 법을 원하는 욕법(欲法)이라 하고 법을 기뻐하는 희법(喜法)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법을 좋아하는 낙법(樂法)이라 하는가?
항상 이 법을 수행하는 것을 바로 낙법(樂法)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므로 필정중(畢定衆) 중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될 수 있나니, 이 법을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으로써 행하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住內空乃至無法有法空,
能爲畢定衆作上首,是法用無所得故。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내공(內空) 내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까지의 십팔공(十八空)에 머무르므로 필정중(畢定衆) 가운데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될 수 있나니,
이 법을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으로써 행하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住四念處中乃至住十八不共法中,
能爲畢定衆作上首,是法用無所得故。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사념처(四念處) 안에 머무르며,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안에 머무르므로 필정중(畢定衆) 가운데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될 수 있나니,
이 법은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으로써 행하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住如金剛三昧乃至離著虛空不染三昧中住,
於畢定衆作上首,是法用無所得故。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住是諸法中,能爲畢定衆作上首。以是因緣故,名爲摩訶薩。”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여금강삼매(如金剛三昧)에서 이착허공불염삼매(離著虛空不染三昧)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머무르므로 필정중(畢定衆) 가운데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되나니,
이 법은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으로써 행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 제법 안에 머무르므로 필정중(畢定衆) 가운데에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가 될 수 있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마하살이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