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4권 8

Skunky 2024. 6. 26. 08:00

大智度論釋 幻人無作品 第十一卷 第四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2. 구의품(句義品) 풀이함 

 

▶經.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一切法?云何一切法中無碍相應學、應知?”

佛告須菩提:“一切法者,善法、不善法,記法、無記法,世閒法、出世閒法,有漏法、無漏法,有爲法、無爲法,共法、不共法。須菩提!是名爲一切法。菩薩摩訶薩,是一切法無碍相中應學、應知!”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무엇이 일체법이며, 

어떻게 일체법 가운데에서 장애 없는 무애상(無礙相)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일체법이라 함이란, 착한법(善法)ㆍ착하지 않은 불선법(不善法), 기법(記法)ㆍ무기법(無記法),

세간법(世間法)ㆍ출세간법(出世間法), 유루법(有漏法)ㆍ무루법(無漏法),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 

공통하는 공법(共法)과 공통하지 않은 불공법(不共法)이니, 

수보리야, 이러한 것을 일체법(一切法)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의 장애 없는 무애상(無礙相) 가운데에서 배워야 하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名世閒善法?”

佛告須菩提:“世閒善法者,孝順父母,供養沙門、婆羅門,敬事尊長;

布施福處,持戒福處,修定福處,勸導福事;方便生福德;世閒十善道;

九相:脹相、血相、壞相、膿爛相、靑相、噉相、散相、骨相、燒相;

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

念佛、念法、念僧、念戒、念捨、念天、念善、念安般、念身、念死。是名世閒善法。”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을 세간의법(善法)이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세간의법(善法)이라 함이란, 부모에게 효순(孝順)하고,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을 공양하며, 

높은 어른을 공경하고 섬기면서 보시로 복을 짓는 보시복처(布施福處)ㆍ

계율을 지니어  짓는 지계복처(持戒福處)ㆍ선정을 닦아  짓는 수정복처(修定福處)와 

 짓는 권하고 인도하며, 방편으로 복덕을 내는 것과 세간의선도(十善道)이니라.

그리고 아홉 가지 모양인 구상(九相)이란

시체가 부풀어 오르는 창상(脹相)ㆍ살과 피가 깨끗하지 못한 혈상(血相)ㆍ

몸이 무너지는 괴상(壞相)ㆍ 고름이 나며 무드러지는 농란상(濃爛相)ㆍ

멍으로 시퍼렇게 변한 청상(靑相)ㆍ짐승과 벌레가 먹은 담상(噉相)ㆍ몸이 찢긴 산상(散相)ㆍ

앙상하게 뼈만 남은 골상(骨相)ㆍ 햇볕에 검게 탄 소상(燒相)이며,

사선(四禪)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색정(四無色定)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 염계(念戒) 염사(念捨) 염천(念天) 염선(念善) 염수식(念數息) 염신(念身) 염사(念死) 등이니, 이러한 것을 세간의 착한 선법(善法)이라 하느니라.”

 

“何等不善法?”

“奪他命,不與取,邪,妄語,兩舌,惡口,非時語,貪欲,惱害,邪見;

是十不善道等,是名不善法。”

“무엇이 착하지 않은 불선법(不善法)인지요?”

“남의 목숨을 빼앗는 탈타명(奪他),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불여취(不與取), 삿된 음행의 사음(邪婬),

 거짓말하는 망어(妄語), 이간질을 하는 양설(兩舌), 욕하는 악구(惡口),  아닌데도 말을 하는 비시어(非時語),

탐욕(貪欲), 괴롭히고 해치는 뇌해(惱害), 삿된 견해의 사견(邪見) 등이 10불선도(不善道)이니, 

이를 착하지 않은 불선법(不善法)이라 하느니라.”

 

“何等記法?”“若善法、若不善法,是名記法。”

“어떠한 것을 기법(記法)이라 하는지요?”
“혹 착한 선법(善法), 혹 착하지 않은 불선법(不善法)으로,

이를 선(善)이나 불선(不善) 어느 한 쪽으로 결정되어 있는 상태의 유기의 법인 기법(記法)이라 하느니라.”

 

“何等無記法?”

“無記身業、口業、意業,無記四大,無記五衆、十二入、十八界,無記報,是名無記法。”

“어떠한 것이 무기법(無記法)인지요?”

“선(善)도 불선(不善)도 아닌 무기(無記)의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과 

무기의 4대(大)와 무기(無記)의중(衆)ㆍ12입(入)ㆍ18계(界)와 무기의 과보인 무기보(無記報)이니, 

이것을 선(善)이나 불선(不善) 어느 쪽으로 결정되지 않은 무기법(無記法)이라 하느니라.”

 

삼성(三性)= 선(善)과 불선(不善)의 기준에 따라, 즉 도덕 · 윤리 · 업(카르마)의 관점에서 일체법을 분류했을 때의 세 갈래인 선(善, kuśala, 유익함) · 불선(不善, akuśala, 해로움) · 무기(無記, avyākrta, 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음)를 가리킨다.
부파불교에서는 결과를 기준으로 보아서 편안하고 즐거운 과보[樂報]를 받을만한 법(法, 특히 마음작용) 즉 자리(自利)의 법을 선(善)이라고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현재 · 미래에 걸쳐 자기와 남을 순익(順益)하는 법(法, 특히 마음작용) 즉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법을 말한다. 순익(順益)에서 순(順)은 '편안하게 하다, 안락하게 하다, 도리(道理)에 따르게 하다'의 뜻이며, 익(益)은 '이롭게 하다, 돕다, 넉넉하게 하다, 향상되게 하다'의 뜻이다.

선의 성질을 선성(善性)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성질과 별도로 존재하는 그 성질을 가진 자 또는 법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선성(善性)은 선(善)과 동의어이다.
불선(不善)은 악(惡)이라고도 하며, 현세나 내세에 자기와 남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성질을 가진 법(法, 특히 마음작용) 또는 '평화롭지 않음[不安隱]'을 본질적 성질로 하여 현세나 내세를 좋지 않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어둠의 성질의 법(法, 특히 마음작용)을 말한다.불선 또는 악의 성질을 불선성(不善性) 또는 악성(惡性)이라 한다. 악성은 불선 또는 악과 동의어이다.
무기(無記)는 선도 불선(악)도 아닌 법(法, 특히 마음작용)이다. 선 · 불선 어느 것으로도 기표(記表) · 언표(言表) 또는 기별(記別)할 수 없는 법(法, 특히 마음작용)이기 때문에 무기(無記)라 한다. 기(記)는 선(善) 혹은 악(惡) 혹은 이들 둘 다를 말한다. 선과 악은 각각 애과(愛果)와 비애과(非愛果) 즉 애락할 만한 과보와 애락할 만하지 않은 과보를 낳으며 승자체(勝自體) 즉 뛰어난 자체(自體) 즉 뛰어난 성질이므로 기별(記別)할 수 있기 때문에 기(記)라고 한다. 무기의 성질을 무기성(無記性)이라 하며 무기성은 무기와 동의어이다.
한편, 불교의 이러한 선 · 불선 · 무기의 정의는 상당히 상대적이고 개인중심적이고 현실중시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비록 불교에서도 절대적인 선 즉 승의선(勝義善)과 절대적인 악 즉 승의불선(勝義不善)을 정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 · 불선 · 무기에 대한 불교의 정의는 현재의 전체적인 모습보다 나은 상태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선이고, 현재의 전체적인 모습과 비슷한 상태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무기이고, 현재의 전체적인 모습보다 나쁜 상태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불선(악)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므로, 상당히 상대적이고 인간 개개인 중심적이고 현실을 중시하는 정의라고 할 수 있다. - 위키

 

“何等名世閒法?”“世閒法者,

五衆、十二入、十八界、十善道,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是名世閒法。”

“무엇이 세간법(世間法)인지요?”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ㆍ10선도(善道)와 사선(四禪)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색정(四無色定)이니, 

이것을 세간법(世間法)이라 하느니라.”

 

“何等名出世閒法?”

어떤 것을 출세간법(出世間法)이라 하는지요?”

 

“四念處、四正懃、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空解脫門、無相解脫門、無作解脫門。三無漏根:未知欲知根、知根、知已根。三三昧:有覺有觀三昧、無覺有觀三昧、無覺無觀三昧。明、解脫、念、慧、正憶。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분(七覺分) 팔성도분(八聖道分) 

공해탈문(空解脫門)ㆍ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ㆍ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ㆍ지이근(知已根) 삼무루근(三無漏根)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ㆍ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ㆍ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 삼삼매(三三昧) 

()ㆍ해탈(解脫)ㆍ염()ㆍ혜()ㆍ정억념(正憶念)과 

 

背是淨潔五欲 離是著心 故名“背捨”。背 등 배, 배반할 배

배(背, vimokṣa. 해탈)란 오욕(五欲)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며, 그 집착하는 애착심을 여의었기 때문에 배사(背捨)라 이름하며,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1권 1

 

八背捨. 何等八?色觀色,是初背捨;內無色相外觀色,是二背捨;淨背捨,身作證,是三背捨。

다시 팔배사(八背捨,  Aṣṭa-vimokṣa, 팔해탈) 있으니, 무엇이 팔배사(八背捨)인가!

내입(內入, 육입)에 물질의 색상(色相) 있고 외입(外入, 육경)의 물질(色)을 관하는 에도 색이 있음을 관찰하는= 內有色外亦觀色(내유색외역관색)  번째 배사(背捨)요, 

안으로는 물질의 색상(色相) 없고 외입(外入, 육경)의 물질(色)을 관하는 내무색상외관색(內無色相外觀色)이라함은  번째 배사(背捨)요, 

정(淨, 청정)한 배사를 몸으로 증득하는 정배사신작증(淨背捨身作證)이  번째 배사(背捨)이니라.

 

過一切色相故,滅有對相故,一切異相不念故,入無邊虛空處,是四背捨;

일체의 색상(色相) 초월하는 까닭에 일체에 대함이 있는 물질과  멸하여 일체의 이상(異相) 생하지 않는 까닭에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 들어감은  번째 배사(背捨)요, 

過一切無邊虛空處,入一切無邊識處,是五背捨;

일체무변허공처를 초월하여 일체의 허공(공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린, 무변식처(無邊識處) 들어감이 다섯 번째 배사(背捨)요, 

過一切無邊識處,入無所有處,是六背捨;

일체 무변식처를 초월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 들어감은 여섯 번째 배사(背捨)요, 

過一切無所有處,入非有想非無想處,是七背捨;

일체의 의지하는 마음(識)을 완전히 버린, 무소유처(무소유심 마저도)를 초월하여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 들어감은 일곱 번째 배사(背捨)요, 

過一切非有想非無想處,入滅受想定,是八背捨。

비유상비무상처를 초월하여 일체의 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이 소멸된 적정(寂靜)의 상태인 멸수상정(滅受想定) 들어감은 여덟 번째 배사(背捨)요.

 

九次第定。何等九?離欲離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樂入初禪;

滅諸覺觀內淸淨故一心,無覺無觀,定生喜樂入第二禪。

다시차제정(九次第定) 있으니, 무엇이 아홉인가?

 욕계(欲界)의 악한 불선법(不善法)을 떠나 거친 생각의 각(覺)도 있고, 세밀한 생각의 관(觀)도 있으나,

애욕을 여읨에 의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느니라.

모든 거친 생각의 각(覺)과 세밀한 생각의 관(觀)이 없어지고 안으로 청정하기 때문에 

한마음이 되면서 거친 생각생각의 각(覺)도 없고 세밀한 생각생각의 관(觀)도 없이 집중한 정(定)에 의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제2선(第二禪)에 들어가느니라.

 

離喜故,行捨,受身樂,聖人能說能捨,念、行樂,入第三禪;

斷苦樂故,先滅憂喜故,不苦不樂、捨,念淨,入第四禪。

기쁨을 여의는 까닭에 버림의 사(捨)를 행하여 몸의 즐거움을 느끼는, 이른바 성인이라면  안에서 능히 말하기도 하고 능히 생각을 버리기도 하면서 몸의 즐거움을 행하는 제3선(第三禪)에 들어가느니라.

즐거움과 괴로움이 끊어진 까닭에 이전에 있었던 기쁨과 근심이 없어져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불고불락(不苦不樂)과 , 버림의 사(捨), 생각이 청정한 념정(念淨)의 제사선(第四禪)에 들어가느니라.

 

過一切色相故,滅有對相故,一切異相不念故,入無邊虛空處;

일체의 물질의 색상(色相)을 초월하고 대하는 유대상(有對相)을 멸하여, 일체의 다른 이상(異相)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에 들어가느니라.

過一切無邊虛空處,入一切無邊識處;過一切無邊識處,入無所有處;

過一切無所有處,入非有想非無想處;過一切非有想非無想處,入滅受想定。

일체의 무변허공처를 초월하여 일체의 허공(공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리는, 무변식처(無邊識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무변식처를 초월하여 마음(識)의 속박, 즉, 마음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는,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무소유처를 초월하여 무소유심(無所有心)을 다시 완전히 버리는,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초월하여 일체의 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이 소멸된,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가느니라.

 

復有出世閒法:內空乃至無法有法空,佛十力、四無所畏、四無碍智、十八不共法,一切智,是名出世閒法。”

다시 출세간의 법이 있나니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이르기까지의 십팔공(十八空)과 

부처님의 십력(十力), 사무소외(四無所畏) 사무애지(四無礙智) 18불공법(不共法) 일체지(一切智)이니

이러한 것을 출세간법(出世閒法)이라 하느니라.”

 

“何等爲有漏法?”

“五受衆、十二入、十八界,六種、六觸、六受,四禪乃至四無色定,是名有漏法。”

“무엇이 유루법(有漏法)인지요?”

고수(苦受) 낙수(樂受) 희수(喜受) 우수(憂受) 사수(捨受)의 오수중(五受衆)과 12입(入), 18계(界),

탐(貪) 진(瞋) 만(慢) 무명(無明) 의(疑) 부정견(不正見)의 육종(六種)과

안촉(眼觸), 이촉(耳觸), 비촉(鼻觸), 설촉(舌觸), 신촉(身觸), 의촉(意觸)의 육촉(六觸)과

안촉수(眼觸受), 이촉수(耳觸受), 비촉수(鼻觸受), 설촉수(舌觸受), 신촉수(身觸受), 의촉수(意觸受)의 육수(六受)와,

사선(四禪)에서 사무색정(四無色定)에 이르기까지를 유루법(有漏法)이라 하느니라."

 

“何等爲無漏法?”

“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及一切種智,是名無漏法。”

“무엇이 무루법(無漏法)인지요?”

“사념처(四念處) 내지 18불공법(不共法)과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이르기 까지이니, 

이를 무루법(無漏法)이라 하느니라.”

 

“何等爲有爲法?”

“若法生、住、滅,欲界、色界、無色界、五衆乃至意觸因緣生受,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及一切智,是名有爲法"

“무엇이 유위법(有爲法)인지요?”

“법으로서 나는 생(生)ㆍ머무르는 주(住)ㆍ멸하는 멸(滅),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중(五衆)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의 생수(生受)와념처로부터 18불공법까지와 일체지(一切智)이니, 이것을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느니라.”

 

“何等爲無爲法?”

“不生、不住、不滅,若染盡、瞋盡、癡盡,如、不異、法相、法性、法住、實際,是名無爲法。”

“무엇이 무위법(無爲法)인지요?”

“나지 않는 불생(不生), 머무르지 않는 불주(不住), 멸하지도 않는 불멸(不滅)과 음욕의 마음이 다한 염진(染盡), 성냄이 다한 진진(瞋盡), 어리석음이 다한 치진(癡盡) 한결같은 여(如)ㆍ불이(不二)ㆍ법상(法相)ㆍ법성(法性)ㆍ법주(法住)ㆍ실제(實際)이니, 이를 무위법(無爲法)이라 하느니라.”

 

“何等爲共法?”

“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如是等是名共法。”

“무엇이 공통되는법(共法)인지요?”

“사선(四禪),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색정(四無色定) 등과 같은 것을 바로 공법(共法)이라 하느니라.

 

“何等爲不共法?”

“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是名不共法。”

“무엇이 공통되지 않은 불공법(不共法)인지요?”

“사념처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이니, 이를 공통되지 않은 불공법(不共法)법이라 하느니라.

 

“菩薩摩訶薩於是自相空法中不應著,不動故;菩薩亦應知一切法不二相,不動故。是名菩薩義。”

보살마하살은 이 자상이 공한 자상공법(自相空法) 가운데에서 집착하지 않아야 하나니,

마음이 부동(不動)이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또한 일체법이 둘이 아닌 불이상(不二相)임을 알아야 하나니, 마음이 부동(不動)이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것등을 보살의 이치인 보살의(菩薩義)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