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44권 3
大智度論釋 幻人無作品 第十一卷 第四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1. 환인무작품(幻人無作品)을 풀이함 3
▶經. 須菩提白佛言:“世尊!新發大乘意菩薩聞說般若波羅蜜,將無驚、怖、畏?”
佛告須菩提:“若新發大乘意菩薩於般若波羅蜜無方便,亦不得善知識,是菩薩或驚、或怖或畏。”
▷경. 수보리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새로이 대승의(大乘意)을 일으킨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면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는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만약 새로이 대승의 뜻을 일으킨 보살이 반야바라밀에서 방편이 없고 또한 선지식(善知識)을 얻지 못한다면,
이 보살이 혹 놀라기도 하고, 혹 겁을 내거나 두려워하기도 하리라.”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方便?菩薩行是方便,不驚、不畏、不怖?”
수보리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무엇이 방편이기에 보살이 이 방편을 행한다면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까?”
佛告須菩提:“有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應薩婆若心,觀色無常相,是亦不可得;
觀受、想、行、識無常相,是亦不可得。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中方便。
부처님께서 수보리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어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살바야에 상응(相應)하는 마음으로
물질(色)의 무상한 무상상(無常相)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무상상(無常相)도 얻을 수 없다고 관한다면,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방편을 행한다고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應薩婆若心,觀色苦相,是亦不可得,受、想、行、識亦如是;
應薩婆若心,觀色無我相,是亦不可得,受、想、行、識亦如是。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물질(色)의 괴로운 고상(苦相)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고상(苦相) 또한 얻을 수 없으며,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물질(色)의 무아상(無我相)도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무아상(無我相) 또한 그렇게 관하여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應薩婆若心,觀色空相,是亦不可得;受、想、行、識亦如是。
觀色無相相,是亦不可得;受、想、行、識亦如是。
觀色無作相,是亦不可得;受、想、行、識亦如是。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물질(色)의 공상(空相)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공상(空相) 또한 그러하며,
물질(色)의 상이 없는 무상상(無相相)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무상상(無相相) 또한 그러하며,
물질(色)의 조작이 없는 무작상(無作相)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무작상(無作相) 또한 그러하다고 관하여야 하느니라.
觀色寂滅相,是亦不可得,乃至識亦如是。觀色離相,是亦不可得,乃至識亦如是。
是名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中方便。
물질(色)의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想)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나아가 의식(識)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렇게 관하며,
물질(色)을 여읜 이상(離相)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나아가 의식(識)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렇게 관하여야 하나니,
이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방편을 행한다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觀色無常相,是亦不可得;
觀色苦相、無我相、空相、無相相、無作相、寂滅相、離相,是亦不可得。受想行識亦如是。
是時菩薩作是念:‘我當爲一切衆生說是無常法,是亦不可得;
當爲一切衆生說苦相、無我相、空相、無相相、無作相、寂滅相、離相,是亦不可得;
是名菩薩摩訶薩檀波羅蜜。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물질(色)의 무상한 무상상(無常相)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물질(色)의 괴로운 고상(苦相)ㆍ나 없는 무아상(無我相)ㆍ공한 공상(空相) ㆍ모양이 없는 무상상(無相相)ㆍ조작이 없는 무작상(無作相)ㆍ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想)ㆍ여읜 이상(離相)은 얻을 수 없다고 관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또한 그와 같이 얻을 수 없다고 관할 때에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이 무상법(無常法)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것과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괴로운 고상(苦相)ㆍ나 없는 무아상(無我相)ㆍ공한 공상(空相) ㆍ모양이 없는 무상상(無相相)ㆍ조작이 없는 무작상(無作相)ㆍ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想)ㆍ여읜 이상(離相)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마땅히 말하여 주어야 한다.”고 하나니,
이러함을 보살마하살의 단(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不以聲聞、辟支佛心,觀色無常亦不可得;
不以聲聞、辟支佛心,觀識無常亦不可得;
不以聲聞、辟支佛心,觀色苦、無我、空、無相、無作、寂滅、離,亦不可得;
受、想、行、識亦如是。是名菩薩摩訶薩尸羅波羅蜜。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으로써
물질(色)의 무상(無常)함을 관하지 않으며, 이것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으로써 분별(識)의 무상(無常)함을 관하지 않으나, 이 또한 얻을 수 없느니라.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으로써 물질(色)의 괴로운 고상(苦相)ㆍ나 없는 무아상(無我相)ㆍ공한 공상(空相) ㆍ모양이 없는 무상상(無相相)ㆍ조작이 없는 무작상(無作相)ㆍ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想)ㆍ여읜 이상(離相)을 관하지 않으나, 이러함 역시 얻을 수 없으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또한 그러하나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是諸法無常相,乃至離想,忍欲樂,是名菩薩摩訶薩羼提波羅蜜。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 제법의 무상상(無常相) 내지는 이상(離相)에서 참고 구하고 원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찬제(羼提, 인욕)바라밀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應薩婆若心,觀色無常相亦不可得,乃至離相亦不可得;受、想、行、識亦如是。應薩婆若心,不捨不息,是名菩薩摩訶薩毘梨耶波羅蜜。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살바야와 상응한 마음으로 물질(色)의 무상상(無常相) 또한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여의는 이상(離相)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역시 그와 같다고 관하며,
살바야와 상응한 마음으로써 버리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다면,
이를 보살마하살의 비리야(毘梨耶, 정진)바라밀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不起聲聞辟支佛意及餘不善心,是名菩薩摩訶薩禪波羅蜜。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과 그 밖의 착하지 않은 불선심(不善心)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선(禪, 선정)바라밀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如是思惟:‘不以空色故色空,色卽是空,空卽是色;受、想、行、識亦如是。不以空眼故眼空,眼卽是空,空卽是眼;乃至意觸因緣生受,不以空受故受空,受卽是空,空卽是受。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나니,
‘물질이 공한 공색(空色)이기 때문에 물질이 공한 색공(色空)인 것이 아니니,
물질이 곧 공인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이 곧 물질인 공즉시색(空卽是色)이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또한 그와 같으며,
눈이 공한 공안(空眼)이기 때문에 눈이 공한 안공(眼空)이지 않으니,
눈이 곧 공인 안즉시공(眼卽是空)이요, 공이 곧 눈인 공즉시안(空卽是眼)이며,
나아가 뜻의 접촉의 인연인 의촉인연(意觸因緣)으로 생긴 느낌(受)도 느낌을 공한 공수(空受)이기 때문에 느낌이 공한 수공(受空)이 아니나니,
느낌이 곧 공인 수즉시공(受卽是空)이요, 공이 곧 느낌인 공즉시수(空卽是受)인 것이다.
不以空四念處故四念處空,四念處卽是空,空卽是四念處;乃至不以空十八不共法故十八不共法空,十八不共法卽是空,空卽是十八不共法。’
사념처를 공하게 함으로써 사념처가 공해지지 않나니,
사념처가 곧 공인 사념처즉시공(四念處卽是空)이요 공이 곧 사념처인 공즉시사념처(空卽是四念處)이며,
나아가 18불공법을 공하게 함으로써 18불공법이 공해지지 않나니,
18불공법이 곧 공인 십팔불공법즉시공(十八不共法卽是空)이요
공이 곧 18불공법인 공즉시십팔불공법(空卽是十八不共法)인 것이다.’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不驚、不畏、不怖。”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菩薩摩訶薩善知識守護故,聞說是般若波羅蜜,不驚、不畏、不怖?”
수보리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을 선지식(善知識)이 수호하기 때문에 이 반야바라밀의 법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도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善知識者,說色無常亦不可得,持是善根,不向聲聞、辟支佛道,但向一切智,是名菩薩摩訶薩善知識;說受、想、行、識無常亦不可得,持是善根,不向聲聞、辟支佛道,但向一切智,是名菩薩摩訶薩善知識。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 함이란, 물질(色)의 무상(無常)함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善根)을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道)로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一切智)에 회향할 뿐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무상함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이 선근을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道)에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할 뿐이니,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善知識)이라 하느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復有善知識,說色苦亦不可得,說受、想、行、識苦亦不可得
說色無我亦不可得,受、想、行、識無我亦不可得;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선지식(善知識)이 있으니, 물질(色)의 괴로움의 고(苦)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고(苦)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며,
물질(色)의 나없음의 무아(無我) 또한 얻을 수 없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무아(無我)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며,
說色空、無相、無作、寂滅、離亦不可得,受想行識空、無相、無作,寂滅、離亦不可得;持是善根,不向聲聞、辟支佛道,但向一切智。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善知識。
물질(色)의 공한 색공(色空)이고,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 적멸(寂滅), 여의는 이(離) 또한 얻을 수 없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공(空)하고 무상(無相)이고, 무작(無作), 적멸(寂滅), 여의는 이(離)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을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道)에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할 뿐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善知識)이라 하느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復有善知識,說眼無常乃至離亦不可得;乃至意觸因緣生受,說無常乃至離亦不可得;持是善根,不向聲聞、辟支佛道,但向一切智,是名菩薩摩訶薩善知識。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선지식(善知識)이 있나니, 눈(眼)의 무상(無相)함 내지 여의는 이(離)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나아가 의촉(意觸)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受)의 무상(無相)함에 여의는 이(離)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선근을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道)에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할 뿐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善知識)이라 하느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復有善知識,說修四念處法乃至離亦不可得;持是善根,不向聲聞、辟支佛道,但向一切智。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善知識。乃至說修十八不共法,修一切智亦不可得;持是善根,不向聲聞、辟支佛道,但向一切智,是名菩薩摩訶薩善知識。”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선지식(善知識)이 있나니, 사념처의 법을 닦는 것 내지 여의는 것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을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道)에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할 뿐이니,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善知識)이라 하느니라.
나아가 18불공법을 닦고 일체지를 닦는 것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선근을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道)에 향하게 하지 않고 단지 일체지에 회향하나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지식(善知識)이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