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4권 2

Skunky 2024. 6. 24. 08:00

大智度論釋 幻人無作品 第十一卷 第四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1. 환인무작품(幻人無作品) 풀이함 2

 

問曰:幻人不能行功德,以無心識,云何言行?

묻나니, 환술로 만들어진 환인(幻人)은 심식(心識)이 없기 때문 공덕을 행할 수 없거늘 어떻게 “행한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雖實不行,人見似行,故名爲行。如幻人以飮食、財物、七寶布施,出家持戒、忍辱、精進、坐禪、說法等,無智人謂是爲行,不知是幻。

답하나니, 비록 실제로는 행하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이 보기에 행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행한다고 하는 것이니,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환인이 음식이나 재물이나 칠보를 출가한 이에게 보시하며, 계율을 지니고, 인욕하고, 정진하고, 좌선(坐禪)하며, 설법을 하는 등과 같나니,

지혜 없는 사람들은 그것이 환술인 줄 모르는 탓에 행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須菩提作是念:‘若如佛說‘諸法一相無所有,但是虛誑’,幻人及實菩薩乃至佛等無有異。如幻人亦幻作佛,行六波羅蜜,降魔兵,坐道場,成佛道,放光明,說法度人;實菩薩行實道,得作佛,度衆生,有何差別?’佛言:“我還問汝,隨汝意答我。”

수보리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제법이 일상(一相)이어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그것은 거짓일 뿐이라면 환술로 만들어진 환인(幻人)과 실제의 보살에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가 똑같아서 다름이 없을 것이니,

환인(幻人)도 환술로써 부처님이 되어서, 육바라밀을 행하고, 악마의 병사를 항복 받으며, 도량(道場)에 앉아서는 부처님 불도를 이루고, 광명을 놓으며, 법을 설하면서 사람들을 제도하며,

실제의 보살도 진실한 도를 행하여 부처님이 되어서 중생들을 제도하는데, 여기에 어떤 차별이 있는 것일까?’라고 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는 뜻대로 내게 대답하라.”고 하신 것이다.

 

問曰:佛何以不直答,而還問令隨意答?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바로 대답하시지 않으시고, 도리어 물으시면서 뜻대로 대답하게 하신 것입니까?

 

答曰:須菩提以空智慧,觀三界五衆皆空,心生厭離;諸煩惱習故,雖能摠相知諸佛法空,猶有所貴,不能觀佛法如幻無所有,以是故方喩說。如汝以五衆空爲證,諸佛法亦爾;汝觀世閒五衆爲空,我觀佛法亦爾。

답하나니, 수보리존자는 공(空)의 지혜로써 삼계(三界)의 오중(五衆) 모두가 공(空)이라고 관찰하면서 마음으로 싫어함을 일으키고 모든 번뇌의 습기를 여의었으니, 비록 전체의 총상(總相)으로는 모든 부처님의 불법이 공(空)하다고 알지만,

여전히 귀히 여기는 바가 있어 “부처님의 불법은 마치 환(幻)과 같아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다.”라고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마치 그대가 오중(五衆)의 공(空)으로써 증명을 삼듯이, 모든 부처님의 불법도 또한 그러하며,

그대가 세간의 오중(五衆)이 공(空)하다고 보듯이 내가 불법을 보는 것 또한 그러하느니라.”고 하신 것이며, 

 

是故問須菩提:“於汝意云何?色與幻有異不?幻與色有異不?乃至受、想、行、識亦如是。”若異者汝應問,若不異不應作是問。須菩提言:“不異。”

이 때문에 수보리존자에게 물으시되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色)이 환(幻)과 다름이 있으며, 환(幻)이 물질 (色) 과 다름이 있는가?

나아가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 또한 그와 같으니, 만약 다르다면 그대는 물어야 하거니와,

만약 다르지 않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하리라.”고 하시자, 수보리존자는 다르지 않다고 한 것이다.

 

問曰:若色不異幻可爾,幻人有色故,云何言受、想、行、識如幻不異?

묻나니, 물질(色)이 환(幻)과 다르지 않다 함은 그럴 수 있으나,

환술로 만들어진 환인(幻人)에게는 물질(色)이 있기 때문이며,

어떻게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 환(幻)과 같아서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幻人有喜、樂、憂、苦相,無智人見,謂爲有受、想、行、識。

답하나니, 환술로 만들어진 (幻人)에게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모양이 있으니,

지혜 없는 사람들은 이러함을 보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며, 

 

復次,佛譬喩欲令人知五受衆虛誑如幻;五受衆雖與幻無異,佛欲令解故,爲作譬喩。衆生謂幻是虛誑;五受衆雖有,與幻無異。是故須菩提一心籌量,知“五衆與幻無異”。

또한 부처님께서 비유를 들어서 사람들에게 “고수(苦受) 낙수(樂受) 희수(喜受) 우수(憂受) 사수(捨受)의 오수중(五受衆)은 거짓이요 마치 환(幻)과 같다.” 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으니, 

오수중(五受衆)이 비록 환(幻)과 다름이 없을지라도 부처님께서는 이를 이해시키고자 하신 까닭에 그들을 위하여 비유를 들어서 중생들에게 “환(幻)은 거짓이니, 오수중이 비록 있을지라도 환(幻)과 차이가 없다.”고 하신 때문에 수보리존자는 일심으로 헤아리면서 오수중과 환이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으니, 

 

所以者何?如幻人色誑肉眼,能令生憂、喜、苦、樂;五受衆亦能誑慧眼,令生貪欲、瞋惱諸煩惱等。

왜냐하면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환인은 물질로 된 육안(肉眼)을 속이면서 근심과 기쁨과 괴로움과 즐거움을 내게 하듯이

오수중(五受衆)도 혜안(慧眼)을 속이면서 탐욕과 성냄과 모든 번뇌 등을 내게 하기 때문이다.

 

如幻,因少許呪術、物事、語言爲本,能現種種事,城郭、廬觀等;五受衆亦以先世少許無明術因緣,有諸行、識、名色等種種,以是故說不異。

마치 환(幻)이 조그마한 주술(呪術)과 사물과 언어를 근본으로 삼아 갖가지 일과 성곽(城郭)과 집과 누각 들을 나타낼 수 있듯이,

오수중(五受衆) 또한 전생의 조그마한 무명의 재주(꾀)인 무명술(無明術)의 인연으로 모든 지어감(行)ㆍ분별(識), 이름과 모양의 명색(名色) 등의 갖가지가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니, 

 

如人見幻事生著心,廢其生業,幻滅時生悔;五受衆亦如是,先業因緣幻生今五衆,受五欲、生貪瞋,無常壞時,心乃生悔:“我云何著是幻五衆,失諸法實相?”

마치 어떤 사람이 헛것을 보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서 그 생업(生業)까지 그만두었다가, 헛것이 사라진 뒤에는 후회하는 것과 같이, 오수중 또한 그와 같아서 전생의 업 인연이 짓는 헛것(幻)에 의하여 지금의 오중이 생기는 것이고,

색욕(色欲)·성욕(聲欲)·향욕(香欲)·미욕(味欲)·촉욕(觸欲)의 오욕(五欲)을 받아 탐내고 성내다가 무상(無常)하게 무너질 때에 마음에 뉘우침이 생겨서 “나는 어째서 헛것인 오중(五衆)에 집착하여 제법의 실상(實相)을 잃어버렸는가!”라고 하는 것이다.

 

佛問,須菩提樂說門故答言:“幻與色不異。”若不異,是色法卽是空,入不生不滅法中;法若不生不滅,云何行般若波羅蜜得作佛?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존자에게 요설문(樂說門)으로 물으셨기 때문에 대답하기를 “헛것도 물질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으니,

만약 다르지 않다면 이 물질의 색법이 곧 공인 색법즉시공(色法卽是空)이라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법(不生不滅法) 안에 들어가나니,

만약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이 될 수 있겠는가!

 

須菩提作是念:‘若爾者,菩薩何以故種種行道,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佛知其念,卽答:“五衆虛誑,但以假名故,號爲菩薩。”是假名中,無業、無業因緣,無心、無心數法,無垢、無淨,畢竟空故。

수보리존자는 생각하기를 ‘만약 그러하다면 보살은 무엇 때문에 갖가지의 도(道)를 행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일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아시고 이내 대답하시어, “오중은 거짓이며, 단지 가명(假名)으로써 보살이라 할 뿐이다.”라고 하신 것이니, 

이 임시의 이름인 가명(假名) 가운데에는 업도 없는 무업(無業)이고, 업의 인연도 없는 무업인연(無業因緣)이며, 마음도 없는 무심(無心)이고, 마음에 속한 법도 없는 무심수법(無心數法)이며, 더러움도 없는 무구(無垢)이고, 깨끗함도 없는 무정(無淨)이나니,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다.

 

佛言:“菩薩應如幻人行般若波羅蜜,五衆卽是幻人無異,從先世業因緣、幻業出故。

是五衆亦不能得成就佛。何以故?性無所有故。”餘夢、化、影、響等亦如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마땅히 환술로 만들어진 환인(幻人)과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야 한다.”고 하셨으니,

오중(五衆)이 곧 환술로 만들어진 환인(幻人)과 다름이 없음은 전생의 업 인연으로부터 환술의 환업(幻業)이 나왔기 때문이며, 

이 오중(五衆) 또한 부처님을 성취할 수가 없나니, 왜냐하면 성품이 있는 바가 없는 성무소유(性無所有)이기 때문이며,

그 밖의 여몽(如夢, 꿈), 여환(如幻 허깨비), 여환(如幻 허깨비),여영(如影, 그림자), 여향(如響, 메아리) 같은 것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問曰:何以故說“識卽是六情,六情卽是五衆”?

묻나니, 무엇 때문에 “분별(識)이 곧 육정(六情, 안·이·비·설·신·의)이요 육정이 곧 오중(五衆, 수ㆍ상ㆍ행ㆍ식)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是識,十二因緣中第三事,是中亦有色,亦有心數法,未熟故受識名,從識生六入,是二時俱有五衆。色成故名五情,名成故名意情;六情不離五衆,以是故說識卽是六情。

답하나니, 이 의식의 식(識)은 12인연(因緣) 가운데 세 번째의 것으로, 이 식(識)에서 물질(色)의 색온(色蘊)이 있게 되고 또한 마음에 속한 심수법도 있게 되는 것이지만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識, 전오식前五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며,

이 의식(識)으로부터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 의입(意入)의 육입(六入)이 생기나니, 이러한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입(入)이 있게 되는 두 때(二時)에 다 함께 오중이 있으며, 

물질(色)이 성립되기 때문에 눈(眼)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의 오정(五情)이라 하고

명색(名色)이 성립되기 때문에 의정(意情)이라 하며,

육정은 오중을 여의지 않기 때문에 ‘의식(識)이 곧 육정(六情)’이라하는 것이다.

 

12인연(因緣)=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6입(六入, 또는 六處: sadayatana)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6입(入)이 있다. 6입이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마음(意)등의 6 가지의 감각기관, 즉 6근(根)이다. 이것은 인식 기관이다.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6입이 있다.”라는 것을 좀 더 풀이해서 말하면 “인식의 대상[境]인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인식의 기관[根]인 육입이 있다.”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여기에서 식, 명색, 6입 등 3항목[三支]은, 시간적으로 선후의 관계로 보지 말고 동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식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인 명색과 그것을 인식 할 수 있는 기관인 6입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식이 행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식을 행 다음에 놓은 것이다. -불교용어 사전 

 

6식의 각각의 명칭을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으로 명명한 것은 식 즉 요별이 일어날 때 그 의지처[根] 또는 인식기관[根]이 되는 안근(眼根) · 이근(耳根) · 비근(鼻根) · 설근(舌根) · 신근(身根) · 의근(意根)의 6근을 따라 명명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식 즉 요별이 일어날 때의 그 대상인 색경(色境) · 성경(聲境) · 향경(香境) · 미경(味境) · 촉경(觸境) · 법경(法境)의 6경에 따라 구분하여 색식(色識) · 성식(聲識) · 향식(香識) · 미식(味識) · 촉식(觸識) · 법식(法識)으로 명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점은 현대에서 지각 또는 의식을 구분할 때 시각 · 청각 · 후각 · 미각 · 촉각 · 의식(생각) 등으로 주로 인식대상을 기준으로 명명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6식(六識)의 각각은 식(識) 즉 요별(了別: 앎)의 뜻을 바탕으로 보통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아래의 정의에서 주의할 점으로는, '요별의 작용', '앎' 또는 '지식'외에 별도의 행위자, 아는 자 또는 지식을 소유한 자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요별 = 앎 = 지식 = 마음 = 요별하는 자 = 아는 자 = 지식을 소유한 자'이다.
안식(眼識): 안근(眼根)을 소의(所依)로 하여 색경(色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이식(耳識): 이근(耳根)을 소의(所依)로 하여 성경(聲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비식(鼻識): 비근(鼻根)을 소의(所依)로 하여 향경(香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설식(舌識): 설근(舌根)을 소의(所依)로 하여 미경(味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신식(身識): 신근(身根)을 소의(所依)로 하여 촉경(觸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의식(意識): 의근(意根)을 소의(所依)로 하여 법경(法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위키

 

問曰:若爾者,十二因緣中處處皆有五衆,何以但說六情有五衆?

묻나니, 만약 그렇다면 12인연 중에는 곳곳마다 모두 오중이 있게 되거늘 무엇 때문에 단지 “육정에만 오중이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是識今身之本,衆生於現在法中多錯;名色未熟,未有所能故不說;六情受苦樂,能生罪福故說。其餘十一因緣,故說五衆。

답하나니, 이 의식(識)은 현재 몸의 근본이며, 중생은 현재의 법 가운데에서 착오가 많게 되어서, 이름과 물질의 명색(名色)은 아직 성숙되지 못하고 아직 능(能)한 바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이고,

육정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으면서 죄와 복을 짓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며,

그 밖의 열한 가지 인연 때문에 오중을 말한 것이다.

 

復次,佛知五百歲後,學者分別諸法相各異,離色法說識,離識法說色;欲破是諸見,令入畢竟空故,識中雖無五情,而說“識卽是六情”;六情中雖不具五衆,而說“六情卽是五衆”。

또한 부처님께서는 5백 년 뒤에 배우는 이들이 제법상(諸法相)을 저마다 달리 분별하여서,

색법(色法)을 여의고 분별(識)을 말하기도, 하고 의식의 식법(識法)을 여의고 물질(色)을 말하는 것을 아셨기에 그 모든 견해를 깨뜨리고 필경공(畢竟空)에 들게 하고자 하신 까닭에 의식(識) 가운데에는 비록 육정(六情)이 없을지라도

“의식(識)이 곧 육정이다.”라고 하신 것이며, 육정 가운데에서 비록 오중(五衆)이 아직 갖추어지지 못하였을지라도 “육정이 곧 오중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復次,先世但有心住六情,作種種憶想分別故,生今世六情、五衆身;從今世身起種種結使,造後世六情、五衆;如是等展轉。是故說“識卽是六情,六情卽是五衆”。是法內空中不可得,乃至無法有法空中不可得。

또한 전생에서는 마음이 단지 육정에만 머무르면서 갖가지의 생각과 분별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의 육정과 오중의 몸이 생겼으며,

금생의 몸으로부터는 갖가지의 결사(結使)를 일으켜서 후세의 육정과 오중을 만들게 되는 것이라.

이와 같이 차츰차츰 전전하게 되나니, 이 때문에 “의식(識)이 곧 육정이요 육정이 곧 오중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이 법은 모든 분별(分別) 작용(作用)이 끊어진 내공(內空)에서도 얻을 수 없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가운데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