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43권 9
大智度論 釋行相品 第十 卷第四十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0. 행상품(行相品)을 풀이함 6
問曰:菩薩用是畢竟空學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云何言“無法可學”?
묻나니, 보살은 이 필경공(畢竟空)으로써 육바라밀 내지 18불공법을 배우거늘,
어떻게 법으로서 배워야 할 것이 없는 무법가학(無法可學)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答曰:此中佛自說:“諸法不如凡夫所著" 凡夫人心有無明、邪見等結使,所聞、所見、所知,皆異法相;
乃至聞佛說法,於聖道中、果報中皆著,污染於道。
답하나니, 이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제법은 범부가 집착하는 바와 같지 않느니라. 범부의 마음에는 무명과 삿된 견해 등의 결사(結使)가 있는지라 듣고 보고 아는 바의 모두가 법상(法相)과 다르며,
나아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도 성인의 성도(聖道)와 과보(果報)에 대하여 모두 집착하므로 도(道)를 오염시키느니라.”고 하신다.
舍利弗白佛言:“若凡夫人所見皆是不實,今是諸法云何有?”
佛言:“諸法無所有,凡夫人於無所有處亦以爲有。”所以者何?是凡夫人離無明、邪見不能有所觀。
사리불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만약 범부인이 보는 바가 모두 진실하지 않은 것이라면, 지금의 이 제법은 어떻게 있는 것인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법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니라.
범부인들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에서 또한 있다고 여기나니,
왜냐하면 이 범부인은 무명과 삿된 견해를 여의고는 볼 수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고 하신다.
以是故說:著無所有故,名爲無明;譬如空拳以誑小兒,小兒著故,謂以爲有。
이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무소유(無所有)에 집착하기 때문에 무명(無明)이라 한다.”고 하셨으니,
비유하자면, 빈주먹으로 어린아이를 속일 때, 어린아이는 집착하기 때문에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舍利弗問佛:“何等法無所有,著故名無明?”佛答:“色乃至十八不共法。”
사리불존자가 부처님께 묻기를 “어떠한 법을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에 집착하기 때문에 무명이라 하는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답하시되 “물질(色)에서부터 18불공법까지이니라.”고 하셨다.
是中無明、愛故,憶想分別:是明、是無明,墮有邊、無邊,失智慧明;
失智慧明故,不見、不知色畢竟空、無所有相,自生憶想分別而著,乃至識衆、十二入、十八界、十二因緣。
이 가운데에서 무명에 애착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이것은 명(明)이다, 이것은 무명(無明)이다.”라고 하며,
치우침이 있다는 유변(有邊) 치우침이 없는 무변(無邊)의 이변(二邊)에 떨어지면서 지혜의 광명을 잃게 되는 것이며,
지혜의 광명을 잃기 때문에 물질의 필경공(畢竟空)이요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상(無所有相)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스스로 생각과 분별을 내어서, 식중(識衆)ㆍ12입(入)ㆍ18계(界)ㆍ12인연(因緣)에 이르기까지 집착하는 것이다.
或聞善法,所謂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亦如世閒法,憶想分別著聖法亦如是。
以是故,名墮凡夫數,如小兒,爲人輕笑。如人以指示月,愚者但看指,不看月;
智者輕笑言:“汝何不得示者意!指爲知月因緣,而更看指不知月。”
혹은 착한 선법으로서 이른바 육바라밀 내지 18불공법을 듣기도 하지만, 역시 세간의 법처럼 생각하여서 분별하고 집착하며, 성인의 성법(聖法)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기 때문에 범부의 범주인 범부수(凡夫數)에 떨어진다고 하시며,
마치 어린아이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과 같으며,
마치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적에 어리석은 이는 다만 손가락만을 보면서 달을 보지 않으므로 지혜 있는 이가 비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가리키는 이의 뜻을 얻지 못하는가?
손가락은 달을 알리기 위한 인연인데도 다시 손가락만을 보면서 달을 모르는구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諸佛賢聖爲凡夫人說法,而凡夫著音聲語言,不取聖人意,不得實義;
不得實義故,還於實中生著。
모든 부처님과 성현들은 범부인들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지만, 범부들은 음성과 언어에 집착하면서 성인의 뜻을 취하지 않고 진실한 이치의 실의(實義)를 얻지 못하나니,
진실한 이치의 실의(實義)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도리어 진실 가운데에서 집착을 내는 것이라.
佛今說凡夫所失,故言“不能過三界,亦不能離二乘”。
不得聖人意故,聞說諸法空而不信,不信故不行、不住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
以失如是功德故,名爲“凡夫小兒”。
부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면서 “범부인은 잃은 바가 있기 때문에 삼계(三界)를 벗어날 수도 없고 또한 이승(二乘)을 여읠 수 없다.”고 하셨으며,
성인의 뜻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제법이 공(空)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불신(不信)하고,
불신(不信)하기 때문에 행하지 않는 불행(不行)이며,
6바라밀 내지 18불공법에 머무르지 않는 불주(不住)인 것이다.
이와 같이 공덕을 잃고 있기 때문에 범부요 어린아이라 하는 것이다.
是小兒著五衆、十二入、十八界、三毒諸煩惱,乃至六波羅蜜、十八不共法、
阿耨多羅三藐三菩提皆著,是故名爲“著者”。
이 어린아이는 오중(五衆, 오온)ㆍ12입ㆍ18계ㆍ삼독(三毒, 탐진치)의 모든 번뇌에 집착하고
이에 육바라밀과 18불공법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집착하나니,
이 때문에 집착하는 착자(著者)라 하는 것이다.
舍利弗問:“若菩薩如是行,是名不行般若波羅蜜?
不行般若波羅蜜,不得薩婆若?”佛可舍利弗言:“如是!如是!”
사리불존자가 여쭈어 묻기를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는 것이라 하는 것이니,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으면 살바야도 얻지 못한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사리불의 말을 옳다고 하시면서 “참으로 그러하느니라.”고 하셨으며,
卽爲說因緣,所謂新行菩薩無方便力,聞是般若波羅蜜,憶想分別尋求欲取,作是念:
“我捨世閒樂,復不能得般若波羅蜜,是爲兩失!”專求欲得。
그리고는 곧 그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새로 행하는 신행(新行) 보살이 방편의 힘이 없는 무방편(無方便)이라서, 이 반야바라밀을 듣고서 생각하고 분별하고 찾고 구하고 취하고자 하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세간의 쾌락을 버렸으니, 반야바라밀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양쪽 모두를 잃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오로지 구하며 얻고자 하는 것이니라.
或謂說空是般若波羅蜜。或說空亦空是般若波羅蜜,或說諸法如實相是般若波羅蜜;
如是用六十二見、九十八使煩惱心,著是般若波羅蜜,乃至一切種智亦如是。
혹 말하여지는 바로는, ‘공(空)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말하기를 ‘공(空) 그것 또한 공(空)한 것이 반야바라밀이다.’고 하기도 하며,
혹은 ‘제법의 여실한 여실상(如實相)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다.’고 하기도 하느니라.
이와 같은 62가지 견(見, 견해)과 98가지의 번뇌의 마음으로써 이 반야바라밀에 집착하며, 나아가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以是著心學諸法,不能得薩婆若。與此相違者,能行般若波羅蜜,亦能得薩婆若,所謂不見般若波羅蜜,不見行者,不見緣法,不見亦不見。
이 집착하는 착심(著心)으로써 제법을 배운다면 살바야(일체지)를 얻을 수 없느니라.
하지만 이와 반대라면 반야바라밀을 능히 행하고 또한 살바야를 얻을 수가 있나니,
이른바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는 불견(不見)이고,
수행하는 이도 보지 않는 불견(不見)이며,
반연하는 법도 보지 않고 보지 않는 불견(不見)이며,
불견(不見) 또한 보지 않는 불견(不見)이니라.”
舍利弗更問不見因緣。佛答:是菩薩入十八空故不見,非以無智故不見。
사리불존자가 다시 ‘보지 않는 불견(不見)의 인연’을 묻자,
부처님께서 답하시되 “이 보살은 18공(空)에 들었기 때문에 불견(不見)일 뿐,
지혜가 없기 때문에 불견(不見)인 것이 아니니라.”고 하신 것이다.
大智度論卷第四十三終 대지도론 제 43 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