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2권 2

Skunky 2024. 6. 18. 08:00

大智度論釋 集散品 第九 卷第四十二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9. 집산품(集散品) 풀이함 2

 

問曰:未行般若波羅蜜時,爲有菩薩耶?今何以故言“不見菩薩行般若波羅蜜”?

묻나니,아직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았을 때에도 보살이 있는 것입니까?

지금 무엇 때문에보살로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는 보지 못한다.”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從無始已來衆生不可得,非行般若波羅蜜故不可得。但以虛誑顚倒,凡夫人隨是假名故謂爲有;今行般若波羅蜜,滅虛誑顚倒,了知其無,非本有今無;本有今無,則墮斷滅。

답하나니, 비롯됨이 없는 무시(無始) 때부터 중생은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니,

반야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에 불가득(不可得)인 것은 아니다.

다만, 허광(虛誑)되 뒤바뀌어서 전도(顚倒)된 범부들은 임시의 이름인 가명(假名) 따르는 까닭에 있는 것이라고 여길 뿐이다.

지금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허광(虛誑)되 전도(顚倒)됨 소멸되어 없음의 무(無)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요, 본래 있었던 것이 지금은 없게된 것이 아니며, 

본래 있던 것이 지금은 없게 된 것이라 단멸(斷滅, 단멸견) 떨어지는 것이.

 

復次,須菩提心悔,畏破妄語戒。所以者何?佛法中一切諸法決定無我,而我說言“有菩薩,爲說般若波羅蜜”,則墮妄語罪,是故心悔。

또한 수보리 존자는 마음으로 뉘우치면서 거짓말하지 않아야 하는 계율의 망어계(妄語戒)를 깨뜨릴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의법에서 일체법들은 결정코 무아(無我)이 때문이다.

그런데 '나'라고 말하면서보살이 있고 그들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한다.” 한다면 망어죄(妄語罪)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뉘우치는 것이며, 

 

復次,有心悔因緣:一切法以不可得空故皆空。所以者何?無集、無散故。

또한 마음으로 뉘우치는 인연이 있는 것이니, 일체법은 불가득공(不可得空)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空)한 것이니,

왜냐하면 쌓임의 집(集) 없고 흩어짐의 산(散) 없기 때문이라.

 

譬如眼、色因緣生眼識,三事和合故生眼觸,眼觸因緣中卽生受、想、思等心數法。是中邪憶念故,生諸煩惱罪業;正憶念故,生諸善法。善惡業受六道果報,從是身邊復種善惡業。如是展轉無窮,是名爲“集”。餘情亦如是。

비유하자면, 마치 눈(眼)과 빛깔(色, 물질)의 인연으로 안식(眼識) 생기고, 

안, 색, 안식(眼, 色, 眼識) 가지가 화합하기 때문에 눈의 접촉인 안촉(眼觸) 생기며,

안촉(眼觸) 인연으로  ()ㆍ상()ㆍ사() 등의 마음에 속한 심수법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가운데에서 삿되게 생각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때문에 모든 번뇌와 죄업이 생기고

바르게 생각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때문에 모든 착한법이 생기는 것이다.

선업(善業) 삿된 악업(惡業)으로(六)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니,

몸으로 인하여 선업(善業)과 삿된 악업(惡業) 심으면서, 이와 같이 전전하여 끝없이 헤매게 되나니,

이를 쌓임의 집(集)이라 하는 것이며 밖의 비설신의(鼻舌身意)의 오(五)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散”者,是眼識等諸法,念念滅故、諸因緣離故。是眼識等法,生時無來處,非如田上穀,運致聚集;若滅時無去處,非如散穀與民。是名略說諸法集散相。生時無所從來,散時無所去,是諸法

皆如幻化,但誑惑於眼!

흩어짐의 산(散)이라 것은, 안식(眼識) 등의법이 찰나찰나마다 소멸하기 때문이며 (생각이 순간순간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모든 () ()을 여의기 때문에 안식(眼識) 등의 법이 생길 때에도 오는 곳이 없는 무래처(無來處)이니,

마치 곡식을 운반하여 쌓는 것과 같음 아니요,

소멸할 때에도 가는 곳이 없는 무거처(無去處)이니, 마치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음 아니며,

이렇게 이름하는 것을 간략하게 설하여 제법의 쌓임과 흩어짐의 집산(集散)의 상(相)이라 하는 것이니,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는 무소종래(無所從來)이고,

흩어질 때에도 어디로 가는 데가 없는 무소거(無所去)이니,

 모두는 마치 허깨비와 같은 여환화(如幻化)이라, 단지 눈을 속이면서 헷갈리게 뿐인 것이다.

 

問曰:若爾,有集散相,須菩提何以言“不覺、不得”?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 쌓이고 흩어지는 집산상(集散相) 있는 것이거늘,

수보리 존자는 무엇 때문에 깨닫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한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無來處故,集不可得;無去處故,散不可得。復次,生無故集不可得,滅無故散不可得。畢竟空故集不可得,業因緣不失故散不可得。

답하나니, 오는 곳이 없는 무래처(無來處)이기 때문에 쌓이는 집(集)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고

가는 데가 없는 무거처(無去處)이기 때문에 흩어지는 산(散) 불가득(不可得)이.

또한 생(生)함이 없기 때문에 쌓이는 집(集) 얻을 없고,

소멸(滅)함이 없기 때문에 흩어지는 산(散) 얻을 없으며,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에 쌓이는 집(集) 얻을 없고

업의 인연은 잃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흩어지는 산(散) 얻을 없는 것이다.

 

復次,觀世閒滅諦故,集不可得;觀世閒集諦故,散不可得。如是等義,當知集散不可得,云何當作菩薩字?若强爲名,是名亦無住,亦無不住。

또한 세간의 사라짐의 진리인 멸제(滅諦) 관하기 때문에 흩어지는 산(散) 얻을 없나니,

이와 같은 등의 이치로 쌓임의 집(集)과 흩어짐의 산(散)은 얻을 없는 것이거늘 어떻게 보살의 이름을 짓겠는가.

만약 억지로 보살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이름은 머무름도 없는 무주(無住)이고,

또한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닌 무불주(無不住)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問曰:是名字何以故不住?

묻나니, 명자(名字, 이름)가 무엇 때문에 머무르지 않는 불주(不住)인 것입니까?

 

答曰:名字在法中住,法空故,名字無住處。如車、輪、輞、輻、轂等和合故有車名,若散是和合,則失車名。是車名非輪等中住,亦不離輪等中住;車名字,一、異中求,皆不得!失車名字故,名字無住處。

답하나니, 이름은 안에 있으면서 머무르게 되는 것인데, 그 법이 공하기 때문에 이름은 머무를 곳이 없는 것이다.

마치 수레가 바퀴와 바퀴테와 바퀴살과 바퀴통 등이 화합한 까닭에 수레라는 이름이 있게 되나, 

만약 이렇게 화합한 것들이 흩어지게 되면 수레라는 이름을 잃게 되는 것과 같으니,

수레라는 이름은 바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바퀴 등을 여읜 것에 있는 것도 아니며,

수레는 하나인 것이다 다른 것이다고 하 것에서 수레의 이름을 구하여도 모두 얻을 없으며,

수레라는 이름이 잃게 되는 것이 때문에 머무르는 곳이 없는 무주처(無住處)인 것이다.

 

因緣散時無,何況因緣滅!衆生亦如是,色等五衆和合故,有衆生字;若五衆離散,名字無住處。五衆離散時無,何況無五衆!

() () 흩어지는 때의 산시(散時)조차도 오히려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인과 연이 소멸하는이겠는가.

중생도 그와 같아서 물질 등의(五衆, 오온) 화합한 까닭에 중생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이나,

만약 오중(五衆, 오온)이 여의어서 흩어지게 되면 이름이 머무를 곳이 없는 것이니,  

중을 여의어서 흩어지는 때조차 오히려 없거늘, 하물며중이 없어진 것이겠는가.

 

問曰:若散時名字不可得,和合未散時則有名字,何以言“不可得”?

묻나니, 만약 흩어지는 산시(散時) 이름을 얻을 없다면, 화합하고 있어서 아직 흩어지지 않았을에는 이름이 있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얻을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是菩薩名字一,五衆則有五,一不作五、五不作一。若五作一,如五匹物不得爲一匹用;若一作五,如一匹物不得爲五匹用。以是故,一菩薩字不得五衆中住。

답하나니, 보살이라는 이름은 하나요, 오중은  다섯이라.

하나는 다섯이 되지 못하고, 다섯은 하나가 되지 못하나니,

만약 다섯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마치 다섯 짝의 물건이 짝의 작용을 없는 것과 같고

만약 하나가 다섯이 될 수 있다면, 마치 짝의 물건이 다섯 짝의 작용을 없는 것과 같으니,

때문에 하나의 보살의 이름은 가운데 머무를 수가 없는 것이다.

 

“非不住”者,若名字因緣和合無,則世俗語言、衆事都滅;世諦無故,第一義諦亦無;二諦無故,諸法錯亂!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비불주자(非不住者)라고 함이란,

만약 이름이 () ()으로 화합함이 없는 것이라면, 세속의 언어와 일체의 일들이 모두 소멸할 것이며,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 없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의 진리인 제일의제(第一義諦, paramārtha-satya) 없고

세제와 제일의제, 두 진리가 없기 때문에법은 뒤섞여져서 혼란스러울 것이다.

 

復次,若因緣中有名字者,如說火則燒口,說有則塞口。若名字不在法中者,說火不應生火想,求火亦可得水。從久遠已來,共傳名字故,因名則識事。以是故說“名字義非住非不住”。

또한 만약 인(因)과 연(緣) 이름이 있다면,

불을 말할 때에는 입이 탈것이요, 있다고 말하게 되 입이 막힐 것이며,

만약 이름이 가운데에 있지 않는 것이라면,

불을 말할 때에도 불이라는 생각이 나지 않아야 될 것이고, 불을 구하여도 물을 얻게 것이다.

오랜 옛적부터 그 이름과 함께 전해진 까닭에 그 이름으로 인하여 알게 되는 것이니,

때문에 명자(名字, 이름)와  이치인 명자의(名字義)는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닌 비주비불주(非住非不住)라고 하는 것이.

 

復次,是中須菩提自說因緣:“無所有故,是名字非住非不住。”如菩薩名字,五衆、十二入、十八界等諸法亦如是。

또한 이에 대하여 수보리 존자가 말씀하시기를인연(因緣)은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에,

명자(名字, 이름)는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한 것이다.

마치 보살의 이름과 같아서(五)ㆍ십이(十二)ㆍ십팔(十八) 등의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問曰:如上來說“五衆諸法集散不可得”,今何以復說五衆?

묻나니, 위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오중의법은 쌓임(集)과 흩어짐(散)은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거늘, 지금 무엇 때문에 다시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上直說五衆,今說五衆如夢、如幻。復次,有人謂“凡夫人五衆虛誑不實,如夢,聖人五衆

非是虛誑”;以是故,須菩提說:“如夢、如幻,同皆不住。”

답하나니, 위에서는 곧장중을 설명하였지만, 지금은 “오중은 마치 꿈과 같은 여몽(如夢)이고 환과 같은 여환(如幻)이다.” 설명하며, 

또한 어떤 사람은범부의중은 거짓이요 진실하지 않아서 마치 꿈과 같거니와 성인의중은 거짓이 아니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수보리는마치 꿈과 같은 여몽(如夢)이고 환과 같은 여환(如幻)이며, 똑같이 모두가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