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40권 9
大智度論釋 往生品 第四之下 卷四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5. 탄도품(歎度品)을 풀이함 2
▶論. 問曰:五千比丘中,上有千餘上座,所謂漚樓頻螺迦葉等;何以止說此四人名?
▷논. 묻나니, 천의 비구들 가운데서 위로는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등 천여 분의 상좌(上座)들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리불존자 목건련존자 수보리존자 마하가섭존자, 네 사람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是四比丘,是現世無量福田。舍利弗是佛右面弟子;目揵連是佛左面弟子;須菩提修無諍定,行空第一;摩訶迦葉行十二頭陁第一。
답하나니, 이 네 분의 비구는 바로 현세에서의 한량없는 복전(福田)이시니,
사리불 존자는 바로 부처님의 우면(右面)의 제자이시고, 목건련 존자 바로 부처님의 좌면(左面)의 제자이시며,
수보리 존자는 무쟁정(無諍定)을 닦아 공(空)을 행하는 해공제일(解空第一)로서 첫째이시고,
마하가섭은 12두타(頭陀, dhuta)를 행하는 이로서 으뜸가시는 두타제일(頭陀第一)이시라.
두타(頭陀, dhuta) dhuta‘떨쳐 버린다.’는 의미. 곧 번뇌를 떨쳐버리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열두 가지란, 분소의(糞掃依)ㆍ단삼의(旦三衣)ㆍ상걸식(常乞食)ㆍ부작여식(不作余食)ㆍ일좌식(一坐食)ㆍ일취식(一揣食)ㆍ공한처(空閑處)ㆍ총간좌(塚間坐)ㆍ수하좌(樹下坐)ㆍ노지좌(露地坐)ㆍ수좌(隨坐)ㆍ상좌불와(常坐不臥)를 말한다.
世尊施衣分坐,常深心憐愍衆生。佛在世時,若有人欲求今世果報者,供養是四人,輒得如願。是故,是多知多識比丘及四衆,讚般若波羅蜜。輒 문득 첩
세존께서는 옷을 베풀고 자리를 나누면서 항상 깊은 마음으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나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지라도, 만약 어떤 사람이 금세(今世)에 과보를 구하고자 한다면 이 네 사람에게 공양하기만 하여도 곧 그들이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룰 수 있었나니,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다지다식(多知多識) 비구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사부대중이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는 것이다.
問曰:是阿羅漢最後身,所作已辦,何以復讚歎般若波羅蜜?
묻나니, 이 아라한은 최후의 몸이요 할 일을 다 마쳤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는 것입니까?
答曰:人皆知阿羅漢得無漏道,以菩薩智慧雖大,結使未斷故不貴。又以是阿羅漢有慈悲心,助佛揚化故以之爲證。
답하나니, 사람들은 모두가 아라한은 무루(無漏)의 도를 얻었음을 알며, 보살은 지혜가 비록 크다 하여도 번뇌의 결사(結使)를 아직 끊지 못했기 때문에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이며,
또한 이 아라한은 자비심이 있으면서 부처님을 도와서 교화를 드날리기 때문에 그로써 깨달음의 증(證)을 삼는 것이다.
佛道於世閒中最大,是般若能與此事,故名爲“大波羅蜜”。一切法中智慧第一,故言“尊波羅蜜”。能正導五度,故名“第一波羅蜜”。五度不及,故名爲”勝波羅蜜”。
부처님의 불도(佛道)는 세간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이고, 이 반야는 그러할 수 있도록 능히 받쳐 주기 때문에 대바라밀(大波羅蜜)이라 하는 것이고,
일체법 중에서는 지혜가 제일이기 때문에 높은 존바라밀(尊波羅蜜)이라 하는 것이며,
육바라밀 가운데 반야바라밀을 제외한 다섯 바라밀 오도(五度)를 바르게 인도하기 때문에 으뜸가는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이라 하는 것이며,
오도(五度)로서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뛰어난 승바라밀(勝波羅蜜)이라 하는 것이다.
如五情不及意。能自利利人,故名爲“妙波羅蜜”。一切法中無有過者,故名“無上波羅蜜”。無有法與同者,故名“無等波羅蜜”。諸佛名無等,從般若波羅蜜生,故名“無等等波羅蜜”。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전오식(前五識)인 오정(五情)으로는 의식(意識)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으나,
스스로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묘한 묘바라밀(妙波羅蜜)이라 하는 것이며,
일체법 가운데에서 보다 뛰어남이 없기 때문에 위없는 무상바라밀(無上波羅蜜)이라 하며,
어떠한 법도 같이 견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비할 데 없는 무등바라밀(無等波羅蜜)이라 하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을 무등등(無等等)이라 하며, 반야바라밀로부터 출생한 때문에 무등등바라밀(無等等波羅蜜)이라 하는 것이다.
전5식(前五識)이란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 다섯 가지 식(識)을 말하는 것으로, 제6 의식[第六 意識, 뇌] 앞에 있다고 해서 ‘앞 전(前)’자를 붙여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한다.
이 전오식은 각각 보고⋅듣고⋅냄새 맡고⋅맛보고 감촉하는 기능을 가진 식(識)이다. 이 다섯 가지의 식(識)을 국가의 조직에 비유하자면 국정원의 정보요원 기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정보요원은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상부에 보고한다. 정보를 수집해서 판단 기능을 가진 상부에 보고할 뿐, 그 수집한 정보를 자신이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전오식(前五識)은 각자 자신이 담당한 기능의 정보를 수집하여 그 수집된 정보를 각각 제6 의식에 전달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소임을 마친다. 이것이 전5식의 기능이다. - 아미산
是般若波羅蜜畢竟淸淨,不可以戲論破壞,故名“如虛空波羅蜜”。般若波羅蜜中一切法自相不可得,故名爲“自相空波羅蜜”。此波羅蜜中一切法自性空故,諸法因緣和合生,無有自性,故名爲“自性空波羅蜜”。
이 반야바라밀은 마침내 청정한 것이라 희론으로써 파괴할 수 없기 때문에 허공과 같은 여허공바라밀(如虛空波羅蜜)이라 하며,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일체법의 자상은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상이 공한 자상공(自相空波羅蜜)이라 하나니,
바라밀 가운데서는 일체법의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요, 제법은 인연(因緣)으로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라 자성이 없기 때문에 자성공바라밀(自性空波羅蜜)이라 하는 것이며,
諸法中無有自法,故名爲“諸法空波羅蜜”。以此衆生空、法空故破諸法令無所有,無所有亦無所有,是名“無法有法空波羅蜜”。菩薩行是般若波羅蜜,無有功德而不攝者,如日出時華無不敷,故名“開一切功德波羅蜜”。
제법 중에서 스스로의 법이 없기 때문에 제법이 공한 법공바라밀(法空波羅蜜)이라 하며,
중생공(衆生空)과 법공(法空)으로써 제법을 깨뜨려서 아무것도 없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그것까지도 없으며, 없다는 그것 조차도 공한, 무법유법공바라밀(無法有法空波羅蜜)이라 하며,
보살이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공덕마다 포섭하지 않음이 없음이 마치 해가 뜨면 꽃마다 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온갖 공덕을 여는, 개일체공덕바라밀(開一切功德波羅蜜)이라 하는 것이며,
是菩薩心中般若波羅蜜日出,成就一切諸功德,皆令淸淨;般若波羅蜜是一切善法之本,是故名爲”成就一切功德波羅蜜”。世閒無有法能傾動者,故名“不可破壞波羅蜜”。
보살의 마음속에서 반야바라밀의 해가 나와서 일체의 공덕을 성취하여 모두를 청정하게 하나니,
이 반야바라밀은 바로 일체 선법의 근본이기 때문에 일체 공덕을 성취하는 성취일체공덕바라밀(成就一切功德波羅蜜)이라 하며,
세간의 어떠한 법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파괴할 수 없는 불가괴바라밀(不可壞波羅蜜)이라 하는 것이다.
是諸阿羅漢讚歎因緣,所謂三世佛皆從般若波羅蜜生,所謂無比布施乃至無比智慧;世閒中無有與等者,故言“無比”;是六波羅蜜,畢竟淸淨,無有過失,故名爲“無比”,“無比”卽是“無等等”。復次,“無等等” 諸佛名“無等”;與諸佛等,故名爲“無等等”。
이는 모든 아라한이 찬탄하는 인연이니, 이른바 삼세(삼世)의 부처님 모두 반야바라밀로부터 나는 것이며 비할 바가 없는 무비보시(無比布施) 내지는 무비지혜(無比智慧)이며,
세간 가운데서 견줄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에 “무비(無比).”라 하나니, 이 육바라밀은 필경에 청정하여 과실이 없기 때문에 “무비(無比)”라 하는 것으로, 무비(無比)가 바로 무등등(無等等)인 것이다.
또 무등등이란 모든 부처님을 무등(無等)이라 하고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같은 등(等)이기 때문에 무등등(無等等)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三世諸佛中,已有釋迦文佛,何以別說?
묻나니, 삼세의 모든 부처님 중에는 이미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시는데 무엇 때문에 달리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今座上衆皆由釋迦文佛得度,感恩重故別說。如舍利弗說:“我師不出者,我等永爲盲冥!”
답하나니, 지금 자리에 있는 대중들은 모두가 석가모니부처님으로 말미암아 제도될 수 있었고, 은혜를 느낌이 중하기 때문에 특별히 설명한 것이니, 마치 사리불이 “우리의 스승이 나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들은 영원히 소경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諸阿羅漢知三世諸佛皆從般若波羅蜜中出,以是故諸阿羅漢說:“世尊!諸菩薩摩訶薩欲遍知一切法,當習般若波羅蜜"
모든 아라한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나오셨음을 알기 때문에 모든 아라한이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일체법을 두루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阿羅漢讚歎菩薩時,心生恭敬,是故說“禮敬供養”。“天、人、阿修羅”者,說三善道;三惡道無所別知,故不說。佛聞羅漢讚歎已,佛印可言:“如是!如是!應當禮敬供養行般若波羅蜜者"
아라한이 보살을 찬탄할 때 공경심(恭敬心)을 내게 되나니, 이 때문에 “예배하고 공경하고 공양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라 함이란, 삼선도(三善道)를 말하며,
삼악도(三惡道)는 따로 알 바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이 찬탄한 것을 들으신 후 인가(印可)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를 예배하고 공경하고 공양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汝雖無一切智慧,而說不錯,故重言:“如是!如是!”何以故?此中佛自說:“因菩薩故,出生
人道、天道,乃至一切諸菩薩爲安樂一切衆生故說"
그들은 비록 일체지혜(一切智慧)가 없다 하여도, 그 말에 잘못이 없기 때문에 거듭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왜냐하면 이 가운데서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보살로 인하여 인도(人道)와 천도(天道) 내지는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일체의 보살들이 출생하게 되는 것이다.”고 하신 때문이다.
剎利大姓乃至阿迦尼咤,須陁洹乃至諸佛,皆如先說。
찰리의 큰 성바지 내지는 아가니타천과 수다원 내지는 모든 부처님에 대한 설명은 모두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問曰:若因菩薩,有飮食等及諸寶物,人何以力作求生,受諸辛苦乃得?
묻나니, 만약 보살로 인하여 음식 등과 모든 보물이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힘써 일하면서 살고자 하는 것이며, 온갖 고생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입니까?
答曰:飢餓劫時,人雖設其功力,亦無所得,以衆生罪重故。
답하나니, 먹을 것이 없는 기아겁(飢餓劫, durbhikṣa-kalpa) 때 에는 사람이 아무리 그 공력을 베푼다 하여도 역시 얻는 바가 없나니, 중생의 죄가 중하기 때문이다.
菩薩世世讚歎布施、持戒、善心,是三福因緣故有上、中、下。上者,念便卽得;中者,人中尊重,供養自至;下者,施功力乃得。以是故說“因菩薩得”,實而不虛。
보살은 세상마다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선심(善心)을 찬탄하나니, 이 세 가지 복의 인연으로 상ㆍ중ㆍ하가 있게 되는 것으로, 상(上)의 이는 생각만 하여도 곧 얻게 되고, 중(中)의 이는 인간 중에서 존중을 받으면서 공양을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며, 하(下)의 이는 보시한 공력으로 비로소 얻게 되나니,
이 때문에 “보살로 인하여 얻는다.”는 말씀은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다.
樂因緣甚多,不可稱計;今佛略說:“天樂、人樂、涅槃樂,皆由菩薩得"
즐거움의 낙인연(樂因緣)은 심히 많아서 헤아릴 수 없으나, 부처님께서는 간략하게 “천상의 천락(天樂)과 인간의 인락(人樂)과 열반의 열반락(涅槃樂)은 모두가 보살로 말미암아 얻는다.”고 말씀하셨으며,
此中佛自說:“菩薩住六波羅蜜,自行布施,亦敎衆生行布施。”雖衆生自行布施,無菩薩敎導則不能行。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육바라밀에 머물러 스스로 보시를 행하면서 역시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를 행하게 하나니, 비록 중생이 보시를 행한다 하여도 보살의 가르침과 인도함이 없으면 행할 수가 없었느니라.”고 하셨다.
問曰:除解脫樂,此二種樂是衆生生結使處;貪欲因緣故生恚,菩薩何以敎導此結使因緣?
묻나니, 해탈락(解脫樂, 열반락)을 제외한 천락(天樂)과 인락(人樂)은 바로 중생이 번뇌의 결사(結使)를 내는 것으로 탐욕의 인연 때문에 화를 내게 되는데 보살은 무엇 때문에 이 번뇌 결사의 인연을 가르쳐 주고 인도하는 것입니까?
答曰:菩薩無咎!所以者何?菩薩慈悲淸淨心,與衆生樂因緣,敎修福事;若衆生不能淸淨行福德者,於菩薩何咎!如人好心作井,盲人墮中而死,作者無罪!如人設好食施人,不知量者,多食致患,施者無罪!
답하나니, 보살에게는 허물이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은 자비와 청정한 마음으로 중생들에게 즐거움의 인연을 주고 복을 닦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설령 중생이 청정하게 복덕을 행할 수 없다 하여도 어찌 보살에게 허물이 있겠는가!
마치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우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눈먼 사람이 그 안에 빠져서 죽었다 하여도 만든 사람에게는 죄가 없는 것과 같고, 마치 사람이 좋은 음식을 남에게 베풀었을 때 적당한 양을 모르는 자가 과식해서 탈이 났다 할지라도 베풀어 준 이에게 죄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若諸佛菩薩不敎衆生作福德因緣,則無天、無人、無阿修羅;但長三惡道,無從罪得出者。
또한 만약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들에게 복덕 짓는 인연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하늘 사람 아수라의 삼선도(三善道)도 없이 단지 삼악도(惡道)만이 자라서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이며,
復次,衆生樂因緣故生貪,貪因緣故生恚,恚因緣故生苦,苦因緣故生罪;今欲免衆生於第五罪中,是故與樂。
또한 중생들은 즐거움의 낙인연(樂因緣) 때문에 탐욕이 생기고,
탐욕의 탐인연(貪因緣) 때문에 화를 내게 되며,
화를 내는 에인연(恚因緣)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고,
괴로움의 고인연(苦因緣) 때문에 죄가 생기나니,
중생들을 이러한 다섯 번째의 죄 가운데서 면하게 하여 주고자 즐거움(樂)을 주는 것이며,
復次,非定樂因緣生貪欲。或正憶念故,樂爲善福因緣;邪憶念故生貪欲。今爲正憶念樂故,令生福德因緣。
또한 반드시 즐거움의 낙인연(樂因緣) 때문에 탐욕이 생기지는 않는 것이니,
혹은 바르게 기억하는 정억념(正憶念) 때문에 생기는 즐거움(樂)은 착함과 복의 인연이 되기도 하고
삿된 기억의 사억념(邪憶念) 때문에 탐욕을 내기도 하나니,
지금 여기에서는 바른 기억의 즐거움 때문에 복덕의 인연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復次,唯佛一人無錯無失。是菩薩未成就佛道、未得佛眼故,以三種樂故敎化可度衆生;諸佛但以解脫樂敎化衆生。
또한 오직 부처님 한 분만이 착오도 없고 과실도 없으시니,
이 보살은 아직 부처님의 불도를 성취하지 못하였고, 아직 불안(佛眼)을 성취하지 못한 까닭에 하늘, 인간, 아수라, 세 가지의 즐거움인 삼종락(三種樂)으로써 제도해야 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께서는 오직 해탈락(解脫樂)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