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34권 6
大智度論釋初品中 見一切佛世界義 第五十一之餘 卷三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52. 초품 중 믿고 지니며[信持] 삼독(三毒)이 없다는 뜻을 풀이함 1
▶經.“能我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世界中無有婬欲、瞋恚、愚癡,亦無三毒之名。一切衆生成
就如是智慧,善施、善戒、善定、善梵行、善不嬈衆生者,當學般若波羅蜜"
▷經.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때의 세계에는 음욕(婬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가 없고, 또한 삼독(三毒)이라는 이름조차 없으며, 일체 중생들은 이러한 지혜(智慧)를 성취하여 보시를 잘하고, 계율을 잘 지니며, 선정을 잘 닦으며, 범행(梵行)에 잘 머무르며, 중생을 괴롭게 하지 않겠노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問曰:若世界無三毒、亦無三毒名者,佛爲何等故出生其國?
▷論. 묻나니, 만약 세계에 삼독이 없고 또한 삼독이란 이름조차도 없다면 부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 나라에 나시는 것입니까?
答曰:貪欲、瞋恚、愚癡名爲三不善根,是欲界繫法。佛若說貪欲、瞋恚、愚癡,是欲界繫不善;若說染愛、無明,是則通三界。
답하나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컬어 삼불선근(三不善根)이라 하나니, 이것은 욕계에 매인 욕계계법(欲界繋法)이니, 부처님께서 만약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씀하시면, 이것은 욕계에 매인 불선(不善)이 되고, 만약 애욕에 물든 염애(染愛)와 무명(無明)을 말씀하시면 이것은 삼계(三界)에 통하는 것이니,
有佛世界純諸欲人,爲是衆生故,菩薩願言:“我成佛時,國無三毒及三毒之名" 復有淸淨佛國,純阿鞞跋致、法性生身菩薩,無諸煩惱,唯有餘習,是故言“無三毒之名”。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순전히 욕망이 있는 사람들 뿐이니, 이러한 중생들 때문에 보살은 원하기를 “내가 성불할 때의 나라에는 삼독과 삼독이라는 이름조차도 없으리라”고 하는 것이며,
또한 청정한 불국토이기에 그곳에는 순전히 아비발치(阿鞞跋致)의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보살들 뿐이라 여러 번뇌가 없고 오직 번뇌의 습기(習氣)만 남아 있기 때문에 “삼독이라는 이름조차도 없다”고 하는 것이며,
若有人言:如菩薩願言“我當度一切衆生”,而衆生實不盡度;此亦如是,欲令世界無三毒之名,亦應實有三毒不盡。若無三毒,何用佛爲?如地無大闇,則不須日照。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보살은 원하기를, ‘나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말하지만 중생은 실로 다 제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또한 세계로 하여금 삼독이란 이름조차 없게 하고자 하지만, 실은 삼독 또한 다하게 할 수 없는 것이라. 만약 삼독이 없다면 부처님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마치 땅에 어두움이 없다면 해의 조명(照明)이 필요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며,
如經所說:“若無三法則佛不出世,若三法不斷則不得離老、病、死"
“三法”者則是三毒,如『三法經』,此中應廣說。
경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만약 세 가지의 삼법(三法)이 없다면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나오시지 않으셨을 것이니, 만약 이 세 가지의 삼법(三法)을 끊지 않으면 노병사(老病死)를 여읠 수 없으리라”고 하며,
이 세 가지 삼법(三法)이란 바로 삼독을 말하는 것이니, '삼법경(三法經)'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復次,有世界,衆生分別諸法是善、是不善,是縛、是解等,於一相寂滅法中而生戲論;菩薩以是故願言:“令我世界中衆生不生三毒,知三毒實相卽是涅槃"
또한 어떤 세계에서는 중생들이 제법을 분별하면서 “이것은 착한 선(善)이요, 이것은 불선(不善)이요, 이것은 속박(束縛)이요, 이것은 해탈(解脫)이다”라고 하면서, 일상(一相)이며 고요히 갈 앉은 적멸법(寂滅法) 가운데에서 쓸모없는 희론(戲論)을 내고 있으니, 이 때문에 보살은 원하기를 “나의 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삼독이 생기지 않게 하고 삼독의 실상(實相)이 바로 열반임을 알게 하겠노라”고 하는 것이다.
問曰:一切衆生得如是智慧,是何等智慧?
묻나니, 일체 중생이 이와 같은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어떠한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智慧是世閒正見。世閒正見中,說有布施、有罪福、有今世後世、有阿羅漢。信罪福故,能善布施。信有阿羅漢故,能善持戒、善禪定、善梵行。得正見力故,能善不嬈衆生。世閒正見是無漏智慧根本,以是故說“國中無三毒之名”。
답하나니, 지혜란 바로 세간의 바른 소견인 세간정견(世閒正見)이며,
세간정견(世閒正見)에는 “보시가 있고 죄와 복이 있으며, 금세와 후세가 있고 아라한이 있는 것이다”고 말하는 것으로,
죄와 복을 믿기 때문에 보시를 잘할 수 있고, 아라한이 있음을 믿기 때문에 계율을 잘 지닐 수 있으니, 선정을 잘 닦아서 범행(梵行)에 머무를 수 있으며, 바른 소견인, 정견(正見)의 힘을 얻게 되기 때문에 중생을 괴롭히지 않게 할 수 있나니,
세간정견(世閒正見)이 바로 무루지혜(無漏智慧)의 근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 안에 삼독이라는 이름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貪欲有二種:一者、邪貪欲,二者、貪欲。瞋恚有二種:一者、邪瞋恚,二者、瞋恚。愚癡有二種:一者、邪見愚癡,二者、愚癡。是三種邪毒衆生難可化度,餘三易度。“無三毒名”者,無邪三毒之名。“善布施”等五事,如上」放光品」中說。
탐욕(貪欲)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삿된 탐욕의 사탐욕(邪貪欲)이고, 둘째는 탐욕(貪欲) 그 자체이며,
성을 내는 진에(瞋恚)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삿되게 성을 내는 사진에(邪瞋恚)이고, 둘째는 그냥 화를 내는 진에(瞋恚)이며,
어리석음의 우치(愚癡)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삿된 소견으로 어리석은 사견우치(邪見愚癡)이고,
둘째는 그냥 어리석은 우치(愚癡)라.
이러한 사탐욕(邪貪欲), 사진에(邪瞋恚), 사견우치(邪見愚癡)의 세 가지의 사독(邪毒)이 있는 중생은 제도하기가 어렵지만 나머지의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를 가지고 있는 중생은 제도하기가 쉬우며,
삼독의 이름조차 없는 것이란, 이 삿된 사삼독(邪三毒)의 이름이 없다는 것이며,
보시를 잘하는 선보시(善布施) 선지계(善持戒) 선선정(善禪定) 선범행(善梵行) 선불요중생(善不嬈衆生) 등의 다섯 가지는 위의 '방광품(放光品)'에서의 설명과 같은 것이다.
▶經.“使我般涅槃後,法無滅盡,亦無滅盡之名,當學般若波羅蜜"
▷經. “내가 열반한 뒤에도 법이 다하여 멸진(滅盡)하지 않게 하고, 멸진(滅盡)한다는 말조차 없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問曰:佛爲法王尚自滅度,云何言“法無滅盡”?
▷論.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법왕(法王)이셨으나, 오히려 스스로 멸도(滅度)하셨는데 어떻게 법이 다하여 멸진(滅盡)하지 않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如上說,是菩薩願事不必實。一切有爲法,從因緣和合生,云何常住而不滅?佛如日明,法如日沒餘光,云何日沒而餘光不滅?但久住故,無能見滅者,故名不滅。
답하나니, 앞에서의 설명과 같이, 이것은 보살이 소원하는 것일 뿐 반드시 실사(實事)인 것이 아니며, 또한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인연화합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어떻게 항상 머무르면서 소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는 마치 해의 광명과 같으며, 법은 마치 해질녁의 남은 햇살과 같은 것으로, 어떻게 해가 진 후에 햇살이 소멸하지 않겠는가! 다만 오래도록 머무르는 까닭에 소멸하는 것을 보는 자가 없을 뿐이므로 소멸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復次,是菩薩見諸佛法住有多有少,如迦葉佛法住七日,如釋迦牟尼佛法住千歲;是故菩薩發是願言:“法雖有爲,願令相續不滅;如火得薪,相傳不絕"
또한 이 보살은 모든 불법이 오래 머무름도 있고, 짧게 머무름이 있음을 보나니,
가섭(迦葉) 부처님의 법은 7일 동안 머물렀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은 천 년 동안 머무르기 때문에 보살은 이러한 원을 세워서, “법(法)은 비록 유위(有爲)일지라도 원컨대 서로 이어져서 소멸하지 않음이 마치 불이 섶을 만나 서로 이어가면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것과 같게 하소서”라고 하는 것이다.
復次,諸法實相名爲佛法。是實法相,不生不滅、不斷不常、不一不異、不來不去、不受不動、不著不依、無所有,如涅槃相。法相如是,云何有滅?
또한 제법의 실상(實相)을 일컬어 불법(佛法)이라 하나니, 이 실상의 법상(法相)은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는 불단불상(不斷不常)이며,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불일불이(不一不異)이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불래불거(不來不去)이며, 받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불수불동(不受不動)이며, 붙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 불착불의(不著不依)이라,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니, 마치 열반의 상(相)과 같은 것이라.
법상(法相)이 이와 같으니 어떻게 멸함이 있겠는가!
問曰:法相如是者,一切佛法皆應不滅!
묻나니, 법상(法相)이 그와 같다면, 일체 부처님의 법 역시도 소멸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荅曰:如所言,諸法實相無有滅者。有人憶想分別取諸法相、壞實法相,用二法說,是故有滅;實相法中無有滅也。
답하나니, 말한 바대로 제법의 실상(實相)에서는 소멸하는 것이 없으나, 어떤 사람은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제법의 상(相)을 취하여 진실한 법상(法相)을 무너뜨려서 두 가지의 이법(二法)으로써 설명하기 때문에 소멸함이 있다고 하는 것이나, 실상법(實相法)에서는 소멸함이 없는 것이다.
復次,行般若波羅蜜無㝵法、集無量功德故,隨其本願,法法相續,無有見其滅者;譬如仰射虛空,箭去極遠,人雖不見,要必當墮。
또한 반야바라밀의 장애 없는 무애법(無㝵法)을 행하여 무량한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그 본래의 서원에 따라 법과 법이 서로 이어지면서 그 소멸함을 보지 않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을 향하여 활을 쏘아 올리면 화살이 극히 멀리 날아가므로 비록 사람이 보지는 못할 뿐, 반드시 화살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經.“‘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十方如恒河沙等世界中衆生聞我名者,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欲得如是等功德者,當學般若波羅蜜"
▷經.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시방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세계의 중생으로서 나의 이름을 듣는 이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리라”고 하는 등과 같은 공덕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問曰:有人生値佛世,在佛法中,或墮地獄者,如提婆達、俱迦利、訶多釋子等,三不善法覆心故墮地獄。此中云何言“去佛如恒河沙等世界,但聞佛名便得道”耶?
▷論. 묻나니,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 부처님의 불법 안에 있으면서도 혹은 지옥에 떨어지는 이도 있으니, 제바달(提婆達, 제바달다[提婆達多, Devadatta)와 그의 제자 구가리가(俱迦利訶, kokalika)와 같은 이들과 많은 석가의 제자들은 세 가지의 착하지 않은 삼불선법(三不善法)으로 마음이 가리워졌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어찌하여 부처님과의 거리가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멀리 떨어진 많은 세계까지 다만 부처님의 이름만을 듣고도 곧 도를 얻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上已說有二種佛:一者、法性生身佛,二者、隨衆生優劣現化佛。爲法性生身佛故,說“乃至聞名得度”;爲隨衆生現身佛故,說“雖共佛住,隨業因緣有墮地獄者”。
답하나니,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두 가지의 부처님이 계시나니,
첫째는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부처님이고, 둘째는 중생의 우열(優劣)에 따라 변화하여 나타나는 부처님이신 화불(化佛)이라.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부처님이신 까닭에 이름만을 듣게 되어도 도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며,
중생의 우열을 따라서 몸을 나타내는 화불(化佛)이란, 비록 부처님과 함께 머무른다 하여도 업의 인연에 따라 지옥에 떨어지는 이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法性生身佛者,無事不濟、無願不滿。所以者何?於無量阿僧祇劫積集一切善本功德,一切智慧無㝵具足,爲衆聖主,諸天及大菩薩希能見者。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부처님이라면 일마다 구제하지 않으심이 없으며, 소원마다 만족시키지 않으심이 없으시니, 왜냐하면,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 일체 선함의 근본인 선본(善本)의 공덕을 쌓아서 일체지혜가 막힘없이 구족되었으므로 여러 성주(聖主)들과 모든 하늘들과 큰 보살들이 능히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분이기 때문이라.
譬如如意寶珠難見、難得,若有見者,所願必果。如喜見藥,其有見者,衆患悉除。如轉輪聖王,人有見者,無不富足。
비유하자면, 여의보주(如意寶珠)는 보기도 어렵고 얻기도 어려우나, 어떤 사람이 만약 보게 되면 소원을 반드시 이루게 되는 것과 같으며, 어떤 사람이라도 희견약(喜見藥)을 보기만 하여도 여러 질병이 다 낫게 되는 것과 같으며, 전륜성왕(轉輪聖王)을 만나게 되는 사람 모두는 부유하게 되는 것과 같으며,
如釋提桓因,有人見者,隨願悉得。如梵天王,衆生依附,恐怖悉除。如人念觀世音菩薩名者,悉脫厄難。是事尚爾,何況諸佛法性生身!
또한 마치 석제환인(釋提桓因)을 만나게 된 사람은 원하는 바를 모두 얻게 되는 것과 같으며, 중생이 범천왕(梵天王)을 의지하면 두려움이 모두 없어지는 것과 같으며, 관세음(觀世音)보살의 명호를 염(念)하는 사람은 모두가 액난(厄難)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일들이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모든 부처님의 법성생신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