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1권 5

Skunky 2024. 4. 8. 08:00

大智度論釋初品中  十八空義 第四十八 卷三十一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8. 초품 십팔공(十八空) 뜻을 풀이함 5

 

問曰:空與空空有何等異?

묻나니, 공(空)과 공공(空空)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空破五受衆,空空破空

답하나니, 공(空)은 고수(苦受) 낙수(樂受) 희수(喜受) 우수(憂受) 사수(捨受)라는 오수중(五受衆) 깨뜨리고,

공공(空空)은  공(空) 마저도 깨뜨리는 것이다.

 

問曰:空若是法空,爲已破;空若非法,空何所破?

묻나니, 만약 공(空) 이것이 공(法空)이라면, 이미 깨트린 것이 되지만,

만약 공(空) 이것이 법공(法空)이 아니라면, 무엇을 깨트린다는 것입니까?

 

答曰:空破一切法,唯有空在;空破一切法已,空亦應捨;以是故,須是空空。

답하나니, 공(空)이 일체법을 깨뜨리면 오직 공(空)이  뿐이며,  

공으로 일체법을 깨뜨린 뒤에는  공(空) 또한 버려야 하나니, 

 때문에  공공(空空)이 필요한 것이다.

 

復次,空緣一切法,空空但緣空。如一健兒破一切賊,復更有人能破此健人;空空亦如是。

또한 공(空)은 일체법을 반연하나, 공공(空空)은 다만 공(空)을 반연할 뿐이니, 

마치 한 사람 건장한 남자가 일체 도적을 깨뜨렸으나, 다른 건장한 사람이  건장한 남자를 깨뜨리는 것과 같이, 공공(空空)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又如服藥,藥能破病;病已得破,藥亦應出,若藥不出,則復是病。以空滅諸煩惱病,恐空復爲患,是故以空捨空,是名空空。復次,以空破十七空故,名爲空空。

또한 약을 먹음으로써 약이 병(病)을 깨뜨리는 것으로 그 병이 벌써 깨뜨려졌다면, 약을 복용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나, 만약 약의 복용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다시  병을 악화시키게 되는 것과 같이,

 공(空)으로써 모든 번뇌의 병을 소멸시켰지만,  공(空)이 또한 근심거리가 될 수 있음을 두려워하는 때문에 공(空)으로써 공(空)을 버리는 것을 바로 공공(空空)이라 하는 것이다.

또한 공(空)으로써 열일곱 가지의 공(空)을 깨뜨리기 때문에 공공(空空)이라 하는 것이다.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1.내공(內空) ‧ 2.외공(外空)ㆍ3.내외공(內外空)ㆍ4.공공(空空)ㆍ5.대공(大空)ㆍ6.제일의공(第一義空)ㆍ7.유위공(有爲空)ㆍ8.무위공(無爲空)ㆍ9.필경공(畢竟空)ㆍ10.무시공(無始空)ㆍ11.산공(散空)ㆍ12.성공(性空)ㆍ13.자상공(自相空)ㆍ14.제법공(諸法空)ㆍ15.불가득공(不可得空)ㆍ16.무법공(無法空)ㆍ17.유법공(有法空) 및 18.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의 십팔공(十八空)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1권 1

 

“大空”者,聲聞法中,法空爲大空。如『雜阿含大空經』說:“生因緣老死。若有人言:是老死、是人老死,二俱邪見" 是人老死則衆生空,是老死是法空。『摩訶衍經』說:“十方、十方相空,是爲大空"

시방(十方)의 상(相)이 공하다는 대공(大空, mahāśūnyatā)이라 함이란, 성문의 법에서는 법이 공함을 대공이라 하나니, 마치 잡아함(雜阿含)의 '대공경(大空經, Mahāśūnyatā-sūtra)'에서 “낢의 생(生)은 늙어 죽음의 노사(老死)에 인연한다”고 설명한 것과 같으니,

만약 어떤 사람이 “이것이 노사(老死)이다”고 하거나 “이것이 사람의 노사(老死)이다”고 한다면,   가지는  같이 삿된견(邪見)이며,

“이것이 사람의 노사(老死)이다"고 하는 것은 바로 중생이 공한  중생공(衆生空)이요 

“이것이 노사(老死)이다”고 한다면 바로 법공(法空)인 것이다.

마하연경(摩訶衍經, 대승의 경)에서는 시방(十方)을 설명하면서 “시방의 상(相) 공한 것이다”하고 하는데, 이것이 대공(大空)인 것이다.

 

問曰:十方空,何以名爲大空?

묻나니, 시방이 공한 것을 무엇 때문에 대공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東方無邊故名爲大,亦一切處有故名爲大,遍一切色故名爲大,常有故名爲大,益世閒故名爲大,令衆生不迷悶故名爲大;如是大方能破,故名爲大空。

답하나니, 동()으로 향하는 것이 끝이 없기 때문에 () 하고,

또한 일체로 향함이 다 그러하하기 때문에 대(大)라 하며, 

일체의 물질(色) 두루하기 때문에 대(大)라 하고, 

항상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大)라 하며, 

세간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대(大)라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미혹하여 번민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대(大)라 하나니, 

이와 같이  방위를 능히 깨뜨리기 때문에 대공(大空)이라 하는 것이.

 

餘空破因緣生法、作法、麤法,易破故,不名爲大;是方非因緣生法、非作法、微細法,難破故,名爲大空。

 밖의 공(空)은 인연(因緣)으로 생긴 법을 깨뜨리고, 

조작된 작법(作法) 거친 추법(麤法)을 깨뜨리나,

이러한 것들을 깨트리기가 쉽기 때문에 () 하지 않지만, 

 방소는 인연으로 생긴 인연법(因緣生)도 아니요, 

조작된 작법(作法) 아니며, 미세한 법이라 깨뜨리기가 어려운 것을 깨트리기 때문에 대공(大空)이라 하는 것이.

 

問曰:若佛法中無方,三無爲:虛空、智緣盡、非智緣盡亦所不攝,何以言“有方亦是常,是無爲法,非因緣生法,非作法,微細法”?

묻나니, 불법(佛法)에서 방소가 없으며, 허공무위(虛空無爲) 지연진무위(智緣盡無爲) 비지연진무위(非智緣盡無爲)라는 삼무위(三無為)에도 역시 속하지 않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방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역시 항상 있는 상(常)이요, 무위법(無爲法)이라서 인연으로 생기는 인연법(因緣生) 아니요 조작되는 작법(作法) 아니며 미세한 법도 아닌 것입니다.

 

答曰:是“方”法,聲聞論議中無。摩訶衍法中,以世俗諦故有,第一義中一切法不可得,何況方!

답하나니, 이러한 방소에 대한 법은 성문의 논의(論議)에는 없는 것이며,

마하연(대승)의 에서는 세속제(世俗諦)로써 있는 것이다. 

제일의(第一義) 안에서는 일체의 법조차 얻을  없는 것이거는 하물며 방소(방위)이겠는가.

 

如五衆和合,假名衆生;方亦如是,四大造色和合中,分別此閒、彼閒等,假名爲方。日出處是則東方,日沒處是則西方,如是等是方相。是方自然常有故,非因緣生;亦不先無今有、今有後無,故非作法;非現前知故,是微細法。

마치 5(衆, 오온) 화합된 것을 임시의 가명(假名)으로 중생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이,

방소 또한 그와 같아서 4대로 이루어진 물질과 화합한 가운데에서 쪽이다 저쪽이다 하는 등으로 분별하여서 붙인 임시의  가명(假名)을 이름하여 방소(방위)라고 하는 것이니,

해가 돋아나오는 곳을 바로 동쪽이라 하고, 해가 지는 곳이 바로 서쪽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등이 바로 방소(방위)의 상(相)이며, 

 방소(방위)는 자연히 항상 있는 것이 때문에 인연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요, 

또한 앞에 없었다가 지금은 있게 된 것도, 지금는 있는 것이나 뒤에는 없게 될 것도 아니기 때문에, 

조작된 작법(作法) 아니며, 바로 눈앞에서   있는 것도 아니니,

이것은 미세한 미세법(微細法)이기 때문이.

 

問曰:方若如是,云何可破?

묻나니, 만약 방소(방위)가 그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깨뜨릴  있는 것입니까?

 

答曰:汝不聞我先說,以世俗諦故有,第一義故破。以俗諦有故,不墮斷滅中;第一義破故,不墮常中。是名略說大空義。

답하나니, 그대는 내가 앞에서 말한 바를 듣지 않았는가!

나는 앞에서 세속의 이치인 세속제(世俗諦)로써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요,

제일의(第一義)에서는 일체의 법조차 얻을 수 없는 것이다”라 하였. 

세속제(世俗諦)로써 존재하는 것이란 아주 없다는 단멸(斷滅, 단멸견) 떨어지지 않는 것이고 

제일의(第一義)로써 깨뜨리는 것은 항상하다는 상(常, 상견)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니, 

이러함이 대공(大空) 뜻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

 

問曰:第一義空亦能破無作法、無因緣法、細微法,何以不言大空?

묻나니, 제일의공(第一義空, paramārthaśūnyatā) 역시도 조작이 없는 무작법(無作法)과 인연이 없는 무인연법(無因緣法)과 미세법(細微法)을 능히 깨뜨릴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대공(大空)이라 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前已得大名,故不名爲大。今第一義名雖異,義實爲大。出世閒以涅槃爲大,世閒以方爲大,以是故第一義空亦是大空。

답하나니, 앞에서 이미 ()라는 이름을 얻었기 때문에 대(大)라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제일의(第一義)라는 이름이 비록 다르기는 하나,  의(義, 이치) 실로 큰 대(大)이니,

출세간(出世間)에서는 열반으로써 대(大)를 삼고 

세간(世間)에서는 방(方, 방소 방위)로써 대(大)를 삼나니, 

 때문에 제일의공(第一義空) 또한 대공(大空)인 것이다.

 

復次,破大邪見故,名爲大空。如行者以慈心緣東方一國土衆生,復緣一國土衆生;如是展轉緣時,若謂盡緣東方國土則墮邊見,若謂未盡則墮無邊見。生是二見故,卽失慈心。

또한  사견(邪見) 깨뜨리기 때문에 대공(大空)이라 하나니,

마치 수행하는 이가 인자한 자심(慈心)으로써 동방의  국토의 중생을 반연하고, 다시 또  국토의 중생을 반연하여, 이렇게 전전하면서 반연할 때에, 만약 동방에 있는 모든 국토를  반연하였다고 한다 끝이 있다는 소견의 변견(邊見) 떨어지게 되는 것이고 

만약 동방에 있는 국토의 중생 전부 반연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끝이 없다는 소견의 무변견(無邊見)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나니, 

이러한  가지의 소견을 내기 때문에  인자한 자심(慈心) 잃게 되는 것이다.

 

若以方空破是東方,則滅有邊、無邊見;若不以方空破東方者,則隨東方心,隨心不已,慈心則滅,邪心則生

만약 방소의 공(空)함으로써  동방을 깨뜨린다면 끝이 있다거나 끝이 없다거나 하는 소견이 소멸되겠지만 

만약 방소의 공(空)함으로써 동방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동방이 있다는 마음을 따르게 되고, 마음을 따르게 되면 인자한 자심(慈心)이 곧 소멸되면서 삿된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譬如大海潮時,至其常限,水則旋還;魚若不還,則漂在露地,有諸苦患;若魚有智,則隨水還,永得安隱。行者如是,若隨心不還,則漂在邪見;若隨心還,不失慈心。如是破大邪見故,名爲大空。

비유하자면, 마치  바다의 조류가 밀려들었다가 나갈 때에  통상의 한계에 이르면 물이 다시 나가게 되나, 물고기가 만약  바닷물의 조류를 따라 되돌아가지 않으면, 드러난 땅에 갖은 괴로움을 받게 되지만, 만약 물고기가 지혜가 있었다면 물을 따라 되돌아가서 영원한 안온을 누리게 되는 것과 같이, 

수행하는  역시도 그와 같아서 만약 마음을 따르면서 되돌리지 않는다면 삿된 소견에서 표류하게 되겠지만, 만약 마음을 따라 되돌아간다면 인자한 자심(慈心)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대사견(大邪見) 깨뜨리기 때문에 대공(大空)이라 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