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현수품(賢首品) 1
①품의 명목 해석; 행에 의거해 보살의 명칭을 세우고, 보살이 설한 법과 행에 의거해 품의 명칭을 세우는 때문이다. 현수라는 것은 여래의 인과와 보현의 5위 行門을 믿고 이해하되, 心行이 순조롭고 온화하고 정직해서 깊은 마음과 正念으로 善根을 기꺼이 모아서 늘 중생을 이롭게 함을 생각하는 것을 賢이라 칭하고 처음 범부에서부터 단박에 법계를 드러내 모든 부처님의 인과와 理智가 일시에 밝게 나타남을 首라 칭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法主의 解行에 의거해 명칭을 세운 것이다. 이 현수라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果海에 있는 문수와 보현행의 현수이니, 부처님의 因果理智를 믿는 첫머리이며, 원만한 법계의 解行의 始終이 없는 첫머리가 되기 때문에 [현수품]이 된 것이다. 이는 부처님과 문수와 보현의 果行으로 믿는 자의 첫머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②품의 온 뜻을 해석하면, 제2會 이후의 다섯 품 경전은 단지 10신 보살이 수행하는 법문과 140願 등의 법을 밝힌 것이지만, 이 품은 10신 속에서 기꺼이 닦는 불과와 행하는 행원의 공덕이 광대함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이 품이 온 것이다.
③품의 종지의 취지를 설명하면, 이미 10신의 마음을 다냄으로써 복을 얻고 이익을 얻는 것이 종지의 취지이다.
④신심의 退住의 두 가지 뜻을 밝히면, 하나는 3승이요 둘은 1승이다. 먼저 3승이란,
예컨대 {기신론}에 세 가지 發心이 있다. 첫째 믿음을 성취하는 발심[信成就發心]이다. 둘째 이해와 행의 발심[解行發心]이다. 셋째 증도의 발심[證發心]이다.
①信成就發心은,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하고 어떤 행도 닦아서 믿음을 성취하게 되어 능히 발심을 감당하는 것이다. 소위 不定聚에 의거해서 중생에게 선근을 熏習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信業의 과보가 능히 10善을 일으키고 생사의 고통을 싫어해 無上 보리를 구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모든 부처님께 몸소 공양을 받들고 신심을 수행하여 1만 겁을 지나야 신심을 성취하기 때문에 모든 불보살이 발심을 하도록 가르치는데, 어떤 경우는 대자비로써 하여 능히 스스로 발심케 하고, 어떤 경우는 정법이 소멸하려는 것으로 인해 법의 인연을 수호함으로써 능히 스스로 발심케 한다. 이렇게 신심을 성취해서 발심하게 되는 자는 正定聚에 들어서 궁극적으로는 물러서지 않게 되니, 이를 여래의 종자 중 正因의 상응에 머문다고 이름붙인다.
②解行發心은, 반드시 더욱 뛰어남을 앎으로써 보살이 첫 믿음에서부터 장차 제1아승기겁에서 원만하고자 하기 때문에 진여법 속에 깊은 이해가 현전하면서 닦는 바가 相을 여의고 있다.
③證發心은, 淨心地에서부터 나아가 菩薩究竟地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계를 증득하는가? 이른바 진여는 轉識의 說에 의지하는 것으로 경계를 삼으나, 이 증득이라는 것은 경계가 없어 오직 眞如智일 뿐이니 그 명칭이 법신이다. 또 論에서는 “만약 어떤 중생이 선근이 미미해서 아득한 옛부터 번뇌가 깊고 두터우면, 비록 부처님을 만나 공양하게 되더라도 人天의 종자나 이승의 종자를 일으키며, 설령 대승을 구하는 자라도 근기가 정해지지 않아서 어떤 때는 나아가고 어떤 때는 물러선다”고 하였다. 이 말씀의 大意는 자기의 선근이 미미해서 타자에 의거해 발심하는 자와 혹은 이승인으로 가르쳐서 발심케 하는 자는 이해와 행이 실답지 못해서, 소득이 있고 증득이 있고 버리는 것이 있고 취함이 있기 때문에 총체적으로는 退位에 머무는 것이다.
또 같은 논(論)에서는 이렇게 설한다. “만약 사람이 일체의 善法을 수행하면 자연히 眞如法으로 돌아가니, 대략 네 가지 방편을 설한다.
첫째, 行根本方便은 이른바 일체법의 自性이 낳음이 없어서 망녕된 견해를 여의었음을 관함으로써 생사에 머물지 않는 것이며, 일체법이 인연으로 화합해 業果가 상실되지 않음을 관함으로써 대자비를 일으켜 온갖 복덕을 닦아 중생을 교화하고, 열반에 머물지 않음으로써 법성의 머물지 않음을 순조롭게 따르는 것이다.
둘째, 能止方便은 이른바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쳐서 능히 일체의 악법을 그치게 하여 자라나지 않게 함으로써 법성의 온갖 잘못을 여읨을 따르는 것이다.
셋째, 發起善根增長方便은 이른바 부지런히 三寶를 공양하고 예배하고 찬탄하고 기뻐하면서 모든 부처님께 청을 드려 삼보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맑고 돈독한 마음을 쓰기 때문에 믿음이 자라나게 되어서 이에 능히 無上의 도를 구할 뜻을 세우는 것이며, 또 佛·法·僧의 힘이 수호하는 바를 말미암기 때문에 능히 業障을 녹이고 선근이 퇴보하지 않음으로써 법성의 癡障:어리석음의 장애을 여읨을 따르는 것이다.
넷째, 大願平等方便은 이른바 願을 발해 미래가 다하도록 일체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궁극적인 無餘涅槃에 들게 함으로써 법성의 광대함이 일체 중생에 두루해 둘이 없는 평등이라서 彼此를 염두에 두지 않고 궁극적인 적멸을 따르는 것이다.
보살이 이 같은 마음을 발하기 때문에 약간이라도 법신을 보게 되며, 법신을 보기 때문에 그 원력을 따라 능히 八相成道를 나타내서 중생을 이롭게 한다. 그러나 이 보살을 여전히 法身이라 이름붙이지 못하는 것은 과거 한량없는 세상에 오면서도 有漏의 업을 여전히 능히 결단하지 못하고 낳는 바에 따라 미미한 고통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생각하건대, 약간이라도 법신을 보게 된 것은 바로 이 믿음이 원만해져서 10주의 지위에 들어간 것이다. 이상은 3승이 10신의 원만한 마음을 발해서 10주의 초발심住에 들어가는데, 원력으로써 하기 때문에 성불을 하는 것이다.
다음은 1승의 발심이라는 것이다. 경전에서 10신의 발심은 초발심할 때의 初會 중 여래께서 처음 성취한 정각의 果와 보현보살의 법계의 微塵과 모공의 겹겹이 겹쳐서 다함이 없는 근기에 따르는 근본지혜의 行果로 신심을 일으켜서 저 모든 부처님께서 얻은 果를 믿는 것이며,
제2회 중 보광명전에서 여래의 과보와 원만한 果와 行果로서 스스로 믿고 들어가면서 수행하는 것이다. 즉 금색 등 10색의 세계는 바로 自覺의 理를 밝힌 것이며, 부동지불 등 10智 여래는 바로 자기 마음이 믿는 自心佛智임을 밝힌 것이며, 문수사리는 바로 자기 마음의 智 위에서 분별하는 묘한 슬기가 고금의 삼세 든 부처님과 더불어 동일한 체용임을 밝힌 것이니, 털끝만치도 틀리지 않아야 비로소 그 명칭이 믿음의 발심[信發心]이 되는 것이다. 이 신심이 종결된 후의
불명호품은 믿고 있는 바 시방에 정각 성취를 보인 불과의 명호가 두루함을 밝힌 것이며,
사성제품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한 법문이 중생계에 두루하면서 界를 따라 명칭이 다름을 밝힌 것이며,
광명각품은 여래의 지혜 광명의 경계가 법계를 두루 비추면서도 極盡함이 없기 때문에 신심을 발한 자로 하여금 觀으로써 관하게 하여 마음을 광활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경계와 같음을 밝힌 것이며,
보살문명품은 10신심 보살의 열 가지 행하는 법이 자기가 닦는 바의 행임을 밝힌 것이며,
정행품의 140大願은 바로 10신심의 지위에서 발한 대원으로 大悲門을 성취해서 보현행을 갖추는 것이다.
이 현수품은 10신심의 기꺼이 닦는 불과의 공덕이 다함 없음을 밝힌, 처음 10신심을 발할 때 이 품을 수지하고 독송하면 공덕이 십불찰미진수 부처님께 1겁 동안 공양하는 것보다 뛰어남을 밝혔거늘 하물며 그 이해를 따라 행하면서 닦는 것이겠는가? - 신화엄경론]]
[十信法門의 완성이 賢首品까지입니다 賢首品이 끝나면 법회도 달라지고 법문을 하는 장소도 달라지는 새로운 환경
賢首品이 끝나면, 법회도 달라지고 법문을 하는 장소도 달라지는 새로운 환경으로, 수미산에 올라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수미산에 올라가면 게송으로 찬탄하는 게찬품이 진행이 되는 식으로 화엄경이 전개 됩니다.
賢首品은 현수보살이 산문은 없아 게송형식으로 이야기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유명한
信爲道元功德母(신위도원공덕모)
長養一切諸善法(장양일체제선법).이라고 하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한 법문도 들어있습니다.]
[賢首品은 두 권으로 되어 있는 十信法門(십신법문).
화엄경은 십신ㆍ십주ㆍ십행ㆍ십회향ㆍ십지ㆍ등각ㆍ묘각의 법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삼주인과의 부처가 성불하는 6품 이야기, 7품부터 38품까지는 보살이 성불하는 과정이고요.
그 다음 보통 중생이 발심해서 성불해 가는 과정은 선재동자의 구법행각의 과정도 결국은 십신ㆍ십주ㆍ십행ㆍ십회향ㆍ십지ㆍ등각ㆍ묘각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것이 3단계로 되어있다고 해서 “화엄경은 삼주인과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부처가 성불하는 과정ㆍ보살이 성불하는 과정ㆍ중생이 성불하는 과정의, 위에서부터 내려가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부처님의 果海에 있는 문수와 보현행의 현수이니, 부처님의 因果理智를 믿는 첫머리이며, 원만한 법계의 解行의 始終이 없는 첫머리가 되기 때문에 [현수품]이 된 것이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四中
賢首品 第十二之一
[第十二之一, 열두 번째 품이며 두 권으로 되어있습니다.
賢首는 어질 賢현 머리 首수. “어질다” 어진 사람 중에서도 가장 우두머리, 가장 어질고 현명한 사람으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문수보살이 현수보살에게 질문하면 현수보살이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一, 文殊菩薩의 問法
爾時에 文殊師利菩薩이 說無濁亂淸淨行大功德已하시고 欲顯示菩提心功德故로 以偈로 問賢首菩薩曰
我今已爲諸菩薩하야 說佛往修淸淨行호니 仁亦當於此會中에 演暢修行勝功德하소서
爾時에 文殊師利菩薩이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說無濁亂淸淨行大功德已(설무탁란청정행대공덕이)하시고,
탁하지 않고 혼란함 없는 청정한 행의 큰 공덕을 설하고 나서 [無濁亂淸淨行 → 정행품입니다]
[혼탁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는 아주 청정한 행에 따른 큰 공덕의 행은 일거수일투족을 오로지 중생을 위해서 하는 행위, 그것이 淨行品의 요지입니다. 무엇을 하든, 그 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중생을 떠올려서 중생을 위해서 발원하는, 그것을 “통 큰 마음= 大心범부가 공부하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欲顯示菩提心功德故(욕현시보리심공덕고)로, 보리심의 공덕을 밝혀 보이고자
[앞의 無濁亂淸淨行에 청정 행, 아주 훌륭하지만 보리심과는 그 공덕의 차원이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以偈로, 게송으로 問賢首菩薩曰(문현수보살왈), 현수보살에게 물었다.
我今已爲諸菩薩(아금이위제보살)하야, 내가 이제 모든 보살을 위해
說佛往修淸淨行(설불왕수청정행)호니, 부처님 옛적에 닦으신 청정행을 말했으니
[부처님께서 지난 날 청정 행 닦은 → 淨行品을 이야기했으니]
仁亦當於此會中(인역당어차회중)에, 仁=인자, 어지신이(현수보살)도 마땅히 이 모임 안에서
演暢修行勝功德(연창수행승공덕)하소서. 수행의 수승한 공덕을 시원히 연설하소서
[演暢하소서= 연설해서 드날려 주십시오. 이렇게 시 한수로써 청법을 합니다.]
[법사를 법상에 청할 때 요즘은 노래로 하고 하지만, 옛날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게송으로
此經甚深意 大衆心渴仰(차경심심의 대중심갈앙)
唯願大法師 廣爲衆生說(유원대법사 광위중생설)
이렇게 시 한수 읊잖아요. 설법 앞에 근사한 형식이 화엄경에 근거해서 나온 법식입니다. 의식도 전부 경전에 근거해서 하지, 경전에 근거하지 않고는 나올 수가 없지요.]
二, 賢首菩薩의 偈頌答
(1) 讚佛許答 부처님을 찬탄하고 답해주기를 허락하다.
爾時에 賢首菩薩이 以偈答曰
善哉仁者應諦聽하소서 彼諸功德不可量일새 我今隨力說少分호리니 猶如大海一滴水니라
爾時에 賢首菩薩이 以偈答曰, 그러자 현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했다.
善哉仁者應諦聽(선재인자응제청)하소서, 장하십니다. 인자는 자세히 들으소서
彼諸功德不可量(피제공덕불가량)일새, 저 모든 공덕은 헤아릴 수 없어 [彼諸功德=발심공덕, 보리심을 발한 공덕]
我今隨力說少分(아금수력설소분)호리니, 제가 이제 능력 대로 약간을 말하거니와
[隨力= 내 힘을 따라 = 내 아는 대로 少分만 이야기하겠다]
猶如大海一滴水(유여대해일적수)니라. 마치 큰 바다의 물 한 방울 같으리이다
[마치 큰 바다에 한 방울의 물과 같은 정도의 그런 공덕을 이야기하겠다.]
[사람들에게 포교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고, 내가 깨달은 바도 없다. 또 아는 바도 없다.” 이런 말들을 하는, 그것은 순전히 핑계지요. 하루 행자생활 했으면 하루 행자생활 한만큼 이야기할 것이 있을 것이고, 6개월 행자생활 했으면 6개월 한만치 있을 것이고, 사미로써 4년간 강원생활 했으면 그것만 해도 충분하고 훌륭한 것인데, 거기에 더해서 10년ㆍ20년 절밥 먹고 살았으면서 할 이야기가 없고 배운 점이 없고 깨달은 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자기 의무를 다 하지 못하고, 자기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되고, 아는 만치만큼 성의를 다하는 그것이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일찍이 그런 경우를 꾸짖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우유를 매일 짜니까 자기 식구들 먹을 것 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유를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하려고, ‘아, 이것을 한 달 동안 모아 놨다가 짜면 동네 사람들 다 한번 공양시킬 수 있겠다.’ 생각해서 한꺼번에 짜려고 우유를 한 달 동안 안 짜고, 한 달 후에 우유를 짜니까 다 말라 버리고 우유 한 방울도 안 나오는 겁니다. 그와 같이 불법을 전한다고 하는 일은 바로 자기가 배운 만치ㆍ자기가 공부한 만치ㆍ자기가 경험한 만치 전하려고 하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깨닫고 나서 한 사람 없습니다.
여기도 '내가 힘 따라서 少分만, 조금만 이야기하겠는데 그것은 큰 大海水가운데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할 것이지만, 그나마 하겠다.' 이런 것은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됩니다. 정말 부처님 밥 먹고 살아가면서 부처님 법을 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주 크게 빚지는 일이지요.]
(2) 發心의 德
若有菩薩初發心에 誓求當證佛菩提하면 彼之功德無邊際하야 不可稱量無與等이어든
何況無量無邊劫에 具修地度諸功德가 十方一切諸如來가 悉共稱揚不能盡이니라
如是無邊大功德을 我今於中說少分호리니 譬如鳥足所履空이며 亦如大地一微塵이니라
若有菩薩初發心(약유보살초발심)에, 만약 어느 보살이 초발심하여
誓求當證佛菩提(서구당증불보리)하면, 마땅히 불보리(부처님이 깨달으신 경지)를 증득하리라 서원하면
彼之功德無邊際(피지공덕무변제)하야, 그 공덕 끝이 없고
不可稱量無與等(불가칭량무여등)이어든, 헤아릴 수 없어서 대등할 이 없을 것인데, 가히 稱量할 길도 없고, 더불어 같을 이도 없다.
何況無量無邊劫(하황무량무변겁)에, 어찌 하물며 무량 무변한 겁 동안
具修地度諸功德(구수지도제공덕)가? 지위와 바라밀을 갖추어 닦은 공덕이리오
[한량없는 세월 속에서 갖추어서 地度의 諸功德을 닦은 것이겠는가? 地度= 매 지위마다 닦아야 할 바라밀. 화엄경에서는 度= 10바라밀입니다. 초지는 보시바라밀이 主(주)가 되고, 나머지 9바라밀은 助(조)가 되고요. 그 다음 2지는 지계바라밀이 主가 되고, 나머지 9바라밀이 補助(보조)가 되고요. 이런 식으로 전부 되어있습니다.
초발심해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구하려고 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공덕이 한량없는데, 그 마음에 의해서 계속 닦아간 그 공덕이야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十方一切諸如來(시방일체제여래)가 시방의 모든 여래들께서
悉共稱揚不能盡(실공칭양불능진)이니라. 다 함께 칭양=칭찬하여 드날린다 해도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如是無邊大功德(여시무변대공덕)을, 이렇듯 가이없는 큰 공덕을
我今於中說少分(아금어중설소분)호리니, 제가 이제 그 중에 약간을 설하겠거니와
譬如鳥足所履空(비여조족소리공)이며, 마치 새의 발로 밟은 허공과 같고 [履 밟을 리, 신 리]
[마치 새가 허공을 날아 갈 때 그 조그마한 발이 허공을 밟고 간 흔적이 없고,설사 흔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작은 발이 이 드넓은 허공에 얼마나 차지하겠습니까? 그와 같이 보일 듯 말 듯한 정도의 작은것이다.]
亦如大地一微塵(역여대지일미진)이니라. 또한 대지의 한 티끌 같으리이다
[또 큰 땅, 이 지구상의 작은 微塵= 작은 하나의 먼지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런 정도라는 표현입니다.
우리도 불교를 안다는 것이 사실은 어떻게 보면, 큰 땅에 微塵정도 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리고 큰 大海에 물 한 방울 정도 밖에 더 되겠습니까? 하지만 하는 것이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3) 發心의 行相
菩薩發意求菩提가 非是無因無有緣이니 於佛法僧生淨信일새 以是而生廣大心이니라
不求五欲及王位와 富饒自樂大名稱하고 但爲永滅衆生苦하야 利益世間而發心이니라
常欲利樂諸衆生하야 莊嚴國土供養佛하며 受持正法修諸智하야 證菩提故而發心이니라
深心信解常淸淨하야 恭敬尊重一切佛하며 於法及僧亦如是하야 至誠供養而發心이니라
深信於佛及佛法하고 亦信佛子所行道하며 及信無上大菩提하야 菩薩以是初發心이니라
菩薩發意求菩提(보살발의구보리)가, 보살이 보리를 구할 뜻을 세운 것은
非是無因無有緣(비시무인무유연)이니, 인(因)이 없고 연(緣)이 없는 것이 아니라 → 다 인연이 있는 것이다
於佛法僧生淨信(어불법승생정신)일새. 불법승 삼보에 청정한 믿음을 내었기에
[佛ㆍ法ㆍ僧=三寶(삼보) 그 불법승에서 淨信= 청정한 믿음을 낼 새]
以是而生廣大心(이시이생광대심)이니라. 그로써 광대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불법승을 믿는 그 출발에서부터 광대한 마음, 온 중생을 다 제도하겠다고 하는 넓고 큰마음을 내게 되는 것이다.]
不求五欲及王位(불구오욕급왕위)와, 오욕과 왕위의 부유함과
富饒自樂大名稱(부요자락대명칭)하고, 자신의 쾌락과 명예를 구하지 않고
[富饒= 부자ㆍ넉넉함. 그리고 스스로 즐기는 즐길 꺼리. 大名稱= 아주 큰 존칭ㆍ소문ㆍ요즘 말로 큰 인기. 이런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饒 넉넉할 요]
但爲永滅衆生苦(단위영멸중생고)하야, 다만 영원히 중생의 고통을 멸하여
利益世間而發心(이익세간이발심)이니라. 세간을 이익되게 하고자 발심하는 것이며,
[사실 불법은 이론이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런 마음을 제대로 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수행한다고 하지만, 정말 자기 수행의 가치와 또 세속적인 부귀공명에 대한 가치관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불법을 좋아하다 보면, 이러한 중생을 위하는 마음과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어있지요. 처음부터 ‘중생을 제도하겠다.ㆍ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깨달음을 나도 한번 깨달아 보겠다.’ 이런 큰마음 내기는 쉬운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이러한 성인의 가르침을 자꾸 접하고 살다 보면, 우리 개개인의 마음속에 다 불성= 부처의 성품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常欲利樂諸衆生(상욕이락제중생)하야, 항상 모든 중생을 이롭고 즐겁게 하고자
[常欲利樂諸衆生 莊嚴國土供養佛하며, 국토를 장엄하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도 결국은 중생을 위한 것이다]
莊嚴國土供養佛(장엄국토공양불)하며, 국토를 장엄하고 부처님을 공양하며
受持正法修諸智(수지정법수제지)하야, 정법을 受持= 받아 지니고 諸智= 모든 지혜를 닦아서
證菩提故而發心(증보리고이발심)이니라. 보리를 증득하려는 까닭에 발심하는 것이며,
[“발심ㆍ발보리심.” 축생보면 “발보리심 하라.” 그러는 것이 자기 발보리심은 놔두고, 축생부터 발보리심을 시키는 것입니다. 自未得度先度他(자미득도선도타) 자기는 제도를 얻지 못해도 남부터 제도하는 것에 맞추면 맞아지긴 합니다.]
深心信解常淸淨(심심신해상청정)하야, 마음 깊이 신해하고 항상 청정히 하며
恭敬尊重一切佛(공경존중일체불)하며, 모든 부처님을 공경존중하고
於法及僧亦如是(어법급승역여시)하야, 법과 스님들께도 그렇게 하여
至誠供養而發心(지성공양이발심)이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하고자 발심하는 것이며,
深信於佛及佛法(심신어불급불법)하고, 부처님과 부처님 법을 깊이 믿고[佛과 佛法]
亦信佛子所行道(역신불자소행도)하며, 불자들이 행하는 도도 믿으며 [佛子所行道= 僧]
及信無上大菩提(급신무상대보리)하야, 위없는 큰 보리를 믿기에
菩薩以是初發心(보살이시초발심)이니라. 보살은 이로써 발심하는 것입니다, 보살이 이것으로써 初發心하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