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27권 6
大智度論釋初品中 大慈大悲義 第四十二 卷二十七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2. 초품 중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뜻을 풀이함 6
問曰; 一切衆生皆求智慧, 云何獨佛一人得一切智?
묻나니, 일체 중생들 모두가 지혜를 구하는데 어찌하여 유독 부처님 한 사람만이 일체지를 얻으신 것입니까?
答曰; 佛於一切衆生中第一故 獨得一切智。
如佛所說; “無足 二足 四足 多足 有色 無色 有想 無想 非有想非無想等
一切衆生中 佛最第一"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 가운데서 으뜸이시기 때문에 혼자만이 일체지를 얻으셨으니,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발이 없는 것, 두 발 달린 것, 네발 달린 것, 여러 발 가진 것, 모양이 있는 유색(有色), 모양이 없는 무색(無色), 생각이 있는 유상(有想), 생각이 없는 무상(無想),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 등의 일체 중생 가운데서 부처님이 가장 으뜸이시기 때문이다.
譬如須彌山 於衆山中 自然最第一, 如四大中 火最有力 能照能燒,
佛亦如是 於一切衆生中 最第一故 得一切智。
비유하자면, 수미산(須彌山)은 여러 많은 산 가운데서 저절로 가장 으뜸인 것과 같으며, 4대(大) 가운데서 불(火)의 힘이 가장 세기 때문에 능히 비추고 태우는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 역시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 중에서 가장 으뜸이시기 때문에 일체지를 얻게 된 것이다.
問曰; 佛何以故 於一切衆生中 獨最第一?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연유로 일체 중생 가운데서 홀로 가장 으뜸이라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如先答, “得一切智故" 今當更說, 佛自利益亦利益他故 於衆生中最第一。
답하나니, 앞에서 답하였듯이, 일체지를 얻으셨기 때문이니, 다시 설명하자면 부처님께서는 스스로도 이익되게 하시면서 다른 이들도 이익되게 하시기 때문에 중생들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시다.
如一切照中日爲第一 一切人中轉輪聖王最第一 一切蓮華中靑蓮華爲第一
一切陸生華須曼色第一 一切木香中牛頭栴檀爲第一 一切珠中如意珠爲第一,
마치 일체를 비추는 것 가운데서 해가 가장 으뜸이고, 온갖 사람 가운데서는 전륜성왕이 가장 으뜸이며, 온갖 연꽃 가운데서는 청련화(靑蓮華, udumbara)가 가장 으뜸이고, 온갖 육지에서 나는 꽃 중에서는 수만(須曼, 수만나화, sumanā)의 빛깔이 가장 으뜸이며, 온갖 향 나무 가운데서는 우두전단(牛頭栴檀, gośīrṣa-candana)이 가장 으뜸이고, 온갖 구슬 가운데서는 여의주(如意珠)가 가장 으뜸인 것과 같으며,
一切諸戒中聖戒爲第一 一切解脫中不壞解脫爲最第一 一切淸淨中解脫爲第一
一切諸諦中空觀爲第一 一切諸法中涅槃爲第一 如是等無量各各第一。
佛亦如是 於一切衆生中 最爲第一故 獨得一切智。
일체의 계율 가운데에서 성인의 계율인 성계(聖戒)가 가장 으뜸이고, 일체의 해탈 가운데서는 불괴해탈(不壞解脫)이 가장 으뜸이며, 일체의 청정함 가운데서는 해탈(解脫)이 가장 으뜸이고, 온갖 모든 진리 가운데서는 공함을 관하는 공관(空觀)이 가장 으뜸이며, 일체의 제법 가운데서는 열반(涅槃)이 가장 으뜸이니, 이와 같이 무량한 저마다 나름대로의 으뜸이 있는 것이라.
부처님께서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시며, 으뜸이신 까닭에 혼자만이 일체지를 얻으신 것이다.
復次 佛從初發意 以大誓莊嚴 一切衰沒衆生欲拯濟故 盡遍行諸善道 無善不集 無苦不行 皆集一切諸佛功德。如是等種種無量因緣故 佛於一切衆生中獨第一。
또한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하신 때부터 큰 서원으로 장엄하시어 일체의 힘을 잃고 가라앉는= 쇠몰(衰沒)하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일체의 선도(善道)를 따라 두루 행하면서 선(善)이란 선은 쌓지 않음이 없었고, 고행(苦行)이란 고행은 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쌓으셨나니,
이와 같은 갖가지의 무량한 인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 가운데서 유독 으뜸이신 것이다.
問曰; 三世十方諸佛亦有 是功德, 何以故 言佛獨第一?
묻나니, 삼세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도 역시 이러한 공덕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부처님 혼자만을 가장 으뜸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 除諸佛 爲餘衆生故言 “佛獨第一” 諸佛第一功德。
답하나니, 모든 부처님을 제외한 그 밖의 중생들의 세계에서 부처님 혼자만을 가장 으뜸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은 평등하고 동일한 공덕을 갖추셨다.
復次 “薩婆若多”者 “薩婆” 秦言一切, “若” 秦言智, “多” 秦言相。
“一切” 如先說名色等諸法。
또 살바야다(薩婆若多, sarvajñatā. 여기에서는 sarva-jña-tā로 분석해 설명하고 있음)라 하였는데,
살바(薩婆, sarva)는 진나라(중국) 말로 일체(一切)라는 뜻이고,
야(若, jña)는 진나라 말로 지혜의 지(智)이며,
다(多tā)는 진나라 말로 상(相)이라는 말이며,
일체(一切)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름과 물질= 명색(名色) 등의 일체법이다.
佛知是一切法 一相 異相 漏相 非漏相 作相 非作相等 一切法各各相 各各力
各各因緣 各各果報 各各性 各各得 各各失;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체법의 동일한 모습의 일상(一相)과 다른 모습의 이상(異相)과 번뇌가 있는 누상(漏相)과 번뇌가 베어 나오지 않는 비루상(非漏相)과 지음의 작상(作相)과 지음이 없는 비작상(非作相) 등의 일체법의 각각의 상(相)과 각각의 힘과 각각의 인연과 각각의 과보와 각각의 성품과 각각의 장점과 각각의 단점을 다 아시나니,
一切智慧力故 一切世一切種盡遍解知。
以是故說, “欲以道種智具足得一切智 當習行般若波羅蜜!
欲以一切智具足一切種智 當習行般若波羅蜜"
일체지혜의 힘 때문에 일체 세상과 일체의 온갖 종류를 모두 두루 아시는 것이라.
이 때문에 “도종지(道種智, 도종혜)로써 일체지(一切智)를 구족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하여야 하며,
일체지로써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족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問曰; 如佛得佛道時 以道智得具足 一切智 一切種智, 今何以言 “以一切智得具足一切種智”?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불도(佛道)를 증득하실 때에 도지(道智)로써 일체지와 일체종지를 두루 갖추셨는데, 지금 무엇 때문에 일체지로써 일체종지를 구족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佛得道時 以道智雖具足得一切智 得具足一切種智 而未用一切種智,
如大國王得位時 境土寶藏皆已得 但未開用。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도를 증득하실 때 도지(道智)로써 비록 일체지와 일체종지를 구족하셨다 하나, 아직은 일체종지를 쓰지 않으시니, 마치 큰 국왕이 왕위를 얻었을 때에 국토와 보물 창고를 이미 모두 얻었으나, 다만 아직 열어서 사용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 經. “欲以一切種智斷煩惱習 當習行般若波羅蜜!
舍利弗!菩薩摩訶薩應如是學般若波羅蜜"
▷ 經. 일체종지로써 번뇌의 습(習)을 끊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 論. 問曰; 一心中得一切智 一切種智 斷一切煩惱習,
今云何言 “以一切智具足得一切種智 以一切種智斷煩惱習”?
▷ 論. 묻나니, 일심(一心)으로 일체지와 일체종지를 얻게 되는 것이며 일체 번뇌의 습기를 끊게 되는 것인데, 지금 무엇 때문에 일체지로써 구족하게 일체종지를 얻고 일체종지로써 번뇌의 습기를 끊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 實一切一時得。此中 爲令人信般若波羅蜜故 次第差品說,
欲令衆生得淸淨心 是故如是說。
답하나니, 실로 일체의 것을 일시에 얻으셨거니와, 여기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반야바라밀을 믿게 하기 위하여 차례로 품(品)을 다르게 두어 차별되게 말씀하는 것이요,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마음을 얻게 하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復次 雖一心中得 亦有初中後次第。如一心有三相 生因緣住 住因緣滅。
또 비록 한마음 가운데서 얻는다 하나, 역시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라는 차례가 있는 것이니, 마치 한마음에 세 가지 상(相)이 있어서, 생(生)은 머무르는 주(住)의 인연이 되고 주(住)는 사라지는 멸(滅)의 인연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又如心心數法 不相應諸行 及身業口業。以道智具足一切智
以一切智具足一切種智 以一切種智 斷煩惱習亦如是。
또 마치 마음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에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의 불상응제행(不相應諸行)의 신업(身業)과 구업(口業)과 같아서, 도지(道智)로써 일체지(一切智)를 구족하게 되고, 일체지로써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족하게 되며, 일체종지로써 번뇌의 습기를 끊게 되는 것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先說一切種智卽是一切智 道智名金剛三昧, 佛初心卽是一切智 一切種智 是時煩惱習斷。
“一切智” “一切種智”相 先已說。
앞에서 말한 일체종지(一切種智)가 바로 일체지(一切智)이며,
도지(道智)는 금강삼매(金剛三昧)라고 하나니,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하신 마음이 곧 일체지요 일체종지로써, 이 때에 번뇌의 습기가 끊어진 것이니, 일체지와 일체종지에 대한 상(相)은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初發心 乃至坐道場 於其中閒一切善法 盡名爲道。此道中 分別思惟而行 是名道智, 如此經後說, “道智是菩薩事"
처음 발심하여 도량(道場)에 앉기까지의 그 중간에 행하는 일체의 착한 법을 모두 다 도(道)라고 하나니, 이 도(道) 가운데에서 분별하고 사유하여서 행하는 것을 도지(道智)라 하는 것으로, 이 경의 뒤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도지(道智)는 바로 보살의 일이다.
復次 菩薩摩訶薩自行道 亦示衆生 各各所行道, 以是故說名 “菩薩行道智得一切智"
또한 보살마하살은 스스로 도(道)를 행하는 한편, 역시 중생에게 각각으로 행할 바의 도를 나타내 보이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도지(道智)를 행하여 일체지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7권 5
“斷一切煩惱習”者 “煩惱”名略說則三毒 廣說則三界九十八使 是名“煩惱”。
일체 번뇌의 습기을 끊었다고 하였는데,
번뇌(煩惱)라는 것을 간략하게 말한다면 삼독(三毒)이요, 자세히 말한다면 삼계(三界)의 98사(使)이니, 이것을 번뇌라 하는 것이다.
“煩惱習”名煩惱殘氣 若身業口業 不隨智慧 似從煩惱起,
不知他心者 見其所起生不淨心 是非實煩惱 久習煩惱故 起如是業。
번뇌의 습(習)이라 함은 번뇌가 남아있는 잔기(殘氣)이니,
만약 신업과 구업이 지혜를 따르지 않는다면 번뇌로부터 일어난 것과 같은 것이며,
다른 이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그 일어나는 것만을 보고서 청정하지 않은 마음을 내게 되는 것은 진실한 번뇌가 아니요 오랫동안 번뇌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러한 업(業, 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譬如久鎖腳人 卒得解脫 行時雖無有鎖 猶有習在。如乳母衣 久故垢著 雖以淳灰淨浣 雖無有垢 垢氣猶在, 衣如聖人心 垢如諸煩惱 雖以智慧水浣 煩惱垢氣猶在。
비유하자면, 오랫동안 다리에 쇠고랑을 차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풀려나게 되어서 걸을 때에, 비록 쇠고랑이 없다 하여도 아직도 있는 것같이 걷는 것과 같으며,
마치 유모(乳母)가 오랫동안 옷을 입어서 때가 묻어서 비록 맑은 잿물로 깨끗이 빨아서 때가 없어졌다 하여도, 그 때의 기운이 아직도 옷에 남아 있는 것과 같이,
성인(聖人)의 마음의 때나 모든 번뇌도 비록 지혜의 물로서 깨끗이 씻어 내었다 하여도 번뇌의 습기가 남아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如是諸餘賢聖 雖能斷煩惱 不能斷習。如難陁婬欲習故 雖得阿羅漢道 於男女大衆中坐 眼先視女衆 而與言語說法。
如舍利弗瞋習故 聞佛言舍利弗食不淨食 卽便吐食 終不復受請。
又舍利弗自說偈言:
이와 같이 비록 모든 다른 성현들도 번뇌를 다 끊어 내었다 하여도 그 습기를 끊어 낼 수 없으니,
마치 난타(難陀, Sundarananla) 존자는 음욕의 습기 때문에 비록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하나, 남녀의 대중 가운데에 앉으면 눈이 먼저 여인들이 있는 곳을 보면서 말하고 설법을 하신 것과 같으며,
또한 사리불 존자는 성을 내는 습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청정하지 못한 음식을 먹었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이내 음식을 토(吐)해 버리면서 다시는 끝내 청을 받지 않은 것과 같으며,
이에 또 사리불 존자는 스스로 게송으로 말하였으니,
覆罪妄念人 無智而懈怠, 終不欲令此 妄來近我住。
죄에 덮혀서 망념(妄念)이 있는 사람은 지혜가 없어 게으름을 피우나니,
끝내 이러한 이들이 망령되게 내게 다가와서 머무르게 하고 싶지 않도다.
如摩訶迦葉瞋習故 佛滅度後集法時 勅令阿難六突吉羅懺悔 而復自牽阿難手出,
“不共汝漏未盡不淨人集法" 如畢陵伽婆蹉 常罵恒神爲小婢。
小婢소비= 예전에, 여종이 상전을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가리키던 말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도 성을 내는 습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법을 결집(結集)할 때, 아난(阿難)으로 하여금 여섯 가지 돌길라(突吉羅) 죄를 범하였다고 참회하도록 하고는, 다시 자신이 직접 아난의 손을 잡고 끌어서 내 보내면서 “그대는 번뇌가 아직 다 끊어지지 못한 부정(不淨)한 사람이라 함께 법을 결집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또한 필릉가바차(畢陵迦婆蹉, Pilinda-vatsa) 존자는 항상 항하 강의 신, 항신(恒神)을 “소비(小婢)”라 욕하였으며,
如摩頭婆和咤跳戲習故 或時從衣枷踔上梁 從梁至枰 從枰至閣。
如憍梵鉢提牛業習故 常吐食而齝。
마두바사타(摩頭婆私吒, mādaVasiṣṭha) 존자는 뛰어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습기 때문에 때로는 횃대에서 들보로 뛰어오르고 들보에서 선반으로 왔다가 다시 선반에서 누각으로 뛰어다니기도 하였으며,
또한 교범바제(憍梵鉢提, Gavampati) 같은 이는 소로 있었던 업의 습기 때문에 항상 먹은 것을 새김질 하였으니,
如是等諸聖人 雖漏盡而有煩惱習, 如火焚薪已 灰炭猶在 火力薄故 不能令盡。
若劫盡時火 燒三千大千世界無復遺餘 火力大故, 佛一切智火亦如是 燒諸煩惱 無復殘習。
이와 같이 여러 모든 성인들도 비록 번뇌가 다하였으나, 그 번뇌의 습기가 아직 남아 있었나니, 마치 불이 땔나무를 태운 뒤에 아직도 잿더미 속에는 불의 기운이 조금 남아 있기 때문에 다 타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겁이 다할 때에 불이 삼천대천세계를 태우게 되면 다시는 남은 것이 없게 되는 것은 그 불의 힘이 크기 때문이니, 부처님의 일체지의 불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를 태우고서 다시는 그 습기가 남는 것 조차 없게 되신 것이다.
如一婆羅門 以五百種惡口 衆中罵佛 佛無異色 亦無異心,
此婆羅門心伏 還以五百種語讚佛 佛無喜色 亦無悅心, 於此毀譽 心色無變。
마치 어떤 바라문이 5백 가지 나쁜 말로써 대중 가운데서 부처님께 욕설을 퍼부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기색도 변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달라짐이 없으시니, 그 바라문이 마음으로 감복하여 다시 5백 가지의 말로써 부처님을 찬탄하였으나, 부처님께서는 역시 기뻐하는 기색도 없고 즐거워하는 마음도 없으셨으니, 이러한 비방이나 칭찬에 대하여 마음과 안색에 변함이 없으셨으며,
又復旃遮婆羅門女 帶杅謗佛 佛無慚色, 事情旣露 佛無悅色。
轉法輪時 讚美之聲滿於十方 心亦不高, 孫陁利死 惡聲流布 心亦不下。
不下불하= 1. 덜하거나 못하지 않음 2. 항복하지 않음
또한 전차(旃遮, CiñcaMānavika Brāhmaṇa) 바라문의 딸이 나무통을 배에 품고 (부처님의 아이를 가졌다고) 부처님을 비방하였지만 부처님께서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으셨으며, 그 전후 사정이 모두 밝혀진 뒤에도 부처님께서는 기뻐하는 기색이 없으셨으며,
법륜(法輪)을 굴리 실 때에 찬탄하는 소리가 시방에 가득하여도 역시 뽐내는 마음이 없으셨고,
손타리(孫陀利)가 죽은 뒤에 나쁜 소문이 널리 퍼졌으나 역시 마음이 위축되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