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7권 5

Skunky 2024. 3. 15. 09:00

大智度論釋初品中  大慈大悲義 第四十二 卷二十七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2. 초품 중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뜻을 풀이함 5

 

問曰; 如經中說, “行六波羅蜜 三十七品 十力 四無所畏等諸法 得一切智"

何以故 此中說 但用道種智 得一切智?

묻나니, 경에서는 육바라밀(六波羅蜜)과 37조도품(助道品) 십력(十力) 사무소외(四無所畏) 등의 제법을 행하여 일체지를 얻는다고 말씀하셨거늘, 무엇 때문에 여기에서는 다만 도종지(道種智, 종지種智)만으로써 일체지를 얻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 汝所說 六波羅蜜等 卽是道 知是道 行是道 得一切智, 何所疑?

답하나니, 그대가 말한 바의 육바라밀 등이 곧 도(道)이다. 이 도를 알고 이 도를 행하여 일체지를 얻는 것인데 의심할 것이 무엇인가?

 

復次 初發心 乃至坐道場 於其中閒一切善法 盡名爲道。

此道中 分別思惟而行 是名道智, 如此經後說, “道智是菩薩事"

또한 처음 발심하여 도량(道場)에 앉기까지의 그 중간에 행하는 일체의 착한 법을 모두 다 도(道)라고 하나니,

이 도(道) 가운데에서 분별하고 사유하여서 행하는 것을 도지(道智)라 하는 것으로, 이 경의 뒤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도지(道智)는 바로 보살의 일이다.

 

問曰; 佛道事已備故 不名道智, 阿羅漢 辟支佛諸功德未備, 何以不名道智?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道)에 들어서야 할 일들을 이미 구비하셨기 때문에 도지(道智)라 하지 않으나, 아라한과 벽지불의 모든 공덕들은 아직 구비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도지라 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 阿羅漢 辟支佛道 自於所行亦辦 是故不名道智 道是行相故。

답하나니, 아라한과 벽지불의 도(道)는 스스로 행할 바를 역시 마쳤기에 도지라 하지 않는 것이니, 도(道)란 곧 지어 감의 행상(行相)이기 때문이다.

 

復次 此經中說聲聞 辟支佛 聲聞中 不攝三道故此中不說。

佛道大故 名爲道智, 聲聞 辟支佛道小故 不名道智。

또한 이 경에서 성문이나 벽지불들을 말하고 있지만 성문의 가르침에서는 삼도(三道, 번뇌도 업도 고도)를 포섭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며, 

부처님의 도는 크기 때문에 도지(道智)라 하지만 성문과 벽지불의 도는 작기 때문에 도지(道智)라 하지 않는 것이다.

 

復次 菩薩摩訶薩自行道 亦示衆生 各各所行道

以是故說名 “菩薩行道智得一切智"

또한 보살마하살은 스스로 도(道)를 행하는 한편, 역시 중생에게 각각으로 행할 바의 도를 나타내 보이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도지(道智)를 행하여 일체지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問曰; 何等是 一切智所知一切法?

묻나니, 어떠한 것이 일체지(一切智)가 알아야 할 일체법(一切法)입니까?

 

答曰; 如佛告諸比丘, “爲汝說一切法。

何等是一切法?所謂 眼色 耳聲 鼻香 舌味 身觸 意法。是十二入名一切法"

復有一切法 所謂名色。如佛說 『利衆經』中偈; 

답하나니, 마치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을 위하여 일체법(一切法)에 대하여 말해 주리라.

어떠한 것이 일체법(一切法)인가? 이른바 눈으로 색을 보고, 귀로써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으로 느끼는 이러한 뜻(意)과 법(法)이니, 이러한 12입(入)을 일체법(一切法)이라 한다”고 하신 것과 같다.

또한 일체법(一切法)이 있나니, 이름의 명(名)과 물질의 색(色)으로, 분별능력이나 분별작용의 식(識)으로 가능하게 되는 명색(名色)이라. 

마치 부처님께서 '이중경(利衆經, Arthavargīya-sūtra. 중의경衆義經)에서 설하신 게송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인식을 구성하는 영역은 우선 인식능력인 근(根, indriya)과 그것의 작용대상인 경(境, viṣaya)으로 대별된다. 근에는 시각능력인 눈[眼], 청각능력인 귀[耳], 후각능력인 코[鼻], 미각능력인 혀[舌], 촉각능력인 몸[身] 등의 오근에 사유능력[意, manas]을 더한 6종류, 즉 육근(六根)이 있다.

경 역시 육근 각각에 대응하여 눈의 작용대상인 색깔·형태[色], 귀의 작용대상인 소리[聲], 코의 작용대상인 냄새[香], 혀의 작용대상인 맛[味], 몸의 작용대상인 감촉[觸]의 오경에 사유대상[法, dharma]을 더한 6종류, 즉 육경(六境)이 있다.

육근(六根) + 육경(六境) = 十二入
『구사론』은 이상의 6가지 인식능력과 그 각각에 대응하는 6가지 인식대상 각각의 결합[觸]을 통해 시각[眼識], 청각[耳識], 후각[鼻識], 미각[舌識], 촉각[身識], 사유[意識] 등 6종류의 인식, 즉 육식(六識)이 매 찰나(刹那) 생겨날 뿐임을 지적하였다. 이리하여 십이처의 설법이 불변의 인식주체를 부정하는 무아설과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다움

 

若欲求眞觀 但有名與色, 若欲審實知 亦當知名色。

만약 진실하게 제법을 관하는 진관(眞觀)을 구하고자 한다면,

다만 이름의 명(名)과 물질의 색(色)이 있을 뿐이며

만약 진실하게 앎을 살피고자 한다면,

역시 이름의 명(名)과 물질의 색(色) 임을 마땅히 알게 되면,  

 

雖癡心多想 分別於諸法, 更無有異事 出於名色者。

비록 어리석은 마음과 많은 생각으로, 제법을 분별한다 하여도, 다시 다른 있음이 없으니,

이름의 명(名)과 물질의 색(色)을 벗어나게 되리라.

 

復次 一切法 所謂 色無色法 可見不可見, 有對無對, 有漏無漏, 有爲無爲,

心非心, 心相應非心相應, 共心生不共心生, 隨心行不隨心行,

從心因不從心因。如是 等無量二法門 攝一切法 如『阿毘曇攝法品』中說。

또한 일체법, 이른바 물질의 색(色)과 물질이 없는 무색법(無色法)은

볼 수 있는 가견(加見)과 볼 수 없는 불가견(不可見),

마주 할 수 있는 유대(有對)와 마주 대할 수 없는 무대(無對),

번뇌가 있는 유루(有漏)과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

지음의 유위(有爲)와 지어지지 않은 무위(無爲), 마음(心)과 비심(非心),

마음에 상응하는 심상응(心相應)과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비심상응(非心相應)

마음과 함께 나는 공심생(共心生)과 마음과 함께 나지 않는 불공심생(不共心生),

마음을 따라 행하는 수심행(隨心行)과 마음을 따라 행하지 않는 불수심행(不隨心行),

마음의 인을 따르는 종심인(從心因)과 마음의 인을 따르지 않는 불종심인(不從心因) 등이니,

이와 같은 무량안 두 개의 이법문(二法門)으로 일체법을 포섭하나니,

마치 아비담(阿毘曇, 논장)의 섭법품(攝法品)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復次 一切法 所謂 善法 不善法 無記法, 見諦所斷 思惟所斷 不斷法,

有報法 無報法 非有報非無報法。如是等 無量三法門攝一切法。

또한 일체법은 이른바 착한 선법(善法)과 착하지 않은 불선법(不善法)과 선도 불선도 아닌 무기법(無記法),

견제에서 끊어야 할 견제소단(見諦所斷)과 사유에서 끊어야 할 사유소단(思惟所斷)과 끊지 않는 불단법(不斷法),

과보가 있는 유보법(有報法)과 과보가 없는 무보법(無報法)과 과보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비유보비무보법(非有報非無報法)이니,

이와 같은 등의 무량한 삼법문(三法門)으로 일체법을 포섭하며, 

 

무기(無記)는 선도 불선(악)도 아닌 법(法, 특히 마음작용)이다. 선 · 불선 어느 것으로도 기표(記表) · 언표(言表) 또는 기별(記別)할 수 없는 법(法, 특히 마음작용)이기 때문에 무기(無記)라 한다. 기(記)는 선(善) 혹은 악(惡) 혹은 이들 둘 다를 말한다. 선과 악은 각각 애과(愛果)와 비애과(非愛果) 즉 애락할 만한 과보와 애락할 만하지 않은 과보를 낳으며 승자체(勝自體) 즉 뛰어난 자체(自體) 즉 뛰어난 성질이므로 기별(記別)할 수 있기 때문에 기(記)라고 한다. 무기의 성질을 무기성(無記性)이라 한다. 선성(善性)과 마찬가지로, 무기성은 무기와 동의어이다.
한편, 불교의 이러한 선 · 불선 · 무기의 정의는 상당히 상대적이고 개인중심적이고 현실중시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비록 불교에서도 절대적인 선 즉 승의선(勝義善)과 절대적인 악 즉 승의불선(勝義不善)을 정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 · 불선 · 무기에 대한 불교의 정의는 현재의 전체적인 모습보다 나은 상태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선이고, 현재의 전체적인 모습과 비슷한 상태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무기이고, 현재의 전체적인 모습보다 나쁜 상태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불선(악)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므로, 상당히 상대적이고 인간 개개인 중심적이고 현실을 중시하는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위키

 

復次 一切法 所謂過去法 未來法 現在法 非過去未來現在法,

欲界繫法 色界繫法 無色界繫法 不繫法, 從善因法 從不善因法

從無記因法 從非善非不善非無記因法,

有緣緣法 無緣緣法 有緣緣亦無緣緣法 非有緣緣非無緣緣法。

如是 等無量四法門攝一切法。

또한 일체법은 이른바 과거법(過去法)과 미래법(未來法)과 현재법(現在法)과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아닌 비과거미래현재법(非過去未來現在法),

욕계에 매인 욕계계법(欲界繫法)과 색계에 매인 색계계법(色界繫法) 무색계에 매인 무색계계법(無色界繫法)과 매이지 않는 불계법(不繫法),

착한 인을 좇는 종선인법(從善因法)과 착하지 않은 인을 좇는 종무선인법(從無善因法)과 무기의 인을 좇는 종무기인법(從無記因法)과 착한 것도 아니고 착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무기도 아닌 인을 좇는 비선비불선비무기인법(非善非不善非無記因法),

대상을 반연함이 있는 유연연법(有緣緣法)과 대상을 반연함이 없는 무연연법(無緣緣法)과 대상을 반연하는 법이 있기도 하고 대상을 반연하는 법이 없기도 하는 유연연법무연연법(有緣緣法無緣緣法)과 대상을 반연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상을 반연하는 법이 없는 것도 아닌 비유연연비무연연법(非有緣緣非無緣緣法) 등이니,

이와 같은 한량없는 사법문(四法門)으로 일체법을 포섭하며, 

 

復次 一切法 所謂 色法 心法 心數法 心不相應諸行法 無爲法,

四諦及無記無爲。如是等 無量五法門 攝一切法。

또한 일체법은 이른바 물질의 색법(色法)과 마음의 심법(心法)과 마음에 속하는 심수법(心數法)과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제행의 심불상응제행법(心不相應諸行法)과 무위법(無爲法)과 4제(諦) 및 무기무위(無記無爲) 등이니,

이와 같은 한량없는 오법문(五法門)으로 일체법을 포섭하며, 

 

復次 一切法 所謂 五衆及無爲, 苦諦所斷法 集諦 滅諦 道諦 思惟所斷法 不斷法。如是等 無量六法門 攝一切法。七 八 九十等諸法門。是阿毘曇分別義。

또한 일체법은 이른바 5중(衆)과 무위(無爲)와 고제에서 끊어야 할 고제소단법(苦諦所斷法)과 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ㆍ사유에서 끊어야 할 사유소단법(思惟所斷法)과 끊지 않는 불단법(不斷法) 등이니,

이와 같은 한량없는 육법문(六法門)으로 일체법을 포섭하며, 

일곱 가지, 여덟 가지, 아홉 가지, 열 가지 등의 모든 법문 등이니, 이는 아비담(阿毘曇, 논장)에서 그 뜻을 분별하였다.

 

復次 一切法 所謂有法 無法 空法 實法 所緣法 能緣法 聚法 散法等。

또한 일체법은 이른바 있는 유법(有法)과 없는 무법(無法), 공법(空法)과 실법(實法), 반연할 바의 소연법(所緣法)과 능히 반연하는 능연법(能緣法), 모으는 취법(聚法)과 흩어지는 산법(散法) 등이며, 

 

復次 一切法 所謂有法 無法 亦有亦無法 空法 實法 非空非實法

所緣法 能緣法 非所緣非能緣法。

또한 일체 법은 이른바 유법(有法)과 무법(無法)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여유역무법(亦有亦無法),

공한 법과 진실한 법과 공한 것도 아니고 진실한 것도 아닌 법,

반연할 대상의 법과 능히 반연하는 법과 반연할 대상도 아니고 능히 반연하는 것도 아닌 법 등이며, 

 

復次 一切法 所謂 有法 無法 亦有亦無法 非有非無法 空法 不空法 空不空法

非空非不空法 生法 滅法 生滅法 非生非滅法 不生不滅法 非不生非不滅法

不生不滅亦非不生非不滅法 非不生非不滅亦非不不生亦非不不滅法。

또한 일체법은 이른바 유법(有法) 무법(無法)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비유비무법(非有非無法)과

공법(空法)과 공하지 않은 불공법(不空法)과

공한 것도 아니고 공하지 않는 것도 아닌 비공비불공법(非空非不空法)과

낢의 생법(生法)과 멸하는 멸법(滅法)과 나고 멸하는 생멸법(生滅法)과

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닌 비생비멸생멸법(非生非滅法)과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법(不生不滅法)과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닌 비불생비불멸법(非不生非不滅法)과

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면서 또한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닌 불생불멸역비불생비불멸법(不生不滅亦非不生非不滅法)과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나지 않음이 아닌 것도 아니고 멸하지 않음이 아닌 것도 아닌 법이며, 

 

復次 一切法 所謂 有法 無法 有無法 非有非無法 捨是四句法。

空不空 生滅 不生不滅。五句皆亦如是。

또한 일체법은 이른바 유법(有法)과 무법(無法)과 있고 없는 유무법(有無法)과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비유비무법(非有非無法)의 이 네 구절= 사구(四句)를 버리는 것이니,

공(空)과 불공(不空), 생(生)과 멸(滅)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다섯 구절 모두가 역시 그와 같은 것이라.

 

如是等 種種無量阿僧祇 法門所攝諸法 以是無智慧盡遍知上諸法 名爲一切智 一切種智。

이와 같은 등의 무량한 아승기의 법문(法門)에 포섭되는 법들이니,

무애지혜(無礙智慧)로써 위의 모든 법들을 두루 다 아는 것을 일컬어 ‘일체지(一切智),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