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24권 8
大智度論釋初品 十力釋論第三十九卷二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9. 초품 중 십력(十力)의 뜻을 풀이함 8
問曰; 九力智慧分別有差別 漏盡則同 一切聲聞 辟支佛有何等異?
묻나니, 누진지력(漏盡智力, āsravakṣayajñānabala)에 있어서 아홉 가지 힘의 구력지혜(九力智慧)는 분별하면 차별가 있지만 그 번뇌가 다한 누진(漏盡)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성문과 벽지불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 雖漏盡是同 智慧分別大差別。聲聞極大力 思惟所斷結 生分住分滅分 三時斷,
佛則不爾 一生分時盡斷。
답하나니, 비록 번뇌(유루)가 다하여 누진(漏盡)인 것은 동일하나, 지혜(智慧, jñānaviśeṣa)의 분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성문은 지극히 크게 힘을 써서 사유도(思惟道)에서 끊어야 할 사유소단(思惟所斷)의 번뇌인 결사(結使)가 생겨날 때의 생분(生分, utpādabhāga)과 머무를 때의 주분(住分, sthitibhāga)과 소멸할 때의 멸분(滅分, bhaṅgabhāga)의 삼시(三時)에 끊게 되지만, 부처님은 그렇지 않아서 하나가 생겨나는 그 생분시(生分時)에 모두를 다 끊으시며,
聲聞人見諦所斷結使生時斷 思惟所斷三時滅, 佛則見諦所斷 思惟所斷無異。
성문은 견제에서 끊어야 할 견제소단(見諦所斷)에 번뇌인 결사(結使)가 생길 때에 끊고, 사유도(思惟道)에서 끊어야 할 것은 생분 주분, 멸분(生分, 住分, 滅分)의 삼시(三時)에 소멸시킬 수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견제도(견제소단)에서 끊어내시는 것과 사유도에서 끊어 내시는 것이 다르지 않으시며,
聲聞人初入聖道時 入時與達時異, 佛則一心中亦入亦達
一心中得一切智 一心中壞一切障 一心中得一切佛法。
성문은 처음 성도(聖道)에 들어갈 때에, 들어갈 때와 도달할 때가 다르지만, 부처님께서는 곧 한마음 안에서 들어가기도 하고 도달하기도 하시며, 한마음 안에서 일체지(一切智, sarvajñāna)를 얻으시고, 한마음 안에서 일체의 장애를 무너뜨리시며, 한마음 안에서 온갖 불법(佛法)을 얻으실 수 있으며,
復次 諸聲聞人有二種解脫, 煩惱解脫 法障解脫。佛有一切煩惱解脫 亦有一切法障解脫。佛自然得智慧 諸聲聞人隨教道行得。
또한 모든 성문에는 두 가지의 해탈이 있으니,
번뇌로부터의 해탈하는 번뇌해탈(煩惱解脫, kleśavimukti)과
법의 장애로부터의 해탈하는 법장해탈(法障解脫, dharmāvaraṇavimukti)이 그것이다.
부처님 역시 일체 번뇌해탈(煩惱解脫)과 일체 법장해탈(法障解脫)이 있으시나,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자연히 지혜를 얻으셨고, 성문은 가르침의 도(道)를 따라 행하여 얻게 된 것이다.
復有人言 若佛以智慧斷一切衆生煩惱 其智亦不鈍不減。譬如熱鐵丸 著少緜上 雖燒此緜而火熱勢不減, 佛智慧亦如是 燒一切煩惱 智力亦不減。
또한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지혜로써 일체중생의 번뇌를 끊어내시나, 그 지혜는 무디어지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이라. 비유하자면 마치 불타고 있는 철환(鐵丸)을 약간의 솜 뭉취 위에다 놓아서, 비록 솜 뭉치는 다 타 버린다 할지라도 철환의 뜨거운 불의 세력은 줄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번뇌를 다 태운다 할지라도 그 지혜의 힘은 역시 줄어지지 않는 것이다.”
復次 聲聞但知自盡漏, 諸佛自知盡漏 亦知盡他人漏 如『淨經』中說。
또한 성문은 다만 자기 자신의 번뇌가 다한 것만을 알 뿐이지만, 모든 부처님께서는 스스로의 번뇌가 다한 것도 아시고 다른 이들의 번뇌가 다한 것도 아시나니, 마치 '정경(淨經, Praśāntasūtra)'에서 설한 바와 같다.
復次 佛獨知衆生心中 分別有九十八使 一百九十六纏 除佛 無有知者。佛亦獨知苦法智 苦比智中斷爾所結使性 乃至道比智亦如是, 思惟所斷九解脫道中亦爾。
또한 부처님께서만이 유독 중생들이 마음속으로 분별하는 98사(九十八使)의 수면번뇌와 196전(一百九十六纏)의 수번뇌가 있음을 아시나,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아는 이가 없으며,
부처님만이 또한 유독 고법지(苦法智, 고지苦智)와 고비지(苦比智, 제이무루심)에서 끊게 되는 번뇌의 성품을 아시며, 나아가 도비지(道比智, 도류지인의 해탈도)에서도 역시 그와 같으며, 사유도에서 끊어내시고, 9해탈도(九解脫道)에서도 역시 그러하시다.
98수면(九十八隨眠) · 98근본번뇌(九十八根本煩惱) 또는 98사(九十八使)는 수면(隨眠) 즉 근본번뇌를 3계와 5부의 측면에서 세분하여 얻어지는 98가지의 근본번뇌들을 말한다.
욕계의 36가지 + 색계의 31가지 + 무색계의 31가지 = 98가지
전(纏)은 전박(纏縛) · 속박(束縛) · 구속(拘束) · 얽매임 · 얽어맴의 뜻으로,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번뇌가 몸과 마음을 얽어매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번뇌가 유정의 몸과 마음을 얽어매어 사물(事物) 혹은 사리(事理)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게 함으로써 선(善)을 닦는 것을 장애하는 한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 또는 명칭이다.
전(纏)은 번뇌와 동의어이지만, 모든 번뇌를 근본번뇌(根本煩惱)와 수번뇌(隨煩惱)로 나눌 때 특정한 몇 가지 수번뇌를 가리키는 용도로 특히 사용되며 통상적으로 8전(八纏) 또는 10전(十纏)을 의미한다. 탐 · 진 · 치의 3가지 근본번뇌를 가리켜 3전(三纏)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3전은 3박(三縛)의 동의어이다. 이와 같이 전(纏)은 종종 계(繫, grantha) 또는 박(縛, bandhana)과 동의어로도 사용된다. 또한, 이들이 합쳐져 이루어진 계박(繫縛) · 전박(纏縛)이라는 낱말도 이들의 동의어로도 사용된다-위키
*고지(苦智)는 4성제 가운데 고제(苦諦)를 아는 무루지를 말하며, 고법지(苦法智)는 고지(苦智)의 일종이다.
*고비지인(苦比智忍)은 신역에서는 고류지인(苦類智忍)이라 말한다. 위로 2계(界)의 고제(苦諦)에 대한 무루심(無漏心)이라 하여 위로 2계(界)는 무루심의 대상도 그 마음의 작용(行相)이 욕계의 부등에 유동하지만 위에 유인(類忍), 유지(類智)라 말하고, 옛 번역에는 비인(比忍), 비지(比智)라 말하고, 지금은 제이무루심(第二無漏心)이라 한다.
*도비지(道比智) 도류지(道類智)= 색계 · 무색계의 도제를 견도소단의 가림없이 보는 지혜로, 도류지인의 해탈도이며, 도지의 일종이고 유지의 일종.
佛悉遍知一切衆生如是事, 聲聞若少知少說 皆隨佛語。
佛如是漏盡智慧力勢 無能壞 無能勝 是名“第十力”。
부처님께서는 온갖 중생의 이러한 (업의) 일을 모두 두루 아시니, 성문이 조금 알고 조금 설명하는 것은 모두가 부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번뇌가 멸진한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의 누진지(漏盡智)의 힘이 크셔서 무너뜨릴 수 있는 이도 없고 보다 수승한 이도 없나니, 이를 열 번째의 힘인 제십력(第十力)이라 한다.
問曰; 是十力何者最勝?
묻나니, 이 십력(十力)에서 어느 지혜가 가장 수승합니까?
答曰; 各各於自事中大 如水能漬 火能燒 各自有力。
有人言; 初力爲大 能攝十力故。或言; 漏盡力大 事辦 得涅槃故。
論者言, 是十力皆以無㝵解脫爲根本 無㝵解脫爲增上。
답하나니, 각각 나름의 일(영역)에서 그 큼이 마치 물은 능히 젖게 할 수 있고, 불은 능히 타게 할 수 있는 것과 같나니, 저마다 스스로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첫 번째의 힘이 가장 크니, 10력을 포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하며,
어떤 이는 말하기를 “누진력(漏盡力)이 가장 크니, 일을 마치고 열반을 얻기 때문이다”고 하며,
또한 논자(論者, 논사)는 말하기를 “이 10력은 모두가 장애 없는 무애해탈(無礙解脫)을 근본으로 하는 것으로, 장애 없는 해탈이 가장 으뜸이다”라고 한다.
問曰; 若是十力獨是佛事 弟子今世無人能得 佛何以故說?
묻나니, 만약 이 10력이 유독 부처님만의 일이라면 제자로서 금세에서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 斷人十力中疑故 無智人令心決定堅牢故 令四衆歡喜
言, “我等大師獨有如是力 不與一切衆生共"
답하나니, 10력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을 끊게 하기 위해서이고,
지혜 없는 사람의 마음을 결정하여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4중(衆, catuṣpariṣad. 사부대중)으로 하여금 “우리들의 큰 스승만이 오직 홀로 이러한 힘이 있으시며 일체의 중생들과는 같지 않다”며 기뻐하게 하시려는 까닭이다.
又諸外道輩言, “憍曇氏沙門常寂靜處住 智慧縮沒" 以是故 發至誠言, “我十種智力 四無所畏 安立具足, 在大衆中 說具足智慧 教化衆生 如師子吼 轉梵輪 一切外道及天世人無能轉者" 爲止是謗故 說是十力。
또 모든 외도들이 말하기를 “교담씨(憍曇氏, Gautama) 사문은 항상 적정한 곳에 머물러 지혜가 움츠러져 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지성스런 말씀으로 “나는 열 가지의 지력(智力)과 4무소외(四無所畏)을 두루 갖추고 안주하였다”고 하신 것이며,
대중과 함께 계시면서 두루 갖춘 지혜의 말씀으로 중생을 교화하시니, 마치 사자의 외침과 같이 청정한 범륜(梵輪)을 굴리셨으니, 온갖 외도나 하늘이나 세상의 사람으로서는 능히 굴릴 수 있는 이가 없으며,
이렇게 비방을 그치게 하시고자 이 10력을 말씀하신 것이다.
問曰; 好人法 一事智慧尚不應自讚, 何況無我 無所著人而自讚十力?如說;
묻나니, 훌륭한 사람의 법이라면 한 가지 일에 대한 지혜에서조차도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거늘, 하물며 무아(無我)이고 집착함이 없는 무소착(無所著)의 사람이라 하면서 스스로의 10력을 칭찬하는 것이겠습니까? 게송에서 설함과 같습니다.
自讚自毀 讚他毀他, 如是四種 智者不行。
스스로를 칭찬하고 스스로를 헐뜯으며, 다른 이를 칭찬하고 다른 이를 헐뜯는
이러한 네 가지 일이야말로 지혜로운 이는 행하지 않는 것이다.
答曰; 佛雖無我 無所著 有無量力 大悲爲度衆生故 但說十力 不爲自讚。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비록 무아(無我)이고 무소착(無所著)이시지만, 무량한 힘이 있으시니, 다만 대비(大悲)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10력을 말씀하셨은 뿐이요 자신을 칭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譬如好賈客導師 見諸惡賊誑諸賈客 示以非道, 導師愍念故 語諸賈客, “我是實語人 汝莫隨誑惑者!”
비유하자면, 마치 훌륭한 상인들의 길잡이가 나쁜 도적들이 그 상인들을 속이면서 길이 아닌 곳을 알려주는 것을 보게 되면, 그 길잡이는 가엾이 여기는 생각으로 장사꾼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이니, 그대들은 저들이 속이고 유혹하는 것을 따르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又如諸弊醫等誑諸病人 良醫愍之 語衆病者, “我有良藥能除汝病 莫信欺誑以自苦困"
또 마치 나쁜 의사들이 병자들을 속이면, 어질고 좋은 의사는 그들을 가엾이 여기며 말하기를 “나에게 좋은 약이 있으니 당신들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저 속임수를 믿고 스스로 고생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復次 佛功德深遠 若佛不自說 無有知者, 爲衆生少說 所益甚多。以是故 佛自說是十力。
또한 부처님의 공덕은 깊고 무한하여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않는다면 아는 이가 없으니, 중생들을 위하여 조금만이라도 말씀하여 주시면 그 이익됨이 매우 많으니, 이러한 때문에 부처님은 스스로 10력을 말씀하신 것이요.
復次 有可度者必應爲說 所應說中次第應說十力, 若不說 彼不得度 是故自說。譬如日月出時 不作是念, “我照天下 當有名稱" 日月旣出 必自有名。
또한 제도될 수 있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그들을 위하여 말씀하시니, 말씀하시는 가운데서 차례로 10력을 말씀해 주셨으나, 만약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제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때문에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해와 달이 나오면서 “나는 천하를 비추어 주므로 마땅히 명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해와 달이 이미 나왔으면 저절로 반드시 명칭이 있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佛亦如是 不自念爲有名稱故自說功德。佛淸淨語言說法 光明破衆生愚闇 自然有大名稱。
以是故 佛自說十力等諸功德 無有失。
부처님께서 그와 같이, 스스로의 명칭이 있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공덕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청정한 말씀으로 설법을 하시면 그 광명이 중생의 어리석은 어두움을 깨뜨리기에 절로 큰 명칭이 있게 된 것이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스스로 10력 등의 모든 공덕을 말씀하셨으나, 그에 대한 허물은 없는 것이다.
“力”名能有所辦, 用是十種力增益智慧故 能破論議師, 用是十種力增益智慧故 能好說法, 用是十種力增益智慧故 能摧伏不順, 用是十種力增益智慧故 於諸法中得自在, 如大國主於臣民大衆中得自在。是爲以聲聞法略說十力義。
역(力, 힘)이란 능히 방편을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
이 열 가지의 힘인 십종력(十種力)으로써 지혜를 더욱 증익하게 하셨으니,
논의사(論議師, upadeśācārya)들을 능히 깨뜨리시고,
이 십종력(十種力)으로써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셨으므로 법(가르침)을 잘 말씀하신 것이요.
이 십종력(十種力)으로써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므로 따르지 않는 이를 꺾어 조복할 수 있고,
이 십종력(十種力)으로써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므로 제법에서 자유자재하셨나니,
마치 큰 나라의 왕이 신하와 백성= 신민(臣民)과 대중 가운데서 자유자재할 수 있는 것과 같으며,
이는 성문법(聲聞法)으로써의 10력의 뜻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大智度論卷第二十四 終 대지도론 제 24 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