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정행품(淨行品) 1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四
淨行品 第十一
[[무슨 이유로 명칭이 [정행품]인가? 비롯 없는 온갖 견해의 무명과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애착을 통해 이미 보리심을 발하여 正法을 즐겁게 믿기 때문에 온갖 견해를 단박에 뒤집어 大願을 성취해서 大悲門을 기르는 것이니, 만약 단지 3空의 無相으로만 대치하고 대자대비를 낳지 않으면 보현행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먼 길을 가고자 할 때는 발이 아니면 가지 못하고, 대자비를 행하여 보현문의 충만한 법계행에 들고자 할 때는 이체의 見聞覺知: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에서 잘못이 없어야 문득 만행의 장엄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 다 이 140의 大願門을 닦아 익힘으로써 문득 보현행에 들기 때문에 淨行이라 이름붙이는 것이다. 만약 이 願이 없다면, 설령 번뇌를 끊더라도 곧 이승의 행인 것이며, 설령 보살이라도 곧 정토에 나는 보살이다. 이 140의 大願門으로 단박에 일체 塵勞의 行門을 청정케 해서
1. 보현의 법계행을 성취하기 때문에 명칭이 淨行이며, 이 대원으로
2. 일체 세간의 모든 행을 장엄하여 총체적으로 법계의 일체 도량을 삼기 때문에 정행인 것이며, 이러한 온갖 견해로
3. 大善根을 이루기 때문에 명칭이 정행인 것이다.
이전의 [問明品]은 이 10신 속의 이해를 성취하는 것이며, 이 품은 10신의 행을 이루기 때문에 이 품이 반드시 옴을 밝힌 것이니, 나아가 '果行이 원만한 이래'까지는 이 대원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품의 宗趣를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智首는 下方의 파리색(頗梨色)세계이다. 부처님의 명호가 梵智인 것은 일체 佛法의 근본 자체에 순백의 청정한 오염 없는 지혜를 밝힌 것인데, 이를 能問의 사람으로 삼으며, 문수사리보살은 바로 일체 부처님의 훌륭히 가려내는 묘한 슬기인데, 설법의 주체로 삼는다. 그리하여 일체 부처님의 근본 지혜의 문으로 스스로 문답의 主와 伴이 되어 140대원의 문을 설함으로써 10신·10주·10행·10회향·10지·11지 등 보현법계의 다함 없는 行海를 이루고, 근본청정지혜로 묘한 슬기에게 물어 그 140의 청정한 願門을 설함으로써 信 등의 6位 중에 오염과 청정의 무명1)을 청정케 한다. 그리하여 7地의 法執現行과 10지 이래의 法執習氣와 佛地의 두 가지 어리석음을 일시에 정화시켜 이 신심 속에 편벽됨이 없게 하고 願으로 방비함으로써 寂用으로 하여금 걸림 없게 한 것이다. 다라서 모든 부처님의 근본청정지혜와 묘한 슬기의 문으로 140의 大願을 설하여 오염과 청정의 두 가지 장애를 방비함으로써 종취를 삼는 것이다.
(무명 1) 아집을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오염된 것이며, 법을 집착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청정이다.)
그리고 6位 위의 信과 10주·10행·10회향·10지·11지의 지위에 따른 수도상의 번뇌를 통틀으면 6위 중 1위 위에 20이 있기 때문에 6위 전부는 120이 있으며, 또 근본 10무명이 모두 身見과 邊見의 두 견해로 인한 20이 있기 때문에 지위에 따라 닦아 나가는 오염과 청정의 번뇌는 모두 140이 있는 것이다. 이 번뇌의 장애를 막기 위해 140願을 일으켜 닦아 나가는 자로 하여금 첫 신심에서부터 理와 事를 원융케 함으로써 신심 있는 자로 하여금 그 願의 體가 망가짐이 없음을 요달케 하고, 자기 마음의 근본청정지혜와 묘하게 가려내는 슬기로 動과 寂이 함께 참되게 함으로써 편벽된 수행이 되지 않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華藏세계는 수미산 미진 수같은 風輪이 유지하는 것인데, 그 위의 일체 장엄은 대원의 풍륜이 능히 萬行을 갖는 것으로 因해 행으로써 果를 초래하는 것이다. 因으로 果를 유지하기 때문에 원력으로 굳데 유지함을 因하여 풍륜이 刹을 가짐을 과보로 얻는 것이다. 또 “이같은 華藏의 장엄이 모두 보현의 願力으로부터 일어났다”고 하니, 願이 없기 때문에 행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장엄이 나타나지 않아 다함 없는 依果報를 감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신심 위에서 법성의 悲智와 묘한 슬기의 만행이 모두 부처에 의거해서 닦아 나가게 될 뿐 따로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처님을 여의고 따로 自法이 있다고 하면, 신심을 이루지 못해서 열 가지 뛰어난 이해를 성취하지 못하고 수행도 이루지 못한다. 설령 고행으로 부지런히 정진할지라도 이는 삭된 정진일 뿐이며, 累劫을 고생할지라도 人天에 태어나서 일념에 탐내거나 성을 내니 일체가 다 타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품 아래 경문에서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도에 머물고 중생을 따라 머물면서 늘 벗어나지 않으며, 온갖 法相을 능히 다 통달해서 일체의 악을 끊고 온갖 선을 구족하여 반드시 보현의 色像第一과 같으며 일체의 行願이 다 구족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상은 종지의 취지를 밝힌 것이니, 그 뜻은 범부가 집착하는 마음과 경계의 차별적인 업을 돌이켜서 다 願海를 이루어 보현문을 구족케 함을 밝힌 것이다.]]
[淨行= 청정한 행ㆍ청정한 수행이다 → 離過成德(이과성덕) 장애와 허물을 끊고 덕을 이루는 것이다 → 斷障(단장)과 成德이다 = 淸淨(청정)= 청정한 행 → 悲智雙(비지쌍) 지혜와 자비를 쌍으로 운용하는 行 = 범부나 소승의 경지를 초월하여 청정에 계합한다.]
1. 佛果의 三業
爾時에 智首菩薩이 問文殊師利菩薩言하사대 佛子야 菩薩이
云何得無過失身語意業이며 云何得不害身語意業이며
云何得不可毁身語意業이며 云何得不可壞身語意業이며
云何得不退轉身語意業이며 云何得不可動身語意業이며
云何得殊勝身語意業이며 云何得淸淨身語意業이며
云何得無染身語意業이며 云何得智爲先導身語意業이니잇고
爾時에, 그 때에 智首菩薩이 지수보살이 問文殊師利菩薩言하사대,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佛子야 菩薩이 불자여, 보살은 云何得(운하득), 云何= 어떻게 허물이 없는
無過失身語意業(무과실신어의업)이며, 신·구(口:語)·의의 업을 得= 얻으며,
云何得, 어떻게 不害(불해)身語意業이며, 해치지 않는 신·구·의 업을 얻으며, [害= 해칠 害해, 손해의 害]
[따지고 보면 우리는 身ㆍ口ㆍ意 3업의 과실 투성이고 손해 투성입니다. 다치고 병나는 것도 害身語意業입니다.]
[[害 다른 것으로부터 어떤 침해를 당하는 것. 헐 毁 훼 고의적으로 해치는 것]]
云何得 不可毁(불가훼)身語意業이며, 어떻게 헐뜯을 수 없는 신·구·의 업을 얻으며,
[훼방할 毁훼. 헐 毁훼. 앞에는 다른 것으로부터 침해를 당하는 것이고, 여기는 고의적인 해침입니다]
云何得 不可壞(괴)身語意業이며, 어떻게 무너뜨릴 수 없는 신·구·의 업을 얻으며,
不退轉(퇴전)身語意業이며, 어떻게 물러남이 없는 신·구·의 업을 얻으며,
云何得 不可動身語意業이며, 어떻게 흔들림 없는신·구·의 업을 얻으며,
[不動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온갖 것에 움직이고 흔들립니다. 八風不動(팔풍부동) 利ㆍ衰ㆍ毁ㆍ譽ㆍ稱ㆍ譏ㆍ苦ㆍ樂(이쇠훼예칭기고락). 여덟 가지에 흔들지 않는 것. 자기를 손해 보게 한다든지ㆍ이익하게 한다든지ㆍ칭찬한다든지ㆍ헐뜯는다든지ㆍ괴로움이 닥친다든지ㆍ즐거움이 닥친다든지, 대개 괴로움에서보다 즐거움에서 더 잘 움직이는 것이 중생입니다.]
[[衰 쇠할 쇠, 譽 기릴 예, 명예 예, 譏 나무랄 기, 비웃을 기]]
云何得 殊勝(수승)身語意業이며, 어떻게 수승한 신·구·의 업을 얻으며,
云何得 淸淨身語意業이며, 어떻게 청정한 신·구·의 업을 얻으며,
云何得 無染(무염)身語意業이며, 어떻게 물듦이 없는 신·구·의 업을 얻으며,
云何得 智爲先導(지위선도)身語意業이니잇고? 어떻게 선도를 위한 지혜로룬 신·구·의 업을 얻습니까?
[智爲先導. 지혜가 선도가 되는, 지혜가 앞장서는 身語意業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결정적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지혜다.]
[[“이 때 智首보살” 이하와 “어떻게 잘못이 없는 身業·語業·意業을 얻으며”에서부터 모두 열 가지 질문이 있고, 열 가지 질문 중에는 모두 110개의 물음은 세간의 3業 등을 묻는다.]]
2. 佛果의 具足
云何得生處具足과 種族具足과 家具足과 色具足과 相具足과
念具足과 慧具足과 行具足과 無畏具足과 覺悟具足이니잇고
云何得 生處具足(생처구족)과, 어떻게 태어나는 곳의 구족과
[중국 사람들은 자기네가 지구의 중심되는 나라라고 해서 중국이라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인도를 中國, 지구의 중심은 인도라고 보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중심입니다. 즉 내가 있는 곳이 중심입니다. 그런데 生處具足은 “불법이 살아있는 나라.”를 뜻하는 겁니다. 불법이 살아있는 나라에 태어나야 生處=태어나는 곳이 具足한다. 사실 아프리카에 태어났으면, 우리가 어떻게 불법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어림도 없지요. 좋은 국토에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런 대로 사실은 한국은 참 괜찮은 나라입니다.]
種族(종족)具足이라 종족의 구족,
[그 전에 제가 향곡스님 살아계실 때에 월내관음사에 두 철 살았습니다. 방선시간에 해질 녘에 저녁 먹고 딱~ 나가면 마침 해가 뉘엿뉘엿 집니다. 거기 철길이 하나 있어요. 관음사 옆에 거지들이 사는 집이 있어요. 거기 한 대여섯 명이 살아요. 어린 거지들도 있고, 나이 좀 든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저쪽에, 월내 쪽으로 가서 동냥을 해가지고 흥얼흥얼 하면서 돌아와요. 그래 우리와 자주 만나져요. 철길에서 자주 만나서 이야기도하고 그렇거든요. 나중에 친해지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겁니다. “스님들 도대체 뭐 할 것이 없어서 스님 합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거지라도 하지 왜 중노릇 하느냐? 아~~ 제가 그것 듣고 여러 번, 하도 귀한 말이 돼가지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습니다. 種族具足이라고 하는 것. 거지 아들로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중노릇 할 수 있었겠습니까? 족성을 너무 따질 것은 아니로되, 種族具足이라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家具足과 가문의 구족,
[가문입니다. 그래도 승려가 되는 것을, 또 불교를 믿는 것을 집안 대대로 내려오면서 모태신앙으로 불교를 믿으면 더욱 좋지만, 그래도 출가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최소한 불교를 인정은 해주고 선행을 닦을 줄 아는, 그런 집안에 태어나는 것이 家具足이 되는, 현실적으로 참 중요한 내용입니다.]
色具足과 색의 구족,
[이것은 형색이 단언한 것입니다. 불구자, 요즘말로 장애인은 출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그런 명문이 있습니다. 지금도 문신한 사람 안 받아주는데, 어떤 이들은 눈썹에 문신한 것은 아무 상관없는데 그것도 안받아줍니다. 色具足이 그런 뜻입니다.]
相具足과 상의 구족, [色= 외모, 相= 형상을 말하는 것]
念具足과 생각의 구족,
[正念= 바른 생각. 말하자면 중도적 생각.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정말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 思考(사고)가 상식적인 것을 正念이라고 합니다.]
慧具足과 지혜의 구족,
[慧가 고명해야 됩니다. 지혜가 세상사ㆍ인생사를 조망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서 세간 법= 세상 돌아가는 것도 환히 꿰뚫어 있으면 좋지요. 그 전에 수덕사에 있는 비구니스님이 어떤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스님, 어째서 출가를 했습니까?” 물었어요. -그 스님 조금 유명한 스님이라 제가 실명을 거론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자기는 5분이면 인생사 다 관조가 된다는 겁니다. 세상에서 무슨 직업을 가지고 살든지, 그 인생이 5분이면 어떤 경우의 인생살이도 다 간파가 된다. 그것이 말하자면 慧具足입니다.]
行具足과 행의 구족,
[초심에 배우는 말, 柔和善順(유화선순) 부드럽고, 화목하고, 착하고, 순한 것을 行具足입니다.]
無畏(무외)具足과 두려움 없음의 구족,
[뜻이 견고해야 됩니다. ‘중노릇을 하겠다ㆍ불법을 믿겠다ㆍ포교를 하겠다ㆍ봉사를 하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위협이 있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내 소신껏 하겠다.’ 라고 하는 것이 無畏具足입니다. 옛날 같이 排佛崇儒(배불숭유)정책이 행해져서 스님들을 환속을 시킨다든지 하는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소신껏 살 수 있는 마음자세가 無畏具足입니다.]
覺悟(각오)具足이니잇고 깨달음의 구족을 얻습니까?
[자성에 대해서 밝아야 되는, 마음의 이치를 환히 알아야 된다는 것이 覺悟具足입니다.]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을 팔난(八難), 불법을 받아들이고 깨닫는 데 아주 어려운 형편에 놓인 여덟가지 부류의 팔난(八難) 중생
①지옥(地獄) 지옥은 고통이 너무 극심함으로 수행을 할 엄두를 못 내어 불교의 사성제를 알기 어렵다.
②아귀(餓鬼) 너무 배고프고 굶주려 공부가 어렵다. 세상에서도 너무 가난하거나 굶주리면 수행이 어렵다
③축생(畜生) 갖가지 짐승들이나 온갖 생명들은 공부가 어렵다. 짐승의 몸을 받은 경우
④변지(邊地)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동서남북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수행할 생각을 않는다. 세상에서도 돈 많고 편안하면 공부할 생각을 내기 어렵다.
⑤재울단월난(在鬱單越難)=장수천(長壽天)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수행이 어렵다. 즉 생활이 너무 풍요롭거나 즐거워서 법을 닦기가 어려운 것이다.
⑥ 맹농음아(盲聾瘖瘂)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이 어렵다.
⑦세지변총(世智辨聰) 세속의 지식은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고 사견(邪見)과 사견(私見)으로 얼빠진 박사들 정치인들 학자들은 수행이 어렵다. 즉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소유했더라도 세상 놀음이나 세상의 학문이나 다른 종교 또는 취미와 오락에 빠져서 그것이 최고의 가치인양 여기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게 불법은 한낱 생활의 도구정도나 미신 밖에는 되지 않으므로 자기의 가치 척도로 헤아려 보고 배척하거나 불신한다.
⑧불전불후(佛前佛後) 부처님이 출현하기 전이나 열반 후에 가르침을 설할 부처가 없기 때문에 수행이 어렵다. 즉 육신을 지닌 부처님이 세상에 안 계심으로 인해 법이 드러나있지 못해서 도를 닦기 어려운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분이 오시기 이전의 중생들이라든가 반대로 부처님이 나타나셔서 법은 설해 놓으셨지만, 세월이 너무 오래 경과된 까닭에 법이 쇠퇴해져서 믿음이 없는 시대에 태어난 중생들을 말한다.]]
云何得= 이러한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生處具足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種族具足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가문의 구족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얼굴의 구족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상모의 구족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사상의 구족을 수 있습니까?
[[둘째로 “어떻게 生處具足”에서부터 10具足을 물었는데, 그 중 처음 重族具族에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세간이니, 族姓家에 태어나는 것이 種族이 된다. 다른 하나는 출세간이니, 곧 부처 집안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부처님의 種性을 갖추는 것이다. 즉 色相과 念慧 등이 모두 부처 집안이요, 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3. 十種智慧
云何得勝慧와 第一慧와 最上慧와 最勝慧와 無量慧와 無數慧와
不思議慧와 無與等慧와 不可量慧와 不可說慧이니잇고
云何得 勝慧(승혜), 어떻게 수승한 지혜와,[수승할 승勝ㆍ지혜 혜慧. 세간의 지혜보다 훨씬 수승한 지혜]
第一慧와 제일의 지혜, [二僧들. 성문이나 연각들의 지혜보다도 훨씬 우위에 있는 지혜를 第一慧라고 합니다.]
最上慧(최상혜)와 가장 높은 지혜.
最勝慧(최승혜)와 가장 수승한 지혜. 그 다음에
無量慧(무량혜)와 무량한 지혜와,
無數慧(무수혜)와 무수한 지혜= 數로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不思議慧(부사의혜)와 말이나 생각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지혜와
無與等慧(무여등혜)와 더불어 같을 이가 없는 지혜. 같음이 없는 지혜와
不可量慧(불가량혜)와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不可說慧(불가설혜)이니잇고?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열 가지 슬기를 물은 것은 모두 출세간의 뛰어난 슬기이다]]
4. 具道因緣力
云何得因力과 欲力과 方便力과 緣力과 所緣力과 根力과 觀察力과 奢摩他力과 毘鉢舍那力과 思惟力이니잇고
云何得因力(인력)과 보살이 어떻게 하면 因力= 원인이 되는 힘ㆍ씨앗이 되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欲力(욕력)과 하고자 하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欲力= 의욕, 뭔가 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됩니다. 사실은 늙고 젊고 가 문제아니라 열정 없는 사람 송장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그것이 欲力= 열정입니다. 欲자를 우리는 잘못 배워가지고 좋지 아니한 글자인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 아주 좋은 글자입니다.]
[[무진의보살경 제6권 四正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의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도 또한 다함이 없으니, 네 가지란 무엇인가 하면,
①아직 나쁘고 착하지 못한 법[不善法]이 생기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내어 부지런히 정진하고 마음을 거두어 바로 제거하며, 이른바 의욕이란 잘 생각하는 것이며, 부지런히 정진한다는 것은 잘 생각함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②이미 생겨난 나쁘고 착하지 못한 법은 끊기 위하여 의욕을 내어 부지런히 정진하고 마음을 거두어서 바로 제거하며,이이는 잘 생각함을 바르게 관찰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잘 생각하고 있을 때는 나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쁘고 착하지 못한 법은 戒取의 짝[伴]이 아닌 것과 선정의 짝이 아닌 것과 지혜의 짝이 아닌 것이 그것입니다. 계취의 짝이 아니라 함은 다섯 가지 무거운 계를 깨뜨리거나 다른 계를 헐뜯음이 그것이며, 선정의 짝이 아니라 함은 위의를 헐뜯거나 心法을 어지럽게 함이 그것이며, 지혜의 짝이 아니라 함은 모든 소견을 거두어 가지거나 다른 소견에 장애됨이 그것이니, 이것을 나쁘고 착하지 못한 법이라고 합니다.
③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내어 부지런히 정진하고 마음을 거두어서 제거하며,~중략~
④이미 생겨난 착한 법은 편안히 머물러 닦아 모아서 더욱 넓히고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내어 부지런히 정진하고 마음을 거두어서 바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方便力(방편력)과
緣力(연력)과 주변의 조건들에 대한 힘과
所緣力(소연력)과 반연할 바의 힘과 [緣力= 능연. 所緣力= 대상으로서의 조건]
根力(근력)과 근기 또는 근본이 되는 힘과 觀察力(관찰력)과 관찰력과
奢摩他力(사마타력)과 止와 毘鉢舍那力(비발사나력)과 위빠사나觀과
[奢摩他力(사마타력)=止 + 毘鉢舍那力(비발사나력)과觀(관) = 止觀= 정혜= 선정에서 모든 것을 예의주시하는것.
물이 출렁거리는 물을 안정시키는 것이 奢摩他입니다. 안정시키면 거기에 고기가 노는지 무슨 하늘에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도 비치고, 구름이 떠가도 그것 다 비치고, 환하게 비치는 겁니다.]
본래 전통불교에서는 奢摩他하고 毘鉢舍那, 止觀입니다. 우리 마음을 멈춰서 가라앉혀서 선정이 된 다음에 解觀하는, 선정, 전통 止觀과 지금의 위빠사나는 달라요. 지금 위빠사나는 흔히 설명하는 걸로서는 호흡을 예의주시하는 것. “마음 챙김” 예의관찰ㆍ예의주시. 호흡하고 들락날락하는 것을 관찰하고 수식관, 헤아릴 數(수)자 수식관도 있고, 따를 隨(수)자 수식관도 다 위빠사나에 해당되는 것인데, 아무튼 그것은 금방 작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화선은 한 번 크게 깨달는, 확철대오 하기 전에는 완전히 제로 상태인, 그야말로 이판사판입니다. 간화선은 확철대오 하기 전에는 내놓을 명함이 아무것도 없지만, 비파사나는 한 시간하면 한 시간한 것 만치 소득이 있습니다. 마음관리를 하니까요. 걸음 걷는 것도 천천히 그렇게 살펴가면서 내가 오른발 내딛는지, 왼발 내딛는지 그것 일일이 예의주시하면서 거기다, 내 행위에 마음을 싣고 행위를 하니까요. 마음이 차분해지고ㆍ침착해지고ㆍ조용해지고ㆍ점잖해지는데 그것을 놓쳐버리면 금방 그전과 똑 같이 됩니다. 남방에서 그것을 전문으로한 우리 도반이 있었는데, 그것 놓쳐버리니까 화도 잘 내고 신경질도 잘 부리고, 그런데 그것을 안 놓치는 그 한계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아주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思惟力과 어떤 것이 사유하는 힘을 得=얻을 수 있습니까?
[[열 가지 힘[力]을 물은 것이다.
因力이란 이른바 세세생생 속에서 運에 맡겨 능히 대보리를 발하는 능력이며,
欲力이란 意志가 대보리심을 즐겨해서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方便力이란 大願으로 스스로 잘 깨달아서 병행을 허비치 않는 것이며, 또한 능히 남을 깨우치면서도 功力을 덜어서 우회하지 않는 것이다.
緣力이란 能緣과 所緣에 망실됨이 없이 늘 대원을 일으키는 것이며,
根力이란 대원의 선근을 잃지 않는 것이며,
觀察力이란 能觀의 힘이며,
奢摩他力과 毘鉢舍那力은 觀과 止가 함께 병행하여 둘 다 자재하면서도, 혹은 먼저 觀한 뒤에 止하며, 혹은 먼저 止한 뒤에 觀하고 혹은 지에 즉해 그대로 관하고 혹은 관에 즉해 그대로 지하면서 모두 자재하는 것이며,
思惟力이란 올바른 理智를 잃지 않고 항상 현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