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7
[[문]무슨 이유로 게송 初에서 “문수의 법은 항상 마찬가지이다”라고 했습니까?
[답]문수는 모든 부처님의 슬기[慧]인데, 부동지는 體이며 문수는 用이다. 일체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의 근본지인 體用門을 갖고 일체 信心 있는 자와 더불어 인과와 체용을 짓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본에 의거하게 하기 때문에 究竟果의 원만함에 이르기까지 因과 더불어 다름이 없어서 두 성품이 없기에 그 명칭이 “초발심과畢竟心:궁극의 마음의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인 것이니, 이는 10信의마음이 발하기 어렵고 믿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움을 밝힌 것이다. 가령 듣는 자가 다 말하기를 “나는 범부인데 어찌 부처님이 될 수 있으리오” 하기 때문이며, 설령 약간이나마 믿는 자라도 신통의 道力만을 따지려 든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라. 꼭 이같이 바로 믿어야 비로소 바른 믿음과 바른 지견[見]으로 法力을 加行하여 법답게 닦아 나가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무명이 점점 엷어지고 해탈의 지혜가 밝아지면서 자기가 터득한 법의 깊고 얕음에 의거해 신통의 德用도 점점 자기를 따르겠지만, 믿음도 아직 얻지 못했다면 어찌 신통을 찾겠는가?
'漸漸'이란 一時·一法性·一智慧에서 옮기지 않은 無依住:의지하거나 머묾이 없음와 無所得:얻는 바가 없음 속의 점점이니 10玄과 6相의 뜻으로 원만히 하라. 법성의 理 속에는 頓과 漸이 없지만, 다만 무시 이래의 무명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갑자기 理에 계합하게 되면 순수한 성숙이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점점이 있는 것이니, 이 점점은 궁극적으로는 시작과 끝, 늦고 빠름, 길고 짧음 등의 量이 없는 것이라서 그 명칭을 ‘점점’이라 한 것이다.
모든 보살이 다 함께 문수사리에게 물은 열한 가지는 부처님의 경계를 밝힌 것이며, 이하 10행의 게송은 문수사리의 답인데 그 중의 세 가지 문은 앞에서와 같다.]
十, 境界甚深= 佛境界甚深= 깊은 부처님의 경계
(1) 諸菩薩問文殊菩薩
十種佛境界
爾時에 諸菩薩이 謂文殊師利菩薩言하사대
佛子야 我等所解를 各自說已로소니 唯願仁者는 以妙辯才로 演暢如來의 所有境界하소서
何等이 是佛境界며 何等이 是佛境界因이며 何等이 是佛境界度며 何等이 是佛境界入이며
何等이 是佛境界智며 何等이 是佛境界法이며 何等이 是佛境界說이며 何等이 是佛境界知며
何等이 佛境界證이며 何等이 是佛境界現이며 何等이 是佛境界廣이니잇고
爾時에, 그 때에 諸菩薩이 모든 보살들이 謂文殊師利菩薩言하사대, 문수보살에게 물어 말하되,
佛子야 我等所解(아등소해)를 各自說已(각자설이)로소니, 불자여, 저희들의 아는 바를 각자 말씀드렸으니
唯願仁者(유원인자)는, 원컨대 인자께서 以妙辯才(이묘변재)로, 미묘하신 변재로
演暢如來(연창여래)의 所有境界(소유경계)하소서. 여래가 지니신 경계를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요.
[여래의 경계를 이야기할 사람은 오직 문수보살뿐입니다. 물론 다른 보살들의 이름을 빌려서도 얼마든지 표현이 되었지만, 아주 확실히 드러나게 여래의 경계를 이야기 하는 경우는 문수보살입니다.]
何等(하등)이 是佛境界(시불경계)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이며,
何等이是佛境界因(시불경계인)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요인[因]이며, [境界因= 부처님의 경계의 씨앗= 원인]
何等이 是佛境界度(시불경계도)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제도 [度=중새 제도, 제도하는 의식]며,
何等이 是佛境界入(시불경계입)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들어감[入]이며,
[入= 중생 근기 따라서 제도하려면 중생들의 근기에, 어떤 상황에, 세상에 들어간다는 뜻.]
何等이 是佛境界智(시불경계지)며, 어떤 것이 부처님경계의 지혜이며,
何等이 是佛境界法(시불경계법)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법(法)이며, [佛境界法= 소지지법 = 반드시 알아야할 법.]
何等이 是佛境界說(시불경계설)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말씀[說]이며,
何等이 是佛境界知(시불경계지)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앎[知]이며,
[체상을 밝게 안다 → 본체와 그 본체의 현상들을 밝게 아는 것.]
何等이 佛境界證(불경계증)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증득[證]이며, [평등함을 증득한 것= 佛境界證]
何等이是佛境界現(시불경계현)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나타냄[現]이며,
何等이 是佛境界廣(시불경계광)이니잇고?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넓음[廣]입니까?
[불경계의 크고ㆍ작음을 표현해서 佛境界廣으로 廣자 하나만 썼는데, 사실 아주 까다로운 내용입니다.]
因= 원인 因.
度 = 중생 제도하는 것.
入 = 들어가는 것.
智 = 지혜.
法 = 법.
說 = 설법.
知 = 아는 것.
證 = 증득한 것.
現 = 나타내는 것.
廣 = 넓이의 大ㆍ小. 이러한 것을 여러 보살들이 문수보살에게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문수사리는 한역하면 妙德이니, 묘한 슬기로 正과 邪를 잘 가려내 자재하기 때문에 묘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동방의 卯位인데, 묘(卯)가 동방의 진괘(震卦)를 주재함을 밝힌 것이다. 震은 雷動이 되어서 계칩(啓蟄: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봄첨을 맞아 움직이게 됨)이 발생하는 시초이니, 이는 묘한 슬기가 10신을 진동시켜 발생시키는 시초임을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妙生보살이라고도 말하는데, 일체 부처님께서 이 슬기로부터 10신의 이해를 낳으며, 나아가 보리의 일체 願行의 바다를 만족시킴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명칭이 금색인 것은 因果體의 순백 청정한 오염 없는 법을 거양함을 밝힌 것이며, 또 金이 2월이 胎가 됨을 밝힌 것이니 10신이 聖胎가 됨을 나타낸 것이다.
일체처가 금색세계이며 일체처가 문수사리인 것은 자체성 없는 청정한 슬기가 변만함을 밝힌 것이며, 부처님의 명호가 부동지인 것은 무명이 본래 空해서 體에 움직임이 없는 것을 부동지라 칭한 것이다. 다만 경계에 감응해 법을 알고 그릇[器]에 응해 근기를 아는 것이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는 것과 같아서 處所와 形體를 얻을 수 없는 것을 智라 이름붙이며, 취하고 버리는 것이 없기 때문에 不動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해당되는 지위의 인과에 짝짓는다는 것을 설명하면, 묘한 슬기가 因이 되고 부동지가 果가 되며, 또한 서로 인과가 된다. 가령 묘한 슬기로 법을 잘 가려내 智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묘한 슬기로 因을 삼고 부동지로 果를 삼지만, 슬기가 지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으로 한다면 부동지로 인을 삼고 묘한 슬기의 문수로 과를 삼는다.
혹은 智와 슬기가 총체적으로 인이자 총체적으로 과이니, 체용이 하나의 참[一眞]이라서 두 법이 없기 때문임을 밝힌 것이다. 또한 智와 슬기가 총체적으로도 인도 아니요 가도 아니니 그 體에 본말도 없고 依住하여 얻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性法界의 자재로운 知見이니, 세간 인과의 상대적 견줌으로 얻는 것과는 같지 않다.
문수사리와 부동지불은 처음 신심을 일으킬 때도 이로부터 일으키며, 나아가 信이 끝나도 이를 여의지 않으며, 스스로의 행이 원만하여 정각의 성취를 보이는 데 이르러서도 이를 여의지 않으니, 이는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혜로 깨달음을 보여서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知見에 들게 하고자 함을 밝힌 것이다.
부처님의 지견이란 문수사리의 묘한 슬기와 부동지불이 이에 해당되는데, 범부든 성인이든 평등하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범부에게 보여 깨달음에 들게 한 것이다.]]
[['그때에' 이하 8행의 경문은 이 사바세계의 아홉 가지 차별을 든 것이며, 아울러 시방의 일체 차별이 모두 부처님의 神力으로 밝게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든 것이다.]]
2. 文殊菩薩의 偈頌答
時에 文殊師利菩薩이 以頌答曰
그때에 문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습니다
① 如來境界如虛空
如來深境界여 其量等虛空하시니 一切衆生入호대 而實無所入이니라
1. 如來의 深境界(여래심경계)여, 여래의 심오한 경계는 其量이 等虛空(기량등허공)하시니, 그 양이 허공과 같아서
一切衆生이 入(일체중생입)호대 而實無所入(이실무소입)이니라. 일체중생이 들어가도 실로 들어간 것이 없도다
[일체중생이 전부 그 나름대로 부처님경계에 다 조금씩ㆍ조금씩 각자 방향ㆍ취향 따라서 들어가지만, 而實無所入이니라. 혹은 관세음보살로 들어가고ㆍ혹은 지장보살로 들어가고, 심지어 산승ㆍ칠성 등 온갖 인연ㆍ취향 따라서 들어가지만 들어가는 바가 없는, 표시가 없다. 우리는 화엄경ㆍ혹은 법화경으로 들어가지만, 여래의 경계는 허공과 같다.]
② 億劫不可說
如來深境界의 所有勝妙因은 億劫常宣說하야도 亦復不能盡이니라
如來深境界(여래심경계)의 所有勝妙因(소유승묘인)은, 여래의 심오한 경계에 있는 바 수승하고 미묘한 요인은
億劫常宣說(억겁상선설)하야도, 억 겁 동안 항상 말한다 해도
亦復不能盡(역부불능진)이니라. 역시 다할 수 없도다
③ 佛境度衆生 부처님의 경계에서 중생 제도하는 것.
隨其心智慧하야 誘進咸令益케하시니 如是度衆生이 諸佛之境界니라
隨其心智慧(수기심지혜)하야, 그 마음과 지혜에 따라
誘進咸令益(유진함령익)케하시니, 나아가도록 이끄시어 다 유익케 하시니
[사람을 끌어들이려면 뭔가 수단을 쓰서 유혹하고 나아가게 해서 함께 이익을 얻게 하나니.]
如是度衆生(여시도중생)이, 이와 같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諸佛之境界(제불지경계)니라. 부처님들의 경계로다
④ 世間皆隨入 세간이 다 따라 들어가다.
世間諸國土에 一切皆隨入하사대 智身無有色하시니 非彼所能見이니라
世間諸國土(세간제국토)에 세간 모든 국토의 一切皆隨入(일체개수입)하사대, 일체의 모두가 좇아 들어가보아도
智身無有色(지신무유색)하시니, 지혜의 몸은 색상이 없으시니
非彼所能見(비피소능견)이니라 彼=저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로다 [일체 다 따라서 들어가지만, 지혜의 몸은 우리 육신같은 색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여 다른 사람이 능히 볼 바가 아님이라. 부처님이 지혜의 몸이니까요.]
⑤ 佛智如虛空
諸佛智自在하사 三世無所礙하시니 如是慧境界가 平等如虛空이니라
諸佛智自在(제불지자재)하사, 부처님들은 지혜가 자재하시어 三世無所碍(삼세무소애)하시니, 삼세에 걸림이 없으시니
如是慧境界(여시혜경계)가, 이와 같은 慧 = 지혜의 경계가 平等如虛空(평등여허공)이니라. 평등하여 허공과 같나니라.
⑥ 一切境悉了知 일체 경계를 다 了知한다.
法界衆生界가 究竟無差別을 一切悉了知하시니 此是如來境이니라
法界衆生界(법계중생계)가 究竟無差別(구경무차별)을, 법계와 중생계가 구경에는 차별이 없음을
一切悉了知(일체실료지)하시니, 일체를 다 발게 아시니 此是如來境(차시여래경)이니라. 이것이 여래의 경계로다.
[법계 그대로 중생계고, 중생계가 그대로 법계=진리의 세계입니다.
바로 그 자체에서 진리를 보는, 중생에서 진리를 보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중생에서 부처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늘 주창하는 “인불사상”,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고 하는 인불사상입니다. 究竟無差別이라. 결국 가서는 차별이 없다. 우리 잘 알고 있는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 이라고 하는 내용하고 똑 같은 것이지요. 그것을 一切悉了知하시니 此是如來境이라. 이것은 여래의 경계다.]
⑦ 一切音悉了知
一切世界中에 所有諸音聲을 佛智皆隨了하사 亦無有分別이니라
一切世界中(일체세계중)에 所有諸音聲(소유제음성)을, 일체 세계 안에 있는 바 모든 음성을
佛智皆隨了(불지개수료)하사대, 부처님 지혜로 다 좇아 알아보아도 [了 = 요달했다.]
亦無有分別(역무유분별)이니라. 그 역시 분별이 없도다
⑧ 非識所能識 식으로서 능히 알 바가 아니다.
非識所能識이며 亦非心境界라 其性本淸淨을 開示諸群生이시니라
[이것은 조사스님들의 경전 해석이라든지 논설을 쓸 때, 아주 많이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非識所能識이며 亦非心境界(역비심경계)라. 식으로써 인식할 바가 아니요 또한 마음의 경계도 아니며
[식으로써 능히 알 바가 아니다. 識情ㆍ情識, 부처의 경계를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莫不由斯心意識(막불유사심의식). 심의식을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 없다. 사실 이 심의식 때문에 우리 본성자리를 제대로 꿰뚫어보질 못한다고 했습니다. 심의식= 6식ㆍ7식ㆍ8식. 우리는 그 경계 속에서 노는데 깨달음의 경지는 그 심의식으로 능히 알 바가 아니고, 또한 心境界도 아니다. 심의식으로 되어 있는 = 6식ㆍ7식ㆍ8식으로서는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그 경계를 뛰어넘어서 툭 터진 佛智慧. 부처의 지혜에서 모든 본성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其性이 本淸淨(기성본청정)을, 그 성품이 본래 청정한 것임을 [그 성품 본래 청정한 자리. 그것은 6식으로도ㆍ7식으로도ㆍ8식으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6식ㆍ7식ㆍ8식의 경계입니다. 其性本淸淨. 우리의 性= 본성이 청정한, 心意識의 心은 6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 心자도 쓰는 경우에 따라서 이렇게 다릅니다.]
開示諸群生(개시제군생)이시니라. 모든 중생들에게 열어 보이시도다 [부처님은 완전히 其性이 本淸淨. 그 성품이 본래 청정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우리는 心意識경계에서 알아듣는 겁니다.
심의식 경계에서 들으니까 아무리 본래 청정한 본성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도 납득이 잘 안 되어서 알쏭달쏭한 겁니다.
그야말로 기차를 타고 서울을 막 달려가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 빌딩도 산도 막 달려가요. 사실은 그것들이 가는 것이 아닌 불생멸= 움직이지 않는 것인데 내가 움직이니까 가만히 있는 것마저도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는 그 이치와 같습니다.
그와 같아서 우리가 심의식을 가지고 본성이 청정한 자리, 본심ㆍ본심, 본마음 그 깊은, 불생불멸의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쓰긴 쓰는데, 그것이 얼른 탁~ 와 닿지가 않는 겁니다. 한 꺼풀 탁 벗어졌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생멸의 입장에 있으면, 내가 불생불멸이 되면 아침이슬ㆍ저녁연기, 무상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존재마저도 불생불멸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생멸하면 산천초목도 막 지나가고 막 움직입니다. 이치가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불생불멸을 부정하면 큰일 나는 것이지요. 우리가 아침마다ㆍ저녁마다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외우지 않습니까? 분명히 그런 이치가 있는 그것을 其性本淸淨을 開示諸群生이니라. 이 구절을 참 많이 인용합니다. 다른 조사스님들 보면요. 불교에 있어서 어떤 깨달음의 경지ㆍ심성의 문제ㆍ심의식의 문제는 이것이 근본입니다. 이 네 구절을 근본으로 해서 이야기가 되니까요.]
⑨ 非業非煩惱 업도 아니고 번뇌도 아니다.
非業非煩惱며 無物無住處며 無照無所行일새 平等行世間이시니라
非業非煩惱며, 업도 아니고 번뇌도 아니며, 無物無住處(무물무주처)며, 사물도 없고 住處=머물 곳도 없으며,
無照無所行(무조무소행)일새, 비춤도 없고 행할 바도 없이 平等行世間(평등행세간)이시니라. 평등히 세간을 행하도다.
[우리본성이 청정한 그 자리에 턱~ 앉아 있으면 그냥 이렇게 非業非煩惱이고 無物無住處입니다.
無照無所行. 照= 우리마음이 사물을 이해하는 것.
平等行世間= 모두가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⑩ 一念悉明達
一切衆生心이 普在三世中이어늘 如來於一念에 一切悉明達이시니라
一切衆生心(일체중생심)이 普在三世中(보재삼세중)이어늘, 일체중생들의 마음이 삼세에 널리 있거늘
[일체중생의 마음이 三世= 과거ㆍ현재ㆍ미래에 꽉 깔려있는, 그야말로 一念卽時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입니다.]
如來於一念(여래어일념)에 一切悉明達(일체실명달)이시니라.여래는 한 순간에 일체를 다 明達= 밝게 통달하시도다
[[총체적으로는 앞서 말한 법성을 장엄함과 청정 불찰의 네 가지 불찰 중에서 금색세계와 부동지불은 부처님께서 머무는 불찰이며, 나머지 아홉 세계와 아홉 개의 智佛은 법성을 장엄하는 불찰이니 10地 이후가 모두 이에 해당되며,
[여래출현품]은 정각의 성취를 나타내 보인 불찰이며, 청정불이 설한 불찰은 [사제품]이 이에 해당된다.]]
十一, 總結
(1) 娑婆世界差別明現 사바세계에도 차별되게 밝게 나타난다.
爾時此娑婆世界中에 一切衆生의 所有法差別과 業差別과 世間差別과 身差別과 根差別과 受生差別과
持戒果差別과 犯戒果差別과 國土果差別을 以佛神力으로 悉皆明現하며
爾時에 此娑婆世界中에, 그때 이 사바세계 안의 모든 중생들이
所有法差別(소유법차별)과, 지녔던 법의 차별, 業의 差別(업차별)과 世間의 差別(세간차별)과 업의 차별, 세간의 차별,
身差別(신차별)과 根의 差別(근차별)과 몸의 차별, 근 차별, 受生差別(수생차별)과, 受生= 생을 받는 차별,
持戒果差別(지계과차별)과, 계를 지닌 과보의 차별, 犯戒果差別(범계과차별)과, 계를 범한 과보의 차별,
國土果差別(국토과차별)을 以佛神力(이불신력)으로, 국토의 과보의 차별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悉皆明現(실개명현)하며, 모두 분명히 나타났고, [모두 환하게 부처님 神力은 다 내려다보고 있다.]
(2) 法界差別明現
如是東方百千億那由他와 無數無量無邊無等과 不可數不可稱不可思不可量不可說인
盡法界虛空界一切世界中에 所有衆生의 法差別과 乃至國土果差別을 悉以佛神力故로
分明顯現하시니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니라
如是東方百千億那由他(여시동방백천억나유타)와, 그와 같이 동쪽으로 백천 억 나유타,
無數ㆍ無量ㆍ無邊ㆍ無等(무수무량무변무등)과, 무수무량, 무변무등,
不可數ㆍ不可稱ㆍ不可思ㆍ不可量ㆍ不可說(불가수불가칭불가사불가량불가설)인
盡法界虛空界一切世界中(진법계허공계일체세계중) 온 법계와 허공계와 일체의 세계 안에 있는
所有衆生(소유중생)의 法의 差別(법차별)과 중생들의 법의 차별로부터
乃至國土果의 差別(내지국토과차별)을 국토의 과보의 차별에 이르기까지의
悉以佛神力故(실이불신력고)로, 모든 것들이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에 分明顯現(분명현현)하시니, 분명하게 나타났으며,
南西北方(남서북방)과 四維上下(사유상하)도 남서북방 사유상하에서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라. 그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