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1권 6

Skunky 2024. 1. 26. 01:00

大智度論釋初品中 九相義第三十五 卷二十一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5. 초품 중 구상(九相)의 뜻을 풀이함 2

 

鳥獸已去 風日飄曝 筋斷骨離 各各異處。

行者思惟, “本見身法 和合而有身相 男女皆可分別, 今已離散 各在異處 和合法滅 身相亦無 皆異於本 所可愛著 今在何處?"

새나 짐승들이 떠난 뒤에는 바람에 날리고 햇볕에 쬐여서 힘줄이 끊어지고 뼈들은 떨어져나가 조각조각 흩어져 있기에,

수행자는 사유하기를 “본래 이 몸의 법을 본다면 서로 화합하여서 몸의 모양이 있게 되었고, 남여를 모두 분별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이미 떨어져 나가고 흩어져서 저마다 다른 곳에 있구나. 화합한 법이 사라지면 몸의 모양 또한 없게 되고 모두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거늘 도대체 애착해야 할 것이 이제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고 하며, 

 

身旣離散 處處白骨 鳥獸食已 唯有骨在, 觀是骨人 是爲骨相。

몸이 이미 흩어져서 곳곳에 백골이 널려 있고, 새나 짐승들이 먹은 뒤에 흰 뼈만이 남아 있으니, 이 뼈로 된 골인(骨人)을 관하는 것이 바로 골상(骨相, asthisaṁjñā)이다.

 

骨相有二種, 一者骨人筋骨相連, 二者骨節分離。筋骨相連 破男女長短好色 細滑之相, 骨節分離 破衆生根本實相。

골상(骨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뼈로 된 골인(骨人)에 힘줄과 뼈가 서로 이어진 것이요,

둘째는 뼈마디가 서로 나뉘어 떨어진 것이라. 

힘줄과 뼈가 서로 이어진 모습은 남녀, 크고 작음, 잘 생김, 섬세하고 반드레한 모습을 파괴하고,

뼈마디가 나뉘어 떨어진 모습은 중생들의 근본 실상(實相)을 파괴하며, 

 

復有二種, 一者淨, 二者不淨。淨者 久骨白淨 無血無膩 色如白雪,

不淨者 餘血塗染 膩膏未盡。

다시 골상(骨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깨끗한 것이요,

둘째는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

깨끗하다 함은 오래된 뼈가 희고 깨끗해서 피도 묻지 않고 기름기도 없어서 마치 흰 눈과 같은 것이며,

깨끗하지 않다고 함은 피가 묻고 기름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行者到屍林中 或見積多草木 焚燒死屍 腹破眼出 皮色燋黑 甚可惡畏。

須臾之閒 變爲灰燼。行者取是燒相 思惟; “此身未死之前 沐浴香華 五欲自恣,

今爲火燒 甚於兵刃! 此屍初死 形猶似人, 火燒須臾 本相都失。

一切有身皆歸無常 我亦如是"

수행하는 이가 시체를 버린 숲= 屍林(시림) 속에 들어 가면 혹 많은 초목을 쌓아 놓고 시체를 태울 때에 배가 터지고 눈이 튀어나오며 가죽이 검게 그을려서 몹시 역겹고 두려워할 만한 모양이 되었다가 잠깐 사이= 須臾(수유)에 변해서 다 타버린 재로 되는 것을 보기도 하나니, 

수행자는 이 소상(燒相, vidagdhakasaṁjñā)을 취하면서 생각하기를 “이 몸이 죽기 전에는 향탕에 목욕하고 꽃으로 장식하며 오욕을 마음껏 누렸을 것이나, 이제는 불에 태워지는 것이 병장기에 베이는 것보다 심하구나! 이 시체가 처음 죽을 때에는 형상이 사람과 비슷하였으나, 지금 불에 타서 잠깐 사이에 본래의 모양이 모두 없어져 버렸으니, 일체의 몸에 있는 것은 모두가 무상한 데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니, 나 역시도 그와 같으리라”고 하며,

 

是九相 斷諸煩惱 於滅欲最勝, 爲滅欲故 說是九相。

이 아홉 가지 모양인 구상(九相)은 모든 번뇌를 끊고 음욕을 멸하게 함에 가장 수승하니, 음욕을 없애기 위하여 이 구상(九相)을 말하는 것이다.

 

問曰; 無常等十想 爲滅何事故說?

묻나니, 무상(無常, anityasaṁjñā) 등의 열 가지 생각의 십상(十想)은 어떠한 것을 없애기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십상(十想)= ① 무상상(無常想)=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무상하다는 것,
② 고상(苦想)= 일체의 유위법은 고통스럽다는 것,
③ 무아상(無我想)= 일체법은 무아라는 생각,
④식부정상(食不淨想)= 세간의 음식은 다 부정한 인연에서 생긴 부정한 것이라는 것,
⑤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 일체 세간에 즐거워 할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
⑥사상(死想)= 죽음의 모습을 관하는 것,
⑦부정상(不淨想)= 육신의 부정함을 관하는 것,
⑧단상(斷想)= 번뇌가 끊어져서 적멸(寂滅) 상태,

⑨이욕상(離欲想)= 번뇌를 끊고 벗어나는 것

⑩진상(盡想)= 벗어남 조차도 다 끊어진 상태.

 

答曰; 亦爲滅欲等三毒。

답하나니, 이것 역시 음욕을 비롯한 탐진치 삼독(三毒)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問曰; 若爾者 二相有何等異?

묻나니, 만약 그렇다면 구상(九相)과 십상(十想)의 두 가지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구상(九相)= 창상(脹相) 괴상(壞相) 혈도상(血塗相) 농란상(膿爛相) 청상(青相) 담상(噉相) 산상(散相) 골상(骨相) 소상(燒相)

 

 

答曰; 九相爲遮未得禪定 爲欲所覆故, 十想能除滅欲等三毒。

九相如縛賊 十想如斬殺。九相爲初學 十想爲成就。

斬殺참살= 칼로 목을 베어 죽임

답하나니, 아홉 가지 모양의 구상(九相)은 아직 선정을 얻지 못한 채 음욕으로 가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고,

열 가지 생각의 십상(十想)은 음욕 등 탐진치 삼독을 없애는 것이다.

구상(九相)은 마치 도적을 포박하는 것과 같고,

십상(十想)은 마치 참살(斬殺)하는 것과 같으니, 

구상(九相)은 처음 배우는 이를 위한 것이고,

십상(十想)은 이미 성취한 이를 위해서이다. 
 

復次 是十想中 不淨想攝九相。

또 이 십상(十想) 중에서 부정상(不淨想)으로 구상(九想)을 포섭한다.

(십상(十想)의 부정상(不淨想)에 구상(九想)이 포함된다)

 

有人言; 十想中 不淨想 食不淨想 世閒不可樂想攝九相。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십상(十想) 중 부정상(不淨想)과 식부정상(食不淨想, āhāre pratikūlasṁjñā)과 세간불가락상(世間不可樂想, sarvaloke `nabhiratisaṁjñā)으로 구상(九想)을 포섭한다”고 하였으며,  
 

復有人言; 十想 九相同爲離欲 俱爲涅槃。

所以者何? 初死相 動轉 言語須臾之閒 忽然已死,

身體脹 爛壞分散 各各變異 是則無常。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십상(十想)과 구상(九想)은  다 같이 탐욕을 여의기 위한 것이고  함께 열반을 위한 것이니, 왜냐하면 처음의 사상(死相)은 움직이고 말을 하다가 잠깐 사이= 수유(須臾)지간에 변하여 홀연히 죽게 되면, 몸이 부풀어 오르고 썩어 문드러지고 각각으로 흩어녀서 다르게 변하게 되니 이러함이 바로 무상(無常)이기 때문이다.

 

若著此法 無常壞時 是卽爲苦。若無常苦 無得自在者 是則無我。不淨無常 苦無我 則不可樂 觀身如是。

만약 이러한 법에 집착한다 무상으로 파괴될 때에는 그것이 바로 고통이 되니,

만약 무상함이 고통이라면 자재(自在, svatantra)함을 얻을 이가 없나니, 이러함이  무아(無我)이다. 

부정(不淨)하고 무상(無常)하여 괴로운 무아이며  즐거울 수가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몸을 관하여야 하며,

 

자재(自在)란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어 서로 대립하지 않으므로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주관이 객관에 끌리면 객관적인 어떤 대상의 노예가 되어 자재를 잃게 된다.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면 대립이 없어지므로 객관이 주관의 세계로 들어와 나의 것이 된다.- 아함반야 공부방 

 

食雖在口 腦涎流下 與唾和合成味 而咽與吐無異 下入腹中 卽是食不淨想。

涏은 '물결곧을 정' 또는 '윤이날 전'이라는 한자로, '물결이 곧다' 또는 '윤이 나다' 등을 뜻

음식이 비록 입 안에 있을지라도 뇌의 점액= 涏(정, 아밀라아제 Amylase) 흘러내려 침과 화합하여 맛을 이루고 삼키거나 토하는 것이 다름이 없이 뱃속으로 내러 들어가니, 이러함이 바로 식부정상(食不淨想)이며,

 

以此九相觀身 無常變異 念念皆滅 卽是死想。

이렇게 구상(九相)으로 몸을 관할 때에 무상하여 변하고 달라지면서 생각 생각이 이어지던 것이 모두 다 소멸하게 되면, 바로 그것이 사상(死想, maraṇasaṁjñā)이요,

 

以是九相 厭世閒樂 知煩惱斷 則安隱寂滅 卽是斷相。以是九相 遮諸煩惱 卽是離想。以是九相 厭世閒故 知此五衆滅 更不復生 是處安隱 卽是盡想。

이러한 구상(九相)을 통하여 세간의 쾌락을 싫어하게 되니, 번뇌가 끊어져서 사라진 안온하고 고요한 적멸(寂滅)을 알게 되니, 이러함이 곧 단상(斷相, prahāṇasaṁjñā)이다.

이 구상(九相)을 통하여 모든 번뇌를 막으니, 그러함이 곧 이상(離想, vairāgyasaṁjñā)이요,

이렇게 구상(九相)을 통하여 세간을 싫어하게 되는 까닭에 오중(五衆, 오온)이 소멸하여 다시는 생기지 않게 되니, 이곳에서 안온해짐을 알게 되는 그것이 곧 진상(盡想, nirodhasaṁjñā)이다.”

 

復次 九相爲因 十想爲果。是故先九相 後十想。

또 구상(九相)은 원인의 인(因)이 되고 십상(十想)은 결과의 과(果)가 되므로 구상(九相)을 먼저 들고 십상(十想)을 나중에 말하는 것이다.

 

復次 九相爲外門 十想爲內門 是故經言, “二爲甘露門, 一者不淨門,二者安那般那門"

또 구상(九相)은 바깥에서 열반문에 이르게 하는 외문(外門)이 되고

십상(十想)은 안에서 열반문에 이르게 하는 내문(內門)이 되나니,

그러므로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구상(九相)과 십상(十想)의 두 가지는 감로문(甘露門, amṛtadvāra)이 되는데,

첫째는 부정문(不淨門)이요, 둘째는 안나반나(安那般那, ānāpānasmṛti, 입출식념入出息念)의 문이다”라고 하였다.

 

안나반나(安那般那)의 안은 입식(入息)을, 반은 출식(出息),

안반(安般, anapana)은 아나파나(阿那波那) 혹은 안나반나(安那般那)로 표기되던 것을 줄여 안반이라고 한 것이다. 수를 헤아리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집중시키는 관법이다. 

 

是九相 除人七種染著, 或有人染著色, 若赤 若白 若赤白 若黃 若黑。

이 구상(九相)은 사람들에게 일곱 가지의 염착(染著)을 없애 주나니, 

어떤 사람은 혹은 적색ㆍ혹은 백색ㆍ혹은 적백색ㆍ혹은 황색ㆍ혹은 흑색 등의 색에 염착하기도 하며, 

 

或有人不著色 但染著形容, 細膚 纖指 脩目 高眉。

脩 포 수, 술잔 유, 고을 이름 조, 쓸쓸할 소, 씻을 척

혹 어떤 사람은 색에는 집착하지 않지만, 다만 부드러운 피부ㆍ손을 곱게 다듬으며ㆍ눈을 손질하고ㆍ눈썹을 다듬는 것 등의 모양새에만 염착하며, 

 

或有人不著容色 但染著威儀, 進止坐起 行住禮拜 俯仰 揚眉 頓睫 親近 按摩。

혹 어떤 사람은 욤오=용색(容色)에는 염착하지 않고 다만 나아가고 멈추고 앉고 일어나고 가고 서고 예배하고, 허리를 굽히고 펴서 하늘을 우러르고, 눈썹을 찡그리고 눈을 내리깔고 친근하고 어루만지는 등의 몸가짐=위의(威儀)에만 염착하며, 

 

或有人 不著容色 威儀, 但染著言語 軟聲 美辭 隨時而說 應意承旨 能動人心。

혹 어떤 사람은 용모나 위의에는 염착하지 않지만, 다만 부드러운 음성과 아름다운 말씨와 때에 맞는 말과 뜻을 맞추고 취지를 받들어 사람의 마음을 능히 감동시키는 것에만 염착하며,  

 

或有人 不著容色 威儀 軟聲, 但染著細滑 柔膚軟肌 熱時身涼 寒時體溫。

或有人皆著五事。

혹 어떤 사람은 용모나 위의와 부드러운 음성에는 염착하지 않지만, 다만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와 살결에만 염착하여 더울 때에는 몸을 시원하게 하고 추울 때에는 몸을 따뜻하게 할 뿐이며, 

혹 어떤 사람은 위의 다섯 가지에 모두 염착하기도 하며, 

 

或有人 都不著五事 但染著人相 若男 若女。

雖得上六種欲 不得所著之人 猶無所解 捨世所重五種欲樂而隨其死。

혹 어떤 사람은 이러한 다섯 가지에는 염착하지 않지만, 다만 남녀의 모습에만 염착하기도 하나니, 

비록 위의 여섯 가지 탐욕을 모두 얻는다 하여도 염착한 사람은 얻지도 못하고 여전히 깨닫지도 못한 채 세간에서 소중히 여기던 오욕락을 버리고 죽음을 따르게 되나니, 

 

死相多除威儀 語言愛。

사상(死相) 대부분 위의(威儀)와 언어에 대한 애착 없애주고, 

脹相 壞相 噉相 散相多除形容愛。胮 살찔 방

창상(胮脹相)ㆍ괴상(壞相)ㆍ담상(噉相)ㆍ산상(散相) 대부분 외모=형용(形容)에 대한 애착을 없애주며,  

血塗相 靑瘀相 膿爛相多除色愛。瘀 어혈 어, 膿 고름 농, 爛 문드러질 란,

혈도상(血途相)ㆍ청어상(靑瘀相)ㆍ농란상(膿爛相) 대부분 () 대한 애착 없애주며, 

骨相 燒相多除細滑愛。

골상(骨相)ㆍ소상(燒相) 대부분 부드럽고 윤택한 몸에 대한 애착을 없애주나니, 

九相除雜愛及所著人愛。噉相 散相 骨相偏除人愛, 噉殘離散 白骨中 不見有人可著。

구상(九想)은 여러 가지의 잡다한 욕망과 함께 사람에 대하여 집착하는 애착을 없애주고

담상(噉相)ㆍ산상(散相)ㆍ골상(骨相)은 사람에 대한 애착을 두루 없애며,

동물이 먹다 남은 흩어진 백골(白骨)에서는 누구도 사람도 염착할 만한 것을 보지 못하나니,

 

以是九相觀離愛心 瞋癡亦微薄。不淨中淨顚倒 癡故著是身。

今以是九相披析身內 見是身相 癡心薄, 癡心薄則貪欲薄, 貪欲薄則瞋亦薄。

이러한 구상(九相)으로써 관하여 애착하는 마음을 여의면 성냄과 어리석음도 엷어지게 되며,

부정(不淨)함 가운데에서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전도된 어리석음 때문에 이 몸에 애착하는 것이니

이제 이 구상(九相)으로 몸 안의 내신(身內)을 헤치고 쪼개어서 이 몸의 실상을 보게 되면 어리석은 마음= 치심(癡心)이 얇아지리니,

치심(癡心)이 얕아지면 탐욕이 얕아지게 되고, 탐욕이 얕아지면 성냄 역시도 얕아지나니,  

 

所以者何?人以貪身故生瞋 今觀身不淨 心厭故不復貪身, 不貪身故 不復生瞋。

三毒薄故 一切九十八使山皆動 漸漸增進其道 以金剛三昧 摧碎結山。

九相雖是不淨觀 依是能成大事, 譬如大海中臭屍 溺人依以得渡。

왜냐하면, 사람이란 몸에 대하여 탐하는 까닭에 성을 내게 되기 때문이니,

이제 이 몸의  부정(不淨)함을 관하여 싫어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다시는 몸을 탐내지 않으며,

몸을 탐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성을 내지 않으니 삼독이 얇아지게 된 때문에 온갖 98종의 번뇌의 부림=사(使)의 산이 모두 움직여 점차로 도(道)에 더욱 나아가서 금강삼매(金剛三昧, vajropamasamādhi. 금강(vajra)과도 같이 견고해 무너지지 않는 삼매)로써 번뇌의 얽힘= 結(결)의 산을 꺾어 부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九相)이 비록 부정관(不淨觀)이라 하여도 이것에 의지하여 큰 일을 이룩할 수 있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큰 바다 가운데에 빠진 사람이 악취 나는 시체를 의지하여 건너게 되는 것과도 같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