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21권 5
大智度論釋初品中 九相義第三十五 卷二十一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5. 초품 중 구상(九相)의 뜻을 풀이함 1
▶經. “九相, 脹相 壞相 血塗相 膿爛相 靑相 噉相 散相 骨相 燒相"
脹 부를 창, 膿 고름 농, 爛 문드러질 란, 빛날 란, 噉 씹을 담
▷經. 구상(九相)이란 창상(脹相) 괴상(壞相) 혈도상(血塗相) 농란상(膿爛相) 청상(青相) 담상(噉相) 산상(散相) 골상(骨相) 소상(燒相)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脹相(창상)= 사람의 시체가 곡식 자루처럼 퉁퉁 부은 모양
壞相(괴상)= 시체의 가죽과 살이 문드러지는 모양
血塗想(혈도상)= 시체의 온몸에 피, 고름이 흘러 더러워진 모양
膿爛想(농란상)= 시일이 점차 지남에 따라 (시신의) 아홉 구멍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고 구더기들이 온몸을 뒤덮으며, 썩은 물이 뚝뚝 땅에 떨어지고 악취는 더욱 심해지는 모습
青相(청상)= 시체의 피가 썩어서 퍼렇게 변한 모습
噉相(담상)= 벌레가 시체를 갉아 먹는 모습
散相(산상)= 시체가 썩어서 근육과 뼈, 머리, 발 등이 흩어지는 모습
骨相(골상)= 시체의 살이 썩어서 없어지고 뼈만 남은 모습
燒相(소상)= 시체를 불로 태울 때 연기와 재로 사라지는 모습.
▶論. 問曰, 應當先習九相離欲 然後得諸禪, 何以故諸禪定後 方說九相?
▷論. 묻나니, 마땅히 먼저 구상(九相)을 익혀 탐욕을 여의는 이욕(離欲)을 한 뒤에 모든 선정을 얻어야 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모든 선정을 말씀한 뒤에 비로소 구상(九想)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先說果報 令行者心樂。九相雖是不淨 人貪其果報 故必習行。
답하나니, 먼저 과보(果報)를 설명하여 수행하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구상(九相)은 비록 부정하지만 사람들은 그 과보를 탐하기 때문에 반드시 익히고 행하게 되니라.
問曰, 行者云何觀 是脹相等九事?
묻나니, 수행자는 어떻게 이 창상(脹相) 등의 아홉 가지 상을 관하여야 합니까?
答曰, 行者先持戒淸淨 令心不悔故 易受觀法 能破婬欲諸煩惱賊。
답하나니, 수행자는 먼저 계율을 지녀 청정하여지고, 마음에 뉘우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쉬이 관법(觀法)을 받아 음욕 등의 여러 번뇌의 도둑을 깨뜨릴 수 있으니,
觀人初死之日, 辭訣言語 息出不反 奄忽已死, 室家驚慟 號哭呼天 言說方爾 奄便那去!
氣滅身冷 無所覺識。此爲大畏 無可免處。譬如劫盡火燒 無有遺脫。如說;
사람이 처음 죽는 날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하직하는 말을 하고 숨을 멈추어 갑자기 죽게 되면 온 집안사람들이 놀라 슬피 통곡하면서 하늘을 보고 울부짖으며 하는 말이 “갑자기 어디로 가시기에 숨이 끊어지고 몸이 차가워 지면서 의식이 없는가”라고 하니, 이는 참으로 두려운 일이며 누구도 면할 수 없는 것이라.
비유하자면, 마치 겁(劫)이 다하여 불이 탈 때에는 빠짐없이 모두 다 태워버리는 것과 같으니,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死至無貧富 無懃修善惡, 無貴亦無賤 老少無免者。
죽음이 이르러 오는 것은 빈부(貧富)가 없고, 부지런히 닦을 선악(善惡)도 없으며
귀한 이도 없고 천한 이도 없으니, 늙은이건 젊은이건 면할 이가 없네.
無祈請可捄 亦無欺誑離, 無捍挌得脫 一切無免處。
빌고 간청해도 구제될 수 없고, 속임수를 써도 여의치 못하며
막고 겨루어도 벗어날 수 없으니, 어디서도 면할 수 있는 곳이 없음이라.
死法名爲永離恩愛之處 一切有生之所惡者, 雖甚惡之 無得脫者。
我身不久 必當如是 同於木石 無所別知。
죽음의 법을 일컬어 은혜와 사람을 영원히 저버리는 곳이라 하나니, 일체의 생명을 지닌 중생이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라. 그러나 비록 그것을 싫어한다 하여도 누구도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우리의 몸도 오래지 않아서 당연히 이렇게 목석(木石)같이 되어서 아무 것도 분별하거나 아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我今不應貪著五欲 不覺死至 同於牛羊,
牛羊禽獸 雖見死者 跳騰哮吼 不自覺悟。
我旣得人身 識別好醜 當求甘露不死之法。如說;
우리가 지금 응당 오욕(五欲)에 탐착하여서는 안될 것이니, 죽음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있다가 소나 양과 같이 죽어서는 안될 것이다.
소나 양이나 날짐승ㆍ길짐승 등의 금수(禽獸)는 비록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뛰놀고 울고 지저귀면서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미 사람의 몸을 얻어 좋고 나쁨을 분별할 줄 알므로 마땅히 죽지 않는 감로(甘露, amṛta, 불사不死)의 법을 구해야 하리라. 마치 설한 바와 같으니,
六情身完具 智鑑亦明利 而不求道法 唐受身智慧。
육정(六情)의 몸 완전히 갖추어지고, 지혜의 거울이 밝고 날카로워도
도법(道法)을 구하지 않으면, 헛되이 몸과 지혜를 받은 것이라.
육정(六情)=육근(六根) 육입(六入), 육처(六處), 입입처(六入處), 육촉처(六觸處), 육정근(六情根)
육근(六根, ṣaḍindriya)이란 안(眼, cakṣus) · 이(耳, śrotra) · 비(鼻, ghrāṇa) · 설(舌, jihvā) · 신(身, kāya) · 의(意, manas)의 여섯 인지 기관, 혹은 그 기관들이 갖는 인지 능력을 말한다. 즉 안근(眼根, cakṣurindriya)은 시각 능력, 이근(耳根, śrotrendriya)은 청각 능력, 비근(鼻根, ghrāṇendriya)은 후각 능력, 설근(舌根, jihvendriya)은 미각 능력, 신근(身根, kāyendriya)은 촉각 능력이라는 감각 능력을 의미하며, 의근(意根, mana-indriya)은 지각 능력을 의미한다.
육근의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싸뜨인드리야(ṣaḍindriya)'으로, ‘싸뜨(ṣaṭ)’와 ‘인드리야(indriya)’가 결합된 것이다. '싸뜨'는 ‘6’을 뜻하며, '인드리야'는 ‘제석천(帝釋天)’, 즉 번개를 무기로 쓰는 인드라(Indra)와 관련되어 있다.- 다움
禽獸亦皆知 欲樂以自恣, 而不知方便 爲道修善事。
날짐승이나 들짐승들도 욕락(欲樂)에 대하여는 모두 스스로 즐기지지만
방편을 알지 못하여, 도(道)를 위하고 선행을 닦지 못하나니,
旣已得人身 而但自放恣, 不知修善行 與彼亦何異。
이미 사람의 몸을 얻고도,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착한 일을 닦을 줄 모른다면, 그것은 짐승과 무엇이 다르랴.
三惡道衆生 不得修道業, 已得此人身 當勉自益利。
삼악도(三惡道)에 있는 중생은 도업(道業)을 닦을 수가 없지만
이미 이러한 사람 몸 받았으니 마땅히 자신의 이익에 힘써야 하리.
行者到死屍邊 見死屍胮脹 如韋囊盛風 異於本相 心生厭畏 我身亦當如是 未脫此法。
수행자는 죽은 시체 곁에 다가가 그 죽은 시체가 부풀어 오른 것이 마치 가죽 주머니에 바람을 가득 불어 넣은 것과 같고, 이전의 본래 모습과 다름을 보고는 마음에 싫어함과 두려움을 내어서 “나의 몸도 역시 이렇게 되어서 이러한 법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身中主識役御此身 視聽 言語 作罪 作福 以此自貴 爲何所趣?
而今但見空舍在此!是身好相 細腰 姝媚 長眼 直鼻 平額 高眉 如是等好 令人心惑,
今但見胮脹 好在何處?男女之相亦不可識。 姝 예쁠 주, 媚 아첨할 미, 예쁠 미
이 몸 속에서는 식(識)이 주인이 되어 이 몸을 부리면서 보고, 듣고, 말하고, 죄를 짓고, 복을 지으며, 이러함을 스스로 귀히 여겼으나, 이제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지금은 오로지 빈 집만 남았을 뿐이구나.
훌륭하던 이 몸의 가는 허리와 예쁘고 고운 긴 눈과 오똑한 코며 편편한 이마와 두둑한 눈썹 등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반하게 했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부풀어 오른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니, 그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구나”라고 하나니,
그래서 법화경(法華經)에서 이 몸을 걸어 다니는 법당(法堂)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
作此觀已 呵著欲心 此臭屎囊胮脹可惡 何足貪著!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는 집착과 욕심을 꾸짖나니,
이 냄새나는 부풀은 똥주머니는 참으로 멀리해야 할 것이거늘 무엇에 탐착할 것인가!
死屍風熱轉大 裂壞在地 五藏 屎尿 膿血流出 惡露已現。
行者取是壞相 以況己身, “我亦如是 皆有是物 與此何異?
我爲甚惑 爲此屎囊 薄皮所誑, 如燈蛾投火 但貪明色 不知燒身。
已見裂壞 男女相滅 我所著者 亦皆如是"
죽은 시체는 바람과 더운 열기에 부풀어서 크게 찢어지고 문드러져서 땅에 뒹굴고 5장(五臟)에서는 똥ㆍ오줌과 피고름이 흘러나와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구나.
수행자는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자기 스스로의 몸에 비추어서 “나 역시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두 이러한 물건들로 가득 찼으니 저 시체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나는 심히 미혹되어서 이 똥자루의 얇은 가죽에 속아 왔구나. 마치 불나방이 불을 향해 뛰어 드는 것과 같이, 밝은 빛만을 탐하였 뿐 몸이 탈것은 몰랐구나”라고 하나니,
이미 찢어지고 문드러져서 남녀의 모습이 소멸된 것을 보게 되면 자신이 집착하던 것 역시 모두 그와 같음을 알리라.
死屍已壞 肉血塗漫。
죽은 시체가 이미 무너져서 피와 살이 더럽혀져 있으니,
或見杖楚死者 靑瘀黃赤 或日曝瘀黑, 具取是相 觀所著者 若赤白之色 淨潔端正 與此何異?
혹은 매를 맞아 죽은 이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누렇기도 하고 빨갛기도 하며, 혹은 햇볕에 그을려 거무튀튀하기도 하나니,
이러한 모습을 모두 취하여 관한다면 집착했던 것(몸)이 설령 붉고 희어서 정결하고 단정하다 하여도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리라.
旣見靑瘀黃赤 鳥獸不食 不埋不藏 不久膿爛 種種虫生。
行者見已 念此死屍本有好色 好香塗身 衣以上服 飾以華綵,
今但臭壞 膿爛塗染 此是其實分, 先所飾綵 皆是假借。
벌써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누렇고 붉은색을 띄게 되면 날짐승ㆍ길짐승 조차도 먹지 않으며,
더더욱 매장을 하지 않았으면 오래지 않아 썩어 문드러져서 갖가지의 벌레가 생기게 되나니,
수행자는 이러함을 보고는 이 죽은 시체가 본래 지녔던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면서 “좋은 향을 몸에 바르고 으뜸가는 옷을 입었으며 화려한 비단으로 장식하였을 것인데, 지금은 악취가 풍기고 썩어 문드러지고 더럽혀져 있으니, 이러함이 바로 그의 진실한 모습이요! 먼저의 화려한 장식은 모두가 임시로 빌린 것일 뿐이었구나”라고 하는 것이다.
若不燒不埋 棄之曠野 爲鳥獸所食。烏挑其眼 狗分手腳 虎狼刳腹 分掣攫裂。
殘藉在地 有盡不盡。行者見已 心生厭想 思惟, “此屍未壞之時 人所著處,
而今壞敗 無復本相 但見殘藉 鳥獸食處 甚可惡畏"
만일 화장하여 태우지도 않고 매장하지도 않고 벌판에 내다 버린다면 날짐승ㆍ길짐승에게 먹히게 되리니,
까마귀는 그의 눈을 후벼 먹고, 개는 손발을 떼어 먹으며, 범과 이리는 배를 갈라서 찢어 갈 것이며, 그 나머지는 땅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다 없어지게 되기도 하고, 없어지지 않은 것도 있게 되리라.
수행자는 이러함을 보고 나서는 마음에 싫어함을 내면서 사유하기를 “이 시체가 아직 문드러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애착하던 몸이었겠지만, 지금은 썩어 문드러져서 다시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도 없고 다만 금수가 먹다 남은 찌꺼기만 흩어져 있구나, 새나 짐승에게 파 먹힌 곳이 매우 비참하고 두려울 뿐이구나"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