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21권 1
大智度論釋初品中 八背捨義第三十四 卷二十一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4. 초품(初品) 중 팔배사(八背捨)의 뜻을 풀이함 1
八背捨者 內有色 外亦觀色 是初背捨。
초선(初禪)ㆍ제2선ㆍ제4선ㆍ4무색정ㆍ멸진정(滅盡定)에 이르는 8단계의 선정관법인 팔배사(八背捨, Aṣṭa-vimokṣa, 팔해탈)라 함은, 내입(內入, 육입)에도 색이 있고 외입(外入, 육경)에도 색이 있음을 관찰하는= 內有色外亦觀色(내유색외역관색)이나니, 이러함이 첫 번째 배사(背捨)이고,
①내유색상관외색해탈(內有色想觀外色解脫)= 4선 중 초선(初禪)과 제2선(第二禪)에 의지하여 부정관(不淨觀)을 수행하여 현색탐(顯色貪)을 대치하는 것으로, 바깥 대상의 색깔에 대하여 시퍼렇게 어혈든[靑瘀] 색깔 등을 관하는 부정관을 닦아 마음 속에 있는 빛깔에 대한 탐욕[顯色貪]을 버리는 것을 뜻한다. 탐욕을 떠난 것이므로 해탈이라 이름한다.
배사(背捨)= 해탈의 다른 이름. 살펴보는 것을 해탈이라 하는 까닭은 바르게 살펴봄으로써 일체법(一切法)과 제법(諸法)이 “공(空)”한 것임을 터득하여 애착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됨으로 “배사(背捨)”라고 한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
內無色 外觀色 是第二背捨。
내입(內入, 육입)에는 색이 없으나 외입(外入, 육경)의 색을 관하는= 內無色外觀色(내무색관색)이니, 이러함이 두 번째 배사이며,
②내무색상관외색해탈(內無色想觀外色解脫)= 4선 중 초선(初禪)과 제2선(第二禪)에 의지하여 부정관(不淨觀)을 수행하여 현색탐(顯色貪)을 대치하는 것으로, 마음 속에 있는 색에 대한 탐욕은 이미 없어졌지만 이 상태를 더욱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 바깥 대상의 빛깔에 대하여 퍼렇게 어혈든[靑瘀] 빛 등을 관하는 부정관을 계속 닦는 것을 말한다. 탐욕를 다시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므로 해탈이라 이름한다.
淨背捨 身作證 第三背捨。
정(淨, 청정)한 배사를 몸으로 증득하는= 淨背捨身作證(정배사신작증)이니, 이러함이 세 번째 배사이며,
③정해탈신작증구족주(淨解脫身作證具足住)는 4선 중 제4선(第四禪)에 의지하여 정관(淨觀)을 수행하여 탐욕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를 체득하는 것으로, 부정관(不淨觀)을 버리고 바깥 대상의 색깔에 대하여 청정한 방면 즉 아름다운 색깔을 주시하여도 탐욕이 일어나지 않고 그 상태를 '몸으로 완전히 체득하여 안주하는 것'[身作證具足住]을 말한다. 탐욕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므로 해탈이라 이름한다.
四無色定及滅受想定 是五合爲八背捨。
4무색정(無色定) 및 멸수상정(滅受想定, saṁjñāveditanirodhasamāpatti. 느낌과 생각이 지멸한 경지)의 이들 다섯을 합하여 팔배사(八背捨)가 되느니라.
④공무변처해탈(空無邊處解脫)= 4무색정 중 공무변처정에 의지하여 물질[色]과 모양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리는 것을 말한다. 물질[色]의 속박 즉, 물질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해탈이라 이름한다.
⑤식무변처해탈(識無邊處解脫)= 4무색정 중 식무변처정에 의지하여 허공(공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리는 것을 말한다. 허공의 속박, 즉, 허공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해탈이라 이름한다.
⑥무소유처해탈(無所有處解脫)= 4무색정 중 무소유처정에 의지하여 마음[識]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리는 것을 말한다. 마음[識]의 속박, 즉, 마음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해탈이라 이름한다.
⑦비상비비상처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 4무색정 중 비상비비상처정에 의지하여, '마음[識]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린 상태' 즉 무소유심(無所有心)을 다시 완전히 버리는 것을 말한다. 있음과 없음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해탈이라 이름한다.
⑧멸수상정해탈(滅受想定解脫)은 멸진정(滅盡定)에 의지하여 '일체의 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이 소멸된 적정(寂靜)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마음과 수(受) · 상(想) 등의 마음작용의 한계 또는 시끄러움을 벗어난 고요한 상태이므로 해탈이라 이름한다. '일체의 마음과 마음작용'이란 부파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6식과 6식과 상응하는 모든 마음작용을 뜻한다. 대승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6식 모두와 제7 말나식의 염오한 부분 및 이 마음들과 상응하는 모든 마음작용을 뜻한다.-위키
背是淨潔五欲 離是著心 故名“背捨”。背 등 배, 배반할 배
배(背, vimokṣa. 해탈)란 5욕(五欲)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며, 그 집착하는 애착심을 여의었기 때문에 배사(背捨)라 이름하며,
不壞內外色 不內外滅色相 以是不淨心觀色 是名初背捨。
6입(入)과 6경(境) 안팎의 색(色)을 무너뜨리지 않고, 6입(入)과 6경(境) 안팎의 색상(色相, 색온)을 멸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부정(不淨)한 마음으로써 색을 관(觀)하니, 이를 첫 번째 배사라 하며,
壞內色 滅內色相, 不壞外色 不滅外色相 以是不淨心觀外色 是第二背捨。
안의 육입(六入)의 색(色)을 무너뜨려서 안의 색의 모습=상(相)은 없이 하였으나, 밖의 육경(六境)의 색을 무너뜨리지 않아, 밖의 육경(六境)의 색의 모습=상(相)은 없애지 않으면서, 이렇게 부정한 마음으로써 밖의 색을 관하나니, 이가 두 번째 배사이며,
是二皆觀不淨. 一者觀內觀外, 二者不見內 但見外。
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배사(背捨)는 모두가 부정함을 관찰하는 것이니,
첫째는 안의 육입(六入)을 관하고 밖의 육경(六境)을 관하며,
두 번째는 안의 육입(六入)은 보지 않고 밖의 육경(六境)만을 보는 것이니,
何以故, 衆生有二分行, 愛行見行。愛多者著樂多 縛在外諸結使行。
見多者 多著身見等行 爲內結使縛。
以是故 愛多者觀外色不淨 見多者觀自身 不淨壞敗故。
왜냐하면, 중생에게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 행(行, 업)이 있기 때문이니,
곧 탐애하는 행의 愛行(애행)과 소견을 가지는= 見行(견행)이라.
탐애가 많은 이는 쾌락에 집착하여 대개 밖으로 얽어 매임=結(결, saṃyojana)과
내면에 깃든 악한 성향에 부림을 당하는= 使(사, anuśaya)의 결사(結使, 번뇌)의 행에 속박되고,
소견이 많은 이는 대개 신견(身見, satkāya-dṛṣṭi, 유신견) 등에 집착하여 육입의 결사에 속박을 당하나니,
이러한 때문에 탐애가 많은 이는 밖(육경)의 색이 부정함을 관하고,
소견이 많은 이는 스스로의 몸이 부정함을 관하여 무너뜨리고 깨뜨려야 하며,
신견(身見, satkāya-dṛṣṭi, 유신견)= 5온이 화합해 이루어진 몸에 대해 나 혹은 내 것이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집착, 또는 몸이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로, 이 sat를 경량부에서는 무상하고 무너지는 것으로 보며, 설일체유부에서는 실제의 존재[實有]로 본다.
復次 行者初心未細攝 繫心一處難 故內外觀, 漸習調柔 能內壞色相 但觀外。
또한 수행하는 이가 처음에는 마음이 아직 미세하지 못하여 마음을 한 곳에 모아 매어 두기가 어려우므로 안팎을 관(觀)하는 것이니, 점차 익혀서 마음을 조복받아 부드러워지면, 능히 안의 육입의 색상을 무너뜨리고 다만 밖의 육경만을 관하게 되느니라.
問曰; 若無內色相 誰當觀外?
묻나니, 만일 6입(入)의 색(色)의 모습(相)이 없다면 누가 6경(境)을 관하는 것입니까?
答曰; 是爲得解道 非實道。行者念未來死及火燒 虫噉 埋著土中 皆磨滅。
답하나니, 이는 해탈을 얻기 위한 길= 得解道(득해도)일 뿐, 실상을 얻은 길= 實道(실도)는 아닌, 수행자는 미래에는 죽어 불에 타거나 벌레에게 파 먹히며 흙 속에 묻혀 모두 닳아 없어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니,
若現在觀 亦分別是身 乃至微塵皆無 是名“內無色相外觀色”。
만약에 현재에 관함에 있어서도 역시 이 몸을 분별하여 작은 티끌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관찰한다면, 이를 이름하며 육입(六入)에도 색(色)의 모습(相)이 없고 밖의 육경= 色境(색경)으로 색을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問曰; 二勝處見內外色 六勝處但見外色, 一背捨見內外色, 二背捨但見外色,
何以故 但內有壞色相 外色不能壞?
묻나니, 두 가지의 승처(勝處, abhibhāyatanāni. 뛰어난 지(知)와 견(見)을 일으키는 곳)에서는 안팎의 색을 보고, 여섯 가지의 승처에서는 다만 밖의 색만 볼 뿐이며,
첫 번째 배사(背捨)에서는 안의 육입(六入)과 밖의 육경(六境)을 보고,
두 번째 배사에서는 다만 밖의 육경(六境)만 볼 뿐이라면
무슨 이유로 안으로는 색을 무너뜨리면서 밖의 색은 무너뜨릴 수 없는 것입니까?
승처(勝處)= 팔해탈(八解脫)에서 첫 번째 배사(背捨)와 두 번째 배사 세 번째 배사를 세분(細分)하여 다시 여덟으로 나눈 것을 팔승처(八勝處)라고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
答曰; 行者 眼見是身有死相 取是未來死相以況今身, 外四大不見滅相故 難可觀無 故不說外色壞。
답하나니, 수행자는 이 몸이 죽는 모습= 死相(사상)을 눈으로 보고, 미래에 죽게 될 모습을 취하여 그로써 지금의 몸을 관찰하나니, 곧 바깥의 4대(四大, caturmahābhūta)가 소멸되는 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사대(大)는 결코 사라지는 모습이 아니라는 견해를 지닌 까닭에), 없는 것이라 관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밖의 색이 무너지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은 것이며,
4대(四大, caturmahābhūta)=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로,
견고함을 본질로 하는 지대(地大, pṛthivi-dhātu)ㆍ습기를 모으는 수대(水大, ab-dhātu)
열을 본질로 하며 성숙작용을 지니는 화대(火大, tejo-dhātu)
생장작용을 하는 풍대(風大, vāyu-dhātu).
復次 離色界時 是時亦不見外色。
또한 색계(色界, rūpa-dhātu)를 여읠 때에도 역시 밖의 색이 무너진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
색계(色界, rūpa-dhātu.)= 욕계에서의 본능적 욕망을 여의고, 오직 순수한 물질로만 이루어진 생존계
3천(天)은 욕계(欲界) 10천(天), 색계(色界) 18천(天), 무색계(無色界) 4천(天), 도리천(忉利天)으로 이루어지며, 선정(禪定)의 힘으로 수행이 향상하는 단계에 따라 윤회의 세계를 나누어서
욕망과 집착에 가득 찬 세계의 욕계(欲界, kāma-dhātu),
욕망은 끊었지만 육체를 가지고 있는 세계인 색계(色界, rūpa-dhātu),
육체를 갖지 않고 정신적 요소만으로 된 세계의 무색계(無色界, ārūpya-dhātu)의 3계로 나뉜다.
淨背捨身作證者 不淨中淨觀 如八勝處說。
세 번째의 맑은 배사를 몸소 증득하는 淨背捨身作證(정배사신작증)이라 함은 부정한 것을 청정하다고 관찰하는 淨觀(정관)이니, 8해탈(解脫)을 닦은 뒤 숙달된 관상법(觀想法)으로 자유롭게 정ㆍ부정의 경지를 관찰 하는8승처(勝處, aṭṭha abhibhāyatanāni)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前八一切處觀淸淨, 地水火風 及靑黃赤白。
觀靑色如靑蓮華 如金精山 如優摩伽華 如眞靑婆羅捺衣。
觀黃赤白 各隨色 亦復如是 摠名“淨背捨”。
앞의 십일체처(十一切處)중 공(空)과 식(識)을 뺀 팔일체처(八一切處)에서는 청정한 지수화풍(地水火風) 및 청황적백(靑黃赤白)을 관하는 것이니,
청색을 관찰하기를 마치 푸른 연꽃= 青蓮華(청련화, udumbara 우담바라優曇鉢羅)와 같이 하고,
마치 수미산 동쪽의 금정산(金精山)과 같이 하고,
마치 우마가화(憂魔伽華, Umākāpuṣpa, 천화天華)와 같이 하고,
마치 비단으로 짠 참으로 푸른 바라내의(婆羅捺衣)와 같이 하며,
황색ㆍ적색ㆍ백색의 각각의 색을 관찰함도 역시 이와 같이 하여야 하나니,
이러함을 통틀어 오욕을 여읜 청정한 마음으로 살펴보는 맑은 배사= 淨背捨(정배사)라 하느니라.
問曰; 若摠是淨背捨 不應說一切處!
묻나니, 만일 통틀어 그러함이 淨背捨(정배사)라 한다면 일체처(一切處)의 설명은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答曰; 背捨是初行者 勝處是中行 一切處是久行。
답하나니, 배사(背捨)는 처음에 행하는 것이고,
승처(勝處)는 중간에 행하는 것이며,
일체처(一切處)는 오랫동안 행하는 것이라.
不淨觀有二種, 一者不淨 二者淨。
부정관(不淨觀, aśubhāvanā)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그 첫째는 부정함을 관찰하는 不淨觀(부정관)이고, 둘째는 청정함을 관찰하는 淨觀(정관)이라.
부정관(不淨觀, aśubhāvanā)= 5정심관(停心觀) 가운데 하나. 번뇌와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 육체의 부정한 특징을 관찰하는 관법. 예를 들어 버려진 시신이 차례로 썩어가서 이윽고 백골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기까지를 관찰한다. 그 관찰의 단계를 아홉으로 나눈 것이 9상(相)이며, 열로 나눈 것이 10상(相)이다.
不淨觀中, 二背捨 四勝處。淨觀中, 一背捨 四勝處 八一切處。
부정함을 관찰하는 不淨觀(부정관)에는 두 가지의 배사와 네 가지의 승처가 있으며,
청정함을 관찰하는 淨觀(정관)에는 하나의 배사와 네 가지의 승처와 여덟 가지의 팔일체저(八一切處)가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