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0권 1

Skunky 2024. 1. 9. 09:00

大智度論釋初品中 三三昧義 第三十二卷 第二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2. 초품 중 세 가지 삼매[三三昧]의 뜻을 풀이함 1

 

▶經. '空三昧 無相三昧 無作三昧 四禪 四無量心 四無色定 八背捨 八勝處 九次第定 十一切處'

▷經. 공삼매(空三昧, śūnyatāsamādhi) 무상삼매(無相三昧, ānimittasamādhi.)

무작삼매(無作三昧, apraṇihitasamādhi.) 사선(四禪)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색정(四無色定) 팔배사(八背捨) 팔승처(八勝處) 구차제정(九次第定)

십일체처(十一切處)를 구족해야 한다.

 

▶論. 問曰, 何以故 次三十七品後 說八種法?

▷論. 묻나니, 무슨 까닭으로 37품을 설하신 후에 다시 이러한 여덟 가지 법을 말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三十七品是 趣涅槃道 行是道已 得到涅槃城。

涅槃城有三門 所謂空 無相 無作。已說道 次應說 到處門, 四禪等是 助開門法。

답하나니, 37조도품은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道)이니, 이 도(道)를 행하면 열반의 성에 이르게 되며,

열반의 성에는 세 가지의 문이 있으니, 이른바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이라.

이미 도(道)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이르러게 될 곳의 문(門)을 말해야 하리니,

사선(四禪) 등은 그러한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는 법이니라.

 

復次 三十七品是 上妙法 欲界心散亂 行者依何地 何方便得?

當依色界 無色界諸禪定。於四無量心 八背捨 八勝處 九次第定 十一切處中

試心知得 柔軟自在隨意不?

또한 37조도품은 높고 묘한 법(가르침)이니, 욕계의 산란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행자는 어떠한 지위(경지)와 어떠한 방편을 의지하여야 되는 것인가? 

마땅히 색계와 무색계의 여러 선정에 의지하여야 하며,

사무량심(四無量心) 팔배사(八背捨) 팔승처(八勝處) 구차제정(九次第定) 

십일체처(十一切處) 가운데 머물러서 마음이 유연하고 자재하게 뜻을 따르게 되는 것을 시험하여야 하나니, 

 

*배사(背捨-해탈(解脫)의 구역(舊譯). 이 「배사」란 팔배사(八背捨)이니 곧 팔해탈(八解脫)을 가리킨다. 멸진정(滅盡定)에 이르는 여덟 가지 해탈. 삼계의 고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 색계(色界)의 사선(四禪)과 무색계(無色界)의 사무색정(四無色定)에 의해 탐착(貪著)을 버리는 일. 또 다른 학설에 의하면

①먼저 어떤 대상을 오로지 생각하는 것에 의해 욕정(欲情)을 제거하고,

②나아가 마음을 하나에 집중하여 정신을 통일하고,

③다시 외경(外境)으로부터 마음을 분리해,

④몸과 마음이 청정한 경지에 이르게 하고, 이 단계에서

⑤주로 무한한 공간을 염하여 외계의 차별상을 멸하고,

⑥그 마음의 작용과 몸이 무한의 경계에 도달해,

⑦그 공간이나 마음의 경계를 초월한 근원에 이르고,

⑧그 근원이 항상 현실 위에 나타나게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

*팔승처(八勝處). 팔해탈(八解脫)을 닦고 나서, 관상(觀想)에 숙달한 처지에서 자재히 정(淨)·부정(不淨)의 경지를 관(觀)하는 것.

*一切處-십일체처(十一切處), 십일체무루(十一切無漏)·십변처(十遍處)라고도 하며, 삼계(三界)의 번뇌를 원리하는 일종의 선관(禪觀)이다. 곧 지(地)·수(水)·화(火)·풍(風)·청(靑)·황(黃)·적(赤)·백(白)·공(空)·식(識)의 열 가지에 입각해 그 중의 어느 하나로 삼계가 가득차 있다고, 하나 하나를 차례로 관(觀)해 가는 방법이다. - 보운법사

譬如御者試馬 曲折隨意 然後入陣。

十一切處亦如是 觀取少許靑色 視一切物皆能使靑, 一切黃 一切赤 一切白皆如是。

비유하자면 말을 타는 이가 말을 마음대로 부릴  있는지를 시험한 뒤에야 전쟁터의 진중(陣中)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십일체처도 그와 같아서 약간의 푸른 빛을 취하여 살펴보게 하여서 일체의 물체 모두를 푸픈 빚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일체의 누런빛, 일체의 붉은빛, 일체의 흰빛도 모두 이와 같이 하는 것이며,

 

復次 於八勝處緣中自在。初二背捨 觀身不淨, 第三背捨 觀身還使淨。

四無量心 慈觀衆生皆樂 悲觀衆生皆苦 喜觀衆生皆喜,

捨是三心 但觀衆生 無有憎愛。

慈 사랑 자, 悲 슬플 비, 喜 기쁠 희, 捨 버릴 사

慈悲자비= 1.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2. 중생들에게 즐거움과 복을 주고, 고통과 괴로움을 없게 함

또한 팔승처(八勝處)의 반연에 대하여 자재하나니, 처음의 두 배사에서는 몸의 부정함을 관찰하고, 셋째 배사에서는 몸이 도리어 깨끗한 것으로 관찰하며,

사무량심의 자(慈)란 중생을 한없이 사랑하여 모두가 즐거울 있게 되도록 관찰하는 것이요,

비(悲)란 중생 모두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한없이 가엾고 안쓰럽다고 관찰하는 것이요,

희(喜)란 중생 모두가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요,

사(捨, upekkhā. 이른바 고락(苦樂)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란 이러한 세 가지 마음을 버리고 단지 중생들에 대하여 미움도 사랑도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며, 

 

팔승처(八勝處)= 8해탈(解脫)을 닦아 얻은 뒤에 관하는 마음이 무르익어, 자유롭게 정부정(淨不淨)의 경계를 마음대로 관하는 것으로 승지승견(勝地勝見)을 일으키는 의처(依處)이므로 승처라 함.
내유색상관외색소승처(內有色想觀外色少勝處)ㆍ내유색상관외색다승처(內有色想觀外色多勝處)ㆍ
내무색상관외색소승처(內無色想觀外色少勝處)ㆍ내무색상관외색다승처(內無色想觀外色多勝處)ㆍ
내무색상관외색청승처(內無色想觀外色靑勝處)ㆍ내무색상관외색황승처(內無色想觀外色黃勝處)ㆍ
내무색상관외색적승처(內無色想觀外色赤勝處)ㆍ내무색상관외색백승처(內無色想觀外色白勝處).
(뒤의 네 가지는 깨끗한 외색의 청ㆍ황ㆍ적ㆍ백의 색상(色相)을 관하여 법애(法愛)를 일으키지 않음)-관음사

 

復次 有二種觀, 一者 得解觀, 二者 實觀。實觀者 是三十七品。

以實觀難得故 次第說得解觀。得解觀中心柔軟 易得實觀 用實觀得入三涅槃門。

또한 두 가지 관법(觀法)이 있으니,

첫째는 견해를 얻는 관법= 得解觀(득해관)이요,

둘째는 진실한 관법= 實觀(실관)이니,

實觀(실관)이라 함은 이 37품이요, 實觀(실관)으로는 얻기 어려우므로 차례로 견해를 얻는 得解觀(득해관)을 말하는 것이며, 

得解觀(득해관)의 관법에서 마음이 유연하여져서 實觀(실관)의 관법을 얻기 쉽고,

實觀(실관)의 관법에 의해서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 세 가지 열반의 문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라.


問曰, 何等 空涅槃門?

묻나니, 무엇이 공열반문(空涅槃門)입니까?

 

答曰, 觀諸法 無我 我所空 諸法從因緣和合生 無有作者 無有受者 是名空門。

답하나니, 제법은 무아(無我)요, 내 것= 我所(아소)가 없는 공(空)한 것이며, 제법은 인연의 화합을 따라 생긴 것이어서 짓는 작자(作者)도 없고 받는 수자(受者)도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공문(空門)이라 하며,

 

復次 空門 如'忍智品'中說。

또한 공문(空門)에 의해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은 '인지품(忍智品)'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니라.

 

知是無我 我所已 衆生云何 於諸法中心著?

行者思惟作是念, '諸法從因緣生 無有實法 但有相 而諸衆生取是相 著我 我所。

我今當觀 是相有實可得不!'

무아(無我)요 我所(아소)가 없음을 안 뒤에도 어찌하여 중생들이법에 대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되는 것인가!

수행자는 이렇게 사유(思惟)하나니, 

‘제법은 인연을 따라 생기는 것이라, 진실한 법이 없고 오직 상(相) 있거늘 중생들이  형상을 취하여 나(我)와  것(我所)에 집착하나니, 이제 마땅히 나는 이러한 상(相)에서 실로 얻을 것이 있는가를 관찰하리라!'

 

審諦觀之 都不可得, 若男相 女相 一異相等 是相實皆不可得。

何以故, 諸法無我 我所故空 空故無男 無女 一異等法, 我 我所中名字 是一 是異,

以是故 男 女 一 異法 實不可得。諦觀체관=1. 상념을 끊고 사물을 조용히 관찰하여 그 이치를 생각하는. 2.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봄

자세히 그 이치를 체관(諦觀)하여도 도무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남자의 모습 남상(男相)과 여자의 모습 여상(女相), 같은 모습의 일상(一相)과 다름의 모습 이상(異相)등의 이러한 상(相)들을 실로 모두 얻을 수 없나니,

왜냐하면 제법의 그 어디에도 나와 내 것이 없으므로 공한 것이며, 공하기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없고, 같고 다름 등의 법도 없는 것이지만,

나와 내 것이라고 내세우는 마음을 통해 말과 글이 있게 되고, 말과 글이 있게 된 까닭에 일상(一相, 같음)과 이상(異相, 다름)이 있게 되었으나, 

실로 남자와 여자, 일상(一相)과 이상(異相)의 법을 얻을 수는 없음이라.

 

復次 四大及造色 圍虛空故名爲身, 是中內外入 因緣和合 生識種。

身得是種和合 作種種事, 言語 坐起 去來。於空六種和合中 强名爲男 强名爲女。

또한 사대(四大)와 색온(色蘊)으로 인하여 지어진(만들어진) 물질을 허공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몸이라 하는 것이며,

여기에 육입(六入)과 육경(六境)= 內外入(내외입) 인연이 화합하여 의식이 심어지게 되는= 識種(식종)이 생기는 것이며,

공(空)한 육입(六入)과 육정(六情)이 인연 화합으로 헤아려 아는 識種(식종)으로 얻게 된 몸이 갖가지 일을 하고, 말을 하고, 앉고 서고 가고 오나니, 허공 가운데 여섯 가지가 화합한 것을 굳이 남자라 여자라 이름할 뿐이라.

 

若六種是男 應有六男 不可以一作六 六作一。

亦於地種中無男女相 乃至識種亦無男女相。

若各各中無 和合中亦無, 如六狗各各不能生師子 和合亦不能生 無性故。

만약 육입(六入)과 육정(六情)의 여섯 가지가 남자라 한다면 마땅히 여섯 명의 남자가 있어야 하리니, 하나가 여섯이 될 수 없고, 여섯이 하나가 될 수도 없는 것이며, 

또한 지대(地大, 단단함) 가운데에도 남녀의 상(相)이 없고, 나아가서는 의식의 종자= 識種(식종)에도 역시 남녀의 상(相)이 없는 것이며,

만약 각각의 개체 가운데에 없는 것이라면 화합한 가운데에도 없는 것이니,

마치 여섯 마리의 개가 제각기 사자를 낳을 수도 없으며, 또한 화합해서 사자가 생겨나게 할 수도 없는 것과 같으니,

성품(자성)이 없기 때문이니라.

 

問曰, 何以故 無男女?

묻나니, 무슨 까닭에 남녀가 없는 것이라 하는 것입니까?

 

雖神無有別 卽身分別有男女之異。是身不得離身分 身分亦不得離身,

如見身分足 知有有分法 名爲身。足等身分異身 身卽是男女相。

비록 정신은 차별이 없지만 분별할 수 있는 몸= 身分(신분)에는 차별이 있어서 남녀의 차이가 있는 것이며,

이 몸은 그렇게 분별되어지는 몸의 한 부분= 身分(신분)을 여읠 수 없으며, 몸의 한 부분= 身分(신분) 또한 몸을 여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몸의 한 부분인 발과 같이, 각각의 부분이 있는 것을 몸이라 하는 것을 알게 되듯이,

즉 발 등과 같이 몸의 한 부분이 몸과 다르지 않으니, 곧 몸이 있으므로 남녀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答曰, 神已先破 身相亦壞 今當重說。

답하나니, 신(神, 정신)은 이미 앞에서 파하였고(설명하였고),

몸의 상(相)도 역시 무너졌거니와 이제 다시 설명하리라.

 

若有是有分名身 爲各各分中具足有?

爲身分分在諸分中?

만약 이렇게 여러 부분들이 있는  몸이라 한다면, 그 제각각의 몸의 부분 안에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몸의 부분부분 가운데 나뉘어져 있는 것인가?

 

若諸分中具足有身者 頭中應有

何以故, 頭中具足有身故。

若身分分在諸分中 是身與分無有異 有分者隨諸分故。

만약 모든 부분 가운데에 갖추어 있는 것을 몸이 있는 것이라 한다면, 머리 가운데에도 다리가 있어야 할 것이니, 왜냐하면 머리 가운데 몸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몸의 모든 부분 가운데 나뉘어져 있는 것이라면 이 몸은 신체의 각 부분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부분 있음= 有分(유분)이란 것은 모든 부분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