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9권 2

Skunky 2023. 12. 29. 09:00

大智度論釋初品中 三十七品義 第三十一卷第十九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1. 초품 중 삼십칠품(三十七品)의 뜻을 풀이함 2

 

復次 諸菩薩摩訶薩 信力大故 爲度一切衆生故 是中佛爲一時說三十七品,

若說異法道門 十想等 皆攝在三十七品中。

是三十七品 衆藥和合 足療一切衆生病 是故不用多說。

如佛雖有無量力 但說十力 於度衆生事足。

또한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믿음의 힘이 크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까닭에 이렇게 부처님께서 일시에 37조도품을 말씀하신 것이라.

만약 다른 법의 도문(道門)이나 10(十등을 설한다 하여도 그 모두가 37조도 가운데 포함되나니,

 37조도품은 여러 가지의 약이 화합되어 있는 것이라서 일체 중생의 병을 치유하기에 족한 것이므로  이상 많은 말씀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예를 들자면, 부처님께는 무량한 힘이 있으시지만, 오직 10(十)만을 말하여도 중생을 제도하기에 족한 것과 같으니라.

 

십상(十想)= 무상상(無常想) 고상(苦想) 무아상(無我想) 식부정상(食不淨想) 세간불가낙상(世間不可樂想) 사상(死想) 부정상(不淨想) 단상(斷想) 이상(離想) 진상(盡想).

 

是三十七品 十法爲根本。何等十? 信 戒 思惟 精進 念 定 慧 除 喜 捨。

 37조도품은 열 가지의 가르침= 十法(십법)으로 근본을 삼으니, 무엇이 그  가지인가

 믿음의 信(신)ㆍ계율의 戒(계)ㆍ사유(思惟)ㆍ정진(精進, 정진각지精進覺支)ㆍ기억의 念(념)ㆍ선정의 定(정)ㆍ지혜의 慧(혜)ㆍ제함의 除(제)ㆍ기쁨의 喜(희)ㆍ버림의 捨(사)이라

 

信者 信根 信力。믿음이라함은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와 사제(四諦)의 이치를 믿는 信根(신근)여래에 대해 청정한 믿음(淨信)을 갖고 물러나지 않는 信力(신력)이요

戒者 正語 正業 正命。계(戒, 계율)이라 함은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이요

精進者 四正懃 精進根 精進力 精進覺 正精進。

정진이라 함은 사정근(四正懃) 정진근(精進根) 정진력(精進力) 정진각지(精權覺支) 정정진(正精進)이요

念者 念根 念力 念覺 正念。

기억(생각)이라 함은 염근(念根) 염력(念力) 염각지(念覺支) 정념(正念)이요

定者 四如意足 定根 定力 定覺 正定。

정(定, 선정)이라 함은 사여의족(四如意足)과 정근(定根) 정력(定力) 정각(定覺, 정각지定覺支)와 정정(正定)이요

慧者 四念處 慧根 慧力 擇法覺 正見。

혜(慧, 지혜)라 함은 사념처(四念處) 혜근(慧根) 혜력(慧力) 택법각지(擇法覺支) 정견(正見)이니라.

 

*오근(五根)= 근(根, indriya)이란 ‘인드라 신에 상응하는 힘’을 뜻한다. 인드라 신은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천신이다. 그러므로 근은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밝게 빛나며 두드러지게 뛰어난 힘을 가리키는 오근(pañcendriya)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식(識)이 발생하게 되는 근거로서의 오근이니, 즉 안근(眼根, cakṣurindriya)·이근(耳根, śrotrendriya)·비근(鼻根, ghrāṇendriya)·설근(舌根, jihvendriya)·신근(身根, kāyendriya)을 말한다."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 따르면, 이들 오근은 네 가지 측면에서 뛰어난 힘을 지닌다. 첫째는 몸을 꾸며주고, 둘째는 몸을 이끌어주고, 셋째는 식(識)을 생기게 하고, 넷째는 다른 기관과 공유하지 않는 특별한 기능을 가졌다는 점이다. 안근과 이근을 예로 들면, 첫째는 눈과 귀가 있어야 몸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눈과 귀로 보고 들어야 험난한 곳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눈과 귀를 통해 안식(眼識)과 이식(耳識)이 성립한다는 것이고, 넷째는 눈은 보고 귀는 듣는 것처럼 눈과 귀가 각각 특별한 기능을 가진다는 것이다. 비근·설근·신근 역시 향과 맛과 촉감을 대상으로 취하여 각각 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성립시키는 뛰어난 힘을 지니고 있다.
두번째로 오근은 오무루근(五無漏根)을 지칭한다. 무루근이란 번뇌를 제거하고 깨달음으로 향하게 하는 뛰어난 작용이라는 의미로, 신근(信根, śraddhendriya), 진근(進根, vīya-indriya), 념근(念根, smṛtīndriya), 정근(定根, samādhīndriya), 혜근(慧根, 梵 prajñendriya)으로 구성된다. 신근은 불·법·승의 삼보(三寶)와 사성제(四聖諦) 등의 도리를 믿는 것이다. 정진근은 근근(勤根)이라고도 하며, 용맹한 마음으로 선한 법을 닦는 것이다. 염근은 바른 가르침을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정근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혜근은 선정으로 생겨난 지혜를 통해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깨닫는 것이다. 이들 다섯 가지는 모든 선한 법을 발생시키는 데 있어 뛰어난 힘을 가지므로 오근이라고 칭한다. 이는 또한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 열반에 들기위해 실천해야할 37개 항목)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다움

*오력(五力)= 한 가지에 전념하여 그로써 장애를 극복하는 힘. 또는 산란한 마음을 그치고 진실한 마음을 갖게 하는 힘을 이른다. 
신력(信力): 여래에 대해 청정한 믿음(淨信)을 갖고 물러나지 아니하는 것.
정진력(精進力): 선을 짓고 악을 패하기에 부지런하는 것.
염력(念力): 사상(思想)을 바로 갖고 나쁜 생각을 버리는 것.
정력(定力): 선정(禪定)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없게 하는 것.
혜력(慧力): 지혜를 닦아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깨닫는 것 -나무위키

 

是諸法 念隨順智慧緣中止住 是時名念處。破邪法 正道中行 故名正懃。

攝心安隱於緣中 故名如意足。軟智心得 故名根.

智心得 故名力。修道用 故名覺。見道用 故名道。

이러한 제법(가르침)을 생각하고 기억하여 지혜에 수순해서 대상=緣(연) 가운데 머문다면이러한 때를 염처(念處) 하며, 

삿된 법= 邪法(사법)을 깨뜨리고 正道(정도) 가운데에서 행하는 까닭에 정근(正勤)이라 하고

마음을 감싸들여 안온하게 대상=緣(연) 가운데서 거두는 까닭에 여의족(如意足)이라 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지혜와 서로 어우러져서 얻는 까닭에 ()이라 하고

날카로운 마음이 지혜와 어우러져서 얻는 까닭에 력(力)이라 하고

수도위(修道位, 수습위修習位) 작용인 까닭에 ()이라 하고

견도위(見道位, 통달위通達位) 작용이기 때문에 () 하며, 

 

*수도위(修道位)= 수습위(修習位)라고도 하며, 견도위(통달위)에서 아직도 정화하지 못한 부분을 더욱 정화하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이다. 그 동안 긴 기간에 걸쳐서 끊임없는 수행과 그로 인해 체득된 무분별지의 발현에 의해 아뢰야식 중에 있는 번뇌와 주객체의 잠재력을 함께 단절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단계에서는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정화하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닦아 진여의 경지에 진입하는 수행을 한다. 
아공은 나 자신이 공(空)한 것을 깨닫는 것이고, 법공은 인연의 법이 공(空)한 것임을 깨닫는 것을 뜻한다. 모든 사물은 인연의 집합과 더불어 공동의 노력으로 조성된 것이기 때문에 선정의 지혜로 그 본성을 잘 관찰하면 공(空)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소지장(所知障)이 없어지고, 동시에 번뇌장(煩惱障)이 정화되면서 그 동안 장애를 받아 발휘되지 못했던 지혜가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다. 이는 점차 부처의 경지에 가까워져 가는 본격적인 수행 과정이다. 보살 10지 중 첫 단계인 초지의 둘째 단계이고, 삼도(三道)로 말하면 수도(修道)에 해당한다. -아미산

*견도위(見道位)= 통달위(通達位), 통달위에 오르면 진여성(眞如性)을 관찰하게 된다는 뜻에서 견도(見道)라고도 한다. 
진여성을 관조하면서 매우 기쁘다는 뜻으로 환희지(歡喜地)라고도 하며, 환희지는 초지보살(初地菩薩)이 수행하는 경지를 뜻한다. 즉, 보살 10지(十地)의 첫 단계인 환희지[초지(初地)]에 입문한 상태를 말한다. 수승한 보살이 닦는 수행위로서 성인의 지위에 든 것이다. 통달위에서는 참으로 마음의 흐름을 명확히 봐서 무아(無我)인 줄 알게 되고, 초지보살 이전의 수행위를 지전(地前)의 수행위라 하는데, 지전의 수행위가 자량위와 가행위이다. 
이 지위(견도위)에 오르면 비로소 무루지(無漏智)를 얻어 진여(眞如)의 이치를 체득하게 된다. 그런데 분별심이 없어지지만 아직 반연(攀緣)하는 작용이 남아 있어서 진여를 완전히 증득한 것은 아니다. 즉, 후천적인 번뇌[분별기번뇌(分別起煩惱)]는 한꺼번에 소멸되지만 선천적인 번뇌[구생기번뇌(俱生起煩惱)]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분별기번뇌가 끊어지면 통달위이다. 통달위에 오르게 되면 청정의 힘이 굉장히 강해지고, 번뇌의 근원인 ‘나와 나의 것’이 없음을 보게 된다.그러나 이 경지에서도 아직까지 인간이라는 궁극적인 존재는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이와 함께 하는 번뇌는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몸에 침투된 번뇌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으며, 각종 종자(種子)를 함장하고 있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근본이 되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기 위해서는 수행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 일반에서 수행의 단계를 크게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와 무학도(無學道)」라는 3도로 구분할 때, 앞서 말한 자량위와 가행위에 이 통달위를 더해 견도로 간주한다. -아미산

 

問曰, 應先說道。何以故? 行道然後 得諸善法, 譬如人先行道 然後得所至處。

今何以顚倒 先說四念處 後說八正道?

묻나니, 마땅히 도(道)를 먼저 말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道)를 행한 뒤에야 모든 착한 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니, 비유하자면 사람이 길을 나선 뒤에야 목적지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인데, 지금 어찌하여 앞뒤를 바꾸어서 사념처를 먼저 말씀하신 후에 8정도(八正道)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不顚倒也。三十七品 是初欲入道時名字。

如行者到師所 聽道法時 先用念持是法 是時名念處。

持已 從法中求果 故精進行 是時名正懃。多精進故心散亂 攝心調柔故 名如意足。

답하나니, 뒤바뀐 것이 아니니라. 37조도품은 처음으로 도(道)에 들고자 할 때의 이름이니, 마치 수행자가 스승이 계신 곳에 가서 도법(道法)을 들을 때에 먼저 기억하여 이 법을 간직하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때를 염처(念處)라 하며,

간직하여 지닌 뒤에는 그러한 법(가르침) 가운데서 과위를 구하고자 정진하게 되나니, 이러한 때를 정근(正懃)이라 하며,

정진을 많이 하게 되면 마음이 산란하여지고, 그러한 마음을 거두어 다스려서 부드럽게 하는 까닭에 여의족(如意足)이라 하며,  

 

心調柔已 生五根。諸法實相 甚深難解 信根故能信 是名信根,

不惜身命 一心求道 是名精進根, 常念佛道 不念餘事 是名念根,

常攝心在道 是名定根, 觀四諦實相 是名慧根。

마음이 부드럽게 길들여진 뒤에는 오근(五根)이 생기게 되며,

심심하게 깊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제법의 실상을 신근(信根)을 지닌 때문에 능히 믿게 되니, 이러함을 신근(信根)이라 하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심으로 도를 구하나니, 이러함을 정진근(精進根)이라 하며,

항상 불도(佛道)만을 생각하고 그 밖의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이러함을 염근(念根)이라 하며,

항상 마음을 거두어 도(道)에 머무니, 이를 정근(定根)이라 하며,

사제(四諦)의 진실한 모습을 관찰하니, 이를 혜근(慧根)이라 하는 것이니,

 

是五根增長 能遮煩惱 如大樹力能遮水。是五根增長時 能轉入深法 是名爲力。

이 오근(五根)이 더욱 늘어남에 능히 번뇌를 막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 마치 큰 나무의 힘으로 능히 홍수를 막는 것과 같으며,

이러한 오근(五根) 더욱 늘어남에 능히 깊은 법= 深法(심법)으로 옮겨 들어가게 되나니, 이를 힘=力(력)이라 하며, 

 

得力已 分別道法有三分, 擇法覺 精進覺 喜覺 此三法 行道時若心沒 能令起 除覺 定覺 捨覺 此三法

力(력)을 얻은 뒤에는 도법(道法)을 세 부분으로 분별하여 나누나니,

이는 택법각지(擇法覺支)와 정진각지(精進覺支)와 희각지(喜覺支)이며,

이러한 세가지의 법= 三法(삼법)은 도(道)를 행하여 나아갈 때에 만약 마음이 침몰하여 갈아 앉으면 제각지(除覺支)ㆍ정각지(定覺支)ㆍ사각지(捨覺支)의 삼법으로 일으키게 되며,

 

*칠각지 [七覺支]

-염각지(念覺支) 염은 사념(思念)의 뜻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마음속 깊이 새겨서, 모든 진리의 법을 닦을 때 능히 깨달아 사념하며 정혜(定慧)를 균평(均平)히 하여 혼침(昏沈)하고 부동(浮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택법각지(擇法覺支) 택은 간택의 의미이며, 지혜로써 제법을 관찰하여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가려서 허위의 법은 버리고 참된 법을 간택하는 것이다.
-정진각지(精進覺支) 정은 부잡(不雜), 진은 무간(無間)의 뜻으로 닦을 바 법에 노력 정진하는 것으로 진리를 수행할 때 쓸데없는 고행은 그만 두고 바르고 참된 정법에 오로지 한 마음을 기울여 부지런히 노력하여 쉼없이 마음을 어리석지 않게 하는 것이다.
-희각지(喜覺支) 환희심으로 진리를 즐겨 구하는 것으로서 마음이 참 진리에 계오(契悟)하여 환희를 얻을 때 참 진리는 전도(顚倒)의 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진리의 희열에 머무는 것이다.
-제각지(除覺支) 또는 의각지(掎覺支), 제는 단제(斷除)로서, 그릇된 모든 견해와 번뇌를 끊어 버림으로써 허위의 법을 제거하고 진정한 선근을 증장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편한하게 하는 것이다.
-사각지(捨覺支) 사는 사리(捨離)의 뜻이며, 바깥의 모든 경계에 집착하던 마음을 여의어 거짓되고 참되지 못한 법을 영원히 추억(追憶)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각지(定覺支) 정은 선정(禪定)으로서 선정에 들었을 때 능히 모든 것을 깨달아 모든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고 마음에 산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택법, 정진, 희각지는 혜(慧)에 속하고, 제, 사, 정각지는 정(定)에 속하며 염각지는 정혜를 겸한다.

 

若行道時心動散 能攝令定 念覺在二處 能集善法 能遮惡法,

如守門人 有利者令入 無益者除卻。

若心沒時 念三法起, 若心散時 念三法攝。無覺實覺 此七事能到 故名爲分。

만약 三法(삼법)을 행함에 마음이 흔들리고 흩어지면 능히 거두어서 정각지(定覺支)와ㆍ염각지(念覺支)의 두 곳에 머물게 하여야 하나니, 능히 착한 법을 모으고 악한 법을 막게 되니, 

마치 문을 지키는 사람이 이로운 이는 들어오게 하고, 무익한 이는 막아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마음이 침몰하여 갈아 앉으면 제각지(除覺支)ㆍ정각지(定覺支)ㆍ사각지(捨覺支)의 삼법을 염(念)하여 일으키고,

만약 마음이 산란하면 제각지(除覺支) 정각지(定覺支) 사각지(捨覺支)의 삼법을 염(念)하나니,

三法(삼법)은 무각(無覺)과 실각(實覺)에 포섭되며, 

이 일곱 가지의 칠각지(七覺支)로 능히 이르게 되기 때문에 분(分, 칠각지분)이라 하느니라.

 

得是法安隱具足已 欲入涅槃無爲城故 行是諸法 是時名爲道。

이러한 법을 얻게 되어 안온함을 구족한 뒤에는 열반무위성(涅槃無為城, 반야성)에 들고자 하는 까닭에 이러한 제법(가르침)을 행하여 나아가나니, 이러한 때를 도(道)라 부르느니라.

 

問曰, 何等是四念處?

묻나니, 어떠한 것이 사념처(四念處)입니까?

 

答曰, 身念處 受 心 法念處 是爲四念處。

답하나니, 신념처(身念處)를 비롯한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이니, 이러한 것이 사념처(四念處)이니라.

 

觀四法四種, 觀身不淨 觀受是苦 觀心無常 觀法無我。

이러한 네 가지 법= 四法(사법)을 신수심법(身受心法)의  종류= 四種(사종)로 관찰하나니, 

 몸이 부정하다고 관찰하고, 받아들이느 느낌(수온)은 괴롭다고 관찰하고, 마음은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법에는 '나'라는 실상이 없음을 관찰하는 것이니, 

 

是四法 雖各有四種 身應多觀不淨 受多觀苦 心多觀無常 法多觀無我。

이러한 신수심법(身受心法)의 四法(사법)에는 四種(사종)의 있으니, 몸의 부정함을 많이 관하고, 받아들이는 느낌(수온)에서는 괴로움이 많음을 관하고, 마음은 무상한 것임을 많이 관하고, 법에서는 '나' 없음을 많이 관하여야 하는 것이니,

 

何以故? 凡夫人未入道時 是四法中 邪行起四顚倒, 諸不淨法中淨顚倒 苦中樂顚倒 無常中常顚倒 無我中我顚倒。

왜냐하면 범부가 아직 도(道)에 들지 않았을 때에는 이러한 신수심법(身受心法)의 四法(사법)으로 삿된 행을 하거나  가지의 뒤바뀌어 전도(顚倒)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라.

모든 부정한 법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뒤바뀌어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며, → 淨, 신념처

괴로움에 대하여 즐겁다는 뒤바뀌어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며,  → 樂, 수념처

무상함에 대하여 항상하다는 뒤바뀌어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며,  → 常, 심념처

나가 없는데 대하여 나라는 뒤바뀌어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나니,  → 我, 법념처

 

破是四顚倒故 說是四念處, 破淨倒故說身念處 破樂倒故說受念處 破常倒故說心念處

破我倒故說法念處。以是故說四 不少不多。

이런 네 가지 전도(顚倒)를 깨뜨리기 위한 까닭에 이 사념처(四念處)를 설하는 것이니, 

깨끗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신념처(身念處)를 설하고,

즐겁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수념처(受念處)를 설하고,

항상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심념처(心念處)를 설하고,

나가 있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법념처(法念處)를 설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신수심법(身受心法)의 四法(사법)을 설하셨나니,

이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설명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