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8권 11

Skunky 2023. 12. 27. 09:00

大智度論釋初品中 般若波羅蜜 第二十九 卷第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0. 초품 중 반야(般若)의 모습[]과 뜻[]을 풀이함 10

 

問曰, 要行五波羅蜜 然後得般若波羅蜜? 亦有行一 二波羅蜜 得般若波羅蜜耶?

묻나니, 다섯 가지 바라밀을 반드시 행한 뒤에야 반야바라밀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중의 한 두 가지 바라밀을 행한 뒤에도 반야바라밀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 諸波羅蜜 有二種,

一者 一波羅蜜中 相應隨行 具諸波羅蜜, 二者 隨時別行波羅蜜 多者受名,

譬如四大共合,雖不相離,以多者爲名。

답하나니, 모든 바라밀에는 두 종류(二種)가 있으니,

하나는 하나의 바라밀에서 서로 상응(相應)함에 따라 행하여 모든 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때에 맞추어 각각의 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나, 행함이 많은 쪽으로 이름하나니, 

비유하자면, 사대(四大)가 서로 화합해서 결코 서로를 여의지 못하나, 성분이 많은 쪽으로 이름을 붙이는 경우와 같으니라.

 

相應隨行者 一波羅蜜中 具五波羅蜜, 是不離五波羅蜜 得般若波羅蜜。

서로 상응함에 따라 행하되 하나의 바라밀을 통하여 다섯 바라밀을 구족하게 되나니, 이는 다섯 바라밀을 여의지 않고서 반야바라밀을 얻는 것이요,

 

隨時得名者, 或因一 因一得般若波羅蜜。

때에 따라 이름을 얻게 된다는 것은, 혹은 하나의 원인이 있어 그 하나의 원인으로 인하여 반야바라밀을 얻게 되는 것이니,

 

若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布施是時 求布施相,

不一不異 非常非無常 非有非無等 如破布施中說。

因布施實相 解一切法 亦如是 是名因布施 得般若波羅蜜。

만약 어떤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으로 보시를 하였다면, 이 때의 보시의 상을 구한다 하여도 그 상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항상함도 아니요 무상함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요 없음 등도 아니니, 이는 보시를 깨뜨리는 대목에서 삼사(三事)가 청정(淸淨)한 것을 설명한 것과 같다.

보시의 실상으로 인(因)하여 일체법을 이해하게 되나니, 이러함을 하나의 보시로 인하여 반야바라밀을 얻는 것이라 하느니라.

 

或有持戒 不惱衆生 心無有悔, 若取相生著 則起諍競. 是人雖先不瞋衆生 於法有憎愛心故而瞋衆生。

是故若欲不惱衆生 當行諸法平等, 若分別是罪是無罪 則非行尸羅波羅蜜。

 계행을 지키어 중생을 괴롭히지 않게 되면 마음에 후회가 없거니와 만일 상을 취하여 집착하는 생각을 낸다 다툼을 일으키게 되나니, 이 사람이 비록 전에는 중생을 괴롭히지 않았지만 법(法)을 따르고자 함에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생각을 내게 되면 중생에게 화를 내게 되나니, 

그러므로 중생들을 괴롭히지 않으려면 제법의 평등함을 행하여야 하나,

만약 죄와 죄아님을 분별한다면 시라(羅, 지계)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닌 것이 되나니,  

 

何以故, 憎罪 愛不罪 心則自高 還墮惱衆生道中. 是故 菩薩觀罪者 不罪者 心無憎愛。

如是觀者 是爲 但行尸羅波羅蜜 得般若波羅蜜。

왜냐하면 죄를 미워하고 죄아님을 사랑하게 되면 마음이 저절로 교만해져서 다시 중생의 길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죄가 있는 자와 죄가 없는 자를 관(觀)하 마음에 미움도 사랑도 없어야 하나니, 이렇게 관(觀)하는 이는 시라바라밀만을 행하여도 반야바라밀을 얻게 되는 것이며

 

菩薩作是念, '若不得法忍 則不能常忍。一切衆生 未有逼迫能忍 苦來切已則不能忍。

譬如 囚畏杖楚而就死苦。以是因緣故 當生法忍, 無有打者 罵者 亦無受者, 但從先世顚倒 果報因緣故 名爲受'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나니, ‘법인(法忍, dharma-kṣānti)을 증득하 못한다면 항상 인욕하지 못한 것이다. 

일체중생들은 핍박이 없으면 능히 참지만 고통이 절실하게 닥쳐오면 참지 못하나니,

비유하자면, 죄인이 매 맞는 것을 두려워하여 죽음으로 뛰어드는 것과도 같으니, 

이러한 인연 땐문에 마땅히 법인(法忍)을 얻어야 하나니, 때리는 이도 없고, 꾸짖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으나, 다만 전생으로 부터의 뒤바뀌어 전도(顚倒)된 인연의 과보 때문에 받는다고  뿐이다.’

 

*삼법인(三法忍)=인(忍)’은 ‘참을 인’이 아니라 ‘인(印)’과 같은 의미라서 인가⋅인허의 뜻이고, 진리를 확실히 이해해서 정확히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①신인(信忍),  신심에 의해 얻는 지혜, 
②순인(順忍), 진리에 순종하는 지혜, 
③법인(法忍), 진리를 깨닫는 지혜, 즉 무생법인(無生法忍)은 불생불멸의 경지, 무생(無生)’이란 모든 현상은 연기법에 따라 변화하는 여러 요소들이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데 불과할 뿐 실존적인 그 무엇이 생기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무엇인가 고정된 실체, 실존적인 존재가 있어야 무엇인가가 생겨난다는 말이 성립되겠는데, 연기법이 적용되는 무아(無我)의 세계에 고정된 실체가 있을 수 없다면 생길 것도 없는 것이다. ‘무생(無生)’은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다. 깨달으면 다른 헛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니 무생이다. 따라서 무생이란 ‘무생의 이치’, ‘남[生]이 없는 진리’ 등을 이르는 말이다. 즉,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아 세상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한 상황을 말한다. -
아미산

 

是時 不分別是 忍事 忍法者 深入畢竟空故 是名法忍。

得是法忍 常不復瞋惱衆生。法忍相應慧 是般若波羅蜜。

이럴 때에 참는 일=事忍(사인)과 참는 법= 法忍(법인)을 분별하지 않은 채 끝까지 공함= 畢竟空(필경공)에 깊이 들어가나니, 이러한 까닭에 법인(法忍)이라 하며,

이 법인(法忍)을 얻으면 영원히 중생들에게 성내거나 괴롭히지 않게 되나니,

법인(法忍)이 지혜와 상응하여 어우러지는 것을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精進常在 一切善法中 能成就一切善法。

若智慧 籌量分別諸法 通達法性 是時 精進助成智慧。

항상한 정진(精進)은 모든 좋은 법= 善法(선법) 가운데에서 모든 善法(선법) 성취하게 하나니,

만약 지혜로써 제법(諸法) 헤아려 분별하게 되면, 인연화합에 의한 온갖 현상과 작용의 본바탕= 法性(법성)을 통달하게 되나니, 이러한 경우에는 정진(精進)이 지혜를 도와서 (불도를) 성취하게 하는 것이며,

 

又知精進實相 離身心 如實不動 如是精進 能生般若波羅蜜。

餘精進 如幻如夢 虛誑非實 是故不說。

또한 정진(精進)의 실상(實相)을 알게 되어 몸과 마음을 여의어 여실히 동요하지 않게 되나니, 정진은 이렇게 능히 반야바라밀이 생겨나게 하거니와 그 밖에 정진은 환(幻)과 같고 꿈과 같이 허황하여 진실하지 않으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니라.

 

若深心攝念 能如實見 諸法實相。諸法實相者 不可以見聞念知能得。

何以故, 六情六塵 皆是虛誑因緣果報, 是中所知所見 皆亦虛誑。

만약 깊은 마음으로 생각을 거두면 능히 한결같은 제법의 진실한 실상(實相)을 여실하게 보게 되나니,

제법의 실상(實相)이란 보거나 듣거나 생각으로 알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안이비설신의의 육정(六情)과 색성향미촉법의 육진(六塵) 모두는 거짓된 인연의 과보이며, 육정(六情)과 육진(六塵)으로 알게 되고 보게 된 것 모두가 역시 허망하고 거짓된 것이기 때문이니라.

 

是虛誑知 都不可信, 所可信者 唯有諸佛 於阿僧祇劫 所得實相智慧。

以是智慧 依禪定一心 觀諸法實相 是名禪定中 生般若波羅蜜。

이러한 허망한 알음알이 모두는 믿을 수 없나니,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부처님께서 아승기 겁(劫)동안 얻으신 실상의 지혜뿐이라.

이렇게 지혜로써 선정에 의지하여 一心(일심)으로 제법의 실상을 관하는 것을 선정에서(선정을 통하여) 반야바라밀이 생기는 것이라 하느니라.

 

或有 離五波羅蜜 但聞 讀誦 思惟 籌量 通達 諸法實相 是方便智中 生般若波羅蜜。

혹은 다섯 가지 바라밀을 여의고 다만 듣고 읽고 외우고 사유(思惟)하고 헤아리는=籌量(주량)하기만 하여도 제법의 실상을 통달하기도 하나니, 이러한 방편의 지혜에서 반야바라밀이 나기도 하며,  

 

或從二 或三 四波羅蜜 生般若波羅蜜。如聞說 一諦而成道果 或聞二 三 四諦 而得道果。

혹은 둘이나 혹은  또는  가지의 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이 생기기도 하나니,

이는 마치 사제(四諦)에서 하나의 진리= 一諦(일제)만을 듣고도 도과(道果) 이룰 수 있기도 하, 혹은 둘이나 셋이나  가지 진리 모두를 듣고 도과를 이룰 수 있는 것과 같으니,  

 

有人於苦諦多惑故 爲說苦諦而得道, 餘三諦亦如是。或有 都惑四諦故 爲說四諦 而得道。

어떤 사람은 고제(苦諦)에 대하여 미혹이 많았으므로 고제(苦諦)를 말해 주면 도를 얻게 되기도 하고,

나머지 3제(三諦)에 대하여서도 그러하며,

혹 어떤 이는 4제(四諦) 모두에 미혹하므로 4제(四諦)를  말해 주면 도를 얻게 되기도 하느니라.

 

如佛語比丘, '汝若能斷貪欲 我保汝得 阿那含道'

若斷貪欲 當知恚 癡亦斷。六波羅蜜中 亦如是 爲破多慳貪故 說布施法 當知 餘惡亦破。

爲破雜惡故 具爲說六。

마치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그대들이 만약 탐욕을 끊어 낼 수 있다면 나는 그대들이 아나함(阿那含)의 도를 얻게 되리라고 보증한다' 하셨으니,

만약 탐욕을 끊어 낼 수 있다면 성냄과 어리석음도 모두 끊어 내어짐을 아신 것이니라.

6바라밀도 역시 그와 같아서 간탐(慳貪)이 많은 것을 깨뜨리기 위하여 보시의 법을 설하면 마땅히 나머지의 악도 끊어짐을 알게 되며, 갖가지 잡다한 악= 雜惡(잡악)을 깨뜨리기 위한 까닭에 6바라밀을 갖추어 설하는 것이다.

 

是故 或一一行, 或合行, 普爲一切人故 說六波羅蜜 非爲一人。

이러한 까닭에 혹은 하나씩 따로 행하기도 하고, 혹은 모두 같이 행하기도 하나니, 일체의 사람들을 두루 위하기 때문에 6바라밀을 설하는 것이요,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니라. 

 

復次 若菩薩 不行一切法 不得一切法故 得般若波羅蜜。

所以者何, 諸行皆虛妄不實 或近有過 或遠有過,

如不善法近有過罪, 善法久後變異時 著者能生憂苦 是遠有過罪。

또한 만약 보살이 일체법(一切法)법을 행하지 않고 일체법(一切法) 얻지 않음으로써 반야바라밀을 얻기도 하나니,

왜냐하면 모든 행= 諸行(제행) 모두가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며,

혹은 허물이 가까이 있기도 하고, 

혹은 허물이 멀리 있기도 한 것으로, 

착하지 못한 不善法(불선법)의 허물은 가까이 있는 것이며, 

착한 善法(선법)이 오래된 후에 다르게 바뀌고자 할 때에 이에 집착한 이는 능히 시름과 고통이 생겨나게 되나니,

이러함으로 허물이 멀리에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譬如 美食惡食 俱有雜毒。食惡食卽時不悅 食美食卽時甘悅 久後俱奪命故 二不應食!

善惡諸行 亦復如是。

비유하자면, 맛있는 음식 美食(미식)과 맛이 없는 음식 惡食(악식)에 똑같이 독약이 섞여 있다면,

惡食(악식)은 먹는 즉시에 기분이 나쁘게 되나 美食(미식)을 먹을 때에는 좋은 맛에 기뻐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모두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에 두 가지를 모두 먹지 말아야 하나니,

善法(선법)과 不善法(불선법)과 諸行(제행) 역시 이와 같으니라.

 

問曰, 若爾者 佛何以說 三行, 梵行 天行 聖行?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가지 행,  음행을 끊은 출가 수행자의 삶인 범행(梵行, brahma-cariya)과 천행(天行)과 성행(聖行)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 行無行故 名爲聖行。何以故, 一切聖行中 不離三解脫門故。

답하나니, 행함이 없음을 행함으로 성행(聖行)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모든 성행(聖行)에는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해탈의 세 가지 해탈문= 三解脫門(삼해탈문)에 이르게 되는 것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니라.

 

梵行 天行中 因取衆生相故 生, 雖行時無過 後皆有失。

又卽今求實 皆是虛妄, 若賢聖 以無著心行此二行, 則無咎。

若能如是 行無行法 皆無所得 顚倒虛妄煩惱 畢竟不生。如虛空淸淨故 得諸法實相。

범행(梵行)과 천행(天行)은 중생상(衆生相)을 취하는 까닭에 생기는 것이니, 비록 행할 때에는 허물이 없으나 나중에는 모두 허물이 있게 되는 것이며,

또한 지금 당장 진실을 구하려함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현성(賢聖)이라면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이러한  가지 행을 행하되 허물이 없어야 하나니,

만약 능히 이와 같이 행하되 행함이 없음을 행할 수 있으면, 얻어 지는 것이 없는 無所得(무소득)이며, 전도된 허망과 번뇌가 끝내 생기지 않나니, 마치 허공과 같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以無所得爲得 如無所得般若中說, '色等法 非以空故空 從本已來 常自空。

色等法 不以智慧不及故 無所得, 從本已來常 自無所得'

是故 不應問 '行幾波羅蜜 得般若波羅蜜' 諸佛憐愍衆生 隨俗故說行 非第一義。

얻을 바가 없으므로써 얻게 됨이니, 마치 무소득반야(無所得般若)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색(色, 색온) 등의 법이 공한 것이라서 공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공한 것이요,

색(色, 색온) 등의 법은 지혜로써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無所得(무소득)이며,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無所得(무소득)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몇 가지의 바라밀을 행하여야 반야바라밀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없는 것이며,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세속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일의(第一義, paramārtha)는 아니니라.

 

問曰, 若無所得 無所行, 行者 何以求之?

묻나니, 만약 얻을 바가 없는 無所得(무소득)이며, 행할 바도 없는 無所行(무소행)이라면, 수행자는 어떻게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答曰, 無所得 有二種, 一者 世閒欲有所求 不如意 是無所得。

二者 諸法實相中 受決定相不可得故 名無所得, 非無有福德智慧增益善根。

如凡夫人 分別世閒法故 有所得, 諸善功德亦如是  隨世閒心故 說有所得, 諸佛心中則無所得。

답하나니, 無所得(무소득)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의 욕망에 따라 구하고자 하여도 뜻대로 되지 않는 無所得(무소득)이요,

둘째는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에서 그 결정(決定)된 실상(實相)을 결코 얻지 못하는 까닭에 無所得(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니, 복덕과 지혜로 선근을 늘어나게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범부들이 세간의 법을 따라 분별하기 때문에 얻는 바가 있는 有所得(유소득)이니,

모든 선근의 공덕도 그와 같아서 세간의 분별하는 마음을 따르기 때문에 有所得(유소득)이라 했을 뿐, 

부처님의 마음은 곧 無所得(무소득)이니라.

 

是略說 般若波羅蜜義。後當廣說。

이렇게 반야바라밀의 정의를 간략히 설명하였거니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리라.

 

大智度論卷第十八 終 대지도론 제 18 권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