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18권 8
大智度論釋初品中 般若波羅蜜 第二十九 卷第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0. 초품 중 반야(般若)의 모습[相]과 뜻[義]을 풀이함 7
云何 觀種種相?
어떻게 갖가지의 모습을 관하는 것입니까?
一切法攝入 二法中 所謂 名 色 色 無色 可見 不可見 有對 無對 有漏 無漏 有爲 無爲等二。百二法門 如'千難品'中說。
일체법(一切法)은 二法(이법, 두 가지 현상과 작용)에 攝入(섭입)되나니,
이른바 이름(名)과 모양(色), 모양 있음(色), 모양 없음(無色), 볼 수 있음(可見)과 볼 수 없음(不可見), 대할 수 있음(有對)과 대할 수 없음(無對),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생주멸(生住滅)로 이루어진 유위(有爲)와 생주멸이 없는 무위(無爲) 등의 102종류의 二法(이법)이 있으니 '천난품(千難品)'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라.
復次 有二法, 忍辱 柔和。
또한 二法(이법)이 있으니, 인욕(忍辱)과 부드럽고 온화한 柔和(유화)요,
又二法, 親敬 供養。
다시 二法(이법)에는 공경하여 가까이 하는 親敬(친경)과 공양(供養)함이요,
二施, 財施 法施。
두 가지 보시가 있으니, 재물을 보시하는 財施(재시)와 법을 보시하는 法施(법시)요,
二力, 慧分別力 修道力。
두 가지의 힘이 있으니, 지혜로 분별하는 힘 慧分別力(혜분별력)과 청정함을 닦는 修道力(수도력)이요,
二具足, 戒具足 正見具足。
두 가지 구족함이 있으니, 계행을 갖추는 戒具足(계구족)과
바른 소견의 갖는 正見具足(정견구족)이요,
二相, 質直相 柔軟相。
二相(이상)이 있으니, 인연의 화합을 바르게 꿰뚫어보는 質直相(질직상)과 부드러운 柔軟相(유연상)이요,
二法, 定 智。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선정(定)과 지혜(智)요,
二法, 明 解脫。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무명(無明)이 사라진 밝음 明(명)과 해탈(解脫)이요,
二法, 世閒法 第一義法。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세간의 법과 제일의(第一義 paramārtha)법이요,
二法, 念 巧慧。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생각함(念)과 교묘한 지혜 巧慧(교혜)요,
二諦, 世諦 第一義諦。
두 가지 진리가 있으니, 세속의 일반적인 진리 世諦(세제)와
第一義諦(제일의제, para- mārtha-satya)요,
제일의(第一義)=제일의제(第一義諦, para- mārtha-satya), 또는 진제(眞諦) 라고도 한다. parama는 훌륭하고 수승하다는 뜻이고 artha는 의미라는 뜻이다. 세속제는 진제(眞諦)에 대비되는 속제와 같은 말이고 산스크리트어로 saṃvṛti-satya이다. 승의제는 마음의 영원불멸한 실상을 깨닫는 일을 말하고, 속제는 마음의 동요가 빚는 갖가지 생멸의 상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二解脫, 待時解脫 不壞心解脫。
두 가지 해탈이 있으니, 때를 기다리는 待時解脫(대시해탈)과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는 不壞心解脫(불괴심해탈)이요,
二種涅槃, 有餘涅槃 無餘涅槃。
두 가지 열반이 있으니, 남음 있는 有餘涅槃(유여열반)과 남음 없는 無餘涅槃(무여열반)이요,
열반은 ⓢnirvāṇa ⓟnibbān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고,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이다.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완전히 소멸된 마음 상태를 말한다. 열반에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이 있는데, 전자는 열반에 이르렀으나 아직 5온이 남아 있는 열반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5온이 남아 있지 않은 열반, 즉 죽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살아서 탐 · 진 · 치가 소멸된 상태가 유여열반이고, 죽음은 무여열반이다.-다움
二究竟, 事究竟 願究竟。
두 가지의 다하여 마침= 究竟(구경)이 있으니, 불사(佛事)에 의한 究竟(구경)과
발원(發願)에 의한 究竟(구경)이요,
二見, 知見 斷見。
두 가지 소견(견해)가 있으니, 바른 견해 正見(정견)과 단멸견의 斷見(단견)이요,
二具足, 義具足 語具足。
두 가지 두루 갖춤= 具足(구족)이 있으니, 정의(定義)를 통하여 마음과 지혜의 청정함을 두루 갖추는 義具足(의구족)과 참된 가르침(法)의 말씀을 통하여 마음과 지혜의 청정(淸淨)함을 두루 갖추는 語具足(어구족)이요,
二法, 少欲 知足。
두 가지 법(法)이 있으니, 욕심이 적은 少欲(소욕)과 만족을 아는 知足(지족)이요,
二法, 易養 易滿。
두 가지 법(法)이 있으니, 스스로의 이익만을 취하는 易養(이양)과
중생들의 원을 만족하게 하는 易滿(이만)이요,
二法, 法隨 法行。
두 가지 법(法)이 있으니, 법대로 따르는 法隨(법수)와 법을 행하는 法行(법행)이요,
二智, 盡智 無生智。
두 가지의 지혜가 있으니, 다함의 지혜 진지(盡智)와 생멸 없는 무생지(無生智)이니라.
문]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이라 했는데, 진지란 어떤 것인가?
답] “나는 이미 괴로움[苦]을 알았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었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滅]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닦았다”라는 것을 사실과 똑같이 알며,
이로부터 생기는 지(智)ㆍ견(見)ㆍ명(明)ㆍ각(覺)ㆍ해(解)ㆍ혜(慧)ㆍ광(光)ㆍ관(觀)을 진지라 한다.
문] 무생지(無生智)란 어떤 것인가?
답] “나는 이미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더 알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더 끊을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을 깨달았으므로 다시는 더 깨달을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더 닦을 것이 없다”라는 것을 사실과 똑같이 알며,
이로부터 생기는 지ㆍ견ㆍ명ㆍ각ㆍ해ㆍ광ㆍ관을 무생지라 한다.
또 이미 욕루(慾漏)와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가 다한 것을 사실과 똑같이 아는 것을 진지라 하며,
또 다 끊어진 3루(漏)가 다시는 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과 똑같이 아는 것이 무생지이다.
또 이미 온갖 결(結)ㆍ박(縛)ㆍ수면(隨眠)ㆍ수번뇌(隨煩惱)ㆍ전(纏)이 다했다는 것을 사실과 똑같이 아는 것을 진지라 하며,
또 다 끊어진 온갖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 다시는 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과 똑같이 아는 것을 무생지라 한다.- 아비달마집이문족론- 3. 이법품 -석가모니 붓다의 말씀
如是等 分別無量 二法門。
이와 같이 무량(無量)한 두 가지 현상과 작용=法(법)을 분별하며,
復次 知三道, 見道 修道 無學道。
또한 세 가지 道(도)에 대하여 알아야 하나니, 견도(見道)ㆍ수도(修道)ㆍ무학도(無學道)의 三道(삼도)요,
*견도(見道, darśana-mārga)는 수행자가 모든 견혹(見惑)에서 벗어나는 지위이다. '진리[諦]를 보는 단계[道]'라는 뜻에서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하고, '진리를 봄'이라는 뜻에서 견제(見諦)라고도 하며 또한 '견도의 지위'라는 뜻에서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에 따르면, 모든 견혹은 무루지(無漏智) 즉 무루의 지혜가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에 마치 해머로 바위를 산산이 깨뜨리듯이 한꺼번에 끊어진다. 불교에서는 견도를 성취한 유정을 성인 또는 성자라 부른다.
*수도(修道, bhāvanā-mārga)는 수행자가 수혹(修惑)을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기간 또는 지위이다.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한다. 수도(修道)는 성인이 깨달음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길 또는 과정이므로, 진정 '성인의 길' 또는 '성스러운 길' 또는 '무루성혜(無漏聖慧)의 길'이라는 뜻의 성도(聖道, ārya-mārga)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성도(聖道)는 불교 혹은 8정도를 뜻하기도 한다. 수도(修道) 또는 성도(聖道)는 "간략히 말해" 부파불교의 4향4과(四向四果)와 대승불교의 보살10지(菩薩十地)를 말한다.
*무학도(無學道, aśaiksa-mārga)는 수행자의 수행이 완료되어 무학(無學) 즉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지위이다. 무학위(無學位)라고도 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상태로 '여래10호 가운데 하나로서의 아라한' 즉 부처의 지위, 즉 불지(佛地) 또는 여래지(如來地)이다.-위키
三性, 斷性 離性 滅性。
세 가지 성품(자성)이 있으니, 끊는 성품의 斷性(단성)과 여의는 성품의 離性(이성)과 멸하는 성품의 滅性(멸성)이요,
三修, 戒修 定修 慧修。
세 가지 수행이 있으니, 계(戒)로써 마음과 지혜의 청정(淸淨)함을 닦는 戒修(계수)와 선정(禪定)으로써 닦는 定修(정수)와 반야의 지혜를 닦는 慧修(혜수)요,
三菩提, 佛菩提, 辟支迦佛菩提, 聲聞菩提 (更不復學 智滿足之名也)
세 가지 보리(菩提)가 있으니, 부처님의 보리의 佛菩提(불보리)ㆍ벽지불의 보리 辟支迦佛菩提(벽지가불보리)ㆍ성문의 보리 聲聞菩提(성문보리)요, (지혜가 만족하여 더이상 수학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三乘, 佛乘 辟支迦佛乘 。
세 가지 탈것 三乘(삼승)이 있으니, 불승(佛乘, buddha-yāna)ㆍ벽지불승辟支迦佛乘, pratyeka-buddha-yāna. 연각승緣覺乘)ㆍ성문승聲聞乘, śravaka-yāna)이요,
三歸依, 佛 法 僧。
세 가지 귀의할 곳이 있으니, 불(佛) 법(法) 승(僧)이요,
三住 梵住 天住 聖住。
세 가지 머무름이 있으니, 맑고 깨끗함에 머무르는 梵住(범주)요, 하늘에 머무르는 天住(천주)요, 성인의 법(가르침)에 머무르는 聖住(성주)요,
三增上, 自增上 他增上 法增上。
세 가지의 경지(境地)를 더하여 가는 增上(증상)이 있으니, 스스로의 힘으로 높여가는 自增上(자증상)이요, 다른 이의 힘에 더불어 높여가는 他增上(타증상)이요, 法(법)에 의지하여 높여가는 法增上(법증상)이요.
諸佛三不護, 身業不護 口業不護 意業不護。
모든 부처님들께서 지켜 보호하여 주시지 않는 세 가지 不護(불호)가 있으니, 身業不護(신업불호)요、口業不護(구업불호)요、意業不護(의업불호)이요,
三福處, 布施 持戒 善心。
세 가지의 복 받는 곳이 있으니, 布施(보시)ㆍ持戒(지계)ㆍ善心(선심)이요,
三器杖, 聞器杖 離欲器杖 慧器杖。
세 가지의 불법을 위한 器杖(기장)이 있으니, 많이 들음(공부하는)의 聞器杖(문기장)이요, 욕심을 여의는 離欲器杖(이욕기장)이요, 지혜를 갖추는 慧器杖(혜기장)이요,
三輪, 變化輪 示他心輪 教化輪。
세 가지의 법을 설함 三輪(삼륜)이 있으니, 변화하여 법을 설하는 變化輪(변화륜)이요, 타심통을 드러내 보이어 설하는 示他心輪(시타심륜)이요, 교화하고자 법륜을 굴리는 教化輪(교화륜)이요,
三解脫門, 空解脫門 無相解脫門 無作解脫門。
세 가지의 해탈문이 있으니, 일체법의 무자성을 관하는 空解脫門(공해탈문)과 일체법의 자상(自相)이 공함을 관하는 無相解脫門(무상해탈문)과 일체법의 자성과 상이 공하기 때문에 중생의 업과를 짓지 않음을 관하는 無作解脫門(무작해탈문)이라.
如是等無量三法門。
이와 같은 무량한 세 가닥 법문 三法門(삼법문)이 있으며,
復知四法。四念處、四正懃、四如意足、四聖諦、四聖種、四沙門果、四知、四信、四道、四攝法、四依、四通達善根、四道、四天人輪、四堅法、四無所畏、四無量心如是等無量四法門。
또한 네 가지의 법을 아나니,
신념처(身念處)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의 사념처(四念處)와
이미 생긴 악을 없애려고 노력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하려고 노력하고, 이미 생긴 선을 더욱 자라게 하려고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하는 사정근(四正勤)과
욕여의족(欲如意足), 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 심여의족(心如意足), 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의 사여의족(四如意足)과
고성제(苦聖諦)ㆍ집성제(集聖諦)ㆍ멸성제(滅聖諦)ㆍ도성제(道聖諦)의 사성제(四聖諦)와
예류과(豫流果)와 일래과(一來果)와 불환과(不還果)와 아라한과(阿羅漢果)의 사종사문과(四種沙門果)와
사람이 선악의 업을 지을 때 하늘과 땅 곁에 있는 사람과 자신이 아는 사지(四知)와
불ㆍ법ㆍ승 및 계에 대한 믿음의 4신(四信)과 (4신(四信)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대체로 불ㆍ법ㆍ승 및 계에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며, 대지도론 37품에서는 4념처ㆍ4무량 등의 네 개의 법수로 이루어진 해탈문으로서 나열되고 있다.)
가행도(加行道) · 무간도(無間道) · 해탈도(解脫道) · 승진도(勝進道)의 4도(四道)와
보시섭(布施攝), 애어섭(愛語攝), 이행섭(利行攝), 동사섭(同事攝) 4섭법(四攝法)과
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음과 정법의 경전을 의지하고, 뜻을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음과 지혜를 의지하고 인식에 의지하지 않는 사의(四依)와
난법(暖法) 정법(頂法) 인법(忍法) 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에 통탈하는 사통달선근(四通達善根)과
고제현관(苦諦現觀) · 집제현관(集諦現觀) · 멸제현관(滅諦現觀) · 도제현관(道諦現觀)의 사도(四道)와
염부제의 중심에서 태어나 선처(善處)에 머무르는 것, 부처님의 세상에 함께 하는 것, 스스로 바른 발원을 함으로서 正見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 전생에 지은 선업(善業)으로 이생에 선근이 완전하게 갖추어지게 되는 사천인륜(四天人輸)과
부처님의 말씀에 결코 의심내지 않는 說堅(설견)과 번뇌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定堅(정견)과 삿된 견해에 물들지 않는 見堅(견견) 해탈의 과보가 이루어지게 되는 解脫堅(해탈견)의 사견법(四堅法)과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 일체누진무외(一切漏盡無畏),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 설진고도무외(說塵苦道無畏)의 사무소외(四無所畏)와
자무량심(慈無量心), 비무량심(悲無量心), 희무량심(喜無量心), 사무량심(捨無量心)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이니,
이와 같은 무량한 종류의 네가지 법문이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