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18권 5
大智度論釋初品中 般若波羅蜜 第二十九 卷第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0. 초품 중 반야(般若)의 모습[相]과 뜻[義]을 풀이함 4
問曰, 若言'神常', 應是邪見。何以故, 神性無故。
묻나니, 만약에 신(정신)이 항상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곧 삿된 소견이 되나니, 왜냐하면 신(정신)은 성품이 없기 때문이며,
若言'世閒常' 亦應是邪見。何以故, 世閒實皆無常 顚倒故言'有常'。
若言'神無常' 亦應是邪見。何以故, 神性無故 不應言'無常'。
또한 '세간이 항상하다'고 하여도 곧 삿된 소견이 되나니, 왜냐하면 세간은 실로 모두가 무상하거늘 전도(顚倒)되었기에 항상함이 있는 有常(유상)이라 하기 때문이며,
신(정신)이 무상하다 하여도 곧 삿된 소견이니, 왜냐하면 신(정신)의 성품(자성)이 없는 것이라 무상하다는 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若言'世閒無常' 不應是邪見。何以故, 一切有爲法性 實皆無常。
하지만 세간이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삿된 소견이 되지 않으니, 왜냐하면 일체의 유위법의 성품(자성)은 실로 모두 무상하기 때문입니다.
答曰, 若一切法 實皆無常 佛云何說'世閒無常 是名邪見'? 是故 可知非實是無常。
답하나니, 만약에 일체법이 실로 모두가 무상한 것이라면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세간이 무상하다고 하는 것이 삿된 소견이라 하셨겠는가? 그러므로 실로 일체법이 무상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니라.
問曰, 佛處處說 觀有爲法 無常 苦 空 無我 令人得道 云何言 '無常墮邪見'?
묻나니, 부처님께서 곳곳에서 말씀하시기를 '유위법(有爲法)은 무상(無常)하고, 괴로운 고(苦)이고, 공(空)이어서 무아(無我)임을 관찰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도를 얻게 한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무상(無常)이 사견에 떨어진 것이라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佛處處說無常 處處說不滅。如摩訶男 釋王來至佛所 白佛言,
'是迦毘羅人衆殷多 我或値奔車 逸馬 狂象 鬪人時 便失念佛心,
是時自念, '我今若死 當生何處?' 殷 성할 은,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곳곳에서 무상(無常)을 말씀하시고, 곳곳에서 불멸(不滅)을 말씀하셨으니,
마치 석가족의 왕족인 마하남(摩訶男, Mahānaman)이 부처님께 와서 말씀드리기를,
'가비라(迦毘羅, 카필라바스투 Kapilavastu)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혹 달리는 수레나 말이나 미친 코끼리나 싸우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문득 부처님을 생각하던 마음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지금 죽으면 어디에 가서 태어나게 될것일까’ 하게 됩니다.'
佛告摩訶男, '汝勿怖勿畏, 汝是時不生惡趣 必至善處。譬如 樹常東向曲 若有斫者 必當東倒,
善人亦如是 若身壞死時 善心意識 長夜 以信 戒 聞 施 慧 熏心故 必得利益 上生天上'
이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죽어서 지옥 아귀 축생의 惡趣(악취, durgati)에 태어나지 않고 반드시 하늘이나 인간의 善趣(선취, sugati)에 태어날 것이니, 비유하자면, 항상 동쪽을 향해 굽은 나무가 있어, 만약 누가 와서 베게 되면 반드시 동쪽으로 쓰러지게 되나니, 착한 사람도 그와 같아서 몸이 무너져 죽을 때에는 착한 마음의 의식이 헤아릴 수 없이 길고 긴 생사고해 속에서 오랫동안 믿음(信)으로 계(戒)를 받아 지니고, 참된 가르침을 들었으며(聞), 보시ㆍ지혜(施 慧) 등으로 마음을 깊이 훈습(薰習)하여 길들여진 까닭에 반드시 이익을 얻어서 하늘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若一切法 念念生滅無常 佛云何言 '諸功德熏心故 必得上生'? 以是故 知非無常性。
만약 일체법(一切法)이 생각생각에 생멸하여 무상한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어찌하여 '모든 공덕이 마음 속에 베여들어 길들여진 까닭에 반드시 하늘에 태어난다'고 말씀하셨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무상(無常)이 일체법(一切法)의 자성(自性, 성품)이 성품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問曰, 若無常不實 佛何以說無常?
묻나니, 무상(無常)함이 진실이 아니라면 부처님은 어찌하여 무상(無常)함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 佛隨衆生 所應而說法 破常顚倒故 說無常, 以人不知不信後世故 說 '心去後世 上生天上 罪福業因緣 百千萬劫不失'
是對治悉檀 非第一義悉檀。諸法實相 非常非無常。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수준에 따라 설법하시어, 항상하다고 전도된 것을 깨뜨리기 위하여 무상함을 말씀하신 것이라.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내생=後世(후세)를 믿지 않기 때문에 설하시기를, '마음이 떠나 後世(후세)로 가게 되면 天上(천상)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과 죄와 복의 인연은 백천만 겁동안 잃지 않는다' 하셨으니,
이는 상대의 병, 번뇌에 따라 처방하는, 대치실단(對治恣檀, pratipaksa siddhānta)이니,
곧 바로 진리에 들어가는, 제일의실단(第一義恣檀, paramārtha siddhānta)도 아니며,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은 항상함도 무상함도 아니니라.
'사실단(四悉檀)의 실단(悉檀)이란 siddhanta의 음역으로 종의 (宗義) · 정설(定說) · 성취(成就)라는 뜻으로, 세계실단(世界悉檀) · 각각위인실단(各各爲人悉檀) · 대치실단(對治悉檀) · 제일의실단(第一義悉檀)의 네 가지로써 중생을 교화하여 성숙하게 하는 것.
佛亦處處說 諸法空 諸法空中 亦無無常。
以是故說 '世閒無常是邪見' 是故名爲法空。
부처님께서도 여러 곳에서 제법(諸法)이 공(空)함을 말씀하셨으니, 제법(諸法)이 공한 가운데에는 무상(無常)이라는 것도 없는 까닭에 세간이 무상(無常)하다고 말하는 것을 삿된 소견이라 하셨으며, 그러므로 법공(法空)이라 하느니라.
復次 毘耶離梵志 名論力 諸梨昌等 大雇其寶物 令與佛論。
取其雇已 卽以其夜 思撰五百難 明旦與諸 梨昌至佛所 問佛言, '一究竟道? 爲衆多究竟道?' 雇 품 살 고,
또한 비야리(毘耶離, Vaiśālī 바이샬리)에 논력(論力)이라는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리창(梨昌, Liccavi) 사람들이 그에게 많은 보물을 선사하면서 부처님과 토론을 하도록 하였다.
그가 선물을 받아 고용된 그날 밤, 5백 가지의 어려운 문제들을 생각하여 선택해 두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여러 찰제리들을 데리고 부처님께로 가서 물었다. '궁극의 길=究竟道(구경도)는 하나입니까, 아니면 여럿입니까?'
佛言, 一究竟道 無衆多也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의 궁극의 길이 있을 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없느니라.'
梵志言, 佛說一道 諸外道師 各各有究竟道 是爲衆多非一
범지가 다시 말씀드리기를, '부처님께서는 한 가지 길뿐이라 하시지만, 여러 외도의 스승들은 각각 완벽한 도(道)가 있다고 하나니, 이러함은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이요 하나가 아닌 것입니다.'
佛言, '是雖各有衆多 皆非實道。何以故, 一切皆以 邪見著故 不名究竟道'
佛問梵志, '鹿頭梵志得道不? 答言, 一切得道中 是爲第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제각각의 주장이 있어 여러 가지가 되었으나 모두 진실한 도(道)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삿된 소견에 집착하였기 때문에 궁극의 도(道)라 할 수는 없느니라.'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다시 범지에서 물으시기를 '녹두(鹿頭, Mṛgaśiras) 범지는 도(道)를 얻었는가?' 하시니,
범지가 답하여 '일체의 도(道)를 얻은 이 가운데서 으뜸일 것입니다' 하였다.
是時 長老鹿頭梵志 比丘在佛後扇佛。佛問梵志, 汝識是比丘不?
梵志識之 慚愧低頭。是時 佛說'義品' 偈;
이때 장로(長老)인 녹두범지 비구는 부처님의 뒤에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녹두 범지에게 물으시기를 '너는 이 비구를 아는가?' 하시니,
녹두 범지가 알아보고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때 부처님께서 '도(道)를 정의(定義)하는 품= 義品(의품)'을 게송으로 말씀하셨으니,
各各謂究竟 而各自愛著, 各自是非彼 是皆非究竟。
나름대로 제각각 완벽한 구경(究竟)을 말하나, 각각 스스로의 법에 애착하여
자기만 옳고 다른 이의 것을 그르다 하니, 이러한 모두는 구경(究竟)이 아니네.
是人入論衆 辯明義理時, 各各相是非 勝負懷憂喜。
이러한 이들이 토론하고자 하여 진리를 서로서로 말의 뜻을 풀어 밝혀고자 하여,
옳으니 그르니 말다툼을 하다가, 이기거나 지면 근심하거나 기뻐하네.
勝者墮憍坑 負者墮憂獄, 是故有智者 不隨此二法。
이긴 이는 교만의 구덩이에 빠지고, 진 이는 근심의 옥(獄)에 빠지나니
그러기에 지혜로운 이는 이러한 두 길에 빠지지 않는다네.
論力汝當知 我諸弟子法, 無虛亦無實 汝欲何所求。
논력(論力) 범지(梵志)여,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내 제자들은 제법에 대하여
허망하다고도 진실하다고도 하지 않나니, 그대는 무엇을 구하려는 것인가?
汝欲壞我論 終已無此處, 一切智難勝 適足自毀壞。
그대가 나의 논리를 이기려 하나, 끝내 그렇게 되지 않으리니.
일체지(一切智)를 이길 이 없으니, 마침내 네 스스로 무너지게 되리라.
如是等 處處聲聞經中 說諸法空。
이렇듯 곳곳의 성문의 경전에 법공(法空)의 도리를 말씀하셨다.
아공(我空)ㆍ법공(法空)ㆍ구공(俱空)을 통칭하는 삼공(三空)의 각각은 증득한 경지를 뜻하기도 하고, 또는 그러한 경지를 증득하기 위한 수행을 뜻하기도 했다.
• 아공(我空)은 우리가 오온으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나’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나’가 아니라 이것은 공(空)한 것이라는 진리를 체득한 것을 말한다.
• 법공(法空)은 물질적인 현상이나 객관을 대상으로 한 상대적 정신작용은 다 인연으로 모인 거짓 존재로서 본래 만유의 본체가 공(空)한 것이라는 진리를 말한다.
• 구공(俱空)은 아공ㆍ법공을 다 초월해 공(空)했다는 생각까지도 없어져서 비로소 마음자리의 본성에 계합한 것을 말한다. 즉, 구공(俱空)에서 구(俱)는 ‘함께 구(俱)’, ‘모두 구’이고, 공(空)은 ‘텅 빌 공(空)’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텅 비어있다는 말이다.
법공(法空, Dharma-sunyata)은 물질적인 현상이나 객관을 대상으로 한 상대적 정신작용은 다 인연으로 모인 거짓 존재로서 만유의 본체(나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본래 공무(空無)한 것이라는 진리를 말한다. 즉, 객관세계의 일체법이 공함을 모르고 여기에 집착하는 법집(法執)을 깨뜨리는 것이다.
여기서 ‘법(法)’은 제법(諸法) 또는 만유(萬有), 삼라만상을 말한다. 따라서 법공은 모든 우주 만유는 인연이 모여서 생겨난 가짜 존재이며 실체가 없다는 주장이다. 즉,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이다.
수행에 의해 물질과 마음의 여러 가지에 대한 객관적 미집(迷執)인 법집을 벗어난 경지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를 의미한다.
물질[색(色)]과 마음[심(心)]의 모든 존재는 모두 원인과 결과, 즉 인연법에 의해 생긴 임시적인 가짜 존재로서 거기에는 고정된 실체로서 집착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만유(萬有)에는 실체가 없다. 공무(空無)하다는 것을 뜻한다.
청담 스님은 「법공(法空)은 현상계의 모든 것은 다 인연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것으로 그 실체가 없으며, 따라서 어떤 결정된 법이 없어서 온갖 법이 다 공했음을 증득(證得)한 경계를 말한다. 그러니 아공은 육신이 내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고, 법공은 객관세계가 다 공해서 안으로나 밖으로나 나를 구속할 게 없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생사를 벗어난 경지를 체득한 것이 법공이다.」-아미산
摩訶衍空門者 一切諸法性 常自空 不以智慧方便 觀故空。
如佛爲須菩提說, '色 色自空 受 想 行 識 識自空, 十二入 十八界 十二因緣 三十七品 十力 四無所畏 十八不共法 大慈大悲 薩婆若 乃至 阿耨多羅三藐三菩提 皆自空
마하연(대승)의 공문(空門)이란 제법의 성품이 항상 스스로 공하건만 지혜를 통한 방편의 힘으로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색(色)은 색(色) 스스로의 자성이 공(空)하고, 수ㆍ상ㆍ행ㆍ식과 그 각각의 자성이 스스로 공(空)한 것이며, 12입(十二入)ㆍ18계(十八界)ㆍ12인연(十二因緣)ㆍ37조도품(三十七品)ㆍ10력(十力)ㆍ4무소외(四無所畏)ㆍ18불공법(十八不共法)ㆍ대자(大慈)ㆍ대비(大悲)ㆍ살바야(薩婆若, sarva-jña 일체지一切智)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a-samyak-sabodhi, 무상정등각)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스스로 공(空)한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