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8권 4

Skunky 2023. 12. 20. 09:00

大智度論釋初品中 般若波羅蜜 第二十九 卷第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0. 초품 중 반야(般若)의 모습[]과 뜻[]을 풀이함 3

 

何等是三門? 一者 蜫勒門, 二者 阿毘曇門, 三者 空門。

무엇이 세 가지 법문인가? 첫째는 유(有)이기도 하고 공(空)이기도 하다’는 태도를 말하는 곤륵문(昆勒門)이요, 둘째는 아비담문(阿毘曇門)이요, 셋째는 공문(空門)이다.

 

*곤륵(昆勒) 또는 곤륵(蜫勒)이란 범어 Piṭaka의 속어형인 Peṭaka 혹은 Paiṭaka의 음사어이며, 論藏(논장)의 이름이다. 소승교의 四門(사문)의 하나이며 가전연 존자의 저서로 亦有亦空(역유역공)의 이치를 밝힌 것.
*아비담문(阿毘曇門) : 空門. 發智論 · 六足論 등의 小乘敎에 딸린 部類의 책. 이 敎理는 小乘 涅槃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실지 수행이 필요하므로 門이란 자를 쓴다. 毘曇宗은 이러한 論을 근본 聖典으로 하고 성립되다.

*공문(空門) : ① 불교의 총칭. 불교는 空法으로서, 그 전체를 꿰뚫은 근본 뜻을 삼는 것이므로 空門이라 함. ② 四門의 하나. 有에 집착하는 것을 깨뜨리기 위하여 온갖 사물을 실체와 自性이 없다고 말한 我空 · 法空 ·有爲空 · 無爲空 등 空理의 法門.-불교사랑

 

問曰, 云何名蜫勒? 云何名阿毘曇? 云何名空門?

묻나니, 어떠한 것을 곤륵(蜫勒)이라 하고, 어떠한 것을 아비담(阿毘曇, 논장論藏)이라 하고, 어떠한 것을 공문(空門)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 蜫勒 有三百二十萬言 佛在世時 大迦栴延之所造, 佛滅度後 人壽轉減 憶識力少 不能廣誦 諸得道人 撰爲三十八萬四千言。

답하나니, 곤륵(蜫勒)에는 320만의 말씀이 있나니, 부처님 재세시에 대가전연(大迦栴延, Mahākātyāyana) 존자께서 조성하신 것으로,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사람들의 수명이 줄어 들고, 기억하고 식별하는=憶識(억식)의 힘이 줄어 들어서 다 읽을 수 없으므로 득도(得道)하신 분들께서 38만 4천의 말씀을 가려서 뽑아 찬술한 것이다.

 

若人入蜫勒門 論議則無窮, 其中有隨相門 對治門等 種種諸門。

만약 어떤 이가 곤륵문(蜫勒門)에 들어가서 논의한다면 무궁하여 끝이 없나니,

그 속에는 수행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隨相門(수상문)과 서로 대치하여 수행하는= 對治門(대치문) 등의 갖가지 수행문이 있느니라.

 

隨相門者 如佛說偈; 수상문(隨相門)이라 함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게송과 같으니;

 

諸惡莫作 諸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教。

모든 악(惡)을 짓지 않으며, 모든 선(善)을 받들어 행하여

스스로 그 뜻을 밝히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라.

 

是中 心數法盡應說 今但說 '自淨其意', 則知諸心數法已說。何以故, 同相 同緣故。

이 게송에서 마음에 속하는 법=心數法(심수법)을 자세히 설명해야 겠지만,

지금 다만 ‘스스로 마음과 지혜의 청정(淸淨)함으로 그 뜻을 밝히는= 自淨其意(자정기의)’만 말씀하신 것으로 곧 모든 心數法(심수법)을 다 설하신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왜냐하면 같은 모습=同相(동상)이며 같은 대상=同緣(동연)이기 때문이니라.

 

如佛說 四念處 是中不離 四正懃 四如意足 五根 五力。

何以故, 四念處中, 四種精進 則是四正懃, 四種定 是爲四如意足, 五種善法 是爲五根 五力。

佛雖不說餘門 但說四念處 當知已說餘門。

마치 부처님께서  37도품 수행법 중의 하나인 몸 · 느낌 · 마음 · 법을 관찰하는 네 가지 알아차림(sati, 사띠) 수행 또는 명상의 법신념처(身念處) · 수념처(受念處) · 심념처(心念處) · 법념처(法念處)의 4념처(四念處)를 말씀하시는 경우와 같으니, 사념처는 사정근(四正懃)ㆍ사여의족(四如意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을 여의지 않는 것이니,

4념처의 네 가지 정진이 곧 사정근이요, 네 가지 선정이 곧 사여의족이요, 다섯 가지의 선법(善法)이 곧 오근과 오력이기 때문이니라.

따라서 부처님께서 그 밖의 다른 법문을 하시지 않으시고 단지 사념처(四念處)만 말씀하심에 이미 그 밖의 다른 법문도 설하신 것으로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如佛 於四諦中 或說一諦, 或二 或三。如馬星比丘 爲舍利弗說偈;

이는 마치 부처님께서 사제(四諦) 가운데 일제(一諦)만을 말씀하시기도 하고 혹은 2제, 혹은 3제만을 말씀하시기도 하시는 것과 같으니, 마치 마성(馬星, Aśvaka) 비구가 사리불을 위하여 읊어 준 게송과 같으니라.

 

諸法從緣生 是法緣及盡, 我師大聖王 是義如是說。

제법(諸法)이 연(인연)을 좇아 생기고, 그 법의 연(法緣)이 다할 때까지 펼쳐지는 것에 대하여

나의 스승이신 대성왕(大聖王)께서는 그 도리를 이렇게 말씀하셨네.

 

此偈 但說三諦 當知 道諦已在中 不相離故, 譬如一人犯事 擧家受罪。如是等 名爲隨相門。

이 게송에서는 단지 삼제(三諦, 멸제滅諦)만을 말하였으나, 도제(道諦)가 이미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서로 여읠 수 없기 때문이라. 

마치 (집안의) 어떤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온 집안이 재앙을 받는 것과 같으니, 이러함을 隨相門(수상문)이라 하느니라. 

 

對治門者 如佛但說 四顚倒, 常顚倒 樂顚倒 我顚倒 淨顚倒。是中 雖不說 四念處 當知已有 四念處義。譬如說藥 已知其病 說病則知其藥。

대치문(對治門, 대치실단對治悉檀)이라 함은 부처님께서 단지  가지의 뒤바뀐 생각=四顚倒(사전도)를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곧 모든 것이 항상하다는 常顚倒(상전도)ㆍ즐겁다는 樂顚倒(낙전도)ㆍ'나'가 있다는 我顚倒(아전도)ㆍ깨끗하다는 淨顚倒(정전도)이니, 

여기에서 비록 4념처(四念處)를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나, 이미 4념처(四念處)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아야 하는 것을 비유하면, 약을 말하면 이미  병을 알게 되며, 병을 말하면  그에 대한 약을 알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若說四念處 則知已 說四倒, 四倒則是邪相。若說四倒 則已說諸結。所以者何, 說其根本 則知枝條皆得。

만약에 4념처(四念處)를 말씀하시면 四顚倒(사전도)를 이 말씀하신 것으로 알아야 하나니, 四顚倒(사전도)  삿된 모습= 邪相(사상)이기 때문이다. 

만약 四顚倒(사전도) 말씀하시면 모든 번뇌=結(결)을 이미 말씀하신 것이 되나니, 왜냐하면 나무의 뿌리를 말하면 곧 모든 가지는 저절로  얻어짐을 알기 때문이니라.

 

如佛說一切世閒 有三毒, 說三毒 當知已說 三分 八正道。若說三毒 當知已說 一切諸煩惱毒。十五種愛 是貪欲毒, 十五種瞋是瞋恚毒, 十五種無明 是愚癡毒, 諸邪見 憍慢 疑屬無明。如是一切結使 皆入三毒。

마치 부처님께서 '일체 세간에 삼독(三毒, 탐진치)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삼독(三毒)을 말씀하실 때에 이미 유각유관(有覺有觀) 무각유관(無覺有觀) 무각무관(無覺無觀)의 三分(삼분)과 8정도(正道)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하며, 

또한 삼독(三毒) 말씀하실 때에는 이미 일체의 번뇌의 독을 말씀하신 것으로 알아야 하나니, 

15종의 애착은  탐욕의 독(毒)이요, 15종의 성냄은 진에(瞋恚)의 독이요, 15종의 무명(無明, 과거생의 온갖 번뇌) 어리석은 우치(愚癡)의 독이요, 모든 삿된 소견=邪見(사견)과 憍慢(교만)과 의심은 무명에 속하니, 

이러한 일체의 結使(결사)가 모두 삼독(三毒) 들기 때문이니라. 

 

탐(貪)은 갈애(渴愛, trsnā) 즉 무명을 바탕하여 구하고 원하고 집착하는 망집(妄執)으로, 1.미착(味著: 맛들여 집착함) 2.욕(欲: 탐욕의 줄임말로서의 욕) 3.애(愛: 갈애 또는 애착의 줄임말로서의 애) 4.애욕(愛欲) 5. 애착(愛著, 愛着) 6.애탐(愛貪) 7.염애(染愛: 오염된 좋아함) 8.염착(染著) 9.집착(執著, 執着) 10.탐독(貪毒: 독으로서의 탐) 11.탐애(貪愛) 12.탐욕(貪欲) 13.탐욕개(貪欲蓋) 14.탐착(貪著, 貪着) 15.탐착(耽著: 그릇된 몰입과 들러붙음; 耽은 깊이 빠져서 열중하여 즐기는 것, 著은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탐(貪)은 대상에 들러붙어서[著, 着, attachment, 들러붙음] 떠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위키

 

《잡아함경》 제18권 제490경 〈염부차경(閻浮車經)〉에서 무명이라는 것은 과거[前際]에 대하여 앎이 없고[無知], 미래[後際]에 대하여 앎이 없으며, 과거[前際] · 미래[後際] · 현재[中際]에 대하여 앎이 없고, 불보(佛寶) · 법보(法寶) · 승보(僧寶)에 대하여 앎이 없으며, 괴로움[苦] · 괴로움의 발생[集] · 괴로움의 소멸[滅] ·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에 대하여 앎이 없고 선(善) · 불선(不善) · 무기(無記)에 대하여 앎이 없으며, 안[內]에 대해서도 앎이 없고 밖[外]에 대해서도 앎이 없으며, 혹은 이러저러한[彼彼] 일[事: 개개의 사물, 특히 앞에 나열한 이치들과 관련된 개개의 구체적인 일]에 대하여 앎이 없고[無知] 어둡고[闇] 막히면[障],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합니다.

 

以何滅之。三分 八正道。若說三分八正道 當知已說 一切三十七品。

如是等 種種相 名爲對治門。如是等 諸法 名爲勒門。

어떻게 그것을 멸하는가? 유각유관(有覺有觀) 무각유관(無覺有觀) 무각무관(無覺無觀)의 三分(삼분)과 八正道(팔정도)로써 당연히 멸할 수 있으니,

만약 三分(삼분)과 八正道(팔정도)를 말한다면 이미 일체의 37조도품(助道品)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이와 같은 갖가지의 모습을 대치문(대치실단)이라 하나며, 이러한 모든 법들을 곤륵(蜫勒)이라는 협장(匧藏)을 통해 열반문에 이르게 되는 곤륵문(蜫勒門)이라 하느니라.

 

云何名 阿毘曇門? 或佛自說諸法義, 或佛自說諸法名, 諸弟子種種集 述解其義。

어떠한 것을 아비담문(阿毗曇, Abhidharma 논장論藏)이라 하는가? 

혹은 부처님께서 제법을 정의(定義)하여 말씀하시고, 혹은 스스로법의 이름을 말씀하신 것 등을 여러 제자들이 갖가지로 모아서 찬술하고  이치를 풀이한 것이다.

 

如佛說, '若有比丘 於諸有爲法 不能正憶念 欲得世閒第一法 無有是處。

若不得世閒第一法 欲入正位中 無有是處。

若不入正位 欲得須洹 斯含 阿那含 阿羅漢 無有是處。

有比丘 於諸有爲法正憶念 得世閒第一法 斯有是處。
若得世閒第一法 入正位, 入正位 得須陁洹 斯陁含 阿那含 阿羅漢 必有是處'

예컨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비구가 모든 유위법(有爲法) 대하여 바르게 기억하여 새기는= 憶念(억념)하지 못하고서 세간의 第一法(제일법) 얻고자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만약 세간의 第一法(제일법) 얻지 못하였으나 바른 지위=正位(정위)에 들고자 하는 것도 있을 수 없으며,

만약 正位(정위)=바른 지위에 들지 못하였으나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을 얻고자 하는 것도 있을 수 없으며, 

만약 비구가 모든 유위법(有爲法) 대하여 바르게 憶念(억념)하여 세간에서 으뜸가는 第一法(제일법) 얻는다면 이는 옳은 말이요, 

만약 세간의 第一法(제일법) 얻었다면, 正位(정위) 들게 되며, 正位(정위) 들게 되면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을 얻는다는 것은 기필코 옳은 말이니라.

 

정위(正位)= 바르게 어긋남 없이 ‘공(空)’한 것으로 소승(小乘)의 유여열반(有餘涅槃)을 말합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如佛直說 世閒第一法 不說相義 何界繫 何因 何緣 何果報。

從世閒第一法 種種聲聞所行法 乃至 無餘涅槃 一一分別相義 如是等是名 阿毘曇門。

마치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경우와 같으니, 세간의 으뜸가는 법= 世閒第一法(세간제일법)은 그 모양의 의미= 相義(상의)를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나, 그것이 어떻게 삼계에 매이는지, 어떠한 인(원인)에 어떻게 연유하여 어떠한 과보인가를 말씀하셨으며,

世閒第一法(세간제일법)으로부터 성문들이 행하여야 할 갖가지의 법과 나아가서는 무여열반에 이르기까지의 그 하나하나의 相義(상의)를 분별하였나니,

이를 아비담문(阿毘曇門)이라 하느니라.

 

空門者 生空 法空。

공을 통해 열반문에 이르게 되는 空門(공문)이라 함은 생공(生空)과 법공(法空)이며, 

 

如 '頻婆娑羅王迎經'中 佛告大王,

'色生時但空生 色滅時但空滅, 諸行生時但空生 滅時但空滅。是中無吾我 無人 無神,

無人 從今世至後世 除因緣和合 名字等衆生 凡夫愚人 逐名求實' 如是等經中 佛說生空。

'빈바사라왕영경(頻婆娑羅王迎經, Bimbisārapratyudgamanasūtra)'에서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색(色, 색온)이 날 때에는 단지 공(空)함이 나고, 색이 멸할 때에는 단지 공함 만이 멸하며,

諸行(제행)이 날 때에는 단지 공함이 나고, 멸할 때에도 공함이 멸하는 것이며, 

이러란 가운데 '나'도 없고 타인=無人(무인)도 없고, 상주불변의 나라는 실체의 신(神, ātman)도 없는 無神(무신)이니,

어느 누구도 금생으로부터 후생에 이르기까지 인연화합과 말과 글= 名字(명자) 등에서 제외된 중생은 없는 것이나,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름을 따라 진실을 구하고자 하느니라.'

이러함과 같이 부처님께서는 경(經)에서 생공(生空)을 말씀하셨으며,

 

法空者 如佛說 '大空經'中, 十二因緣 無明乃至老死,

若有人言'是老死' 若言'誰老死' 皆是邪見。

生 有 取 愛 受 觸 六入 名色 識 行 無明 亦如是。

법공(法空)이라 함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서 '대공경(大空經, Mahāśūnyatā-sūtra)'에서하신 바와 같으니, 

'12인연(十二因緣)은 무명(無明)에서 노사(老死)까지를 말하는 것이니, 만약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것이 늙어서 죽는 것이다’ 라고 하거나 ‘누가 늙어서 죽는다’ 고 한다면 이는 모두가 삿된 소견= 邪見(사견)이다.

생ㆍ유ㆍ취ㆍ애ㆍ수ㆍ촉ㆍ6입ㆍ명색ㆍ식ㆍ행ㆍ무명 또한 그러한 邪見(사견)이니,  

 

생겨나게 되는 生(생)→ 취(取)를 따라 후세의 실마리가 되는 업(業)을 짓게 하는 유(有)→ 갈애가 인연을 찾아 취하는 취(取)→ 수(受)에 의해 마음이 애착하게 되는 갈애(渴愛)→ 촉(觸)을 좇는 수(受)→ 육정과 육진 육식이 한데 어우러진 촉(觸)→ 육입(六入)→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아는 식(識)이 모습을 갖추지 않은 오온(五蘊) 중의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과 함께 생겨나서는 갖게 되는 몸에 머물러 나름의 형상을 갖추게 되는 명색(名色)→ 스스로 알아서 찾아가 헤아리는 식(識)→ 업(業)을 짓게 되는 행(行)→ 과거 생의 온갖 번뇌인 무명(無明) 

 

若有人言'身卽是神' 若言'身異於神' 是二雖異 同爲邪見。

佛言, '身卽是神 如是邪見 非我弟子, 身異於神 亦是邪見 非我弟子'

만약 어떤 사람이 ‘몸이 정신(情神)이다 말하거나몸과 정신(情神)은 다르다 말한다면, 가지의 말이 비록 다를지라도 모두 邪見(사견)이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몸이 곧 정신(情神)이라 한다면 이는 삿된 소견이어서 나의 제자가 아니다. 몸과 정신은 다르다 하는 것 역시도 삿된 소견이기에 나의 제자가 아니다' 하셨으며, 

 

是經中佛說法空。'若說 誰老死 當知是虛妄 是名生空,

若說 是老死, 當知是虛妄 是名法空' 乃至 無明亦如是。

다시 이 경전에서 부처님께서는 법공(法空)을 말씀하셨으니, 

'만약 누군가가 늙고 죽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바로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하나니, 이를 생공(生空)이라 하며,

만약 이러함이 늙음과 죽음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바로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하나니, 이를 법공(法空)이라 하며, 나아가 무명(無明)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復次 佛說'梵網經'中 六十二見, 若有人言'神常 世閒亦常' 是爲邪見,

若言'神無常 世閒無常' 是亦邪見,

'神及世閒 常亦無常, '神及世閒 非常亦非非常' 皆是邪見。以是故 知諸法皆空 是爲實。

또한 부처님께서 '범망경(梵網經)'에서 62견(六十二見)에 대하여 말씀하셨으니, 

'만약 어떤 사람이 '상주불변의 나라는 실체의 신(神, ātman, 정신)은 항상한 것이고, 세간도 항상한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삿된 소견이요,

‘신(神, ātman, 정신)은 무상하고 세간도 무상한 것이다’ 하는 것도 삿된 소견이요,

‘신(神, ātman, 정신)과 세간은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하는것도 삿된 소견이요,

‘신(神, ātman, 정신)과 세간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무상한 것도 아니다’ 하여도 삿된 소견이다.'

이러한 까닭에 제법이 모두 공함이 진실임을 알 수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