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8권 1

Skunky 2023. 12. 17. 09:00

大智度論釋初品中 般若波羅蜜 第二十九 卷第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29. 초품 중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풀이함 1

 

▶經. '於一切法不著故 應具足 般若波羅蜜'

▷經.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응당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구족하게 되다.

 

▶論. 問曰, 云何名 般若波羅蜜?

▷論. 묻나니, 어떠한 것을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 諸菩薩 從初發心 求一切種智 於其中閒 知諸法實相慧 是般若波羅蜜。

답하나니, 보살들이 初發心(초발심)에서부터 일체법의 행함과 그 형상=行狀(행상)을 아는 부처님의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 sarva-ākārajñtā)를 구하기까지의 중간에,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아는 지혜를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問曰, 若爾者 不應名爲波羅蜜。何以故, 未到智慧邊故。

묻나니, 만약 그러한 것이라면 바라밀이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왜냐하면 아직 지혜의 끝=智慧邊(지혜변)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答曰, 佛所得智慧 是實波羅蜜 因是波羅蜜故 菩薩所行 亦名波羅蜜 因中說果故。

是般若波羅蜜 在佛心中 變名爲一切種智。菩薩行智慧 求度彼岸故 名波羅蜜, 佛已度彼岸 故名一切種智。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얻으신 지혜는 진실한 바라밀이나, 그 인(因, 원인)이 바라밀인 까닭에 보살이 행하는 바 역시도 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그 인(因, 원인)으로 인한 결과를 말하기 때문이며,

이 반야바라밀을 부처님의 마음에서는 일체종지(一切種智)라 바꾸어 부르나니,

보살은 지혜를 행하여 피안(彼岸, pāra)에 이르기를 구하는 까닭에 바라밀이라 하고, 부처님께서는 이미 피안(彼岸)에 이르셨기 때문에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하는 것이니라.

 

問曰, 佛 一切諸煩惱 及習已斷 智慧眼淨 應如實得 諸法實相, 諸法實相 卽是般若波羅蜜。菩薩未盡諸漏 慧眼未淨 云何 能得諸法實相?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모든 번뇌를 비롯하여 일체의 번뇌와 업의 잠재적인 종자(種子)=習氣(습기, vāsana)를 이미 끊어시어 지혜의 눈이 청정(淸淨)한 혜안(慧眼)으로 마땅히 여여(如如)한 제법의 실상을 터득하시어 실답게 아셨으니, 제법의 실상이 곧 반야바라밀이라.

보살은 아직 온갖 유루(有漏)를 다하지 못하였으며, 慧眼(혜안)도 아직 청정(淸淨)하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능히 제법의 실상을 얻었다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此義後品中 當廣說 今但略說。

如人入海, 有始入者 有盡其源底者 深淺雖異 俱名爲入。

답하나니, 이에 대한 정의(定義)는 뒤의 품(品)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기에 지금은 간략히 말하리라. 예를 들자면, 사람이 바닷물에 들어가는 경우와 같으니, 들어가고자 하는 이도 있고, 이미 바다의 밑바닥에 이른 이도 있을 것이니, 비록 그러한 깊고 얕은 차이는 다를지라도 모두 바다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佛 菩薩亦如是 佛則窮盡其底, 菩薩未斷 諸煩惱習 勢力少故 不能深入。

如後品中 說譬喩, 如人於闇室然燈 照諸器物 皆悉分了, 更有大燈 益復明審。

則知後燈 所破之闇 與前燈合住, 前燈雖與闇共住 而亦能照物。

若前燈無闇 則後燈無所增益。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으니, 부처님께서는  밑바닥까지 이르 분이나, 보살은 아직 모든 번뇌와 습기를 끊지 못해서 세력(위신력)이 약하므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나니, 이도 뒤의 품(品)에서 자세히 설명하리라.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서 물건들을 비추면 분명히 모두 볼 수 있거니와 다시 더욱  등을 켜면 더욱 밝아지는 것과 같으니, 

나중의 등=後燈(후등)이 깨뜨린 어두움은 앞의 등=前燈(전등)과 함께 하는 것이며, 前燈(전등) 어둠과 함께 한 것이었지만, 능히 사물을 비추었던 것이다. 만약 前燈(전등)을 켜기 전에 어두움이 없었다면, 後燈(후등)으로 더욱 밝아짐도 없게 됨을 즉시 알게 되나니, 

 

諸佛菩薩智慧亦如是, 菩薩智慧 雖與煩惱習合 而能得諸法實相 亦如前燈亦能照物, 佛智慧盡 諸煩惱習 亦得諸法實相 如後燈倍復明了。

모든 보살들의 지혜 역시 그와 같으니, 보살의 지혜가 비록 번뇌(煩惱)와 습기(習氣)와 함께 하는 것이나, 능히 모든 제법의 실상을 얻을 수 있으니, 이는 마치 前燈(전등)도 역시 능히 사물을 비추어 밝힐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의 지혜는 모든 번뇌(煩惱)와 습기(習氣)를 다하였으며 또한 제법의 실상도 얻은 것이니, 이는 마치 後燈(후등)으로 몇 배나 더욱 밝게 비출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問曰, 云何是諸法實相?

묻나니, 어떠한 것이 제법의 실상(實相)입니까?

 

答曰, 衆人各各說 諸法實相 自以爲實。此中實相者 不可破壞 常住不異 無能作者。

답하나니,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제법의 실상(實相)을 설명하고는 각자 진실하고 옳다고 하였지만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실상(實相)은 파괴할 수도 없는 不可破壞(불가파괴)이며,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常住不異(상주불이)이며, 능히 만들어 낼 수 있 이가 없는 無能作者(무능작자)이니, 

 

如後品中 佛語須菩提, '若菩薩觀一切法 非常非無常 非苦非樂 非我非無我 非有非無等 亦不作是觀 是名菩薩 行般若波羅蜜'

예를 들자면, 뒤의 품에서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만약 보살이 일체법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닌 非常非無常(비상비무상),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非苦非樂(비고비락), '나'가 있음도 아니고 '나'가 없음도 아닌 非我非無我(비아비무아),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닌 非有非無(비유비무)라고 관찰하며, 또한 이러함으로 (고정된 관념으로) 관하지도 않는 것을 일컬어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是義 捨一切觀 滅一切言語 離諸心行 從本已來 不生不滅 如涅槃相, 一切諸法相亦如是 是名諸法實相。如'讚般若波羅蜜偈'說;

이러함을 정의(定義)하자면 일체의 관(觀, 관법)을 버리고, 일체의 언어(논쟁)를 멸하며, 일체의 마음으로 짓는= 心行(심행)을 여의게 되면, 근원으로부터 불생불멸인 것이 마치 열반의 모습과 같으니,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실상(實相)도 역시 그와 같은 것으로, 이를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라 하나니, 마치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는 게송에 설한 바와 같으니라.

 

般若波羅蜜 實法不顚倒 念想觀已除 言語法亦滅。

반야바라밀은 뒤바뀌어 전도(顚倒)되지 않는 진실한 법이라.

기억하고 생각하는 念想(염상)의 관찰을 이미 멸하였고, 언어의 법도 역시 멸하였네.  


염상(念想) = 염(念)은 어떠한 주제(主題)에 초점(焦點)을 맞춰 생각을 기울이는 것이요, 상(想)은 의도하지 않게 무심코 떠오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말합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

 

無量衆罪除 淸淨心常一, 如是尊妙人 則能見般若。

무량(無量)하고 숱한 죄업(罪業)도 제하여, 청정(淸淨)한 마음이 항상 하나가 되면,

이와 같이 존귀하고 묘한 사람은 능히 반야를 볼 수 있으리.

 

如虛空無染 無戲無文字, 若能如是觀 是卽爲見佛。

마치 허공이 물듦이 없는 것과 같이, 희론(戱論)과 문자에 물들지 않나니

만약 능히 이러하게 관찰할 수 있다면 곧 부처를 보게 되리라.

 

若如法觀佛 般若及涅槃, 是三則一相 其實無有異。

만약 변함없는 바른 법=如法(여법)임을 관찰한다면, 부처와 반야와 열반

이 셋은 곧 하나의 모습이라 실로 다르지 않으리.

 

諸佛及菩薩 能利益一切, 般若爲之母 能出生養育。

모든 부처님들과 보살들은, 능히 일체를 이롭게 하나니

반야(般若)란 그의 어머니가 되어, 능히 낳아주고 길러준다네.

 

佛爲衆生父 般若能生佛, 是則爲一切 衆生之祖母。

부처님은 중생의 아버지이고, 반야는 능히 부처를 낳으니,

이는 곧 일체 중생의 조모(할머니)가 되리.

 

般若是一法 佛說種種名, 隨諸衆生力 爲之立異字。

반야란 곧 하나의 법=一法(일법)이나, 부처님은 갖가지 이름으로 말씀하시어

중생들의 힘(능력)을 따라, 그들을 위하여 각각 다른 말=異字(이자)로 정립하셨네.

 

若人得般若 議論心皆滅, 譬如日出時 朝露一時失。

만약 어떤 이가 반야를 얻는다면, 따지려는 마음 모두를 멸하게 되나니,

마치 해가 나오면, 아침 이슬이 일시에 없어지는 것과 같으리.

 

般若之威德 能動二種人, 無智者恐怖 有智者歡喜。

반야의 위덕은 능히 두 종류의 사람을 움직이나니

무지한 자=無智者(무지자)는 두려워하게 하고 지혜 있는 자=有智者(유지자)는 환희롭게 하네.

 

若人得般若 則爲般若主, 般若中不著 何況於餘法。

만약 어떤 이가 반야를 얻게 되면, 반야의 주인이 되나,

그 반야에 집착하지 않으니, 하물며 다른 법에 집착하랴.

 

般若無所來 亦復無所去, 智者一切處 求之不能得。

반야는 오는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바도 없으니

지혜로운 이는 일체처에서 이를 구하나 얻을 수 없네.

 

若不見般若 是則爲被縛, 若人見般若 是亦名被縛。

만약 반야를 보지 못한다면 이는 곧 얽매이게 됨이나,

어떤 사람이 만약 반야를 본다면, 이 또한 얽매임이라 하리.

 

若人見般若 是則得解脫, 若不見般若 是亦得解脫。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를 보게 되면, 이는 해탈을 얻는 것이요

만약 반야를 보지 못하였다 하여도 이 또한 해탈을 얻는 것이네.

 

是事爲希有 甚深有大名, 譬如幻化物 見而不可見。

이러함은 희유하여서 심히 깊고 거룩한 크나큰 명예가 있나니

마치 환술=幻(환)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보이지만 볼 수 없는 것과 같네.

 

諸佛及菩薩 聲聞辟支佛, 解脫涅槃道 皆從般若得。

모든 부처님들과 보살들과 성문과 벽지불들의

해탈과 열반의 도는 모두 반야를 좇아 얻어지는 것이라.

 

言說爲世俗 憐愍一切故, 假名說諸法 雖說而不說。

언설은 세속을 위한 것이나 일체를 가엾이 여기시는 까닭에

거짓 이름=假名(가명)으로 법을 말씀하시니, 비록 말씀하셨으나 말씀한 것이 아니네.

 

般若波羅蜜 譬如大火焰, 四邊不可取 無取亦不取。

반야바라밀이란 마치 큰 불덩이와 같아서

사방의 어디에서도 취할 수 없으니, 취함도 취하지 않음도 없음이라.

 

一切取已捨 是名不可取, 不可取而取 是卽名爲取。

일체의 취함을 이미 버렸다면, 이를 취할 수 없음이라 하나니

취할 수 없는 것을 취하는 이것이 곧 취함이라 하리.

 

般若無壞相 過一切言語, 適無所依止 誰能讚其德。

반야는 무너지는 모습=壞相(괴상)이 아니며, 일체의 언어를 넘어서

의지하는 곳이 전혀 없나니, 뉘라서 그 공덕을 찬탄하리오.

 

般若雖叵讚 我今能得讚, 雖未脫死地 則爲已得出。叵 어려울 파

비록 반야를 찬탄하는 것이 어려우나, 내 이제 능히 찬탄하노니

비록 죽음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이미 나갈 곳을 얻었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