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5권 4

Skunky 2023. 11. 24. 09:01

大智度論釋初品中 羼提波羅蜜 法忍義 第二十五 卷第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25. 초품 중 찬제바라밀(提波羅蜜)의 법인(法忍)의 뜻을 풀이함 4

  

如一比丘 於此十四難 思惟觀察 不能通達 心不能忍, 持衣鉢至佛所 白佛言, '佛能爲我解此十四難 使我意了者 當作弟子, 若不能解 我當更求餘道'

어떤 비구가  열네 가지의 난문 대하여 생각하고 관찰하여도 통달하여 명료히 알지 못하자, 마음으로 인욕할 수 없어서, 의발(衣鉢) 들고 부처님께 가서 말씀드리기를, '부처님이시여저를 위하여 14난을 해명하여 주시어, 저로 하여금 이해하게 하신다면 마땅히 제자가 되겠습니다만만약에 해명하여 주지 못하신다면 저 당장 다른 길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하니, 

 

佛告, '癡人, 汝本共我要誓, 若答十四難 汝作我弟子耶?'

比丘言, '不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이여네가 나와 함께 하기를 맹세하였을 때,  14난을 대답하여 주면  제자가 되겠다고 하였더냐?'

비구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佛言, '汝癡人 今何以言 若不答我 不作弟子’?

我爲 老病死人說 法濟度, 此十四難是鬪諍法 於法無益 但是戲論 何用問爲?

若爲汝答 汝心不了 至死不解 不能得脫 生老病死。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어리석은 사람이구나어찌하여 지금 말하기를 ‘내게 대답하여 주지 못하신다면 제자가 되지 않겠다’ 하느냐

나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사람을 위해 법을 설해주어 제도하거늘, 

 열네 가지 질문은 다툼을 일으키는 鬪諍法(투쟁법)이라법을 이해함에 아무런 이익이 없으나, 오 희론이 될 뿐이니, 물어서 무엇하리!

만약 내가 너에게 대답하여 주더라도 그대는 명료하게 이해하여 알 못할 것이며,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한  생로병사에서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譬如有人 身被毒箭 親屬呼醫 欲爲出箭塗藥 便言, '未可出箭 我先當知汝姓字 親里 父母年歲, 次欲知 箭出在何山 何木 何羽 作箭鏃者爲是何人 是何等鐵, 復欲知弓何山木 何虫角, 復欲知藥是何處生 是何種名。如是等事 盡了了知之 然後聽汝出箭塗藥'

비유하자면마치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으니,  친지와 권속들이 의원을 불러 화살을 뽑고 약을 바르려고 하였지만, 그가 말하기를 ‘아직 화살을 뽑아서는  된다나는 먼저 그대의 이름 부모와 나이를 알아야 겠으, 그 다음은 화살대가 어느 산의 어떤 나무로 만든 것이며, 무슨 깃털이며, 화살촉은 누가 만들었으며어떤 쇠로 만들어진 것인가를 알아야 하고, 

또한 활=弓(궁)은 어느 산의 나무로 만들었으며어떤 짐승의 뿔인가를 알아야 하고, 

또한 약은 어디서  것이며 이름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으니, 이러한 갖가지 일들을 모두 밝혀 다  뒤에야 그대가 화살을 뽑고 약을 바르게 하겠다’ 한 경우와 같으니라.

 

佛問比丘, '此人可得知此衆事 然後出箭不?'

比丘言, '不可得知!若待盡知,此則已死'

부처님께서 다시 비구에게 물으시기를, ' 사람이 이러한 일들을   뒤에 화살을 뽑아야 되겠는가?'

비구가 대답하기를, '  수가 없는 것입니다만일  알기를 기다린다면 그는 이미 죽어 있을 것입니다.'

 

佛言, '汝亦如是! 爲邪見箭愛毒塗 已入汝心 欲拔此箭 作我弟子, 而不欲出箭 方欲求盡世閒 常無常, 邊無邊等 求之未得 則失慧命 與畜生同死 自投黑闇'

比丘慚愧 深識佛語 卽得阿羅漢道。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 역시 이와 같으니라. 애욕의 독약이 발라진 삿된 소견의 화살이  마음 깊숙이 박혀 있기에 너는 그 화살을 뽑아내기 위하여 나의 제자가 되었거늘, 화살은 뽑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이 세상이 항상함과 무상함 있음과 끝없음 등을 구하려 하나니, 그러함은 구하여도 얻지 못할 것이며, 해탈지견의 혜명(慧命) 잃고 축생과 마찬가지로 죽어서는 스스로 어둠 속으로 뛰어들고자 하는구나.'

이에 비구는 매우 부끄러이 여기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똑똑히 이해하고는 곧 아라한의 도를 얻게 되었다.

 

혜명(慧命)= 부정(不淨)한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삶을 “수명(壽命)”이라 하고, 청정(淸淨)한 오중(五衆)인 계(戒) 정(定) 혜(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이라는 무위법(無爲法)으로 이루어진 법성신(法性身)으로 사는 것을 “혜명(慧命)”이라고 부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復次 菩薩欲作 一切智人 應推求一切法 知其實相, 於十四難中 不滯不㝵 知其是心重病 能出 能忍 是名法忍。

또한 보살이 일체를 아는 一切智人(일체지인) 되고자 한다면마땅히 일체법을 추구하여   모습=실상(實相) 알아야 하나니열네 가지의 難問(난문) 얽매이지도 않고 장애받지 않으며, 그러한 것들은  마음의 중한 병이 됨을 바로 알아 능히 벗어나고 능히 참는다면이를 법인(法忍)이라 하며

 

復次 佛法甚深 淸淨微妙, 演暢種種 無量法門 能一心信受 不疑不悔 是名法忍。

또한 불법은 심히 깊고 청정미묘하며, 갖가지 무량한 법문을  펼치어 연설하므로, 一心(일심)으로 믿고 받아 들이어 의심하지 않으며 후회하지 않는 것을 법인(法忍)이라 하느니라.

 

如佛所言, '諸法雖空 亦不斷 亦不滅, 諸法因緣相續生 亦非常, 諸法雖無神 亦不失罪福'

一心念頃 身諸法 諸根 諸慧 轉滅不停 不至後念, 新新生滅 亦不失無量世中 因緣業。

諸衆界入中皆空無神 而衆生輪轉五道中 受生死。

부처님께서, '제법 비록 공하나또한 역시 단절되거나 멸하지도 않는 것이라. 법은 인연으로 상속하여 생기는 것이며또한 영원한 것도 아니며, 비록 제법에는 주재자=() 없으나 죄와 복을 잃지도 않는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마음으로 잠깐  생각이 일어날  몸의 법인 모든 감관(육근) 모든 지혜가 전멸(轉滅)하여 멈추지 않으며, 다음 생각으로 이르지도 않은  새록새록 생멸하나, 또한 량한 세월 가운데 지은 인연의 업을 잃지도 않는 것이다.

오온=諸衆(제중) 19, 12 모두가 공한 것이라 주재자=() 없으나중생들은 오도(五道) 가운데 윤전(윤회) 거듭하면서 생사를 받는 것이니라.

 

如是等種種 甚深微妙法 雖未得佛道 能信能受 不疑不悔 是爲法忍。

이와 같은 갖가지로 심히 깊고 미묘한 법에 대하여 아직 불도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능히 믿고 받아 들이어 의심하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는, 이것이 법인(法忍)이라 하며,

 

復次 阿羅漢 辟支佛 畏惡生死 早求入涅槃, 菩薩未得成佛 而欲求一切智 欲憐愍衆生 欲了了分別 知諸法實相 是中能忍 是名法忍。

또한 아라한이나 벽지불은 생사를 두려워하고 싫어하여 빨리 열반에 들고자 하지만, 보살은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하였지만 일체지를 구하고자 하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며, 모든 법의 실상을 명확히 분별하여 알고자 하여 능히 참으니, 이를 법인(法忍)이라 하느니라.

 

問曰, 云何觀諸法實相?

묻나니, 어떻게 제법의 실상을 관찰하는 것입니까?

 

答曰, 觀知諸法 無有瑕隙 不可破 不可壞 是爲實相。隙 틈 극, 瑕 티 하

답하나니, 모든 법은 허물=瑕(하)나 틈=隙(극)이 없어서 깨뜨리거나 무너뜨릴 수 없는, 이것이 법의 실상임을 관찰해서 아는 것이다.

 

問曰, 一切語 皆可答 可破 可壞, 云何言 '不可破壞 是爲實相'?

묻나니, 일체의 언어는 모두 답할 수 있고, 깨뜨릴 수 있고, 무너뜨릴 수 있는데, 어찌하여 ‘파괴할 수 없는 것이 모든 법의 실상’이라 말씀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以諸法不可破故 佛法中一切言語道過 心行處滅 常不生不滅 如涅槃相。何以故, 若諸法相實有 不應無, 若諸法先有今無 則是斷滅。

답하나니, 제법은 깨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불법(佛法)에서의 일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마음의 작용도 사라져서 항상 불생불멸함이 마치 열반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法相(법상)이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없어지거나 멸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며, 제법이 앞에서는 있었으나 그 후에 멸하여 없어지는 것이라면, 이는 단멸(斷滅, 단멸견)이 되는 것이며, 

 

언어도과(言語道過)= 말길이 끊겼다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는 뜻으로 언어도단(言語道斷), 명언도단(名言道斷) 등과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법상(法相)= dharmalakṣaṇa, dharmanimitta, dharmasaṃjñā, dharmatā 등이 ‘법상(法相)’으로 한역된다. 법상은 현상의 실상, 또는 체상(體相)을 가리킨다. 불교가 어느, 또는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여실하게 인식함으로써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해탈을 추구한다고 할 때 인식의 대상으로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법상은 번역자에 따라서 법성(法性)과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다움

 

復次 諸法不應是常。何以故, 若常則 無罪無福 無所傷殺 亦無施命 亦無修行利益 亦無縛 無解 世閒則是涅槃。如是等 因緣故 諸法不應常。

또한 제법은 영원함=常(상)일 수도 없으니,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영원하다면 죄와 복도 없고, 죽이거나 해침도 없으며, 나아가 목숨을 살려주는 복도 없고, 수행하는 이익도 없으며, 속박이나 해탈도 없어서 세간이 곧 열반이 되는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인연들 때문에 제법은 영원함(항상함)이 아닌 것이니라.

 

若諸法無常 則是斷滅 亦無罪無福 亦無增損功德業 因緣果報亦失。如是等 因緣故 諸法不應無常。

만약 제법이 무상한 것이라면 이는 단멸견(斷滅見)이 되나니, 또한 죄와 복도 없고, 이익이나 손해도 없으며, 공덕과 업도 없으며, 인연과 과보도 잃게 되는 것이라. 이러한 갖가지의 인연 때문에 제법은 무상(無常)한 것도 아니니라.

 

問曰, 汝言 '佛法中常亦不實 無常亦不實', 是事不然! 何以故, 佛法中常亦實 無常亦實。

常者 數緣盡 非數緣盡 虛空 不生不住不滅故 是常相,

無常者 五衆生住滅故 無常相。汝何以言, '常 無常皆不實"?

묻나니, 그대는, '불법(佛法)에서는 항상하다 하여도 진실이 아니요, 무상하다 하여도 진실이 아니다' 고 말씀 하셨는데, 이는 옳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불법 가운데에서는 항상함 역시 진실이요, 무상함 역시도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항상함이란 인연화합이 다한=數緣盡(수연진)이요, 무위의 非數緣盡(비수연진)으로 허공이 나지도 머물지도 멸하지도 않는 까닭에 항상한 모습이라 하며, 무상의 모습이란, 5중(五衆, 오온)이 생겨 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까닭에 덧없는 모습이라 하는 것이나니,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항상함과 무상함이 모두 진실하지 않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수연진(數緣盡) =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나는 현상과 작용(法)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는 것임을 터득하여 갈무리된 번뇌 다하게 된 것.

비수연진(非數緣盡) = 비지연진(非智緣盡)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라고도 하며, 생주멸(生住滅)의 인연 법칙이 아니어서 유위법(有爲法)의 마지막인 갈무리라는 멸(滅)을 선택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라는 뜻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答曰, 聖人有二種語, 一者 方便語, 二者 直語。

方便語者 爲人 爲因緣故。爲人者 爲衆生說是常 是無常 如對治悉檀中說。

若說無常 欲拔衆生 三界著樂, 佛思惟, '以何令衆生得離欲?' 是故說無常法。如偈說;

답하나니, 성인께서 하신 말씀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요, 둘째는 곧고 옳은 말씀이라.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라 함은 사람을 위하는 인연 때문이며, 사람을 위한다 함이란 중생들을 위하는 것으로 ‘이는 항상함이다. 이는 무상함이다’라고 말해 주신 것이니, 부처님께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여 미혹을 대치하고 이익을 주어 미혹을 부수고 악을 멸하게 하는=대치실단(對治悉檀, prātipākṣika-siddhānta)에서 설하신 바와 같으니라.

만약 무상(無常)을 말할 때에는 중생들이 삼계의 쾌락에 집착함을 뽑아 주고자 부처님께서 생각하시기를 ‘어찌하여야 중생들로 하여금 애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셨으므로 다음의 게송과 같은 무상의 가르침을 말씀하신 것이니라.

 

四悉檀中(사실단중) 일체의 12부경과 8만 4천 법(가르침)의 창고가 들어 있나니, 실로 이 모두는 서로 위배되지 않느니라. 

불법 가운데 유는 (삼법과 일체법이 갖추어져 있어 서로 혼란스럽지 않는) 세계실단(以世界悉)인 까닭에 실유이며, 

(선으로 허물을 짓지 않으므로 해탈하게 되는) 각각 위인실단(爲人悉檀)인 까닭에 실유이며, 

(미혹을 부수어 악을 멸하므로 반야는) 대치실단(對治悉檀)인 까닭에 실유이며, 

(법신이 곧) 제일의제실단(第一義悉檀)인 까닭에 실유인 것이다.-대지도론(大智度論) 제1권 9

실단(悉檀, siddhanta)= 종의 (宗義) · 정설(定說) · 성취(成就)라는 뜻.

 

若觀無生法 於生法得離, 若觀無爲法 於有爲得離。

만약 무생(無生)의 법을 관한다면, 생법을 여읠 수 있고

만약 무위(無爲)의 법을 관하면, 유위를 여읠 수 있느니라.

 

云何生? 生名 因緣和合 無常 不自在 屬因緣 有老病死相 欺誑相 破壞相 是名生生, 則是有爲法。

如對治悉檀說。常無常 非實相 二俱過故。若諸法 非有常非無常 是爲愚癡論。

所以者何? 若非有則破無 若非無則破有, 若破此二事 更有何法可說?

어찌하여 생겨나는=生(생)하는 것입니까? 생겨남=生이란 인연화합으로, 무상하고, 자재하지 못하고, 인연에 속하는 것이며, 노병사의 모습이며, 홀려서 속이는 모습이며, 파괴하는 모습이 있으니, 이러함을 생생(生生)이라 하니, 이는 곧 유위법이니라.

대치실단(對治悉檀)에서 설한 바와 같이, 항상함과 무상함은 진실한 모습이 아닌 것으로 그 두 가지 모두에 허물이 있기 때문이라.

만약 제법이 항상함도 아니요 무상함도 아니라 한다면 이는 우치한 논리가 되나니,

왜냐하면 만약 있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없음이 무너지고, 없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있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 두 가지가 무너지게 된다면, 다시 어떠한 법을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