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15권 1
大智度論釋初品中 羼提波羅蜜 法忍義 第二十五 卷第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25. 초품 중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의 법인(法忍)의 뜻을 풀이함 1
云何名法忍?
어떠한 것을 법인(法忍)이라 하는가?
忍諸恭敬 供養衆生 及諸瞋惱 婬欲之人 是名生忍。
忍其供養 恭敬法 及瞋惱婬欲法 是爲法忍。
공경하고 공양하는 모든 중생을 더불어 화내고 괴롭히고 음욕스러운 사람들에 대하여 잘 참는 것을 생인(生忍, 중생인)이라 하며, 그러한 공경 공양하는 법과 성내고 괴롭히고 음욕스러운 법을 잘 참는 것을 법인(法忍)이라 하며,
復次 法忍者 於內六情不著 於外六塵不受 能於此二不作分別。何以故, 內相如外 外相如內 二相俱不可得故, 一相故 因緣合故 其實空故 一切法相常淸淨故 如眞際法性相故 不二入故 雖無二亦不一。
또한, 법인(法忍)이란 안의 안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6정(六情, 육근)에 집착하지 않고, 밖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6진(六塵, 육경)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이 두 가지에 분별을 내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안의 육입(六入)이 밖의 육경(六境)과 같고, 밖의 바깥 육경(六境)이 안의 육입(六入)과 같아서 二相(이상) 모두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 모습=一相(일상)이기 때문이고, 인연으로 화합한 것이기 때문이며, 그 실체가 공하기 때문이며, 일체법의 모습이 항상 청정(淸淨)한 때문이며, 여여(如如, 한결같음)ㆍ진제(眞際, 진리)ㆍ법성(法性, 불변의 본성)의 실상이기 때문이며, 不二(불이)=둘이 아니기 때문며, 비록 不二(불이)라 하지만 또한 하나도 아닌 것이다.
如是觀諸法 心信不轉 是名法忍。如'毘摩羅鞊經'中 法住菩薩說, '生滅爲二, 不生不滅是不二入法門' 乃至 文殊尸利說, '無聞 無見 一切心滅 無說 無語 是不二入法門' 毘摩羅鞊默然無言 諸菩薩讚言, '善哉善哉! 是眞不二入法門'
이와 같이 모든 법을 관찰하여 心信(신심)이 전도되지 않는 것을 법인(法忍)이라 하는 것으로,
마치 '비마라힐경(毘摩羅詰經, VimalakirtiSutra, 유마힐소설경)'에서 법주(法住, Dharma-sṭīthi-bodhisattva)보살들이 말하기를, '생(生)과 멸(滅)은 둘이요, 불생불멸은 곧 불이(不二)로 들어가는 법문이다.'
나아가 문수시리(文殊尸利, Mañjuśrī)보살이 말하기를,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아 일체의 마음이 멸하여, 말하지도 이야기하지도 않는 이것이 불이로 드는 법문이다.'
비마라힐(유마거사)은 잠자코 말이 없었으니, 여기에서 보살들이 (깨달아) 찬탄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이야말로 참된 ‘불이(不二)로 드는 법문입니다.'라고 한것과 같으며,
법주보살(法住菩薩)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참된 가르침(法)을 통해 각 보살의 경지에서 중도(中道)에 머물러 계신 분들에 대한 호칭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같을 여(如). "마치 ~와 같다(~와 유사함)"라는 뜻을 나타내며 '동등', '평등'이란 단어에서 쓰는 '같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영어로 뜻을 설명하자면 same, equal이 아닌 like, such as에 해당한다. 옛날에는 '답다'라는 형용사를 써서 '다울 여'라고도 했다.-나무위키.
復次 一切法有二種, 一者 衆生, 二者 諸法。菩薩於衆生中忍 如先說, 今說法中忍。
法有二種, 心法 非心法。非心法中 有內有外, 外有寒熱 風雨等, 內有飢渴 老病死等。如是等種種 名爲非心法。
心法中有二種, 一者 瞋恚 憂愁 疑等, 二者 婬欲 憍慢等。是二名爲心法。
菩薩於此二法 能忍不動 是名法忍。
또한, 일체법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이요, 둘째는 제법(諸法)이라. 보살이 중생 가운데서 참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이제는 법 가운데서 참는 것을 말하리라.
법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마음의 법=心法(심법)과 마음 아닌 법=非心法(비심법)이라.
非心法(비심법)에는 안의 것과 밖의 것이 있으니, 밖의 것으로는 추위ㆍ더위ㆍ바람ㆍ비 등이 있고, 안의 것으로는 주림ㆍ목마름ㆍ늙음ㆍ앓음ㆍ죽음 등이 있으며, 이러한 갖가지를 마음 아닌 법=非心法(비심법)이라 하며,
心法(심법)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성내고 노여워하는=瞋恚(진애)ㆍ근심에 시름하는=憂愁(우수) ㆍ의심 등이며, 둘째는 음욕ㆍ교만 등이라. 이러한 두 가지를 마음의 법=心法(심법)이라 한다.
보살은 心法(심법)과 非心法(비심법)의 두 법에 대하여 참고 동요되지 않으니, 이를 법인(法忍)이라 하느니라.
問曰, 於衆生中 若瞋惱 害命得罪 憐愍得福, 寒熱風雨 無有增損 云何而忍?
묻나니, 중생에게 만약 성을 내어 괴롭히거나 목숨을 해치게 되면 죄를 받고, 가엾이 여기면 복을 얻거니와 추위ㆍ더위ㆍ바람ㆍ비에는 죄와 복의 줄고 늘어남이 없거늘 어찌하여 참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 雖無增損 而自生 惱亂憂苦 害菩薩道 以是故 應當忍。
답하나니, 비록 죄와 복에 어떠한 이익이나 손해도 없지만, 스스로 뇌란과 근심을 내어 보살도를 해치게 되는 까닭에 마땅히 참아야 하느니라.
復次 非但 殺惱衆生故得罪 爲惡心作因緣故有罪。所以者何, 雖殺衆生 而無記心 是便無罪, 慈念衆生 雖無所與 而大得福。以是故 寒熱風雨 雖無增損 然以能生 惡意故得罪。以是故應當忍。
또한, 단지 중생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까닭에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삿된 마음 때문에 인연을 짓는 까닭에 죄가 되는 것이니, 왜냐하면 비록 중생을 죽였더라도 무의식의 마음=無記心(무기심)이었다면 죄가 없기 때문이다.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비록 주는 것이 없다 하여도 큰 복을 얻으며,
비록 추위ㆍ더위ㆍ바람ㆍ비가 이익이나 손해를 주지는 않더라도 능히 악의(惡意)를 일으키기 때문에 죄를 받게 되므로 마땅히 참아야 하며,
復次 菩薩自知 宿罪因緣, 生此苦處 '此我自作 我應自受' 如是思惟 是故能忍。
또한, 보살은 스스로 전생에 쌓은 숙세의 죄의 인연에 의해, 이 괴로운 곳에 태어났음을 알아, '이는 내가 스스로 지은 것이므로 마땅히 감수해야 하리라.’이와 같이 사유하는 까닭에 능히 참는 것이며,
復次 菩薩思惟, '國土有二種, 有淨 有不淨。菩薩若生 不淨國中 受此辛苦 飢寒衆惱 自發淨願, ‘我成佛時 國中無此衆苦' 此雖不淨 乃是我利'
또한 보살이 생각하기를, ‘국토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깨끗한 곳과 더러운 곳이라. 만약 보살이 不淨(부정)한 국토에 태어난다면, 괴로움과 주림과 추위 등 온갖 고통을 받게 될 것이나, 스스로 청정한 서원을 세워 '내가 성불하거든 내 국토에는 이러한 괴로움들이 없게 하리다'고 하며, 이 국토가 비록 不淨(부정)한 국토이기는 하나, 이러함이 나에게는 이익이 되는 것이다’ 하며,
復次 菩薩思惟, '世閒八法 賢聖所不能免 何況於我' 以是故 應當忍。
또한 보살은 ‘세간의 여덟 가지 법=八法(팔법)은 성현도 피해가지 못하는 바이거늘, 하물며 나이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참아야 하리라.’고 생각하며,
世間八法(세간팔법)=사람의 마음을 선동하는 8종류의 일들
1. 이익 利(이) 2. 명예 譽(예) yaśas 3. 칭찬 稱(예) praśaṃsā 4. 즐거움 樂(낙) sukha의 4순(順)은 마음에 수순하는 것.
5. 이익의 쇠퇴 衰(쇠) alābha, 6. 훼손 毀(훼) ayaśas, 7. 비웃을 譏(기) nindā, 8. 괴로울 苦(고) duhkha)의 4위(違)는 마음에 어기는 것.
復次 菩薩思惟, '知此人身 無牢無强 爲老病死所逐, 雖復天身 淸淨無老無病 耽著天樂, 譬如醉人 不得修行 道福 出家離欲' 以是故 於此人身 自忍修福 利益衆生。
또한, 보살은, ‘이 사람의 몸은 견고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으며, 늙음ㆍ병듦ㆍ죽음에 쫓기며, 비록 다시 청정(淸淨)한 하늘 몸을 받게 될지라도 하늘의 쾌락에 집착되나니, 마치 취한 사람이 도와 복을 수행하여 닦지는 않으나, 출가하여 애욕을 여의고자 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 인간의 몸을 받았음에 스스로 참아서 복을 닦고, 중생을 이롭게 해야 하리라.’고 생각하며,
復次 菩薩思惟, '我受此四大 五衆身 應有種種苦分 無有受身 而不苦者, 富貴貧賤 出家在家 愚智明闇 無得免者。
何以故, 富貴之人 常有畏怖 守護財物 譬如肥羊 早就屠机 如烏銜肉 衆烏逐之, 貧賤之人 有飢寒之苦。
出家之人 今世雖苦 後世受福得道, 在家之人 今世雖樂 後世受苦。
愚人 先求今世樂 無常對至 後則受苦, 智人思惟 無常苦 後則受樂得道。
如是等 受身之人 無不有苦' 是故菩薩應當行忍。屠 잡을 도, 机 책상 궤, 銜 재갈 함
또한, 보살은 생각하기를, ‘내가 地水火風(지수화풍) 사대(四大)와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의 5중(五衆, 오온)의 몸을 받았으니 응당 갖가지 괴로움이 있는 것이라. 몸을 받고서 괴로움을 받지 않은 이가 없으니, 부귀하거나 빈천하거나, 출가하였거나 집에 있거나,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밝거나 어둡거나 그 어느 누구도 면할 자가 없음이다.
왜냐하면 부귀한 사람은 재물을 지키기위하여 항상 두려우니, 마치 살찐 염소는 일찍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으며, 고기를 문 새를 뭇 새들이 좇는 것과도 같으며,
빈천한 사람에게는 주리고 추운 고통이 있으나, 출가를 한 사람은 비록 금생이 괴로울지라도 후생에는 도를 얻는 복을 받게되며, 집에 머물러 있는 在家(재가)의 사람은 금생이 비록 즐거우나 후생에 괴로움을 받게 되나니,
어리석은 사람은 먼저 이 세상의 즐거움을 구하거니와 무상(無常)에 이르러 마주하게 되면 괴로움을 받게 되며, 지혜로운 사람은 무상(無常)의 괴로움을 사유하고, 나중에 즐거움을 받게 되는 것이라.
이렇듯 몸을 받은 사람으로서 괴로움 없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보살은 인욕을 닦아야 하며,
復次 菩薩思惟, '一切世閒皆苦 我當云何 於中而欲求樂?'
또한 보살은, ‘일체의 세간 모두가 괴로움이거늘 내가 어찌 거기에서 즐거움을 구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復次 菩薩思惟, '我於無量劫中 常受衆苦 無所利益 未曾爲法,
今日爲衆生 求佛道 雖受此苦 當得大利。是故 外內諸苦 悉當忍受'
또한 보살은, ‘나는 무량한 겁 동안 항상 온갖 고통을 받아 왔으나, 아무런 이익이 없었으며 일찍이 법을 위하지도 못하였으나, 오늘날 중생을 위하여 불도(佛道)를 구하나니, 비록 이런 고통을 받으나 의당 큰 이익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팎의 모든 고통을 능히 참고 감수해야 하리라.’고 생각하며,
復次 菩薩 大心誓願, '若阿鼻泥犂苦 我當忍之, 何況小苦 而不能忍! 若小不忍 何能忍大!'
또한 보살은 大心(대심, 보리심)으로, ‘아비니리(阿鼻泥犁 AvīciNaraka 아비지옥, 무간지옥無間地獄)의 고통이라도 능히 참아야 하거늘 하물며 작은 고통을 참지 못하겠는가! 만약 작은 고통을 참지 못한다면, 어찌 큰 고통을 능히 참아낼 수 있겠는가!’ 하고 서원하나니,
如是種種 外法中忍 名曰法忍。
이와 같이 갖가지 몸 밖의 현상과 작용=法(법)에 대하여 참는 것을 법인(法忍)이라 하느니라.
問曰, 云何內心法中 能忍?
묻나니, 어떻게하여야 몸 안 마음의 법을 참을 수 있습니까?
答曰, 菩薩思惟, '我雖未得道 諸結未斷 若當不忍 與凡人不異 非爲菩薩'
復自思惟, '若我得道 斷諸結使 則無法可忍'
답하나니, 보살은, ‘내가 비록 도를 얻지 못하여 아직 모든 번뇌를 끊지 못했으나, 만약 참지 못한다면 응당 범부와 다를 바 없으니, 보살이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만약 내가 도를 얻어서 번뇌를 끊었다면 곧 참아야 할 법 또한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復次 '飢渴寒熱 是外魔軍, 結使煩惱 是內魔賊。
我當破此二軍 以成佛道, 若不爾者 佛道不成'
또한, ‘주림ㆍ갈증ㆍ추위ㆍ더위 등은 몸 밖의 마군(魔軍)요, 마음이 탐진치에 묶이어 맻힌=結使(결사)의 번뇌는 안의 마군(魔軍)이니, 나는 이 두 마군(魔軍)을 깨뜨려 불도를 이루리라.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불도를 이루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나니,
결(結) 또는 결사(結使)= ① 매어두는 것. 속박하는 것. 번뇌의 속박. 번뇌의 맺힘.
② 번뇌. 신심(身心)을 묶어 속박하는 것. 미혹. 중생을 속박하고 해탈시키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함. 마음이 묶임. 족쇄. 중생을 생사에 매어두고, 가두어두는 여러 요소의 일.
③ 10종 십결(十結)을 든다. 즉 탐욕(貪欲)·진에(瞋恚)·만(慢)·견(見)·의(疑)·계금취(戒禁取)·유탐(有貪)·질(嫉)·간(慳)·무명(無明)-불교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