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2권 9

Skunky 2023. 10. 28. 08:00

大智度論釋初品中 檀波羅蜜 法施之餘’ 卷第十二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20. 초품 중 단바라밀의 법시(法施)의 나머지를 풀이함② 9

 

問曰, 此細身微細 初死時已去 若活時則 不可求得 汝云何能見?

又此細身 非五情能見能知 唯有神通聖人 乃能得見。

묻나니, 이 미세한 몸은 (미세한 몸이라는 정신은) 미세하여서 죽으려 할 때엔 제일 먼저 떠나게 되고, 만약 살아있을 때에는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거늘 그대는 어떻게 능히 볼 수 있다고 합니까?

더더욱 이 미세한 몸은 5정(五情, 안이비설신)으로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니, 오직 신통을 얻은 성인이라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答曰, 若爾者 與無無異。如人死時 捨此生陰 入中陰中。是時 今世身滅 受中陰身 此無前後 滅時卽生。

譬如蠟印印泥 泥中受印 印卽時壞 成壞一時 亦無前後。蠟 밀 랍

답하나니, 만약 그렇다면 없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

마치 사람이 죽을 때 오온(五蘊)으로 살아가던 이 몸=生陰(생음)을 버리고 생사(生死)의 중간인 중음(中陰)으로 들어가나니, 이때 이 세상의 몸이 멸하고 중음의 몸을 받으니, 중음의 몸은 전세도 후세도 아닌 것으로, 생이 멸하는 그 순간에 생겨난 것이라.

비유하자면, 밀랍도장=蠟印(랍인)을 진흙에 찍으면 진흙에 도장이 찍히기는 하지만, 도장의 자국은 이내 망가져 버리는 것과 같이, 이루어짐과 무너짐이 동시라서 앞뒤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是時 受中陰中有 捨此中陰 受生陰有。

汝言細身 卽此中陰 中陰身 無出無入。譬如然燈 生滅相續 不常不斷。

이때 중음의 몸을 받아 머물다가,

그 중유(中有)의 몸을 버리고 다시 이 오온의 몸=生陰(생음)의 몸을 받게 되나니,

그대가 말하는 미세한 몸이란 곧 이 중음을 말하는 것이다.

중음의 몸은 중음에서 나올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등불을 켜면 불꽃의 생과 멸함이 상속하여 항상한 것도 아니고 끊어지는 것도 아닌 것과 같으니라.

 

受生陰有(수생음유)에서 유()는 후세의 실마리가 되는 업()을 짓게 하는 몸을 뜻하는 것으로, 생멸(生滅)이 이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佛言, '一切色衆 若過去 未來 現在 若內 若外 若麤 若細 皆悉無常'

汝神微細色者 亦應無常斷滅。如是等 種種因緣 可知非色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의 물질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이거나 안팎이거나 거칠거나 곱거나 모두가 무상한 것이다. 그대의 영혼(정신)이 미세한 물질이라면,-미세한 색온(色蘊)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 이 역시 무상한 것으로 단절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하여 물질=색온(色蘊)의 모습이 항상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神非無色相 無色者 四衆及無爲。四衆無常故 不自在故 屬因緣故 不應是神。

三無爲中 不計有神 無所受故。如是等 種種因緣 知神非無色相。

영혼(정신)은 물질(색온)의 특성이 없는=無色相(무색상)도 아니라고 한 바, 무색(無色)이란 4중(四衆, 수온 상온 행온 식온)과 무위(無爲)를 말하는 것으로,

4중(四衆)은 무상하고 자재롭지 못하고 인연에 속하기 때문에 영혼(정신)이 될 수 없으며,

삼무위(三無爲, 택멸ㆍ비택멸ㆍ허공)에는 정신이 있다고 계교할 수 없으니, 받아들일 바가 없기 때문이라.

이러한 갖가지 인연 때문에 영혼(정신)은 물질(색온)의 상이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느니라.

 

삼무위(三無爲)=허공무위 · 택멸무위 · 비택멸무위.

무위(無爲, asaṁskṛta)는 무행(無行), 즉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위(爲)란, 위(僞)의 뜻으로 억지스럽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인위적인 조작이 개입되지 않은, 여러 가지 원인이나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으로 생멸 변화(生滅變化)를 초월하는 것.

① 허공무의(虛空無爲)= 걸림이 없는 것을 성(性)으로 하여, 다른 것을 장애하거나, 또는 장애하여짐이 없는 공간 또는 허공과 같은 것, 즉 마음의 모든 장애와 차별이 소멸한 상태.

②택멸무위(擇滅無爲)=지혜의 간택력(簡擇力)에 의하여 번뇌를 끊는 곳에 나타나는 적멸한 진리.

③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지력(智力)에 의한 간택과 판단력에 의지하지 않고, 생기는 인연(유위법)이 소멸한 까닭으로 얻는 적멸한 무위, 즉 어떤 현상의 인연이 다하여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 예를 들면 깨달은 사람은 최초의 번뇌가 일어나면 인연을 끊음으로써 번뇌에 대하여 일종의 무위를 얻는 것처럼, 어떤 현상 이 저절로 다시 나타날 인연이 없어지므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불변의 법을 비택멸무위라 말함.

 

如是天地閒 若內若外 三世 十方 求我不可得。

但十二入 和合生六識,  三事和合名觸, 觸生受 想 思等心數法。

是法中 無明力故 身見生, 身見生故 謂有神。

是身見, 見苦諦 苦法智 及苦比智則斷, 斷時則不見有神。

이와 같이 천지간의 6입(入)과 6경(境)과 3세(三世)와 시방에서 나=정신(精神)의 실상(實相)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나니, 

오직 12입(入)의 화합으로 6식(六識)이 생겨난 것으로, 

근경식(根境識)의 3사(三事)=18계가 화합한 것을 촉(觸)이라 하고,

촉(觸)은 느낌을 받아들이는 수(受), 기억하는 상(想), 기억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하는사(思) 등의 순서대로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작용=心數法(심수법, caitasika-dharma)을 내며,

이 법 가운데 무명의 힘 때문에 일시적인 오온 화합의 몸이 있다는=身見(신견)이 생겨나고,

신견이 생기므로 영혼(정신)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러한 신견은 고제(苦諦)의 고법제(苦法諦)와 고비지(苦比知)를 통하여 관찰하면 곧 끊어지나니, 끊어지게 되면, 곧 영혼(정신)이 있다고 보는 사견을 끊게 되느니라.

 

불교에서는 인간의 감각기관과 의식기능을 근(根, skt. indriya)이라 하고, 그 기관과 기능의 대상을 경(境, viṣaya)이라 하며, 그 기관의 기능으로 대상을 식별하는 마음작용을 식(識, vijnana)이라 한다. 따라서 이 셋을 합친 말이 근ㆍ경ㆍ식(根境識)이다. 6경이 대응해야 6근의 작용 역시 그 존재가 드러나며, 근에 의해서 모양과 색깔을 인식(識-마음)을 일으키는 근거이며, 또는 식(識)을 일으키는 도구, 수단이 된다.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을 합쳐 12처(處) 또는 12입(入)이라 한다. 

6근(根)과 6경(境)의 12처(處)에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 일어나서, 이 6식(識)을 더한 18개가 모인 것을 18계(十八界)라고 한다. 결국 18계란 12처에 인식작용인 6식을 포함한 것이다. 
말하자면, 근(根)ㆍ경(境)ㆍ식(識)의 세 가지가 모여 이루어진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광범위한 영역 전체를 ‘계(界)’라고 한다. 따라서 십팔계(十八界)라고 하는 것은, 근과 경과 식이 상대관계에 의해서 생긴 모든 세계를 말한다.-아미산

 

汝先言, '若內無神 色識念念生滅, 云何分別知色 靑黃赤白?'

汝若有神 亦不能獨知 要依眼識故 能知。若爾者 神無用也。

그대가 앞에서 말하기를 '만일 6입(入)에 영혼(정신)의 상=色(색)이 없다면, 식(識)은 생각생각마다 생멸하는 것이거늘 어떻게 빛의 청ㆍ황ㆍ적ㆍ백을 분별하여 아는 것인가'라고 하였으며, 

또한 말하기를 '만약 영혼(정신)이 있더라도 혼자서 아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눈의 의식=眼識(안식)에 의지해서야 알게 된다'고 하였으니, 만일 그렇다면 영혼(정신)은 쓸모 없는 것이 되나니, 

 

眼識知色 色生滅 相似生 相似滅 然後心中 有法生 名爲念。

是念相有爲法 雖滅過去 是念能知。

如聖人智慧力 能知未來世事, 念亦如是 能知過去法。

若前眼識滅 生後眼識 後眼識轉利有力。

色雖蹔有不住 以念力利故 能知。蹔 잠깐 잠

以是事故 雖念念生滅無常 能分別知色。

안식(眼識)을 통해 색(색온)을 아나니, 색의 생멸은 생을 닮기도 하고 멸을 닮기도 한 것이다.(색온(色蘊)은 생멸(生滅)이 있어 모습이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나는 것과 닮았으며 모습이 인연의 흩어짐에 의해 사라져 없어지게 되는 것과 닮았나니)

그런 연후에 마음속에 어떤 법=有法(유법)이 생겨남을 일컬어 생각=念(염)이라 하나니,

이러한 생각의 모습은 유위의 법=有爲法(유위법)이어서, 비록 멸하여 과거가 되었으나 이 생각으로 능히 아는 것이라.

마치 성인이 지혜의 힘으로 미래의 일을 아는 것과 같으니,

생각에 생각이 일어나는=念念(염념)도 그와 같아서 능히 과거의 법(현상과 작용)을 아는 것이다.

만약 앞의 안식(眼識)이 사라진 뒤에 안식(眼識)이 생기면, 뒤의 안식(眼識)은 더욱 예리하고 힘이 있으며,

색은 비록 잠시도 머무르지 않으나, 생각의 힘이 예리한 까닭에 능히 아는 것이라.

이런 사실로 미루어, 비록 생각이 생각으로 생멸하여 이어지며 반복하는 것이 무상한 것일지라도, 능히 색을 분별하여 아는 것이니라.

 

又汝言, '今現在人識新新生滅 身命斷時亦盡 諸行罪福 誰隨誰受?

誰受苦樂? 誰解脫者?' 今當答汝,

또한 그대가 말하기를 '현존하는 사람의 의식이 새록새록 생멸을 거듭하다가, 몸의 목숨이 끊어질 때에 역시 다한다면, 지은 모든 행의 죄와 복은 누구를 따르는 것이며? 누가 받게 되는 것이며? 누가 고락을 받으며? 누가 해탈하는 것입니까?' 하였는데, 이제 바로 대답하여 주리라.

 

今未得實道 是人諸煩惱覆心 作生因緣業 死時 從此五陰相續生五陰。

그대는 아직 진실한 도를 얻지 못하였으니, 이러한 사람은 모든 번뇌로 마음이 덮여 있으며, 인연으로 업을 지어 태어났으며, 죽을 때에도 이로부터 5음(오온)이 상속되어 후의 5음(오음)이 생겨나게 되나니, (인연화합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나니)

 

譬如一燈 更然一燈。又如穀生 有三因緣, 地水種子。後世身生 亦如是。

有身 有有漏業 有結使 三事故後身生。

비유하자면, 하나의 등잔불로 다시 다른 등잔에 불을 붙여 켜는 것과 같으며,

또는 하나의 곡식이 자라기 위하여 땅ㆍ물ㆍ종자 등의 세 인연이 있어야 되는 것과 같으니, 

후세의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도 그와 같으니, 몸이 있음과 유루의 업과 번뇌=結使(결사)의 이 세 가지로 인하여 후세의 몸이 생기게 되는 것이라.

 

是中身 業因緣 不可斷 不可破, 但諸結使可斷。

結使斷時 雖有殘身 殘業 可得解脫。

如有穀子 有地 無水故不生。

이러함을 통하여도 몸과 업의 인연은 끊을 수 없고, 깨뜨릴 수도 없으나, 단지 모든 번뇌만은 끊어 낼 수 있으니,

번뇌가 끊어질 때에, 비록 남은 몸과 남은 업이 있어도 해탈 할 수가 있음이라.

마치 곡식의 씨앗이 땅에 심어져 있어도 물이 없으면 자라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如是雖有身 有業 無愛結水潤則不生。是名雖無神 亦名得解脫。

無明故縛 智慧故解 則我無所用。

이와 같이 비록 몸과 업만이 남아 있을 뿐, 애욕과 번뇌의 물이 축여주지 않는다면 자라나지 못하나니, 이를 일러 ‘비록 영혼(정신)이 없을지라도 역시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며, 

전생의 번뇌인 무명 때문에 속박되었으나, 지혜로 인하여 벗어나게 되나니, 곧 영혼(정신)이란 쓸모가 없는 것이라.

 

復次 是名色和合 假名爲人。

是人爲諸結所繫 得無漏智慧爪 解此諸結 是時 名人得解脫。

또한, 이 이름(名)과 모양(色, 색온)이 화합한 것을 가명으로 사람이라 하나니,

이 사람은 모든 번뇌에 얽매여 있었으나 무루지혜의 손톱을 얻어, 모든 번뇌의 매듭을 풀어 벗어나게 되나니, 이 때에는 이를 이름하여 해탈을 얻은 사람이라 하느니라.

 

如繩結 繩解 繩卽是結 結無異法 世界中說結繩 解繩。繩 노끈 승

마치 노끈을 묶고 노끈을 푸는 것과 같으니,

노끈이 곧 번뇌의 매듭=結(결)이니, 번뇌의 매듭이란 일체법과 다를 바가 없으며,

세간에서는 노끈을 맺는다거나 노끈을 푼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名色亦如是 名色二法和合 假名爲人。

是結使與 名色不異, 但名爲名色結 名色解。

受罪福 亦如是, 雖無一法爲人實 名色故 受罪福果 而人得名。

명색(名色)도 이와 같아서 식(識)이 몸에 머물러 나름의 형상을 갖추게 되는 명(名)과 색(色)의 두 법이 화합한 것을 가명으로 사람이라 하는 것이며,

이 번뇌=結使(결사)는 명(名) 색(色)과 다르지 않는 것으로, 단지 일컬어 말하기를 ‘가명=名(명)으로 번뇌가 맺어지고, 가명=名(명)으로 번뇌가 풀렸다’고 할 뿐이니라.

죄와 복을 받음도 이와 같아서 비록 하나의 법도 실하지 않아서 (공한 것이지만) 名色(명색) 때문에 죄와 복의 과보를 받는 것이며, 이에 사람이란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니라.

 

譬如車載物 一一推之 竟無車實 然車受載物之名。

人受罪福 亦如是, 名色受罪福 而人受其名。受苦樂亦如是。

如是種種因緣 神不可得。

비유하자면, 마치 수레에 물건을 싣는 것과 같으니, 하나하나를 추구하여 보면 수레의 실체는 끝내 없는 것이지만, 수레는 물건을 싣는다는 명칭을 받는 것과 같이,

사람이 죄와 복을 받음도 이와 같아서 명색(名色)에 의해 죄와 복을 받으며, 이에 사람이라는 그 이름을 받은 것이니,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이와 같은 갖가지의 인연에 의해 영혼(정신)은 (실상이 없는 것이므로) 얻을 수 없는 것이라.

 

神卽是施者 受者亦如是。汝以神爲人 以是故 施人不可得 受人不可得 亦如是。

如是種種因緣 是名財物 施人 受人不可得。

영혼(정신)이 있음으로 곧 베푸는 이=施者(시자)가 있음이요, 받는 이=受者(수자)도 이와 같다고 하였으나,

그대는 영혼(정신)을 사람이라 여기므로 施者(시자)도 얻을 수 없으며, 受者(수자)를 얻을 수 없음 또한 이와 같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이러함을 일컬어 ‘베푸는 물건=施物(시물)과 施者(시자)와 受者(수자)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