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2권 8

Skunky 2023. 10. 27. 08:00

大智度論釋初品中 檀波羅蜜 法施之餘’ 卷第十二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20. 초품 중 단바라밀의 법시(法施)의 나머지를 풀이함② 8

 

問曰, 我雖常故 不可殺, 但殺身則有殺罪。

묻나니, '나(정신, 영혼)'가 항상한 까닭에 비록 죽일 수 없다고 하나니, 어찌하여 단지 몸을 죽이기만 하여도 곧 살생의 죄가 있게 되는 것입니까?

 

答曰, 若殺身有殺罪者, '毘尼'中言, '自殺無殺罪' 罪福從惱 他益他生 非自供養身 自殺身故 有罪有福。

以是故'毘尼'中言, '自殺身無殺罪 有愚癡 貪欲 瞋恚之咎'

답하나니, 만약 몸을 죽이면 살생의 죄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율장=毘尼(비니)에서는 말하기를 '자살에는 살생의 죄가 없다.'고 하였으며, 죄와 복은 남을 괴롭히고 이익되게 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며,

그러므로 비니(유장)에서 말하기를 '자신의 몸을 죽이는 것은 살생의 죄는 없지만, 어리석음과 탐욕과 성냄의 허물이 있게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若神常者 不應死 不應生。何以故, 汝等法神常 一切遍滿五道中 云何有死生?

死名此處失 生名彼處出。以是故 不得言神常。

만일 정신(精神, 영혼)이 항상하다면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들의 법(가르침)에 의한다면 정신(영혼)은 항상하여 일체의 5도(五道)에 두루 가득하다고 하였으니, 어찌 생사가 있겠는가!

죽음이란 지금의 여기에서 없어진다는 말이요, 낢이란 저기에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정신(영혼)은 항상한 것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니라.

 

若神常者 亦應不受苦樂。何以故, 苦來則憂, 樂至則喜, 若爲憂喜所變者 則非常也。

만일 정신(영혼)이 항상한 것이라면 고통과 즐거움을 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니, 왜냐하면 괴로움이 오면 근심하게 되고, 즐거움이 오면 기뻐하나니, 만약 근심과 즐거움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면 항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若常 應如虛空 雨不能濕 熱不能乾 亦無今世後世。

만약 항상한 것이라면 허공과 같아서 비에도 젖지 않으며, 열기로 말리지도 못할 것이며, 또한 금생과 내생도 없을 것이라.

 

若神常者 亦不應有後世生 今世死。若神常者 則常有我見 不應得涅槃。

若神常者 則無起無滅 不應有忘失, 以其無神 識無常故 有忘有失 是故神非常也!

如是等 種種因緣 可知神非常相。

만약 정신(영혼)이 항상한 것이라면 후생에 다시 태어나거나 금생에서 죽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다시 정신(영혼)이 항상한 것이라면 항상 아견(我見)을 가지고 있게 되니,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며,

만약 정신(영혼)이 항상한 것이라면 (어떠한 현상과 작용의) 일어남도 멸함도 없을 것이며, 잊거나 잃어 버림이 없어야 하나니,

이 정신(영혼)은 없으나, 식(識)은 무상한 까닭에 잊거나 잃어버림이 있으므로 정신(영혼)은 항상하지 않은 것이니라!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하여 정신(영혼)이 항상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니라.

 

식(vijnana-skandha , 識)=보통 심리작용을 총칭하여 심·의·식(心意識)이라 할 때 심·의와 동일한 말이다. 대승불교에 이르러 유식설(唯識說)로 발전한 이 말이 어원적으로는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안다는 것은 대상을 얻는 것이기도 하며 그 작용을 전통적으로는 '요별'(了別)이라 한다. 알다·인식하다·요별하다는 의미의 동사 'vi-jñā'로부터 형성되어, 넓은 의미로는 대상을 감각·지각·사고하는 마음의 활동 일반을 의미한다.
세계의 구성 요소를 5온(五蘊)으로 분석할 때에는 식온(識蘊)으로서 그 일각을 형성하고, 아비달마(阿毘達磨)에서 모든 존재를 5위(位)로 체계화하는 중에 마음의 중심체인 심왕(心王)과 개개의 정신작용인 심소(心所)를 세우는 데서는 심왕에 상당한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각각에 대해 식을 인정하여 6식만을 식이라 하고 그 본체는 하나라 한다(설일체유부). 좁은 의미의 식은 이 6식을 가리킨다. 이들 중 안식부터 신식까지의 5식은 차례로 현대에서 말하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5감각에 상당하고, 각각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5가지를 감각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5식이 저마다 별도의 대상을 갖는 데 대해 마지막 의식은 모든 사물[一切法]을 대상으로 한다. 십이인연(十二因緣:十二綠起)에서 셋째에 위치하는 식은 찰나에 소멸하면서 상속하는 우리들 자기존재의 한 요소가 식임을 의미한다. 8식을 세운 유식파에서는 심·의·식을 구별하여 심은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 의는 말나식(末那識 manas), 식은 6식을 표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좁게는 6식만을 의미하며 넓게는 모두에 통한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식이 외계의 대상을 모사하여 취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유식파에서는 식이 인식하는 대상이 식 자체에 있다고 생각했다. 즉 식에는 인식하는 것과 인식되는 것이라는 2가지 계기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자의 입장을 무형상(無形象) 유식론, 후자의 입장을 유형상(有形象) 유식론이라 한다.
결국 불교에서는 존재를 물질인 색(色)과 정신인 심(心)으로 분류할 때 색보다 심을 중시하는 경향이 대승불교에 이르러 특히 유가(瑜伽)의 실천을 중시하는 유가행파에 의해 강조되고, 물질적인 외계의 존재를 부정한 유식설의 출현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안식·이식 등 6식을 말할 때의 식은 원어가 비지냐나(vijñāna)이지만, 그러한 식이 스스로를 둘로 나누어 인식활동을 하고 있는 방식을 비지냐프티(vijñapti)라는 말로 표시한다. 이 말에는 '알게 하는 것'이라는 사역의 의미가 담겨 있다.
유식으로 말할 경우의 식은 '비지냐프티'이며, 이는 우리가 흔히 '나' 또는 '법'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해도 그것은 외계의 실체 등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식(vijñapti)의 온갖 활동에 근거하는 것이고, 실재하는 것은 오직 식뿐임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유식파에서는 외계의 존재를 부정하고 오직 마음의 존재를 인정한다. 현상이라는 것도 마음이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진 것이며 우리가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보여지는 측면이라는 객관으로서의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유식(vijñapti-mātra)이라는 말은 마음이 둘로 나뉘어(vi) 대상을 알게 한다(jñapti)는 의미를 중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의 6식에 유식파가 추가한 2식 중 제8식인 아뢰야식은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생사하는 윤회의 주체이며 업의 담당자이다. 이 경우에는 십이인연의 식에 상당한다. 그것은 또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고도 하여 자연계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출현시키는 종자, 즉 가능력을 지닌 자기존재의 근원체를 뜻한다.
제7식인 말나식이란 근본식인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겨나 도리어 그 아뢰야식을 자아라고 집착하는 식으로서 결국 온갖 번뇌와 상응하는 심층적 자아의식이다. 이처럼 유식설에서는 존재 전체의 근원체로서의 아뢰야식과 오염된 행위를 낳는 근원적인 자아의식이라는 2식의 심층심리를 수립함으로써 식의 이론을 최대로 진전시켰다. 한편 바수반두[世親]는 식과 전변(轉變)이라는 두 개념을 결합하여 식전변이라는 사상을 창안했다.
식전변에서의 전변은 분별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식, 아뢰야식 속에서 종자가 변화·성장하는 것, 종자로부터 온갖 식들이 생기는 것이라는 3가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심층과 표층을 모두 포함한 존재 전체가 식의 변화에 불과하다는 사상이다. 이리하여 원시불교 이래 자기존재의 일부를 형성하는 것으로 일컬어왔던 '식'이라는 개념이 우주 전체를 형성하는 기본체를 가리키는 말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다움

 

若神無常相者 亦無罪無福。若身無常 神亦無常 二事俱滅 則墮斷滅邊。

墮斷滅 則無到後世 受罪福者。若斷滅 則得涅槃 不須斷結 亦不用後世罪福因緣。

如是等種種因緣 可知神非無常。

만약 정신(영혼)이 무상(無常)한 모습이라면 또한 죄도 없고 복도 없는 것이며,

만일 몸이 무상(無常)한 것이라면 영혼도 무상한 것이 되나니, 이 두 가지 모두가 사라지면 한 쪽으로 치우친 단멸(斷滅)의 극단에 떨어지게 될 것이며, 단멸(斷滅)에 떨어지게 되면 후생에 이르러 죄와 복을 받을 이도 없게 되며,

만일 단멸 그대로가 열반을 얻는 것이라면 번뇌=結(결)을 끊을 필요도 없을 것이며, 또한 후생의 죄와 복의 인연도 필요치 않은 것이 되나니, 

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정신(영혼)은 무상(無常)하여 항상치 않음을 알 수 있느니라.

 

단견(斷見, 단멸견斷滅見)이라 함은 5중(오온)이 사라져 없어지는=滅한다는 견해(죽게 되면 모든 것이 끊어져 업과 과보도 없어지게 되니, 인생을 맘대로 살아도 된다는 견해)를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여 즐기는 것- 대지도론(大智度論) 제7권 4

 

若神自在相 作相者 則應隨 所欲得皆得, 今所欲更不得 非所欲更得。

若神自在 亦不應有 作惡行 墮畜生惡道中。

만약 정신(영혼)이 걸림없이 자유로운 것이라면 얻고자 하는 것은 마땅히 모두 얻을 수 있어야 하나니, 지금 희망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더욱 얻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희망하지 않는 것은 더욱 얻어지게 되기도 하며,

만약 정신(영혼)이 걸림없이 자유로운 것이라면 나쁜 짓을 하고도 축생이나 나쁜 길에 떨어지는 일이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이며,

 

復次 一切衆生 皆不樂苦 誰當好樂 而更得苦? 以是故 知神不自在 亦不作。

또한, 일체 중생들 모두는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나니, 누가 즐거움을 좋아하면서 한편으로 괴로움을 얻으려 하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정신(영혼)은 걸림없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며, 짓는 이=作者(작자)도 아님을 알 수 있음이라.

 

又如人畏罪故 自强行善 若自在者 何以畏罪而 自强修福?

又諸衆生 不得如意 常爲煩惱 愛縛所牽。如是等 種種因緣 知神不自在 不自作。牽 끌 견

또한 어떤 사람이 죄를 두려워하여 억지로 선을 행하여 선업을 짓고자 노력하나니,

만일 자재하다면 어찌 죄를 두려워하여 억지로 복을 닦고자 노력하겠는가?

또한 모든 중생들이 항상 뜻대로 이루지 못한 채 항상 번뇌에 시달리고 갈애(渴愛)에 속박되어 끄달리나니,

이러한 갖가지의 인연들에 의하여 영혼(정신)이 자재하지 못한 것이며, 스스로 짓는 作者(작자)도 아님을 알 수 있느니라.

 

若神不自在 不自作者 是爲無神相, 言我者 卽是六識 更無異事。

復次 若不作者 云何閻羅王 問罪人, '誰使汝作 此罪者?'

罪人答言, '是我自作' 以是故 知非不自作。

若神色相者 是事不然。何以故, 一切色無常故。

만약 정신(영혼)이 자재하지 않고 스스로 짓는 이도 아니라면, 이는 정신(영혼)의 모습이 없는 것으로, 그대가 말한 '나'라는 것은 6식(六識)일 뿐, 별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또한 짓는 이=作者(작자)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염라왕이 죄인들에게 '누가 너로 하여금 이러하 죄를 짓게 하였는가?'하고 물으면, 죄인들은 대답하기를 '내 스스로가 지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인가?

이로 미루어 보아 스스로 짓지 않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음이라.

만약 정신(영혼)이 (겉으로 드러나 볼 수 있는) 물질=色(색)의 모습이라 한다면 이는 옳지 못한 것이니, 왜냐하면, 모든 물질=色(색)은 무상하기 때문이니라.

 

육식(六識, sadvijñāna, six vijñānas, six consciousnesses)은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을 말한다. 복수형 접미사 신(身)을 사용하여 6식신(六識身)이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은 1가지로 단일한 것이지만 그 발동 근거인 6경(六境)과 6근(六根)에 따라 이들 6가지의 식(識: 요별, 지식. 앎, 의식)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는 달리, 대승불교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이 부파불교에서 말하는 6식에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추가된 8식(八識)으로 나뉜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모든 객관적 대상을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 · 법(法)의 6경(六境)으로 나누는데, 6식은 이 6경에 대하여 보고[見] · 듣고[聞] · 냄새 맡고[嗅] · 맛보고[味] · 감촉하고[觸] · 아는[知] 인식작용이다.-위키

 

問曰, 人云何言 '色是我相'??

묻나니, 사람들은 어찌하여 '물질=색온(色蘊)이 나의 모습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 有人言, '神在心中 微細如芥子 淸淨名爲淨色身'

更有人言 '如麥', 有言 '如豆', 有言 '半寸',

有言 '一寸', 初受身時 最在前受 譬如像骨, 及其成身 如像已莊。

有言 '大小隨人身 死壞時 此亦前出' 如此事 皆不爾也! 像 형상 상 

답하나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정신(영혼)은 마음속에 있어서 미세하기가 겨자씨와 같고 청정(淸淨)함을 일컬어 맑은 색신(色身)이라 한다'고 하였으며,

또한 어떤 사람은 '마치 보리쌀과 같다'고 말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마치 콩알 같다'고 말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그 크기가 반 치=半寸(반촌)이다'고 말하였고,

어떤 이는 '크기가 한 치=一寸(일촌)으로, 처음 몸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받게 되는 것으로, 마치 형상이 골수(骨髓)와 비슷하며, 몸을 이루게 되면 등상과 같이 가지런히 이루어지는 것이다'고 말하였으며,

다시 어떤 이는 '크고 작음이 사람의 몸에 따라 다르나, 죽어 무너질 때에는 이것이 제일 먼저 빠져 나가는 것이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말들 모두는 옳지 못한 것이니라.

 

何以故, 一切色 四大所造 因緣生故 無常。

若神是色 色無常 神亦無常。若無常者 如上所說。

왜냐하면 일체의 색온(色蘊)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으로, 인연 따라 (인연 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에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신이 색온(色蘊)과 어우러져 있는 것이라면 물질(색온)은 무상(無常)한 것이므로 정신 역시 무상(無常)한 것일 것이다. 만약 무상(無常)한 것이라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니라.

 

問曰, 身有二種, 麤身及細身。麤身無常, 細身是神 世世常去入 五道中。

묻나니, 몸에는 二種(이종)이 있으니, 거친 몸=麤身(추신)과 미세한 몸=細身(세신)입니다.

거친 몸=麤身(추신)은 무상한 것이지만, 미세한 몸=細身(세신)은 정신(영혼)이어서 세세에 항상하여 오도(五道)를 드나드는 것입니다.

 

불교를 잘못 배우면 이런 사람 되는 것입니다이 부분에 대해 능엄경(楞嚴經)에서는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아는 식()에 대해 신식(神識)이라 풀어놓고 자세한 해석이 없거니와 유식(唯識)에서도 삼자성설(三自性說)을 내세웠으나 깊은 풀이가 없으며 삼매를 통해 정확히 살펴본 이는 세상에 안 나오니 책보고 떠드는 어설픈 사람들에 의해 후세에 엉뚱한 소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반야바라밀다경

 

答曰, 此細身不可得。若有細身 應有處所可得, 如五藏 四體一一處中求 皆不可得。

답하나니, 이러한 미세한 몸=細身(세신)이란 얻을 수 없는 것으로, 미세한 몸=細身(세신)이 있다면 그 처소가 있어야 하나니, 오장(五藏)과 사지(四肢) 등의 낱낱 곳에서 구하여려 하여도 모두지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