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11권 9
大智度論釋 初品中 '檀相義’第十九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19. 초품 중 단(檀)의 모습[相]과 뜻을 풀이함 1
問曰, 云何名檀?
묻나니, 무엇을 단(檀, dāna, 보시)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 檀名布施。心相應善思 是名爲檀。
답하나니, 단(檀 dāna)이란 보시를 말하는 것이며, 마음이 선한 생각=善思(선사)에 상응하여 사유하는 것을 단(檀, dāna)이라 이름하는 것이라.
有人言, 從善思起身 口業 亦名爲檀。
有人言, 有信 有福田 有財物 三事和合時, 心生捨法 能破慳貪 是名爲檀。
譬如慈法 觀衆生樂 而心生慈, 布施心數法 亦復如是, 三事和合 心生捨法 能破慳貪。
어떤 분은 '착한 생각=善思(선사)로부터 몸과 입의 업을 일으키게 되면 역시 단(檀 dāna)이 된다'고 말하며,
또한 어떤 분은 '信(신)=믿음과 福田(복전)=복밭과 재물(財物), 이 세 가지가 화합할 때 마음에서 희사(喜捨)하고자 하는 생각이 우러나 능히 간탐과 탐욕을 깨뜨리게 되는 것을 단(檀 dāna)이라 한다고 말하였으며,
이는 자비의 관법=慈法(자법,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으로 중생들이 즐거워함을 관찰하면 마음에서 인자한 생각이 우러나는 것과 같으며, 보시의 마음이 작용하는 心數法(심수법) 또한 이와 같으니, 信(신)=믿음과 福田(복전)=복밭과 재물(財物), 세 가지가 화합하여 마음속에 희사(喜捨)할 생각을 내고 능히 간탐과 탐욕을 깨뜨린다.'고 비유하여 말하였느니라.
心數法(심수법, caitasika-dharma) 신역어는 심소법(心所法). 심수(caitasika)란, ‘마음에 속하는 것’이란 뜻으로 ‘마음에 속하는 작용’ 나아가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작용’을 가리킨다.
檀有三種, 或欲界繫, 或色界繫, 或不繫。丹本注云, 聖人行施故 名不繫 繫 맬 계
보시에 三種(삼종)=세 종류가 있나니, 欲界繫(욕계계)=욕계에 얽매이는 것과 色界繫(색계계)=색계에 얽매이는 것과 不繫(불계)=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단주에서 설하기를 ‘성인은 보시를 하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不繫(불계)=얽매이지 않음이라 한다’고 하였다.-
心相應法, 隨心行 共心生 非色法 能作緣 非業
業相應 隨業行 共業生 非先世業報生。
二種修, 行修 得修。
二種證, 身證 慧證。
若思惟斷 若不斷 二見斷, 欲界 色界盡見斷。
有覺有觀法, 凡夫 聖人共行。如是等 阿毘曇中 廣分別說。
마음과 상응하는 법=心相應法(심상응법)이란 마음의 움직임=心行(심행)을 따라 마음과 더불어 생기는=共心生(공심생)이니, 겉으로 드러나 볼 수 있는 형태가 갖춰진=色法(색법)은 아닐지라도, 능히 연(緣)을 만드나, 非業(비업)=업은 아니다.
業相應(업상응)=업과 상응한다 함은 업의 움직임=業行(업행)을 따라 업과 더불어 생기는 것으로, 전생의 업보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수행이 있으니, 行修(행수)=행하는 수행과 得修(득수)=얻는 수행이며,
두 가지 증득(증명)이 있으니, 身證(신증)=몸으로 증득함과 慧證(혜증)=지혜로 증득함이다.
일체 욕계의 마지막에 견해를 단절하여 끊어내는=思惟斷(사유단)과 부단(不斷)의 (상견常見과 단멸견斷滅見) 두 가지 견해를 끊어내는 것이나,
유각유관(有覺有觀, 유심유사有尋有伺) 삼매의 법은 범부와 성인이 함께 행하는 것이라, 이러한 것들은 아비담(阿毘曇)에서 널리 분별하여 밝히는 바와 같으니라.
색법(色法)=색(色) 원어인 산, rupa(티, gzugs)는 rup(형태 만들기)라는 의미의 동사로부터 만들어진 말로, 형태가 있는 것이라는 뜻이 있음.「색이란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산, rupyata iti rupam)」로 해석된다. 또한 ru(파괴하다)라는 동사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파괴되는 것, 변화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음. 요컨대 형(形)을 가지고 생성(生成)하며 변화(變化)하는 물질 현상을 가리키는 말임. 전통적으로는 변괴(變壞)·질애(質碍)라는 뜻이 있다고 해석됨.-불교사랑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초선(初禪), '각(覺)'은 거친 마음이고, '관(觀)'은 산란한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거친 마음과 산란한 마음 즉, 개괄적이고 거시적인 사유인=覺과 세밀하고 미세한 고찰=觀의 삼매.
아비담(阿毘曇, Abhidharma)= 그 어의는 ‘법(dharma)에 관하여(abhi)’라는 의미로, 아비달마(阿毘達磨)ㆍ비담(毘曇)이라 음역하거나 대법(對法)ㆍ무비법(無比法)ㆍ승법(勝法) 등으로 의역한다.
復次 施有二種, 有淨, 有不淨。
不淨施者 直施無所爲。或有爲求 財故施, 或愧人故施, 或爲嫌責故施, 或畏懼故施, 或欲取他意故施, 或畏死故施, 或狂人令喜故施, 或自以富貴故應施, 或諍勝故施, 或妒瞋故施, 或憍慢自高故施, 或爲名譽故施, 或爲呪願故施, 或解除衰求吉故施, 或爲聚衆故施, 或輕賤不敬施。如是等種種 名爲不淨施。
淨施者 與上相違, 名爲淨施。愧 부끄러워할 괴, 嫌 싫어할 혐, 妒 강새암할 투,
또한, 二種(이종)의 보시(布施)가 있으니, 청정(淸淨)한 보시와 부정(不淨)한 보시라.
청정하지 못한 보시라 함은 비록 베풀기는 하나 이루어 짐이 없는 것이니,
혹은 재물을 구하기 위하여 보시하거나, 다른 사람들 보기에 스스로 부끄러워 보시하거나,
미움받고 책망 듣기 싫어서 보시하거나, 무섭고 두려워서 보시하거나,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보시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보시하거나,
사람을 홀리어 기쁘게 하기 위하여 보시하거나,
스스로의 부귀함을 내세우고자 보시하거나, 경쟁에서 이기고자 보시하거나,
질투하고 미워하는 까닭에 보시하거나, 교만하여 스스로를 돋보이고자 보시하거나,
명예를 위하여 보시하거나, 주술적인 바램=呪願(주원)을 위해서 보시하거나,
쇠운을 벗어나 길운을 구하기 때문에 보시하거나, 대중을 모으기 위하여 보시하거나,
가난한 이를 업신여겨 공경치 않으면서 보시하는 등의
이와 같은 갖가지 보시를 不淨施(부정시)= 청정하지 못한 보시라 하며,
淨施(정시)=깨끗한 보시란, 위의 여러 가지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니, 이를 청정(淸淨)한 보시라 하느니라.
復次 爲道故施, 淸淨心生 無諸結使 不求今世後世報 恭敬憐愍故 是爲淨施。
淨施是趣涅槃道 之資糧 是故言爲道故施。
若未得涅槃時施 是人天報樂之因。
淨施者 如華瓔珞 初成未壞 香潔鮮明, 爲涅槃淨施 得果報香 亦復如是。
또한 도(道)를 위하는 까닭에 보시하는 것이란, 청정한 마음이 생겨나 모든 번뇌=結使(결사)가 없으며, 금생과 후생의 과보를 구하지 않으며, 공경하고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니, 이를 淨施(정시)=깨끗한 보시라 한다.
淨施(정시)=깨끗한 보시는 열반의 길(道)로 나아가는 資糧(자량)=보리와 열반에 이르기 위한 여러 가지 선근의 공덕이므로 ‘도(道)를 위하는 까닭에 보시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약 아직 열반을 증득하지 못하였을 때 보시하면, 이는 인간이나 하늘의 과보인 즐거움 받을 수 있는 인(因)이 되나니,
淨施(정시)라 함은 마치 꽃으로 영락(瓔珞)을 새로이 방금 만든 것과 같아서, 흐트러지지 않고 향기롭고 정결하며 산뜻한 것과 같으니, 열반을 위하여 淨施(정시)를 베풀어 그 과보의 향기를 얻음도 이와 같으니라.
如佛說, '世有二人爲難得, 一者 出家中 非時解脫比丘, 二者 在家白衣 能淸淨布施' 是淨施相 乃至無量世 世世不失, 譬如劵要 終無失時。
是布施果 因緣和合時便有。譬如樹得時節會 便有華葉果實, 若時節未至 有因而無果。
마치 부처님께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기 어려우니, 첫째는 출가한 이로서 非時解脫(비시해탈)= 때가 안 되었으나 해탈한 비구요, 둘째는 집에 있는 속인으로서 능히 맑게 베푸는 사람이다.'고 설하신 바와 같으니,
이 淨施(정시)의 모습은 무량한 세계에서 세세토록 잃지 않는 것이니, 마치 중요한 문서는 끝까지 소실되지 않는 것과 같으며,
이 보시의 과보는 인연이 화합할 때 문득 이루어지나니, 마치 나무가 시절이 되면 문득 꽃과 잎과 열매를 맺으나, 만약 아직 시절이 이르지 않으면 인(因)만 있을 뿐 아직 果(과)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是布施法 若以求道 能與人道。何以故, 結使滅名涅槃。當布施時 諸煩惱薄故 能助涅槃。
이 보시의 법=布施法(보시법)이란, 만약에 그로써 도를 구한다면 능히 구하는 이에게는 도를 가져다주나니, 왜냐하면 모든 번뇌=結使(결사)가 사라진 것을 열반이라 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베풀 때에는 모든 번뇌가 얇아지기 때문에 능히 열반에 이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니라.
於所施物中 不惜故除慳, 敬念受者故除嫉妒, 直心布施故除諂曲,
一心布施故除調, 深思惟施故除悔, 觀受者功德故 除不恭敬,
自攝心故除不慚, 知人好功德故除不愧, 不著財物故除愛, 慈愍受者故除瞋,
恭敬受者故除憍慢, 知行善法故除無明, 信有果報故除邪見, 知決定有報故除疑。
재물을 보시함에 아까워하지 않은 까닭에 인색한 간탐의 마음이 없어지게 되고,
받는 이를 공경하는 생각을 지닌 때문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올곧은 마음으로 보시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굽혀 아첨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보시하기 때문에 들떠서 고르지 않은 마음이 없어지며,
깊이 생각해서 보시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받는 이의 공덕을 생각하기 때문에 공손하지 못한 마음이 없어지게 되며,
스스로의 마음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不慚(불참)=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이 없으며,
남의 좋은 공덕을 알게 된 까닭에 不愧(불괴)창피스러운 마음이 없으며,
재물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애착함이 없어지게 되며,
받는 이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성내는 마음이 없어지며,
받는 이를 공경하기 때문에 교만한 마음이 없어지며,
착한 법을 행할 줄 알기 때문에 무명(無明)이 사라지게 되며,
과보가 있음을 믿기 때문에 삿된 소견을 없애게 되며,
과보가 있게 됨을 결정코 알기 때문에 (인과응보因果應報) 의심하는 마음을 없애게 되느니라.
如是等種種 不善諸煩惱, 布施時悉皆薄 種種善法悉皆得。
布施時六根淸淨 善欲心生 善欲心生故 內心淸淨,
觀果報功德故 信心生, 身心柔軟故喜樂生, 喜樂生故得一心, 得一心故實智慧生。
如是等諸善法 悉皆得。
이와 같은 갖가지 착하지 못한 번뇌들이 보시를 함에 따라 모두 얇아지고, 갖가지의 착한 법들을 모두 얻게 되나니,
보시할 때에는 육근(六根)이 청정(淸淨)하여지고,
마음속에서 선업(善業)을 짓고자 하는 착한 욕심이 생겨나게 되며,
착한 욕심이 생겨나는 까닭에 마음이 깊이 청정하여지고,
과보의 공덕을 관찰하는 까닭에 믿는 마음이 일어나며,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까닭에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며,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까닭에 한마음=一心(일심)이 되며,
一心(일심)이 되는 까닭에 진실한 지혜가 생겨나나니,
이러한 갖가지 착한 법을 모두 얻게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