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10권 8
大智度初品中 ‘十方諸菩薩來’釋論 第十五 之餘卷第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15. 초품 중 ‘시방의 보살들이 모여 오심’을 풀이함 13
問曰, 何以故言 '氣力安樂不'?
묻나니, 어찌하여 ‘기력이 있으시고 편안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입니까?
答曰, 有人病差 雖能行步坐起 氣力未足 不能造事施爲 攜輕擧重 故問'氣力'。
有人雖病得差 能擧重攜輕 而未受安樂 是故問'安樂不?' 攜 끌 휴, 이끌 휴
답하나니, 어떤 사람은 비록 병에 차도가 있어 걷고, 앉고, 일어서기는 하나, 아직 기력이 부족하다면 일을 만들어 행하지 못하고, 가벼운 것을 끌거나,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는 까닭에 기력을 묻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비록 병이 쾌차하여 능히 무거운 것을 들고 가벼운 것을 끌게 되었으나, 아직 안락함(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때문에 ‘안락하십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問曰, 若無病有力, 何以未受安樂?
묻나니, 만약 병이 없고 힘은 있는데 어찌하여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까?
答曰, 有人貧窮 恐怖 憂愁 不得安樂, 以是故問, '得安樂不?'
復次 有二種問訊法, 問訊身 問訊心。
若言 '少惱 少病 興居輕利 及氣力' 是問訊身。若言 '安樂不' 是問訊心。
답하나니,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두렵고 근심한다면 안락할 수 없으므로 ‘안락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또한 문안하는 법에는 두가지가 있으니, 몸의 문안과 마음의 문안이라.
만일 ‘少惱(소뇌)=번뇌 적으시고 少病(소병)=병환 적으시며, 興居(흥거)=기거하심에 경쾌하시고 기력이 있으십니까’라고 한다면 이는 몸의 문안이요, 만일 ‘안락하십니까’라고 한다면 이는 마음의 문안이니라.
種種內外諸病 名爲身病, 婬欲 瞋恚 嫉妒 慳貪 憂愁 怖畏等 種種煩惱, 九十八結 五百纏 種種欲願等 名爲心病。
是一一病問訊故 言'少惱 少病 興居輕利 氣力安樂不'。
갖가지 안팎의 모든 병들을 '몸의 병=身病(신병)'이라 하고, 음욕ㆍ성냄ㆍ질투ㆍ간탐ㆍ근심ㆍ두려움 등 갖가지 번뇌와 98종의 번뇌=結(결)과 5백 종의 얽매임=纏(전, 수혹隨惑)과 갖가지 즐기고 좋아하는 것=欲(욕)을 얻고자 원(願)을 세우는=欲願(욕원)을 모두 마음의 병이라 하나니,
이들 낱낱 병을 문안하기 때문에 ‘번뇌 적으시고 병환 적으시며, 기거에 경쾌하시고 기력이 있으시며 안락하십니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전(纏)= 무참(無慚), 무괴(無愧), 진(瞋), 질투(嫉) 간(慳), 회(悔), 졸음(睡), 잠(眠), 도거(掉擧), 혼침(惛沈) 등의 수번뇌(隨煩惱)를 이름. 수혹(隨惑)이라고도 함
問曰, 人問訊則應爾 諸天尚不應 如此問訊 何況於佛?
묻나니, 사람들의 문안이라면 그렇다 하겠지만, 하늘들에게도 그처럼 문안할 수 없을 것이거늘, 하물며 부처님에게 그렇게 문안할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 佛身二種, 一 神通變化身, 二 父母生身。父母生身 受人法故 不如天 是故應如人法 問訊。
답하나니, 부처님의 몸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신통으로 변화한 몸이요, 두 번째는 부모가 낳아 주신 몸이라.
부모가 낳아 주신 몸은 인간의 법을 받아들이므로 하늘과 같지 않기에 인간의 법과 같이 문안하는 것이니라.
問曰, 一切賢聖 心無所著 不貪身 不惜壽 不惡死 不悅生, 若如是者 何用問訊?
묻나니, 일체의 성현들은 마음에 집착이 없어서 몸을 탐내지 않고 (몸에 탈 없기를 바라지 않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기뻐하지 않으니, 만일 이와 같다면 어찌하여 문안할 필요가 있습니까?
答曰, 隨世界法故 受人法問訊。遣問訊 亦以人法。'千葉金色蓮華' 如上說。
답하나니, 세상의 법을 따르기 때문이니, 사람의 法(법)에 따라 문안을 받으며,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는 것 또한 사람의 法(법)으로써 하신 것이라, 천 잎의 금빛 연꽃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니라.
▶經. 爾時 釋迦牟尼佛 受是千葉金色蓮華已, 散東方恒河沙等 世界中佛。
▷經. 그때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천 잎의 금빛 연꽃을 받으신 뒤, 동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의 부처님께 흩뿌리셨다.
▶論. 問曰, 佛無勝如 今何以故 向東方諸佛 散華供養?
如佛初得道時 自念, '人無所尊 則事業不成 今十方天地 誰可尊事者? 我欲師而事之'
▷論. 묻나니, 부처님보다 수승한 이가 없거늘, 지금 어찌하여 동쪽을 향하여 여러 부처님께 꽃을 흩뜨려 공양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도 처음 도를 얻으시고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우러러 존경할 사람이 없으니, 곧 사업 (도탈중생度脫衆生의 선업善業) 을 이룰 수 없으리니, 지금 시방의 천지 사이에 누구를 우러러 보고 높고 존귀한 일을 해야 할것인가! 내가 스승이 되어 이 일을 하리라' 하셨으니,
是時 梵天王等 諸天白佛, '佛爲無上 無過佛者' 佛亦自以天眼 觀三世十方天地中 無勝佛者, 心自念言. '我行摩訶般若波羅蜜 今自致作佛 是我所尊 卽是我師 我當恭敬供養 尊事是法'
이때 범천왕을 비롯한 하늘의 무리들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부처님께서는 위가 없으시고, 부처님보다 수승한 이가 없으십니다' 하였으며,
부처님께서도 스스로의 천안으로 삼세와 시방의 천지를 관찰하였으나 아무도 당신을 능가할 이가 없었으므로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이제 스스로 부처를 이루었으니, 그것이 내가 높일 바이며 나의 스승이라. 나는 마땅히 이 법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높이 섬기리라.'
譬如 有樹名爲好堅, 是樹在地中百歲 枝葉具足 一日出生高百丈, 是樹出已 欲求大樹 以蔭其身。
是時林中有神 語好堅樹言, '世中無大汝者 諸樹皆當在 汝蔭中'
비유하자면, 마치 호견(好堅)이라는 나무와도 같으니, 이 나무는 땅속에서 백 년 동안 가지와 잎을 갖추고 있다가 어느 날 돋아나니 높이가 백 길(300M)이나 되었다.
이 나무가 다 돋아난 뒤에, 더 큰 나무를 구하여 자기의 몸을 숨기려 하자,
이 때에 숲 속에 있던 신이 호견나무에게 말하기를, 세상에는 그대보다 큰 나무가 없느니, 모든 나무들은 그대의 그늘에 들게 되리라.'하였다.
佛亦如是 無量阿僧祇劫 在菩薩地中生, 一日於菩提樹下 金剛座處坐 實知一切諸法相 得成佛道。
부처님께서도 이와 같아서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보살의 지위에 머물러 계시다가 태어나셔서, 어느 날에 보리수 아래의 금강좌에 앉으셔서 여실하게 일체제법의 실상을 깨닫고는 불도를 이루셨으니,
是時自念, ‘誰可尊事 以爲師者 我當承事恭敬供養'
時 梵天王等 諸天白佛言, '佛爲無上 無過佛者' 今何以故 復供養東方諸佛?
이때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누구를 높이 섬기어 스승으로 삼을 수 있어, 내가 마땅히 받들어 섬기어 공경하고 공양해야 하는가’ 하시니,
범천왕 등의 하늘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부처님께서는 위가 없으시고 부처님보다 수승한 이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어찌하여 다시 동쪽의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입니까?
答曰, 佛雖無上 三世十方天地中 無過佛者 而行供養。
供養有 上中下, 下於己者 而供養之 是下供養, 供養勝己 是上供養, 供養與己等者 是中供養。諸佛供養 是中供養。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비록 위가 없으시고 삼세와 시방 천지 가운데 부처님보다 수승한 이가 없으나 공양을 행하셨으니,
공양에는 상ㆍ중ㆍ하의 등급이 있으니, 자기보다 낮은 이에게 공양하는 것을 下供養(하공양)=하등의 공양이라 하고, 자기보다 훌륭한 이에게 공양하는 것을 上供養(상공양)=상등의 공양이라 하고, 자기와 동등한 이에게 공양하는 것을 中供養(중공양)=중등의 공양이라 하니, 부처님들께 공양하는 것은 중등의 공양=中供養(중공양)이니라.
如大愛道比丘尼, 與五百阿羅漢比丘尼等 一日中一時入涅槃。
是時 諸得三道 優婆塞 擧五百牀, 四天王擧佛 乳母大愛道牀, 佛自在前 擎香鑪燒香供養。
佛語比丘, '汝等助我 供養乳母身' 鑪 화로 로
마치 대애도(大愛道, Mahapajapatī 구담니) 비구니의 경우와 같으니, 그녀는 5백 명의 아라한 비구니들과 함께 하루에 일시에 열반에 드셨으니, 이 때에 三道(삼도, 삼승의 도)=세 가지 도를 얻은 우바새(優婆塞, 청신사)들은 5백 개의 상여=床(상)을 들었으며, 사천왕은 부처님의 유모인 대애도의 상여를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앞에서 향로를 들고 향을 사루어 공양하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도 내가 유모의 시신에 공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라.'하시니,
대애도(大愛道, Mahapajapatī)=부처님의 양모(養母)로서, 구담니(舊曇尼)라고도 함.
爾時 諸阿羅漢 比丘 各各以神足力 到摩梨山上 取牛頭栴檀香薪 助佛作𧂐 是爲下供養。
以是故 雖不求果 而行等供養。復次 唯佛應供養佛 餘人不知佛德. 如偈說; 薪 섶나무 신
그때 아라한 비구들이 제각각의 신통력으로 마리산(摩梨山, Malaya)의 정상에 이르러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 장작을 취해 와서는 부처님을 도와 단을 쌓아 불을 지폈으니, 이것이 하등의 공양=下供養(하공양)이다.
이러한 까닭에 비록 과보를 구하지는 않으면서도 동등하여 치우침이 없는 공양을 행하셨으며,
또한 오직 부처님만이 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으니, 다른 이는 부처님의 위덕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마리산(摩梨山, Malaya)= 인도의 남쪽 지방에 있는 전단향의 주산지.
智人能敬智 智論則智喜, 智人能知智 如蛇知蛇足。
지혜로운 사람이라야 능히 지혜로운 사람을 공경하나니,
지혜로운 논의(論議)는 지혜롭기에 기쁨이 우러나오게 하는 것으로
지혜로운 사람만이 능히 지혜를 아나니, 마치 뱀이 뱀의 다리를 아는 것과 같으니라.
以是故 諸佛一切智 能供養一切智。
復次 是十方佛 世世勸助 釋迦牟尼佛。
如七住菩薩 觀諸法空無所有 不生不滅。如是觀已 於一切世界中 心不著 欲放捨 六波羅蜜入涅槃。
이러한 까닭에 일체지를 이루신 부처님들께서는 능히 일체지를 이루신 분께 공양하시는 것이며,
또한 이 시방의 부처님께서는 세세(世世)동안 석가모니부처님을 권하고 도와 주셨으며,
7주(住, 불퇴위, 원행지)의 보살은 모든 법이 공하여 정(定)해진 자성(自性)이 없는 무소유(無所有)로,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관하며, 이렇게 관하고는 일체의 세계에서 마음이 애착되지 않으며, 세간의 즐기고 좋아하는=欲(욕)을 放捨(방사)=내려 놓아 버리고 육바라밀을 통하여 열반에 드시는 것이라.
七住菩薩(칠주보살)=보살 12위, 10위 가운데 불퇴위(不退位)의 경지. 즉 원행지(遠行地, skt. duramgama-bhumi)이며, 원행지는 심행지(深行地), 심입지(深入地), 심원지(深遠地)라고도 한다. 성문승과 연각승 2승(二乘)의 경지를 초월해, 각(覺)의 영역을 넘어 원대한 진제(眞諦)의 세계에 이른 경지이다. 수혹(修惑)을 끊고 대비심을 일으켜, 2승의 오(悟)를 초월해 광대무변한 진리세계에 이르는 지위로서, 지혜의 바다에 멀리 혹은 바다 깊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제7지는 넓고 깊은 지혜를 찾기 위해 멀리 가기 때문에 원행지라 이름 한다. 인간세상을 멀리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제7단계이다.
이 보살이 10바라밀을 갖출 때는 생각마다 4섭법, 37보리분법과 3해탈문 역시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10바라밀 중에서 방편바라밀(方便波羅密)을 닦는 것이다.- 아미산
譬如 人夢中作栰 渡大河水 手足疲勞 生患厭想。
在中流中 夢覺已 自念言, '何許有河 而可渡者?' 是時 勤心都放。
菩薩亦如是 立七住中 得無生法忍 心行皆止 欲入涅槃。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꿈에서 뗏목을 만들어 큰 강을 건너고자 하였는데, 손과 발이 피로하여 싫어하는 생각이 나서, 강의 한가운데에 이르러 꿈을 깨었나니, 꿈에서 깨어나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도대체 어찌하여 강이 있다고 여겨서 건너고자 하였던 것인가?' 그리고는 애쓰던 마음을 모두 내려 놓는 것과 같이,
보살도 이과 같아서 7주(住, 불퇴주, 원행지)에 이르러 (방편바라밀의 완성를 통해 중도에 자리 잡게 되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면 심행(心行)이 모두 그치어 열반에 들고자 하게 되는 것이니라.
無生法忍(무생법인, anutpattika dharma-kṣānti)=일체법의 생함이 없는 이치를 인정하고 안주함. 곧 일체법이 불생불멸임을 확신하는 것.